』『'죽기 직전까지 지금처럼 쌩쌩하게 살다가 바로 죽는 것'
'잘 죽는 죽음' 하니까 상대적으로 '잘 못 죽는 죽음' 이란 말도 같이 떠오릅니다.
사실 잘 죽는 죽음이나 못 죽는 죽음 같은 것은 없습니다.
어떤 죽음이든 모든 죽음은 죽는 본인에게는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은 운명에 가깝습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신이 주관하는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운명이나 신이 주관하는 영역이라 할 지라도,
그 운명을 받아들이거나 신의 의도대로 이행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어떤 운명도 어떤 신도 강요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의 삶'의 창조자들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주변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왔고 그리고 만들어 갈 것입니다.
죽음 역시 스스로 창조해 낼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때는 늘 자신에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합니다.
어떤 죽음이 되었든 자신의 의식을 성장시키는데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결정됩니다. 아니 결정 합니다.
저는 주관적으로
‘잘 죽기’란
‘지금처럼 쌩쌩하게 움직이다가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죽음이 나에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주관을 떠나서
누구나 쌩쌩하게 움직이다가 바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 이익은 엄청나겠지요.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얻어지는 이익은 상상 이상이 될 겁니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아주 간혹 알려지는 죽음인 ‘좌탈(坐脫)’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다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냥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만 먹고 적절한 방법만 알면 모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잘 죽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그에 맞는 방법을 실천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삶의노래 죽음의노래』 참고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