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유시 萬事 有時
송 미심
지난밤에 비가 많이 왔는지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이 많고 소리도 세차다. 물가의 벚나무들이 잎사귀를 터뜨리고 남아 있던 꽃잎이 눈송이처럼 하늘거린다. 며칠만 일찍 왔더라면 한창 만발한 꽃송이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제때를 놓쳐 아쉽다. 내가 아버지의 속마음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한 무심한 처사로 속상했던 것처럼.
고등학교 여름 방학 때였다. 아버지는 넓고 네모진 밭을 장만했다고 보러 가자고 했다. 아버지가 재직하는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목에 있어 들르기가 좋다고 했다. 거기다 땅이 비옥해서 우리 일곱 형제자매 상급학교에 공부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자식들이 해마다 줄줄이 도시에서 학교에 다녔으니 그 뒷바라지도 힘들 때였다. 그런 중에 월급 모아 아버지 이름으로 된 밭을 얻었으니 얼마나 오달진 일이었으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집에서 잠시 지냈다, 대학입학등록을 하려고 우체국에 가던 중 함께 간 언니에게 아버지가 좋아하던 그 밭에 들르자고 했더니 주저했다. 언니는 아버지가 내 등록금 마련을 위해 그 밭을 팔았다고 했다. 딸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뭣에 쓰냐고 동네 사람에게서 아버지는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돌 고르고 거름 주었던 밭을 팔았으면서도 내색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리 든든해하던 밭을 남에게 넘기고 쓰라린 가슴을 안고 허정거리는 발걸음으로 어찌 집까지 오셨을지 가슴이 저몄다. 내가 미안해할까 봐 흔연스레 지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을 후비는 듯 쓰렸다. 언젠가는 그 밭을 다시 사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생각뿐 실행하지도 못하고 결혼해 버렸다.
딸아이를 안고 고향집을 찾았을 때 아버지는 선물로 한시漢詩를 써주시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붓을 꺼낸 다음 깔판을 깔고 화선지를 바르게 펴서 문진으로 눌러 글 쓸 준비를 했다. 그러고는 붓을 들어 첫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손끝이 사르르 떨렸지만 한 획 한 획에 정성을 들였다. 힘을 모으는 듯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이어 나갔다. 마무리하고 한 번 훑어보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어 버리기를 여러 번 했다. 슬며시 아버지를 쳐다보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버려진 한지가 겹겹이 쌓이고 나서야 아버지는 글씨 한 점을 선물로 주셨다. 생각만큼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애를 써 보았다고 겸연쩍어했다. 값나가는 ‘진다리붓’이라면 더 잘 쓸 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붓 타령이 아니라 좋은 붓으로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아버지의 갈급함을 그 순간 귀담아들어야 했다. 진다리붓 세트가 아버지의 열정을 피울 꽃봉오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예사롭게 흘려버렸다.
쉼 없이 내달리는 물길을 눈으로 따라간다. 어느새 물멍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에 줄기차게 흐르던 물길이 한가운데 솟아있는 바위에 부딪쳐 곤두박질하며 돌다 갈라져 흐른다. 아버지도 예기치 못한 일에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여전히 살아냈다.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몸져누웠을 때 눌러놓았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아버지가 내 곁에 오래도록 건강한 모습으로 계실 거라 여겼는데 아버지가 더는 붓을 잡지 못할 거리는 막막함에 아득했다. 세월도 물처럼 그 순간 붙잡지 않으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아버지는 우리 일곱 자식이 붓글씨를 써서 병풍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난초 한 촉이라도 그려드리면 무거운 마음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만 앞서고 난 한 잎 마음에 들게 그려지지 않았다.
난 치는 일은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흐트러졌다. 오랜 시간 얻어진 습득과 마음 집중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힘을 빼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나를 내리면 주변 사람이 보이는 관용 같은 것이었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일.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에게 붓글씨를 써 보라고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이미 떠나신 나이에야 나는 철든 것일까?
물은 쉼 없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나중 또다시 같은 그곳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모든 일에 때가 있어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걸 내게 가르쳐준다.. 내 마음의 짐도 함께 그렇게 흐르다 사라지면 좋겠다 싶다.
* "물멍" 수정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