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李源永 1886.7.3고종 23 ~ 1958.6.21
字는 봉경鳳卿.
퇴계 선생의 14대 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가정 출신이다.
성품이 온유하고 용모가 수려하고 총명하며 만 15세에 사서오경을 통독하였고, 20세에는 주를 붙여 설명할 수 있었다 한다.
儒家의 가문에 생장,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다가, 심상찮은 나라 정세와 개화의 물결에 시대가 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낀 바 있어 신문학을 배우고자 1909년 19세의 청년기에 보문의숙에 동생과 함께 입학하여 2년 간 공부하여 형제간에 1, 2등으로 졸업하였다.
보문의숙은 일제치하의 위대한 저항 시인 육사의 조부인 치헌공이 그들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인근의 유지들과 가산을 털어 예안에 세운 2년제 신식 교육기관이다.
여기에서 그는 철저한 민족 교육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분연히 조수인, 조병건, 이맹호등과 함께 예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소요 및 보안법 위반죄로 대구 지방법원 안동 지청에서 징역 1년의 판결을 받고, 대구 복심 및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역시 1년 형으로 판결이 나 경성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80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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