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20분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국기하기식이 열리는 와가 게이트로 출발한다. 차로 30여분 거리(약 20km)인 와가 게이트로 가는 Cannel Road 옆으로 Lahore Branch Canal이란 큰 수로가 흐르는데 동네 아이들이 수로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고 수로 가에 조성된 숲에는 양과 염소,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어 평화로운 모습이다. 와가 게이트 인근 노천시장에는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나온 아낙네들과 차량이 뒤엉켜 우리가 탄 버스가 지나가는데 애를 먹고 있다.
국경이라 청색군복을 입은 파키스탄 군인들이 초소마다 총을 메고 나와 차량을 일일이 확인한 후 통과시킨다. 주차장에서 내려 게이트로 가는 길 좌측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할 당시 인도에 살던 정든 고향을 버리고 종교를 따라 이주하는 이슬람인들이 파키스탄으로 기차를 타고 이주하는 모습을 한 흰 조각상들이 당시 그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
인도북부의 암리차르나 파키스탄 라호르를 오는 사람들이라면 꼭 들러서 보고 가야하는 행사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본래 같은 인종도 언어도 같은 한 나라였으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종교때문에 분리된 나라이다. 영국은 수천 년을 이어 온 인도역사를 단 300년 만에 인도에서 물러나면서 영국 멋대로 국경을 정해 버리자 그 과정에서 수많은 폭동과 학살 등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으며, 오늘날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남아 있어 테러, 국경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본래 인도는 브라만교를 믿는 나라였으나 마우리아왕조의 아쇼카 왕 이후 불교가 융성하다가 굽타왕조에 이르자 불교가 쇠퇴하고 지금과 같은 힌두교가 인도의 주류 종교가 되었다. 7세기경 이슬람교가 유입되었고 12세기경 이슬람 제국이 수립되자 계급제도가 엄격한 힌두교보다 계급제도가 없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과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혼재하게 되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이슬람교도들의 자치권을 보장하지 않자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간 종교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수십 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난 뒤,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는 지역인 파키스탄이 분리됐다. 그 과정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이슬람인들이 80%정도인 카슈미르를 두고 4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각자가 핵무기들을 개발하는 등 앙숙 관계가 되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생각하는가? 지배의 기록엔 신사란 없다. 사람이 많이 모여 힘이 권력이 되면, 신사란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이익의 논리만 존재할 뿐이다. 재미있게 구경을 하러 가면서도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와가 게이트의 국기하기식은 195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양국이 서로 합의하여 퍼포먼스 형식으로 진행하는데 자국민들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이것을 보기 위해서 많이 온다고 한다. 국기 하기식은 18시로 30분 전 입장이 마감된다. 국기게양대는 어찌 그리 높은지. 입구부터 관광을 하려온 사람들에게 파키스탄을 상징하는 색으로 페이스페인팅을 해준다. 팔목에는 파키스탄 국기의 상징색인 초록 리본을 묶어 준다. 겨울에는 16:30, 여름에는 17:30 즈음에 행사가 시작되지만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서는 최대한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다. 주차장에서 관람석까지 걸어서 10분 정도이며, 남성과 여성 그리고 외국인의 좌석이 구분돼 있다. 3번부터 이어지는 외국인 좌석은 VIP석 근처로 꽤 좋은 자리다.
하기식을 하는 안으로 들어서면 양쪽에 좌석이 있고 철문으로 막힌 도로 우측에 인도와 파키스탄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스탠드 규모는 너무 편향적이라서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파키스탄 쪽의 스탠드는 낮고 좁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데 반해 인도 쪽 스탠드는 3층 규모로 높고 반원형으로 매우 넓다. 이미 반대편 인도 쪽은 3층까지 꽉 차고도 부족해 사람들이 겹겹이 앉아 뙤약볕을 받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기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반해 파키스탄 쪽에는 스탠드에 반쯤 차 있다. 하기식에 앞서 식전 분위기를 잡기위해 양편 모두 애써 흥을 돋운다. 응원석 스탠드 앞에는 수염을 멋지고 기른 파키스탄 국기를 든 두 사람이 응원석을 향해 북소리에 맟워 응원을 유도하고 있다. 드디어 "파키스탄 진드바르"를 외쳐대는 군중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파키스탄을 외쳐대는 응원 서막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남녀의 구별은 확실하여, 오른쪽 스탠드에는 남자가, 왼쪽 스탠드에는 여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여자들은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으나, 남자들은 서서히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물결이 파도처럼 이어져 광장 울타리를 뚫고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국경선인 와가 게이트 너머 인도 쪽에도 스탠드에 사람이 가득 차 구호를 웨치고 춤을 추면서 분위기를 돋우고 있는데 양쪽 다 어느 쪽이 더 함성을 크게 지르고 구호를 크게 외치며 북을 치는 것은 기 싸움을 하는 것 같다. 파키스탄 쪽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외발을 한 청년이 한 발로 지지하며 어찌나 뱅뱅 도는지 안타까워 숨쉬기도 힘들었다.
ㅇ 머리에 닭 벼슬 같은 모자를 썼는데 인도군인들도 색깔이 다르지만 비슷하게 생겼다.
자국민들이야 함성을 크게 지르고 깃발을 흔들면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 같은 여행객들도 그들과 같이 구호를 따라하다가 보면 그들과 같이 감정이 고조되면서 자신이 구경하는 나라의 국민들과 동화가 되어 같이 함성을 지르게 된다. 하기식은 오후 6시경에 진행되는데 하기식이 진행하기 전에 사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시간인 셈이다. 이곳에 참석한 국민들은 합의된 사항이라 하더라도 자기나라의 의장대원들이 상대방 국가에 대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열광한다. 끝까지 응원대장의 구령에 맞춰 열띤 응원을 하듯 함성이 끊이질 않는다. 파키스탄! 진다바드!! 진다바드(Zindabad!!) 우리도 함께 외쳐준다.
드디어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흥분한 군중들은 또 다시 파키스탄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응원이 아니라 한판 전쟁의 서막처럼 보인다. 우리 옆 파키스탄 응원석에서는 의미심장하고 결연한 투지가 피부로 느껴지는데, 인도 쪽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은 목격되었으나 그들도 파키스탄을 적으로 생각하고 응원전을 펼치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드디어 박수와 음악에 맞춰 광란의 춤판이 벌어졌다. 목이 터져라 괴성을 지르며 아스팔트가 꺼져라 땅을 쿵쿵 밟는다. 불꽃 튀는 응원전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오후 6시가 되자 마침내 나팔소리와 두 명의 여성 의장대원들을 필두로 건장한 인도와 파키스탄 의장대 요원들이 공중으로 발을 치켜세우며, 용감하고 굳센 모습으로 양국 국기가 펄럭이는 대문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노래와 박수가 터져 나왔고, 음악이 최고조에 달하자 스탠드 앞에서 응원을 유도하는 사람의 입에 거품을 내뱉고 있다. 그들은 마치 신 내린 무당처럼 기리기리 날뛰며 파키스탄을 외쳐댄다. 상대 국가에 대해 시위를 하는 형식의 하기식 세레모니는 두 나라가 판에 박은 듯 비슷해 사전에 서로 상의하고 함께 연습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두 나라 의장대원의 복장 색깔만 다를 뿐 하기식을 하는 의장대 수나 머리의 깃털, 의장대원의 훤칠한 키와 늘씬한 외모, 최대한 높이 올리는 손과 발의 동작과 잘 생긴 표정까지 이 나라의 최고의 인물들만 모아 놓은 듯하다. 하지만 관중석 규모로만 보면 안타깝게도 '조족지혈'이다. 하필 국기하기식의 위치 선정이 파키스탄이 서쪽에 있어 그렇잖아도 규모가 작은데 석양의 그늘에 가려 더욱 작아 보인다. 반대로 인도는 석양에 비춰 더욱 화사하게 빛나는 형색이다. 트럼펫 소리에 맞춰 양국의 국기가 서서히 내려온다. 국기의 높이가 누가 더 우세에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같은 속도와 높이로 국기를 게양하고 하강한다. 국기를 하강하고 국경이 닫히는 것으로 행사는 종료된다. 드디어 깃발이 내려지고 정연하게 접혀져 네 명의 의장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국경경비대 사무실 쪽으로 향하면서 하기식의 대미를 장식한다. 응원으로 고조되었던 관중들은 서서히 식장을 빠져 나간다. 어떤 사람은 서로 악수를 하기도 하고, 서로 감격의 포옹을 나누고 헤어진다. 의장대 요원과 사진을 찍는 사람이 보이고,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최후의 박수를 치는 사람이 있다. 전체 하기식은 30여분 소요되는 듯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 차례 전쟁으로 두 나라 사이가 안 좋다. 이곳 와가 국경에서도 2014년 11월 2일에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난 곳이다. 이 와가 게이트의 국기하기식 만큼은 서로 합의를 이룬 듯 형제의 나라인 듯 이웃사촌인 듯 짜 맞춘 듯 일체가 된다. 남북한 관계와도 비슷하나 큰 차이라면 우리는 서로 왕래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라호르로 돌아오는 길에 노천시장에서 버스를 잠시 멈추고 일행들과 함께 망고와 체리를 산다. 호텔로 돌아오니 8시가 좀 넘었다. 당초 계획으론 라호르 로컬음식인 타카탁(Takatak)을 가장 제대로 만든다는 현지인들의 리뷰가 달린 식당 Al Riaz Cafe에서 저녁식사를 하려 했으나 점심식사를 과하게 했는지 별로 배가 고프지 않고 룸메이트도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다며 한국에서 가져 온 전투식량으로 저녁을 먹겠다고 한다. 혼자 외식을 하러가기도 그렇고 해서 사발 면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호텔 창문으로 내려다 보는 시내 모습은 건물들이 대부분 매우 낡고 부서져 있다. 파키스탄 제2의 도시 상태가 이런 것만 봐도 현재 파키스탄 경제와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안 좋은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