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예술로 살아남기 위해서
서예가 예술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술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 15여 년 전에 대학원에서 서예를 전공하는 지인이 미학을 배우면서 교재를 타타르키비치의 ‘미학의 기본 개념사’라고 하였다. 이 책은 서양미학을 잘 요약하였으므로 인기가 있는 책이다. 서예라는 동양의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이 서양미학을 공부하는 것이 무척 신선해 보였다. 졸업을 하고 15년이 지나는 동안 그 지인이 서양미학을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 하였다.
나는 오늘의 서예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법고창신’을 들어서 해결책을 모색해 보았다. 창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창신으로는 서양미학을 수용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대학원에서 서예를 전공하는 학생에게 '미학의 기본 개념사‘를 가르치는 것도 그런 뜻이리라. 로마로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이 우리 사회가 서구화되면서 서구식 사고방식에 젖어있다. 그렇다면 서예작품 제작에 서양미학을 외면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양주팔가 화가들이 대중의 취향에 맞추어서 그림을 그리므로 이름을 높였다. 서예가도 감상자의 취향을 존중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내가 만난 많은 서예가들은 전통을 고집하였다. 전통에서 벗어나면 이미 서예가 아니다, 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서예를 이해하지 못하는 감상자의 무지를 나무랐다. 전통에 너무 매달리면 전통이 오히려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그 렇다면 서양의 예술, 서양의 미를 타타르기비츠의 책에 의거하여 살펴보자. 서예는 이 책이 주장하는 예술의 규범을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를 보자.
그리스 시대는 오늘의 예술작품을 테크네라고 불렀다.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는 ‘'아르스’라고 불렀다. 이 말은 ‘솜씨’를 뜻한다. 물품, 가옥, 동상, 배, 침대, 도자기 , 옷 등을 만드는 솜씨를 말 하였다. 군대를 통치하는 것도, 토지를 측정하는 것도, 군중을 사로잡는 웅변도 솜씨라고 하였다. 바로 이 솜씨를 아트(예술)라고 하였다. 서양의 고대인이 생각하는 예술은 우리가 말하는 손재주 또는 손솜씨에 유사한 뜻이다. 말하자면 기술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어떠 하였을까?
주례에서 육예(六藝)라고 말하면서 예(藝)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예를 예술로 본다. 고대 중국인이 육예를 바라본 시선이 바로 예술에 대한 고대 중국인의 사고방식이 된다. 중국어 사전에는 예(藝)를 재능, 기능, 기술이라고 뜻 풀이를 하였다. 영어로 번역한 말에는 적합한 단어가 없어서인지 여러 단어들로 설명하였다. 여러 단어들을 늘어 놓은 것이 오히려 우리가 예를 이해하든데 도움이 된다.
육체적인 힘을 우선 강조하였다. 기술, 능력, 재주, 용기, 뛰어남, 재능이 많음 등등으로 설명하였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단어의 뜻만으로도 예의 의미를 대강이나마 알 것 같다. 서예라는 말의 근원도 주례의 육예에 있다.
육예(六藝)는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이다. 예의범절을 지켜야 하고, 음악을 배운다. 활쏘기, 말 다루기, 글쓰기 그리고 계산하기를 말한다. 특히 書는 붓글씨를 말하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서는 육예 중에 지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 예(禮)는 도덕적인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선(善)이다. 서양 예술이 진(眞)을 강조하지만 동양 예술에는 선(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은 뿌리가 주례이다.
나는 미학 서적을 뒤적이면서 고대인들이 사유세계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술은 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만들고, 사회 질서를 세우는데서 출발하였다. 서예는 글쓰기 기술에서 시작하였다. 이후에 지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었다.
서양에서 중세에 접어들면서 갈레누스가 내린 예술의 정의는 이렇다. “예술은 일정한 목적에 이바지하는 일련의 보편적이고 적합한 것으로서, 쓰임새 있는 법칙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미(美)의 유용성 이론에 다름 아니다. 우리 생활에 유용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말이다. 예술의 범주는 정신적인 것에서(학문적인 것으로 산수나 논리학, 예학, 문학까지) 수공예품까지 광범위하였다.
중세 이후로 가면 정신적인 것을 우대하고 육체적인 작업으로 만드는 것을 낮게 평가하였다. 이런 이유로 순수예술과 수공예품을 분리시키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 육체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였던 분야에서는 정신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고급 예술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르네상스를 거치는 동안에 화가들이 기울인 노력이 대표적이다.
서양미술사에서 회화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보면 서예가 어떻게 해야 할지 희미하나마 길이 보인다. 회화는 육체적인 작업의 결과물이고, 손재주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오래 동안 예술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손재주에 의한 공예의 차원에 머물렀다. 르네상스 때가 되면 화가들은 회화를 정신적인 작업의 산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레오나르드는 수학을 도입하여 비례와 조화를 주창하고, 작업하였다. 회화는 대상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만이 아니고 이상의 표현이라는 창의성을 주장하였다. 정신적인 창작과 육체적인 기능으로 분리가 일어 날 때 회화가 정신적인 분야에 남기 위한 노력이었다.
서예가 걸어온 길을 보자. 주례의 육예에서 보면 서예는 기능술이었다. 왕희지에 이르기까지의 서예 이론을 보면 글씨를 어떻게 쓸까 하는 방법론이었다. 왕희지에 이르러서야 감정과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을 만들었다. 왕희지 이후의 서예는 서체에 대한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왕희지를 숭상하면서 별다른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
오늘의 서예를 잘 표현한 김희정의 정의를 보자.(서예란 무엇인가. 김희정, 도처출판 다운셈)
“서예는 문자(일반적으로 한자)를 소재로 하면서 서예의 상징 언어인 필선의 무한한 변화와 필묵의 오묘한 작용으로 작가의 성정을 표현해내는 조형예술이다.”
이 정의가 오늘의 서예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정의는 잘 하였지만 조락의 길로 들어선 오늘의 서예를 구제해 낼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여기서는 필선, 붓, 먹, 문자, 성정의 표현이 주제어가 되어 있다. 이것만으로 서예가 예술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이런 것을 탈피하는 새로운 서예관을 세워야 한다. 손재주를 연마하여 글씨를 아름답게 또는 잘 쓰는 것을 서예미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창의력을 가미한 새로운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서예관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대학을 다닐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주선이 달에 사람을 보내는 시대에 옥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질을 한다는 전설이 통하겠느냐? 이 시대에도 통할 수 있는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야 한다. 우주선을 타고 하늘 높이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신이 주재하는 신국은 없었다. 천국이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느냐? 믿을 수 있는 새로운 신관을 만들어야 한다. 가 해답이었다.
밤에 찬란하게 빛나는 네온싸인을 예로 들었다. 밤에는 아무리 찬란하더라도 해가 떠오르면 빛을 잃는다.(60년 대에 대학을 다녔다.) 낮에도 빛을 내는 네온싸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빛 속에서 빛이 살아남다니! 그런 네온싸인을 만들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낮에 거리에 나가보면 현란하게 화면을 내보는 선전 전광판을 만날 수 있다. 말이 되는 소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신관도 마찬가지다. 신학자들은 끊임없이 시대에 맞는 신관을 만들어낸다. 성경을 사실로 믿기보다 상징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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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예에 대해서도 꼭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낮에도 빛을 발하는 전광판처럼 새로운 서예관의 정립이 어느 시대보다도 절실하다. 그것은 오로지 서예작가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