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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은 따뜻하게 히팅이 잘되는 방에서 편안한 밤을 잘 보낸 것 같다.
호텔의 아침식사는 별로 였지만 이번 여행중 가장 싼 12000엔을 지불한 만큼 가격대비 만족도는 높았다.
사실 이 정도의 위치라면 2박3일간의 이브스키, 가고시마 일정을 모두 이 호텔에서 소화시킬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의 일정은 전망대에 올라가서 가고시마 도심과 사쿠라지마의 사진을 찍고 센칸엔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어제부터 왼쪽 다리에 통증이 있어서 여간 좋은 조건이 아니면 전망대 행은 취소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역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어제와 달리 엘리베이트로 지하층에 내려 가서 지하도를 통해서 역으로 갔다.
역에가서 짐을 코인라커에 넣을려고 했더니 가격이 500엔이었다.
그저께 200엔 주고 보관했었는데 너무 비싸다 싶어서 오기로 짐을 끌고 다니기로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가고시마 시내 관광지 순회버스이다.
1일권은 500엔이고 1회 승차 요금이 170엔이니 2회 승차라면 1일권을 안사는 것이 득이고
만약에 마음이 바뀌어 전망대에서 내린다 해도 별 차이가 없는고로 1일권을 안사기로 했다.
왼쪽 건물이 내가 머물렀던 호텔이다.
호텔전경이다.
아래층은 종합 버스터미미날이기 때문에 남부큐슈 교통편의 심장인셈이다.
이번 여행이 기차노선을 중심으로 계획을 만들었지만
다음에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여기서 숙박하고 버스와 렌트카를 이용해서 오지 깊숙히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가고시마에는 노면전차가 있는데 각각 그림들이 독특하고
버스 또한 모양과 색상이 다른 것들이 있어서 거리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다리만 불편하지 않으면 내려서 거리의 풍경도 찍고 싶은 곳이 었다.
버스 창문을 통해서 찍은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이다.
쇼군의 막부를 종결시키고 정한론 즉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군국주의의 시발점에 우뚝 서 있는인사이다.
지금 일본의 현실이 사이고가 정한론을 부르짖을 때와 같은 상황이 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묘하게도 같은 성향의 두사람이 한 화면에 갭쳐되었다.
어느듯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하늘의 날씨를 보아서 사진은 안될 것 같아서 내리지 않았다.
버스의 안내 방송은 출발서 부처 줄창 사이고 이야기만 했다.
다음 정류소는 사이고가 최후에 숰어 있었던 동굴 앞이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영국에서 돌아온 인사들과 뜻이 맞지 않아서 고향으로 낙향하였다가 반란을 일으킨다.
구마모토까지 진격하였는데 상대편 사령관이 같은 고향 출신이고 가장 친했던 혁명동지였던 어릴 적 친구였다고 한다.
마침내 사이고는 이 산 동굴에 피신하였다가 자살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의 시발점에 있는 원수이지만 사츠마지역에서는 영웅인 모양이다.
또 다른 인물 사츠마의 번주 시마즈가 있다.
그는 임진왜란에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한 인불이다.
그는 심수관일가등 조선의 도공을 납치해 온 인물이다.
나는 지금 원수가 살았던 센간엔을 보러 가고 있다.
센깐엔에 도착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나무는 소귀나무과의 소귀나무이다.
서귀포에 귀하게 있는 이 나무를 멀리 이국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암수 딴그루인데 이나무는 수나무였다.
입장료는 1000엔으로 이 티켓으로 센칸엔 바같에 있는 슈세이칸과 별관을 관람할 수가 있다.
센칸엔은 이미 여행기를 통해 보았고 정원이나 건축물은 쿄토에 비해 격이 떨어져서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다만 사쿠라지마가 어떤 모습으로 앞에 나타날 지 궁금했다.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갑옷입은 무사들이었는데 어제 무사투구까지 써 본 경험이 있어서
사진도 안 찍었다.
입구를 돌아서니 코인락커가 있었다.
좀 쌀까 싶어서 보았더니 내 가방 크기는 400엔이었다.
결국 100엔 절약하느라 1000엔어치 보다 더 많은 고생을 했다.
ブラシノキ(브라쉬노키)다.
영명으로 Bottlebrush이며 상록소교목으로 호주가 원산이다.
꽃을 피울 준비가 된 것 같은데 꼭 자동차 부라쉬같다.
외국에 와서 관광하는 것도 좋지만 처음보는 식물을 알아가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가 있다.
본전뽑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늘 센깐엔은 나에게 무척 도움이 되었다.
마눌 역시 이런 일에 흥미가 있으니 여행 나와서 싸울 일은 없다.
마눌이 집에 있을 때는 호랑이지만 여행을 나서면 순한 고양이가 된다.
때때로는 너무 나한테 결정권을 위임해서 부담이 되기는 되기는 하지만 이 점이 너무 좋다.
다만 다녀와서 돈을 너무 아꼈다는 구설수에는 매번 휘말리는 부담은 있다.
ヒカンザクラ (Prunus campanulata )다.
Prunus는 속명이고 벚나무종류라는 말이다.
식물에 있어서 학명은 세계공통어이기 때문에 학명으로 식물의 내력을 알아 볼 수 있다.
대만 원산으로 꽃이 피고 잎이 나는 성질이 왕벚과 같아서 관상수로서 적격이다.
꽃색이 아주 진해서 무척 화려하다.
오키나와에서 벚꽃 소식을 전하는 대표나무라고 한다.
중국남부와 대만 그리고 오키나와에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마침내 사쿠라지마의 전경이 보이는 곳에 왔다.
눈에 보이는 색상도 프른빛이 많이 돌았는데 사진 역시 푸른빛이 난다.
화산의 분출도 안보였고 날씨 또한 이러니 전망대에 안간 것이 다행이었다.
사쿠라지마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시마즈가의 집이다.
마눌이 실수로 사진에 잡혔다.
마눌의 초상을 함부로 내 보냈다간 크게 경을 칠 일이지만 사진이 이 한장 밖에 없으니 하는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여행가서 기념사진 같은 것은 한번도 찍는 법이 없고 높은 산 정상에 가서도 인증샷을 찍는 법이 없는 희한한 부부다.
이 저택의 정원이다.
バクチノキ(Prunus zippeliana)
일본과 오키나와의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워낙 수피가 독특해서 올려 보았다.
Prunus속이니 벚나무의 형제들이다.
이외에도 한국에 없는 나무들과 초본류를 만났으나 이쯤해서 식물 이야기는 끝을 내어야겠다.
마침내 아츠히메를 만났다.
어제 두번이나 만났어도 아츠히메를 소개 못했는데 여기서 소개를 해야겠다.
아츠히메는 사츠마의 영주인 시마즈의 양녀로 들어 오게 된다.
당연히 키울려고 들이는 것이 아니라 정략적인 것이라는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츠히메가 시집가기전까지 사츠마에 살았을 것이고 여기가 아츠히메의 어릴적 추억이 어린 고향이었을 것이다.
시마즈는 아츠히메를 막부의 쇼군에게 시집보낼려고 쿄토의 귀족에게 양녀로 보낸다.
마침내 아츠히메는 마지막 쇼군의 정실부인인 덴쇼인이 된다.
후에 왕정복고를 위하여 막부 타도를 주장하는 사츠마와 죠슈의 세력과 전쟁을 벌리게 된다.
이러한 전쟁중에 아츠히메는 쇼군가의 실력자로서 어릴적 친밀했던 사람과 적이 되어 싸웠다.
이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대하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친구가 보내준 드라마를 본 것이 아츠히메와 만난 계기가 되었다.
일본어를 잘 알아 듣기는 힘 들었으나 워낙 말이 쉽게 쓰여져서 극중 상황으로 대충 이해가 되었다.
지금 한국의 역사극 말미에 극중 인물과 관계있는 장소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츠히메의 대하드라마 뒤에 꼭 이랬었다.
대체로 센칸엔의 관광이 끝난 것 같다.
센칸엔을 구경하는 도중에 사츠마 유리공예 전시관이 있어서 관람을 했었다.
사츠마의 유리 공예는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화려했다.
주전자 하나의 가격이 150만엔이니 정말 엄청 났다.
삼나무 공예품도 나와 있었는데 마눌이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다고 했다.
화장대인데 은은하고 품위있어 보였는데 가격이 150만엔이었다.
나는 암말 안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런 경우는 무조건 말 안하고 삼십육계가 상책이란 걸 살아 보면서 체득했다.
삼나무 공예품은 아무리 작아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주석공예도 동남아의 것에 비해 고급스러웠고 가격이 비쌌다.
결국 마눌은 주물로 된 거북형상의 양초 받침을 3백몇십엔인가에 샀다.
아마도 이 것 만큼은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센칸엔 관람을 끝내고 짐을 끌고 승용차 뒤에 보이는 쇼코 슈세이칸 건물로 갔다.
여기는 일본에서 제일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 들인 사츠마의 기계공장 자리였는데
현재는 사츠마의 산업혁명유산을 전시 보존하는 곳이었다.
내가 이렇게 까지 일본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츠마의 시마즈가는 서양문물을 받아 들이며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에 궁금증을 가졌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사츠마인들이 잘 살기를 원했을까?
아니면 자신도 세력을 키워서 막부를 없애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을까?
과연 그는 막부를 타도하고 왕정을 회복하는데 주연이었을까?
아니면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수수방관했을까?
일본 역사라고는 학교때 배운 것 하고 아츠히메 드라마 본 것 뿐이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왕정회복을 성공으로 이끈 3인방중 2사람이 사츠마 출신인 것으로 보면
시마즈가는 에도 막부를 타도하는데 크게 쓰인 인재가 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마침내 에도 막부기 몰락하고 왕정이 회복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폐번으로 시마즈가는 일개 평민의 위치로 내려 앉게 되었다.
과연 시마즈가는 이런 일들을 예측이나 했을까?
아마도 자신이 스스로 만든 수레바퀴에 말려든 것은 아닐까?
참 쓰잘때기 없는 상상을 했다.
역에 도착해서 미야쟈키가는 열차의 좌석권을 구하러 그린창구에 갔다.
14시 19분 출발하는 특급열차인데 지정석은 없고 자유석을 타야 한다고 한다.
다음 열차는 2시간 후에나 있으니 좌석 때문에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었다.
좌석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관광안내소에 가서 상담을 하였더니
아가씨 말이 자유석 차량이 3량이고 발차역이니 만큼 일찍 가서 기다리면 좌석잡기는 충분할 거라고 했다.
그린창구에서 이정도 얘기만 해주었으면 안심이 되었을텐데 ...
점심을 먹어야 했다.
가고시마의 명물인 흑돈돈카츠와 흑돈샤브샤브집을 챙겨 오기는 했지만 바같에 나갔다 올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역시 어제 저녁처럼 역 구내에서 해결했다.
마눌이 고추가루 치고 밥에 간장 넣는 것을 보니 입맛이 어떤지 알만했다.
오늘 가야할 숙소 주변에 상가가 없으니 애끼벤또를 사 가지고 가기로 했다.
프랫홈에 짐을 들고 내려가는 걱정을 했었는데 엘리베이트가 보였다.
홈플레이트에 가니 이브스키에 갈 때 꼭 타 보고 싶었던
이브스키노타마테바코 열차가 서 있었다.
그렇게 타 보고 싶어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이브스키행 열차가 떠난 후 같은 쪽으로 보다 북쪽에 미야쟈키행 승객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열차 출발 30분도 더 전에 갔었는데 자유석 차량앞의 흰줄을 따라 승객들이 줄을 서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 줄서는데는 일본인들이 세계에서 일등이 아닌가 싶다.
마침내 미야쟈키행 특급열차가 홈에 들어 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좌석은 충분히 여유가 있었다.
.
으았!!
시쿠라지마가 분출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한 참을 그러더니 마침내 흰구름으로 변했다.
이만한 광경을 보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열차는 어느새 고원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마을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울창한 삼나무 숲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
쾌속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좋은 풍경을 찍는 것이 쉽지 않았다.
좋지는 않지만 사진 두장이라도 얻은게 행운이었다.
마침내 열차는 평야지대로 들어섰고 마을들과 전답들이 보였다.
가고시마를 출발한지 2시간여 지나자 미나미미야쟈키역에 도착한다는 열차 내 방송이 나왔다.
숙소에 갈려면 이 역에서 내려서 일남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러나 내일 열차일정을 확인해야 하기에 미야쟈키역까지 가서 내렸다.
안내소에 갔더니 내가 만든 타임테이블이 이상이 없어서
다시 미나미미야쟈키로 돌아가서 아오시마행 열차로 갈아 탔다.
숙소는 일남선의 아오시마 직전역인 고도모노쿠니역에서 내려서 바로 길 건너에 보였다.
고도모노쿠니는 우리말로 어린이의 나라란 뜻인데 호텔과 같은 회사의 어린이용 리조트 이름을 역명으로 차용한 것 같다.
사진은 방안에서 본 씨뷰이다.
룸에서 보는 풍경은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았으며 룸은 이번 여행 중 가장 넓었다.
일가족이 함께 써도 될 만큼 넓은 다다미방이었다.
가고시마역에서 사 온 에끼벤또를 풀었다.
여행중 가장 일찍 먹는 저녁밥이었다.
며칠 안되는 여행기간이지만 기록이 넘쳐났다.
가장 비싼 숙소...가장 넓은 룸...가장 일찍 먹는 저녁밥 등등
룸에 손님이 왔다.
종업원 할머니들이 들어와서 이불 호청을 끼우고 자리를 깔아 주었다.
일본 이불은 항상 깨끗하였다.
오늘은 일찍 잠을 잘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