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하나의 가족 이야기
귀여운 백구
우리 집은 집 왼쪽 벽으로 2층을 오르는 계단이 있고 옆집과의 사이에는 가슴 높이의 벽돌담이 있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우리 집에서 옆집의 마당이 훤히 내려보이는데 그 집도 역시 우리 집 마당처럼 마당에 나무 몇 그루만 심겨져 있어서 항상 빈 공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초록색으로 물드는 봄, 어느 날 옆집에 누군가가 이사를 가고 오는 것 같았다. 항상 조용하던 그 집이 어떤 때는 초등학생쯤 되는 남자아이가 놀 때도 있고 일요일에는 사십대쯤 되는 아빠, 엄마, 중학생 여자아이를 볼 수 있어 네 식구가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맞벌이 부부인지 평일에는 거의 그 집 남자아이 외에는 사람들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마당 청소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한 것을 보면 아마 세 들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다 그 집 사람들과 눈이 마주쳐도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인사는커녕 아무 반응 없이 무뚝뚝했다.
어느 날 저녁, 퇴근을 하고 계단을 오르다 담 너머에 무엇이 움직여서 옆집을 내려 보는데 귀여운 하얀 복슬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 집 방향의 벽 쪽에 묶여서 나를 보고 온몸과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있었다. 나는 반가움에 손을 흔들어주면서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강아지 이야기를 하니 아내도 낮에 보고 너무 귀여워서 몇 시간이고 서로 쳐다보며 놀았단다.
강아지와 나는 아침 출근할 때 인사하고 저녁에 돌아올 때 마중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강아지가 그 집에 오면서 사람 사는 집처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집 식구가 그 강아지와 노는 것, 특히 초등학생 남자 아이까지도 강아지와 노는 것을 보지 못했고 오로지 나와 내 아내만 좋아하는 것 같았다.‘강아지가 하루 종일 혼자 묶여 있어서 얼마나 심심할까’하는 생각을 하며 퇴근할 때는 한참을 서서 이야기해줬다. 우리는 점점 그 강아지와 친해져갔고 그 강아지도 밥안 주는 우리를 더 가족같이 여기는 것 같아 보였다.
날이 갈수록 강아지가 커져가면서 목소리도 달라져갔다. 처음 새끼였을 때는 월월월”하며 멀리에서 들리는 것 같은 소프라노 음성이었는데 이어서 왈왈왈”알토 음성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남성의 바리톤 음성처럼 “왕왕왕”하고 울어댄다.
장차 몸집이 커다란 백구가 될 것 같아 ‘백구’라고 이름 지어주고 아침에는“백구야, 잘 잤니?”저녁에는 “백구야 잘 있었니?”하고 말해주었다. 그러면 백구는 너무나 좋아서 앞발을 들고 서서 안아 달라는 몸짓을 하지만 손이 닿지 않아 담 너머에서 말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그 집 사람과 얼굴 마주치면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요.”하고 말해도 아무 반응이 없다.
아마도 우리 부부가 그 집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니까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모르는 척하고 우리는 귀여워할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와 나는 출퇴근을 맞이하는 좋은 친구였다.
항상 퇴근길에는 멀리에서부터 떠들썩하는 백구 소리를 들으며 오는데 오늘은 너무나 조용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는 담 너머 백구를 찾았다. 백구는 힘없이 축 늘어져 턱을 땅에 붙이고 앞의 밥그릇에 밥을 그대로 둔 채 눈만 깜박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촉촉이 고여 있는 것이 어디가 아픈 것이 분명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서 빨리 집으로 들어오면서 아내를 찾았다. 아내도 알고 있었다. 오늘 종일 밥도 안 먹고 시름시름하고 있었단다. 내일이면 괜찮겠지 또 내일이면 괜찮겠지 하면서 삼일이 지나갔다. 개 주인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았다.
그 집 식구를 볼 수도 없고 그냥 두어서는 백구가 죽을 것만 같았다. 화실에 출근했으나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백구가 걱정되어서 집으로 다시 돌아와 아무도 없는 그 집 담을 넘어가서 목줄을 풀고 백구를 품에 안고 아내와 같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수돌이(수돌이는 우리 집 식구)가 아닌 웬 개입니까?”
원장님은 낯선 개를 안고 온 나에게 물었다. 옆집 개인데 어디가 아픈 것 같아서 데리고 왔다고 하며 진찰을 부탁했다. 의사는 한참 진찰하더니 무슨 병(나는 건성 들어서 기억이 안 난다.)이라고 말하며 너무 늦게 와서 2, 3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다. 아내와 나는 백구가 너무나 불쌍해서 의사에게 졸랐다. 무슨 방법으로든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정 그러시다면 한 일주일쯤 입원을 하면서 관찰하며 치료해봅시다. 그리고 돈이 많이 드는데요?”
돈 걱정하지 말고 살려만 달라고 부탁하고 입원을 시켰다. 그날 저녁 땐 백구 집을 찾아가 아저씨를 만났다. 서로 얼굴은 아는 사이여서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낮에 주인 없는데 내 마음대로 백구를 데려가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백구를 병원에 입원시켰고 돈은 내가 지불할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주인은 나이가 더 많은 내가 설득하니까 그렇게 하시라는 말로 허락했다.
백구는 창살이 있는 독방에 갇혀서 링거 주사를 꽂고 시간 맞추어 약도 먹고 주사도 맞으며 조금씩 회복이 되어갔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 병원에 들러서 백구의 건강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내는 저녁마다 백구 소식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여보, 오늘은 꼬리 흔들며 반기기도 했어요.”
백구가 입원하고 일주일 되는 날. 병원에서는 퇴원해도 되겠다는 의사의 말에 건강해진 백구를 안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목욕을 시켰다. 아마 백구가 태어나서 처음하는 목욕인 것 같았다. 며칠을 우리 집에서 안정시킨 후에 그 집에 돌려주기로 아내와 의논하고 옆집에 가서 자세한 설명을 했다. “병원에서 며칠을 안정시키라고 했다”고 말하고 우리 집에서 며칠 보호하고 돌려드리겠다고 허락까지 받았다.
수돌이는 자기보다 덩치가 큰 개를 보고 피하기에 바빴지만 백구는 점점 밝아졌고, 자유로운 행복을 찾아서인지 너무 좋아서 온 방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백구의 행복은 삼일뿐이었다. 삼일이 되던 날 옆집 아저씨가 백구를 찾으러왔다. 백구를 보낸 우리는 아쉽기도 하고 백구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을 되찾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출근을 하면서 먼저 백구를 찾았다. 어제 돌아간 백구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백구가 없었다. 옆집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놀랐다. 전에 묶었던 곳에는 없고 우리 집과 반대편 저쪽에 묶여 있었고 백구는 나를 보기 위해 얼굴을 쭉 뽑았는데 백구의 코와 눈만이 보이고 있었다. 코와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아서 온몸을 흔들며 나를 반기고 있는 것 같았다.
집주인이 불쾌했는지 우리가 볼 수 없도록 반대편에 묶어 놓은 것인데 우리는 그저 그 사실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나마 멀리에서 눈, 코만이라도 보이던 백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궁금해서 아내에게 알아보라고 했는데 그날 밤 아내의 말.
“여보, 백구를 시골집 삼촌에게 보내버렸대요.”
나는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백구를 개장사에게 팔았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농촌으로 갔다면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 놀 면서 살지 않을까?
행복하게 수명을 다하며 살아라, 백구야.
강아지 할머니
어느 봄날, 경기도 광릉에 후배가 작업하고 있는 조각 공방에서 조그마한 브론즈 조각 작업을 하기위해 실로 오랜만에 아내와 같이 갔다.
광릉 입구에서 반대편으로 벗어난 좁은 동네 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달렸다. 구멍가게 옆길로 난 꼬불꼬불 언덕길을 오르면 조각공방 입구가 보인다. 입구 양편 길로 크고 작은 서너 마리의 개들이 한 마리씩 묶여서 우리를 향하여 짖어대기 시작했다. 조금 작은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처음 보는 우리를 향하여 곧 달려들어 품에 안기고 싶어 하나 목줄이 기둥에 묶여 있어 마치 안타까운 비명소리 같이 들린다.
차가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쇳물을 붓고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와 쇠를 깎는 톱 소리들이 요란하다.
반갑게 맞아준 후배 K선생과 함께 공장을 둘러보며 작업의 순서를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내가 정색을 하며 내게 와서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설명하는 K선생에게 양해를 얻고 아내를 따라 공장입구로 나가면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여보! 큰일 났어요.”
“왜, 무슨 일인데?”
“저기 있는 강아지 보이지요.”
아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강아지는 흰 바탕에 빨강에 가까운 황토색 무늬가 있고 귀가 축 늘어진 통통하고 다리가 약간 짧은 개였다. (집에 돌아와서 책에서 찾아 본 개의 이름은 스위스 종, 세인트 버너드)
“그래 귀여운데, 그런데 왜?”
“큰일 났어요. 저 아저씨가 조금 후에 저 강아지를 잡아서 공장 일꾼들과 먹을 것이래요. 어쩜 좋아......”
아내는 조금 전에 그 강아지가 귀여워서 목을 만지며 안아주고 있는데 K선생 아버님께서 조금 후에 그 강아지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도 걱정이 앞서서 그 강아지를 보니 강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힘없이 앉아 있었고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아내 보고 잠깐 기다리라 해놓고 자동차에 올라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공장을 빠져나왔다. 아랫마을에 내려가서 올라오면서 보았던 구멍가게에 들러 라면 한 박스와 식빵 한 다발을 사가지고 공장으로 되돌아 왔다.
라면과 식빵을 차에서 꺼내 K선생에게 주었다.
“선생님 이거 웬 라면입니까?”
“K선생 힘든 일 하시는데 라면도 끓여 잡수시고......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어서......”
“무슨 부탁인데요?”
“저기 저 강아지 말예요......”
“아아 저거, 오늘 잡아먹을 건데요”
“그런데 내 아내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는데 저 강아지가 귀엽다고 안아보고 좋아하고, 내가 보기엔 몸집이 작기도 하고 상당히 말랐거든......
그래서 아직 잡아먹긴 이른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집에 데리고 가서 살을 많이 찌운 다음에 데려오면 안 될까......”
“저래 봬도요, 저 강아지는 이제 늙어서 더 이상 크지도 않을 걸요.”
“괜찮아, 우리는 잘 키우는 것에는 도사이니 그렇게 해요.”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세요. 아버지 예, 그 강아지 서 선생님에게 풀어주이소.”
아내와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또 다른 말 할까봐 강아지를 안고 빨리 자동차에 태웠다. 다음에 다시 오겠노라고 말 하고선 도망치듯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한참을 달리다가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 이제 이 강아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우리 집에는 이미 아주 작은 수돌이가 있었고, 우리 수돌이보다 다섯 배 정도 더 큰 중개를 우리집 안에서는 도저히 키울 환경이 못 되었다.
“여보 얼마 전에 TV에서 보았는데 파주 어딘가에 어떤 할머니가 개를 수십 마리 키우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로 가면 안 될까?”
나는 이곳저곳 전화를 해서 그곳을 알아냈고 서너 시간 만에 포천의 어느 산골짝을 찾게 되었다.
산골 입구에 다다르니 개 짖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큰 개 작은 개 열 마리정도가 길옆에 앉아서 우리를 환영하듯이 짖어 대더니 아내가 강아지를 안고 내리니까 열 마리의 강아지들이 앞장서서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 언덕길을 올라 언덕을 넘어가니 널빤지에 천국의 집’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입구에는 전화 통화했던 오륙십 세 쯤 되어 보이는 그 할머니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좋은 일 하셨어요. 하마터면 또 한 마리가 희생될 뻔했네요.”
우리는 너무나 감동스러운 광경을 보고 있었다. 사나운 큰 개들로부터 작은 강아지까지 수백 마리의개들이 우리가 반가워서 짖어대니 산속에 아름다운 음악소리처럼 들려왔다. 할머니는 우리 부부를 안내하면서 개들을 소개했다.
“저놈은 우리 집에서 제일 말썽꾸러기여서 벌 받느라 묶여있고, 저놈은 너무나 내성적이어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내가 안고 있는 이놈은 우리 집에서 제일 막내 녀석이고......”
이런 식으로 수백 마리 되는 개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서울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강아지들을 모아 기르기 시작했고 그 수가 많아져서 쫓기고 쫓겨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많은 사료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금해서 보내 준다고 했다. 우리는 감동스러운 광경을 보고 내 지갑에 들어있는 돈을 모두 꺼내어 사료 사라고 주었다. 아내가 안고 있던 강아지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다른 개들을 둘러보며 겨우 몇 시간 우리와 같이 있었을 뿐인데도 달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정든 강아지와 헤어질 때 아내와 나는 눈물을 글썽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옷은 진흙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울로 향했다. 한참의 침묵이 끝나고 아내가 한마디 했다.
“여보! 우리 강아지 그곳에서 적응 잘 하겠지요.”
영국신사 수돌이
우리 집은 대문에 벨도 없고 자물쇠도 없어서 문을 밀면 그냥 스르르 열린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동시에 제일 먼저 달려 나와 나의 품속에 안기는 녀석이 있다.
항상 깨끗한 흰 와이셔츠에 검정 나비넥타이를 매고 검정양복을 단정하게 다려 입은 영국신사 수돌이가 나에게는 체면도 없이 신사답지 못하게 그냥 좋아서 촐랑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우리 수돌이는 엄마도 있고 누나도 있고 가끔 집에 오는 형도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아빠인 내가 집에 돌아오면 다른 가족 모두를 배반하고 나에게만 찰싹 달라붙어서 다른 가족들의 미움을 사기도 한다.
수돌이는 조금씩 커가면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잠을 자 오다가 결국 요새는 안방에는 엄마 혼자 잠을 자고, 나와 수돌이는 서재 방에서 같이 자게 되었다. 나의 팔을 베개 삼고 나를 꼭 껴안고 쌕쌕 거리며 잠자는 수돌이를 내려다보며 깨물어주고 싶도록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행복했었다. 아내도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세상이 연초록으로 물든 봄이 찾아오는 길목이었다. 어느 날 방문 앞에서 수진이의 바쁘고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문 열어.”
나와 아내는 이미 저녁밥상을 치우고 앉아 대화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수진이의 급한 목소리에 아내가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수진이는 한쪽 어깨에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있었고 두 손을 서로 포개고 조심조심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손바닥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걱정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 아빠! 놀라지마, 짠!" 하면서 수진이는 포갠 양손을 벌렸다.
“엄마!”
궁금해 하던 아내의 비명은 기쁨으로 변했고,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아빠 이것 좀 봐!”
수진이의 작은 손바닥에는 조그마한 검정색의 쥐새끼 한 마리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틀림없는쥐새끼로 보였지만 수진이는 강아지라고 했다. 내 눈으로 보아 5, 6센티미터밖에 안 돼 보이는, 이렇게 작은 강아지는 처음 보았다.
“어머, 아직 눈도 안 떴네?”
아내와 수진이는 귀엽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수진이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야학에서 언니, 오빠들을 가르치는 야학선생이다. 야학에서 한 여학생이 자취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세 마리의 새끼를 낳고 어미가 죽어서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새끼를 학교에 가져와 선생님들에게 한 마리씩 나누어주었는데 그중의 한 마리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바로 동네 슈퍼에 달려가 우유와 젖병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머리맡에 수건으로 폭신하게 집을 만들고 밤새도록 우유를 먹이면서 ‘살 수 있을까?’걱정하면서 지켜보았다.
가족들의 정성으로 강아지는 점점 꿈틀거리면서 우유도 잘 받아먹고 차츰 눈도 뜨면서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다. 수진이가 데려왔고 수놈이어서 ‘수돌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수돌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온 방을 휘젓고 다니면서 말썽을 부리지만 그것도 귀여울 뿐이었다.
조그만 녀석이 개성이 있어서 자기 고집을 부릴 줄도 알고 자기가 좋아하는 짓만 골라하는 것이 사람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집은 디긋자한옥집으로 복판에 네모의 작은 마당있어서 수돌이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이다. 마당과 방안을 드나들며 망나니노릇하지만 집밖에만 나가면 얌전해지고 영국신사답게 권위를 지키는 행동까지 하였다. 집밖에서는 몇 시간 아니 하루 종일 있어도 변을 아무 곳에나 누지 않고 참는 인내심도 발휘한다.
우리 가족이 아프면 돈 없다고 병원에 가지 않고 참아버리는데 우리 수돌이가 아파 보이면 빨리 병원엘 데려가 주사 맞히고 약 먹이며 정기적으로 건강관리를 한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고, 복뎅이 왔네”하면서 맞이한다. 의사선생님은 혈통이 좋은 강아지가 많은데 잡종인 우리 수돌이가 끔찍이도 사랑받고 있는 것이 부러워서 복뎅이라고 부른다.
나는 우리 수돌이가 비록 혼혈이지만 (동물병원 벽에 붙어있는 사진을 보니 비쩍 말라보이고 다리가 길쭉한 독일종 도베르만 미니핀셔와 키가 작고 똑똑하게 생긴 멕시코 종 치와와가 합쳐진 것이 수돌이를 닮았다) 혈통 좋은 다른 강아지들보다 내 눈에는 훨씬 예쁘고 잘생겨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수돌이의 모습을 사진 찍어서 자동차 앞에도 붙이고 화실에도 붙이고 지갑 속에도 넣고 다니며 수시로 들여다보며 사진과 대화를 한다. 수돌이 때문에도 집에 일찍 들어가고 멀리 외국 전시 여행을 가서도 아내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아내보다도 수돌이가 더 보고 싶은 것이다.
수돌이가 우리 집에 입양되어 오면서부터는 또 다른 작은 행복이 있었고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수돌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1년 되던 해,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슬픔을 주었다.
수돌이가 어느 날 밤 나의 팔을 배개 삼아 코를 골며 잠을 자다가 사료 외에는 절대로 무엇을 먹지 않던 수돌이가 갑자기 토하기 시작하였다. 괴로워하는 수돌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밤 12시가 넘어서인지 문이 닫혀 있었다. 다른 병원엘 가도 마찬가지여서 어쩔 수 없이 1시쯤 집으로 돌아 와야 했다.
물을 먹이며 안정을 찾도록 온갖 정성을 들였으나 괴로워하던 수돌이는 새벽 3시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의 품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두 눈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었다. 나는 수돌이를 푹신한 침대에 뉘였다.
수돌이는 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나를 조용히 바라보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작은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수돌이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해줄게 없었다. 나는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아내도 곁에서 지켜보며 슬픔을 이기지 못하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죄송스럽게도 십 수 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님 장례식에서도 이렇게 눈물을 흘려보지 못한 불효자였는데 수돌이가 죽고는 일주일동안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수돌이가 죽은 이튿날 아침 일찍 우리 집 미니화단에 손으로 흙을 파고 수돌이를 잘 묻어 주었다. 우리 수돌이가 더 좋은 하늘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있기를 기도했다.
삼대 가족 나와 비
나른한 봄볕이 창을 통해 거실 소파로 쏟아지는 어느 날이다. 나는 책을 펴들고 한참 독서 중인데 창 밑쪽에서부터 작은 삼각형 귀 네 개가 살며시 솟아오르더니 이어서 삼각형 눈 네 개가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항상 앞 베란다에서 뒹굴며 놀기도 하고 낮잠 자던 도둑고양이 부부이다. 이 고양이 부부의 암컷은 흰 바탕에 검정무늬인지 아니면 검정바탕에 흰무늬인지 모를 옷을 입고 있고, 수컷은 황토색 바탕에 흰 줄무늬를 가진 훤칠하고 잘생긴 멋쟁이 신랑이다. 지금부터 몇 달 전, 밤만 되면 아기울음 소리를 내며 구애하던 그 사내가 지금은 신랑이 되어 아주 우리 집 주변에서 신접살림을 차린 고양이 부부이다.
이 부부 고양이는 나와 눈이 마주쳐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다가 내 옆에서 조용하게 앉아서 나의 독서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영국신사 수돌이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저 개는 팔자도 좋지? 옛날 같으면 우리가 집 안에 있어야하고 저 개는 마당에 있어야 맞는 것 아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두 고양이는 부럽기도 하고 약간은 빈정 상한 눈빛으로 수돌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수놈 고양이가 뒷모습을 보이며 집안에서 창 너머로 살짝 나가는 것이었다.
“수돌아?”
나는 걱정이 되어서 수돌이를 불렀다. 수돌이는 고양이보다 작아서 자기보다 덩치가 큰 고양이를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수돌이는 침대 이불 속에 숨어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창문을 잘 닫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이듬해 봄이 지나고 어느 여름날, 집 뒤쪽 나의 그림도구를 비롯하여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창고에서 아기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들어간 나는 창고 구석에 있던 먼지 수북한 소파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아기고양이 세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헌옷을 가져다가 폭신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집 모양을 만들어주었다.
그 아기고양이들은 매일 매일 크기가 달라지더니 이제는 제법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곤 했다. 아내와 나는 그 모양이 너무나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 우리가 가까이 가려 하면 재빨리 숨는 것이 아마도 엄마에게 교육을 잘 받은 모양이었다. 낮에 엄마 고양이가 먹고살기 위해 일 나가고 없는 사이에만 우리는 몰래 살짝 들여다보며 노는 것을 지켜보았다. 두 마리는 건강하게 뒹굴며 잘 노는데 막내 고양이 한 마리는 엄마 젖을 못 먹었는지 자라지도 않고 허약해서 기어 다니기도 힘들어 항상 구석에만 움츠려 누워 있었다. 막내 고양이는 형들 고양이가 엄마 젖을 독차지해 곧 굶어 죽을 것만 같았다.
아내와 나는 집 안으로 막내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와서 입을 벌려 찻숟갈로 우유를 먹여보려 했지만 아기 새끼고양이는 반항하며 먹지를 않았다. 이때 창고 문 앞에서 어미 고양이가 “야-웅”하며 새끼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엄마 고양이에게 들키고 미안한 마음으로 빨리 창고구석 소파에 아기 고양이를 가져다 놓았었는데 이튿날 다시 가보니 그 막내 아기고양이가 없어졌다. 동네 아주머니 왈, 야생 고양이는 사람의 손을 타면 엄마는 새끼를 죽여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없애버린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말인지?
그 후 우리 부부는 두 마리 새끼 고양이마저 잃을까봐 절대로 만지지 않고 멀리에서만 지켜보았다.
아기고양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엄마의 옷을 입었고 다른 한 마리는 아빠를 쏙 빼닮은 수놈이었다.
그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수돌이 사료를 제법 잘도 먹는다. 그러나 엄마 아빠 고양이는 사료를 먹지 않아서 생선을 먹이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고양이 먹이로 생선 통조림을 먹이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이 고양이 가족들은 이제 반 집고양이가 되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에서는 고양이 네 식구가 나를 맞아주고 집 안에서는 수돌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 우리 집 안은 동물과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천국이 되어갔다.
어느 날 아내의 비명소리에 달려 나갔는데 창문 앞에 쥐가 한 마리 죽어 있었다.
알고 보니 고양이가 잡아서 창문 앞에 놓은 것이었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서 고마운 주인에게 갖다 준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만 이젠 쥐를 잡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우리 집 주변 슈퍼의 생선통조림은 모두 우리 집에서 바닥내주었다.
어느 날 우리는 한 블럭 앞 동네로 이사를 했다. 지금까지 우리 집은 단독주택이어서 집밖의 고양이도 도와줄 수 있었으나 이제 새로 이사한 집은 여덟 세대가 함께 사는 빌라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고양이들을 걱정하면서도 우리의 가족인 수돌이만 데리고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새로 이사한 집을 정리하고 난 보름쯤 지난 어느 날.
“여보!”
주차장에서 아내가 다급하게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뛰어나갔다.
“여보 고양이가 왔어요.”
“어디?”
반가운 소리에 나도 주차장 자동차 밑을 보았다. 그곳에는 그동안 못 먹었는지 비쩍 말라서 초라한 아빠 고양이와 아빠를 닮은 아들 새끼고양이가 꼬리를 치켜들고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신기했지만 오지 않은 엄마 고양이와 암컷새끼가 궁금했다.
그날부터 1층 주차장은 아빠 고양이와 아들 고양이의 안식처가 되었다. 어느 날 아빠 고양이가 등에는 검정색, 배 부분은 흰색이며 코의 오른쪽에 검은 점이 있는 새엄마를 데려왔다. 아들 고양이가 새엄마를 따라다니며 재롱을 부리며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아침저녁 먹이를 주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아내는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을 싫어하며 불평을 한다고 했다. 우리가 고양이 밥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섭기도 하고 위생이 불결한 동물이 들끓게 되어 싫다는 것이었다. 우리 구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분리처리를 실시하여서 그 여파로 야생동물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멸종된다는 소식이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서 고양이를 우리가 돕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 밥을 주었다.
어느 날 반장이 우리에게 경고했다. 강아지는 집 안에서 키우니 괜찮은데 혐오감 주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고 집 주변과 길바닥에 똥을 싸는 비둘기에게도 밥을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비둘기 밥은 학교 운동장이나 공원에서만 주겠다고 약속하고, 만약 고양이가 없어지면 쥐가 많이 생겨날 텐데 쥐 있는 것이 좋습니까, 고양이가 있는 것이 좋습니까 하고. 고양이는 변을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보는 깨끗한 동물이며 절대로 사람을 해치는 동물이 아니라는 설명을 해주었다.
반장은 동네 사람들에게서 신고가 들어와서 전했을 뿐이라며 되돌아갔고 우리 부부는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개의치 않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었다.
한참 후 아빠 고양이는 일주일이 넘도록 어딜 갔는지 오지 않았다. 바람이 났나 생각도 들었고 배고프면 돌아오겠지 하며 기다렸으나 한 달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빠 고양이는 분명 어디에서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엄마와 아기고양이는 우리 집 주변에서 멀리 가지 않고 잘 살고 있다.
우리는 두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새끼는 이제 멋진 청년이 되어서 ‘나’라고 짓고 엄마는
‘비’라고 이름 지었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나비야”하고 부르면 두 마리가 “야-웅”하면서 밥 먹으러 온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아라. 아빠가 너희들 밥은 굶지 않게 얻어 올게”
“따르르릉”
“여보세요? **식당입니다.
아! 고양이 화가선생님. 오늘 나오시게요, 알았습니다. 생선 모아 놓을 게요.”
멀리멀리 나라라 기행아
아내의 핸드백 속에는 자기 물건 외에도 항상 쌀이 한 봉지 들어 있다. 그것은 길을 지나가다가 비둘기를 보면 쌀을 뿌려주기 위해서다.
나는 비교적 자주 곡식가게에 들러 쌀을 산다. 처음에는 값이 쌀 것이라 생각하고 보리나 다른 잡곡을 사왔지만 오랫동안 경험을 한 결과 쌀이 더 싼 것을 알고 요즘은 쌀만 사온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려고 집 문을 열고 들어오니 아내가 나를 앞쪽 베란다로 데리고 갔다.
“여보 잘 왔어요. 보여줄 게 있어요.”
베란다 한쪽에 있는 라면박스 속에 웬 걸레 같은 덩어리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여보, 비둘기야.”
“뭐, 비둘기라고?”
자세히 보니 비둘기가 틀림없었다. 아내가 병원에 다녀오다가 길거리에 무엇이 꼼지락거려서 자세히 보니까 비둘기 온몸에 쥐를 잡는 끈적이가 붙어서 날개가 모두 붙어버렸고 발바닥에도 온통 붙어서 날지도 걷지도 못하고 숨만 쉬고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빨리 가위를 가져와서 비둘기 털을 모두 잘라냈다. 그리고 걸레로 온몸을 목욕시키고 보니 그 상처 입은 비둘기는 조그마한 알몸의 병아리 같이 되었다. 아내는 라면박스 한쪽에 수건으로 폭신한 방을 만들고 먹이와 물을 준비해 주었다. 우리를 두려워하던 비둘기는 점점 우리와 친해지는 것 같았다. 일주일쯤 지나니까 베란다 끝까지 걸어서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안방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기운 내고 비행기처럼 날라고 ‘기행이’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기행이가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놀도록 안방에 들여놓으면 온 방을 돌아다니며 똥을 싸고 오줌으로 방을 엉망으로 만들지만 그래도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이제 우리를 보아도 달아나지 않고 가까이 점점 더 가까이 오기 시작한다. 기행이를 바라보는 것이 기분 좋아서 빨리 퇴근하여 털이 얼마만큼 자랐나를 확인한다.
시간이 흘러 기행이가 우리 집에 온지 한 달이 넘으니 털이 제법 많이 자라서 복슬복슬해져 갔다.
날개털은 더디 자라지만 제법 날개를 펴고 이삼십 센티는 뛰어 오르곤 한다. 밖의 길가에서 아내가 모이를 주는 비둘기 떼를 기행이도 내려다보면서 부러워서 그쪽으로 가려다가 투명한 창문에 머리를 들이받는다.
“기행아, 조금만 더 자라라. 얼마 후면 너도 저렇게 날아다니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또 한참 후 기행이는 제법 날개에 털이 자라났고 날개 짓을 하며 높이뛰기도 하며 1미터 정도씩 날기도 했다. 기행이가 우리 집에 오고 세 달 지난 어느 날, 아내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여보 큰일 났어요. 기행이가......기행이가......”
아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기행이에게 무슨 변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화실에서 빨리 집으로 달려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도 기행이도.......
나는 아내를 소리쳐 불렀는데 옥상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단숨에 5층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내는 나를 보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기행이가 없어졌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봐요.”
아내는 날씨도 따뜻하고 기행이가 집 안에만 갇혀 있어서 넓은 곳에서 바람도 쏘이며 재미있게 놀라고 옥상에 데려와 놓아주었는데 조금 후 와서 보니까 기행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옥상은 사방에 가슴 높이의 담이 쌓여 있어서 아직 기행이가 그 높이를 뛰어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놓았지만 비둘기는 그 담을 넘어간 것이다.
5층 높이의 우리 집 빌라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옆집 2층집이 내려 보이고 마당에는 나무가 무성하다. 그 집 마당에는 사나운 진도개가 항상 으르렁거리고 있기 때문에 그 집으로 뛰어내렸으면 위험할 것이 분명했다. 아내와 나는 우리 집 주변을 찾아 헤맸다. 아직 날개가 부실해서 멀리 못 날아갔을 것이고 분명히 길거리에서 걸어서 돌아다닐 텐데 자동차는 물론이고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밖이 캄캄해질 때까지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기행이를 못 찾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왔다..아내는 자기가 기행이를 죽인 것이라고 자책하며 눈물을 흘린다
“여보, 걱정하지 말아요. 하나님께서 기행이를 잘 살도록 키워주실 거야.”
아내를 위로하지만 사실은 나도 무척 걱정이 된다. 길거리에 날아다니는 비둘기만 보면 우리 기행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많이 커서 용감하게 날아다니겠지!
잘 살아라, 귀여운 기행이야......
돌팔이 외과의사가 된 나
아내와 같이 집에서 두 불렄(버스 두 정류장거리)에 떨어진 곳의 대형마트에 쇼핑가서 물건을 사고 오는 길에 미니 공원 벤치에 앉았는데 앉자마자 아내는 핸드백을 열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작은 비닐 속에 있는 쌀을 꺼내더니 한주먹을 우리 앞에 뿌렸다.
어느 사이에 비둘기 20여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먹이를 쪼아 먹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열심히 먹고 있는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맨 끝에 삐쩍마른 한 마리가 끝에서 절뚝거리며 팔딱팔딱 튀어 먹이를 먹으려하지만 건강한 녀석들이 먹이를 먹어치워서 먹지를 못해서 허약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비둘기를 유심히 바라보니 두 다리에 수갑을 차고 있듯이 투명 낚시 줄에 두 다리가 꽁꽁 묶여있어서 반 뼘씩밖에 걸을 수 없으니 먹이를 먹지 못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면서 “여보! 저기 저 비둘기 잊지요. 저 비둘기가 먹이를 못 먹으니 당신이 그 비둘기를 불러 유혹하세요.” 아내는 그 비둘기 앞에 모이를 주면서 가까이 오도록 유인을 했다.
나는 멀리뒤편으로 돌아가서 먹이를 먹을 때는 한걸음 다가가고 고개를 처들 때는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한걸음, 술래가 고개를 돌릴 때는 멈추듯이 비둘기에게도 그렇게 다가갔다. 비들기가 먹이를 먹을 때는 뒤가 안보이지만 고개를 처들 때는 사방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라 그렇게 그 비둘기에게 다가갔다. 한참 후 가까이 갔을 때 그 비둘기를 두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두 발에 엉켜있는 낚시 줄을 풀 수 없을 정도여서 아내와 같이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해 달려갔다. 집에 가야 수갑 줄을 해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한 아내는 방에 뛰어 들어가서 의료상자를 들고 나왔고 비둘기를 아내가 붙잡았다. 처음에는 벗어나려고 몸부림 첫 지만 조금 후 잠잠해져서 나는 가위를 들고 낚시 줄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풀려고 얼마나 발 버둥거렸는지 왼쪽 앞발까락 두 개는 이미 잘려 없어졌고, 오른쪽 앞발가락도 잘라져 없었다. 그러니까 왼쪽발가락은 앞은 한 개 뒷다리 한 개 모두 둘이고, 오른쪽은 앞 두개 뒤 한개 모두 셋이었다.
줄을 모두 자르는데 한 줄은 이미 살 속에 파묻혀 있고 붙어있어서 뺄 수가 없어서 살 속에 묻힌 상태로 튀어나온 부위만 가위로 잘라냈다. 낚시 줄을 제거하고 나니 두발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것이 편하게 보였다. 비둘기는 좋은지 가만히 쉬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살이 폐인자리에 소독약을 발라주면서 눈을 보니 우리가 해칠 사람으로 안보였는지 동그란 눈으로 우리를 안심하고 보고 있었다.
“낚시 줄 때문에 힘들었지! 이제 안심하고 열심히 살아라.“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불상한 것...“ 아내도 불상하고 걱정된 얼굴이 조금 풀어지면서 울먹였다.
가만히 있는 비둘기를 쓰다듬으며 정리를 해주고 힘껏 하늘에 던져주었다.
비둘기는 커다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 건너편 5층 지붕위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친구들에게 가거라!”하며 손으로 가라고 흔들었지만 약 5분 가까이 가지도 않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되었는데도 안가니 아내는 “자기 집에 가는 방향을 잊었나 봐요“ "아냐 비둘기는 자기 집 방향을 잘 알고 있지만 헤여지기 싫어서 조금 앉아있는 거야.”라며 위로해 주었다.
비둘기가 거기 앉아 있는 것이 5분쯤 되었지만 30분쯤으로 느껴졌다.
드디어 비둘기는 마음을 잡았는지 힘차게 오던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 비들기와 30여분 같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 같이 살던 자식이 멀리 떠나는 감정이 되어 아내와 나는 눈에 눈물이 글썽 맺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