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동목 작가회
 
 
 
카페 게시글
김근혜 수필가 곳간 스크랩 사치스러운 신음-김근혜
김근혜(수필13) 추천 0 조회 4 15.12.14 14: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매일춘추] 사치스러운 신음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할머니를 만났다. 운이 좋았는지 손수레엔 하루치의 발품이 벚꽃처럼 환하게 피어 있었다.

쌓아둔 폐지를 가져가라고 할머니에게 사무실 비밀번호를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쓰고 있는 가재도구를 몽땅 가지고 가셨다. 직원들과 밥도 해먹고 라면이라도 끓일 요량으로 솥 몇 개, 수저 몇 벌 등을 갖춰 두었었다. 깨끗이 닦아두지 않았더니 할머니 눈에는 고물로 보였던 모양이다. 사무실에서 가져간 가재도구가 쇠붙이라서 횡재를 했다고 감사의 말을 거듭했다. 온종일 다녀도 삼천원 벌기가 쉽지 않고 헛걸음하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쓰는 것인데 가지고 갔느냐고 다그쳤다. 할머니는 미안해했다. 그 일 이후로는 자잘한 집기류는 숨겨 놓았고 사무실도 함부로 맡기지 않았는데 후회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할머니는 아흔의 노모, 정신 장애를 가진 딸과 한 칸짜리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삶도 불행이 닥치기 전까지는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었으리라. 그런 일이 누구에게 닥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으랴. 오해했던 것이 미안해서 종이 한 장이라도 더 보태려 애를 썼다. 주머니에선 만원짜리 몇 장이 혹시라도 할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서 나오지 못하고 꼼지락거렸다.

할머니는 비록 파지나 고물을 주워서 살고 있지만, 몸이 건강해서 감사하다고 했다. 장애를 가진 딸도, 어머니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가족이며 살아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내 눈엔 고물로 보인 것이 할머니에게는 하루치의 보물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하찮은 존재가 있을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쓰임새가 있는 존재로 태어났다.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희망이 되는 것이다. 할머니 손수레에 담긴 폐품을 보며 문득 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여성잡지 ‘엘르’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뇌일혈로 침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삼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보비는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에서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행복에 겨운 자의 사치스러운 신음입니다”라고 했다.

할머니와 보비의 삶은 우리에게 일침을 가한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은 조금만 힘들어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처럼 신음한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해선 당연한 것으로 여겨 고마운 줄 모른다. 늘 몇 퍼센트 부족분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한다.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아, 부끄러움에 작은 몸이 더욱 수그러든다.

김근혜<수필가 ksn1500@hanmail.net>

매일신문 공식트위터 @dgtwt / 온라인 기사 문의 maeil01@msnet.co.kr
ⓒ매일신문사,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2013년 04월 16일 -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