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여행에 필요한 지도는 별도로 필요가 없으나 안내도는 필요함.
안내도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수 많은 기암괴석을 다 볼 수 없음.
바로 옆에 있어도 지나칠 수 있으니 안내도는 필히 가지고 가야 속속들이 볼 수 있음.
산림청 자료
금산 [이성계가 비단으로 덮겠다던 산]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ㆍ이동면ㆍ삼동면
산높이 : 704.9 M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바다와 섬, 일출을 조망할 수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197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본래 보광산이라고 불리다가 조선 태조와 관련된 전설에 따라 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함.
조선 태조가 기도했다는 이씨기단을 비롯하여, 사자암, 촉대봉, 향로봉 등 38경이 유명하며, 정상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소재
<남녘 바다에 솟은 비단산>남해에는 비단으로 몸을 감싼 산이 있다. 비단 금(錦)자에 뫼 산(山)자를 이름으로 한 금산이다. 금산은 원래 원효대사가 산자락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음으로 해서 보광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이 산에서 기도를 하며 임금이 되게 해주면 금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그 넓은 산을 비단으로 두를 일을 걱정하다 진짜 비단이 아닌 비단 금자를 사용해 금산이라 이름을 지어줌으로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금산에 오르면 원효대사가 신라 신문왕 3년에 창건했다는 보리암과 가야의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태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가지고 온 돌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삼층석탑뿐 아니라 관음봉, 화엄봉, 일월봉, 자라바위, 좌선대, 상사바위, 부소암, 쌍홍문 등의 바위와 망월대가 있다.
금산 정상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금산 38경이 모두 보인다고 할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상세정보
남해 금산은 남해섬을 대표하는 산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이 말 그대로 거의 다 바다로 지정되어 있는데 유일하게 산이 해상 공원에 포함된 것이 금산이다.
금산은 비단을 두를 뻔한 산으로 유명하다. 금산의 본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다. 이성계가 왕이 되고자 보리암 아래 있는 '이태조기단'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이 왕이 되면 이 산을 비단으로 덮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뒤, 약속을 지킬 일을 생각하니 난감했다.
이때 사려 깊은 신하가 산 이름을 하사하면 비단보다 오래 갈 것이라고 제안해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 이전의 산 이름을 금산으로 바꿈으로 이성계는 자신의 약속을 절묘하게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매표소에서 보리암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왼편으로 사선대가 올려다 보인다. 사선대는 먼 옛날 동서남북의 네 신선이 조그만 암봉에서 놀았다는 곳이다. 사선대 맞은편에는 절벽을 이룬 웅장한 바위는 만장대이다.
한국의 산하 자료
높이 : 705m
위치 : 경남 남해군 이동면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중에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기암괴석의 절경과 남해를 한눈에 굽어보고 있어 전망도 장쾌하다.
한겨울에도 포근하여 겨울 등산 코스로도 좋다.
금산은 삼남 제일의 명산으로 온갖 전설을 담은 38경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 혹은 남해금강이라 불린다.
주봉인 망대(701m)를중심으로 왼편에 문장봉, 대장봉, 형사암, 오른편에 삼불암, 천구암등 암봉이 솟아 있다.
탑대(고제암)를 중심으로 가사굴, 쌍호문등 명소가 많다.
금산의 절경 38경 중에서 쌍홍문, 사선대, 상사암, 암불암 등이 대표적인 명소다.
쌍홍문은 여인의 눈동자 같기도 하고 커다란 해골에 두 눈이 뻥 뚫린 듯하기도 한 쌍굴로서 높이는 7~8m쯤이다.
굴이 둥근 모양이어서 ‘한 쌍의 무지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굴 속에 들어 뒤로 돌면 다도해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상주해수욕장의 쪽빛 바닷물이 반짝이고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떠 있다.
굴 속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바다의 조화도 절경이다. 금산에서 가장 웅장한 높이 80m의 상사암에는 양반집 규수를 짝사랑하던 머슴의 전설이 얽혀 있는데 이 바위에 올라 기원하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이 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보광사였고 산 이름도 보광산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 곳에서 약 200m 떨어진 큰 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얻었다.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만큼 큰 비단을 구할 수가 없자 비단이란 이름으로 산을 덮어주었다.
이후 현종은 보광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자 보리암으로 개칭했다.
인기명산 [54위]
삼남 제일의 명산이라 일컽는 금산은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에 펼쳐지는 일출명소의 하나이기도 하다.
남녁에 위치하여 봄맞이 산행지로 3월에 가장 많이 찾는다.
인근에 상주해수욕장이 있어 여름 바캉스를 겸한 바다산행으로도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명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경관이 수려하고, 바다와 섬,
일출을 조망할 수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1974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본래 보광산이라고 불리다가 조선 태조와 관련된 전설에 따라 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함.
조선 태조가 기도했다는 이씨기단을 비롯하여, 사자암, 촉대봉, 향로봉 등 38경이 유명하며,
정상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다
산행 코스
1코스 : 상주면 매표소- 쌍홍문- 보리암- 정상- 보리암-상주면 매표소(3시간)
등산하기 가장 좋은 코스 : 2코스 : 두모 주차장- 부소암- 상사바위- 정상- 보리암-상주면 매표소(4시간)
3코스 : 매표소- 쌍홍문- 보리암- 정상- 보리암-보리암셔틀버스 정류장- 복곡저수지 주차장(3시간)
4코스 : 이동면 복곡저수지 주차장(매표소) - 보리암행 셔틀버스- 보리암- 정상- 보리암- 쌍흥문-상주면 매표소
여행하기 가장 쉬운 코스 : 5코스 : 이동면 복곡저수지 주차장(매표소) - 보리암행 셔틀버스- 보리암- 정상- 보리암- 셔틀버스-복곡저수지 주차장(매표소)
금산을 오르는 산행기점은 상주면 상주해수욕장 가는길의 매표소와 이동면 복곡저수지 매표소 두 군데이다.
상주면 매표소는 상주해수욕장 가는 길 도로에 있다.
주차장은 그리 넓지 않다. 매표소에서 정상까지는 길은 잘 다듬어져 있지만 가파르게 1시간 20여분 정도 오른다. 보리암 알래에서는 쌍흥문이라는 바위 속을 통과한다.
하산은 상주면 매표소로 되 내려 오거나 보리암에서 20여분 걸으면 8부능선에 25인승 보리암 셔틀버스정류장이 있다.
셔틀버스는 편도 1,000원으로 복곡저수지 주차장까지 운행한다.
관광버스나 승용차는 복곡저수지 주차장에서 주차한다.
산행을 쉽게하려면 복곡저수지 주차장에서 보리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8부능선에서 하차하여 20여분이면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 오른후 상주면 매표소 쪽으로 하산 할 수 있는데 산행의 재미가 별로 없다.
보리암 관광코스로는 복곡저수지 매표소에서 보리암 아래 8부능선까지 올라가는 보리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보리암을 관광하고 다시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능선따라 20여분이면 보리암에 이른다
금산 탐방 지원센터에서 들어온곳 쪽으로 가다보면 두모라는 주차장이 있고 탐방로가 있다.
최근 탐방로가 개방되어서 일부 등산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곳이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부소암을 거쳐서 정상으로 갈 수 있다.
경사구간은 24.07%로 6부 능선 까지는 계곡길로 가다가 부소암 전부터 능선길을 따라 올라간다.
등산 수준은 보통으로 등산로가 잘 정비 되어 있고 바위를 타야 하는곳은 없으며 다 계단을 만들어 놓아서
쉽게 올를 수 있는곳이다.
- 이칭별칭 : 보광사(普光寺)
- 유형 : 유적
- 시대 : 고대/남북국
- 성격 : 절, 암자
- 건립시기·연도 : 683년(신문왕 연간)
-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2065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683년(신문왕 3)에 원효(元曉)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하였다.
그 뒤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금산이라 하였고,
1660년(현종 1)에는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이라 개액(改額)하였다.
그 뒤 1901년에 낙서(樂西)와 신욱(信昱)이 중수하였고,
1954년에 동파(東波)가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 양소황(梁素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간성각(看星閣)·산신각·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큰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왼쪽에는 남순동자(南旬童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을 거느리고 있는데,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씨가 인도에서 모셔왔다고 하나 신빙성이 없다.
삼층석탑은 신라석탑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신라석탑이라 부르고 있으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감정되고 있다.
보리암 앞 바위 끝에 세운 높이 165㎝의 이 탑은 상륜부에 보주(寶珠)만 놓여 있다.
이 밖에도 보리암 주위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좌선대를 비롯하여 쌍홍문(雙虹門) 등 38경의 경승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