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문학의 창을 비추는 등대/최금녀 시인
그리고 시에 중독되다
-최금녀 시인 인터뷰
임경하 시인
최금녀 시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2013년 문학아카데미 송년 시의 축제 때였던 것 같다. 마침 최금녀 시인이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수상하는 자리였다. 시인은 수상작인 시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를 낭송하셨다. 바람에게, 강물에게, 오래 못 만난 친구한테 하듯이 밥 한번 먹자고 하는 애틋한 마음이 들어 있는 시가 내 마음속에 오래 여운을 남겼었다. 그 후로도 행사 때 뵙기는 했었지만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던 터라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좀 더 깊이 시인을 알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뻤다.
-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연말이라 많이 바쁘시지요?
“문학의 창 가족들 안녕하세요? 『문학의 창』, 제호만 보아도 뭉클합니다. 벌써 아홉 번째 책이네요. 박제천 선생님 안 계신 겨울은 춥습니다. 그 자리가 꽃자리라는 것을 몰랐어요. 잃어버리고야 귀한 줄 알게 되니 안타깝습니다. 요즘은 보내주신 시집들을 읽는 일을 제일 큰 일로 알고 있어요. 간단한 소감을 전해드리기도 합니다. 머리맡에 놓고 지나가 버리는 시집이 더 많아요. 시들이 어려워져 공부처럼 읽습니다.”
나의 고향 함경남도 영흥
이북에서 태어난 시인은 1948년에 남쪽으로 넘어왔다. 2년 후인 1950년에 6.25 전쟁이 났으니 그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어릴 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전쟁 통에 학교는 어떻게 다니셨는지요.
“저는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났어요. 촌이지요. 일곱 살 때 해방을 맞았어요. 전쟁 직전에 남쪽으로 넘어왔어요. 부모를 따라 열한 살 때, 맨발로 임진강을 넘었지요. 밤중에요. 식민시대를 경험하고 해방, 전쟁, 가난, 분단을 다 겪었어요. 피난지 부산에서 중학교에 입학했어요.”
시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가 실려 있는 시집 『길 위에 시간을 묻다』는 분단된 민족 현실에 대한 아픔을 노래한 시집이다. 어느 글에선가 시인은 “시는 시인의 경험과 삶이 글을 통해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전쟁과 피난,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최금녀 시인 시의 깊은 뿌리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지셨는지요.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하셨을까요?
“우리 시대에는 작문 시간이 있었어요. 글짓기, 일기 쓰기가 기본이었어요. 전쟁터에 나간 오빠나 아저씨에게 힘내시라고 위문편지도 썼습니다. 잘 쓴 글은 뽑혀서 읽혔어요. 그때 문학적 소질이 발견되고 붙잡힐 사람은 덜컥 붙잡힙니다. 그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지요. 잔인한 4월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시는 나를 세워주는 척추
최금녀 시인은 62년에 소설로 등단하고, 98년에 『문예운동』으로 시 등단을 했다. 30년이 넘는 긴 공백 기간이 있다. 그 긴 사이에 무엇을 하셨는지 여쭈었다.
“자유문학에 투고한 단편이 뜻밖에 입선이 되었어요.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요. 그로테스크 하다는 평론가 이철범 선생님의 심사평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의 늦은 시 등단이 마음에 걸릴 때마다 저는 이 사건을 들먹거립니다. 저의 콤플렉스지요.
문학 활동이 늦어진 것은 신문사 동료 기자였던 남편이 정치판에 나갔기 때문입니다. 선거운동으로 날 새는 줄 몰랐어요. 밥하고, 아이 기르고, 표를 모으러 노인정, 논두렁, 교회, 절, 결혼식장, 상가, 개업 집으로 뛰어다녔어요. 허리를 구부리고 설거지를 하고 국수를 삶고……. 20년이 가버렸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선거판은 지저분하고 살벌했어요. 한 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중독에 빠지기도 해요.
어느 날, 쪼그라들었던 저의 꿈이 기적처럼 되살아났어요. 메모한 글을 모아 시집을 내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시인도 호적이 필요하다고 여섯 편을 골라서 「문예운동」에 실어주었어요. 그것이 저의 시 등단입니다.”
늦은 나이에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시인은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열정이 한꺼번에 불어닥친 폭풍과도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8권의 시집과 2권의 시선집을 냈다. 「자화상」이란 시에서는 “하루라도 날 춤을 추지 않으면 삭신이 아프다”고 할 정도로 시에 중독되었다. 최금녀 시인에게 시란 무엇일까. 시인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인터넷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뿌리 없는 겨우살이 같은 삶과 오랫동안 쓰지 못한 갈증이 쓰고 또 쓰게 만든다”고 했다. 시의 “독화살”을 맞고 “느즈막하게 내린 신끼로” 시를 써 온 시인이다.
시를 향한 치열한 열정
“언제나 백지는 두렵습니다. 시란, 시 짓기란, 감정과 사유, 날카로움, 언어 감각, 내재율, 은유, 명징한 주제 같은 것이 혼합되어 탄생하는 것일는지요? 이론이나 감성, 노력만 가지고도 어려운 것이 시라고 생각됩니다.”
-언제 시를 쓰시는지요.
“문득 잡히는 무엇이 있을 때 그것을 붙들고 시를 씁니다. 영감이라고도 하지요만……. 필요에 따라 경험을 동원해 만들기도 합니다.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지요. 고치다 보면 엉뚱한 데로 가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다 흘러가 버렸어요. 요즘은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내는 일에 매달리고 있어요. ‘시간의 파괴력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예술적 자아를 통해 구현된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상기하면서요.
시에 보탬이 되라고 시간을 내어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기도 합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시나요.
“그럴 땐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는 것처럼 목이 마릅니다. 목을 축이기 위해 꽃집으로 갑니다. 꽃을 사거나 모종을 사다가 심습니다. 갈증이 가시지는 않아요. 무언가 다른 것으로 채워 볼 뿐입니다.”
심고 또 심었다고 한다. 시가 안될 때 심은 꽃들로 마당이 가득 찼다고 한다. 시가 안될 때 꽃을 심을 생각을 하다니,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닌가. 마당에 핀 꽃들이 시인에겐 또 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시집을 여러 권 내셨는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집이 있으신가요. 오래 읽혔으면 좋겠다 싶은 시가 있다면 어떤 시일까요.
“늦은 등단으로 마음껏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작품을 많이 쓰다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박제천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점이 늘 아쉽습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집은 없습니다만 골라보라고 하면 『기둥들은 모두 새가 되었다』로 하겠습니다.”
시집 『기둥들은 모두 새가 되었다』는 2022년 한국문연에서 출간되어 주목을 끌었던 시집이다. 오형엽 평론가는 해설에서 “최금녀 시인의 시는 유년 시절에 겪었던 피난지의 궁핍한 생활에서부터 학생 시기에 겪었던 낯선 문화적 체험, 성장기에 겪었던 인간관계의 굴절 등을 거쳐서 가족 관계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친 다채로운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근원적인 인간의 기억에 근거하면서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격조 높은 서정과 세련된 언어 구사를 통해 삶과 문학의 안팎을 지배하는 물리적 시간에 잠식되지 않으면서 생기와 깊이를 아우르는, 탄력있는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광범위하지만, 좋은 시란 어떤 시라고 생각하십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좋은 시란 글쎄요. 작품 속에 독자가 흡입되는, 울림이 큰 시, 읽을수록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 위로 받는 시, 오래 기억되는 시, 기발한 발상이 있는 시…….”
-앞으로 내실 시집에는 어떤 시를 쓰실지 궁금합니다.
“해방, 월남, 전쟁, 가난을 겪으며 살아낸 지난날을 정리 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컴퓨터 앞에서 헤맵니다. 배운 메타포도 오브제도 간 곳 없고 헐벗은 듯 벌판에서 떨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것도, 시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도, 다 지워지고 캄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좋아하는 시집을 꺼내 읽습니다.”
바람에게 밥 사주고 싶다
-이북에서 태어나셔서 우리 민족의 현실에 대한 아픔을 갖고 계신 데,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2045년은 분단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백 년 동안 등 돌리고 서로 손가락질하고 걷어차고 눈 흘겼습니다. 고착되어 서로서로 지옥이 되었습니다. 분명 시가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 텐데요. 부디 그날이 왔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성 문학인회 이사장을 역임하시면서 1965년에서 2015년까지의 여성 문학인회 활동사를 수록한 『한국 여성 문학인 회 50년사를』 책으로 묶으셔서 「여성 문학 100주년 공로상」도 받으셨습니다. 지금도 한국시인협회 부회장을 맡으셔서 많은 일을 하고 계시지요?
“제가 여성 문학인회 이사장을 맡은 그해가, 여성 문학인회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라 50년사를 펴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자료수집이 난감했지만 보람찬 일이었어요. 여성비하 시절에 문단에 바친 여성 문인들의 초월적인 삶을 엿볼 수 있었지요. 그분들은 여성 문학인 단체를 만들어 베이스캠프가 되어주셨습니다. 미약하게나마 단체의 활동을 책으로 펴내 보관했어요. 우리가 아는 불멸의 여성 문인들이 그 여성 문학인회의 주체들이셨습니다. 박화성, 최정희, 모윤숙, 조경희, 김남조, 김후란, 한말숙, 허영자 선생님 외 여러분들, 그분들의 선각으로 오늘 여성 문학인들의 지위 향상이 앞당겨졌다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시인협회 부회장으로서는 크게 하는 일 없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시인협회 행사가 끝나고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때 뿌듯하고 기쁩니다. 미력하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서요.”
-문학아카데미에 고문으로 계시면서 버팀목이 되어주고 계신데요, 선생님과 문학아카데미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습니까.
“이길원 선생님이 박제천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박제천 선생님의 담배 연기를 마시면서 장자를 배우고 노자를 들었지요. 그때가 얼마나 중요한 때이고 좋은 때였나를 박 선생님이 안 계시고야 깨닫네요. 아카데미에서 2권의 시집과 2권의 번역 시집을 펴냈습니다. 고문이라는 역할은 영광스럽고 과분합니다.
이번 봄호에 특집으로 실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문학아카데미는 제 시의 고향이고 친정이었습니다. 시를 즐기라고 하시던 선생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알듯 모를듯한 그 말씀이 과제로 남았습니다. 박제천 선생님의 고결한 시 정신이 오래 지속되기를 기원하며, 『문학의 창』을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누군가는 최금녀 시인을 끼 있는 시인이라고 했다. 얼핏 화려해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최금녀 시인은 차분하고 소박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시집을 내기도 한 시인께 요즘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지 여쭈었는데, 지금은 체력이 모자라서 떠나지 못한다고 하셨다. 『문학의 창』이 성큼성큼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시인의 고향인 함경남도 영흥으로 마음 놓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그래서 바람이며 나무며 강물에게 밥 사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빌며 인터뷰를 마친다.
2016년 『문학과 창작』 등단
시집 『슬픔의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