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종교개혁의 시대 (3/4)
롤란드 베인턴, 「세계교회사」 (파주,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2020)
2025년 10월 26일(원래 19일 계획이었으나, ‘대화 시간’ 위해 한 주 연기함)/ 박 영신
1. 앞에:
우리는 두 번에 걸쳐 9장을 함께 읽고 공부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신앙 전통을 이어받은 세대이기에, 더욱 뜻깊게 다가오는 장이었습니다. 홍 선생은 깔끔하게 정리해 발표하고 생각거리도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이 시대의 정신세계를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장의 나머지 부분을 공부합니다.
2. 짜임:
잘 알려진 대로, 베인턴은 종교개혁의 역사를 연구하는 예일대학의 교수로서 일찍이 「나는 여기 서 있습니다」(Here I Stand, 1950)라는 제목을 단 마르틴 루터의 전기를 출판하여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탁월한 역사가입니다. 그러한 배경을 가진 역사학자답게, 종교개혁의 시대를 논하는 장에서 베인턴은 에라스무스로 시작해서 우리에게 생소한 스페인의 개혁 시도도 배경지식으로 넣고, 그의 강점 가운데 강점이 될 루터를 논한 다음, 이어 츠빙글리, 재세례파, 존 칼빈을 다루고, 놀랍게도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를 논의의 소재로 삼습니다.
그의 관심은 이 장에서 할당된 쪽수로도 드러납니다. 에라수므스를 논하는데 4쪽+, 루터 논의에는 22쪽+, 츠빙글리 3+, 재세례파 4쪽+, 칼빈 4쪽+, 헨리 8세에게는 거의 5쪽을 내줍니다. 원본의 쪽수도 비슷하게 계산됩니다.
3. 칼빈:
칼빈(칼뱅)은 루터보다 좀 뒤에, 그러니까 1533년 그가 24세 되던 해에 프랑스의 가톨릭교회를 떠나 종교개혁 운동을 펼친 신학자로 올라섭니다. 개혁가로서의 무게는 개신교의 교리를 체계 있게 통합하고 종합한 그의 저서로 증명되었습니다. 그것이 1936년 봄에 내놓은 저 유명한 「기독교 강요」의 초판입니다. 이 책이 우리말로 옮겨 나온 다음(2008년), 우리 교회에서 함께 읽고 공부했던 책입니다. 칼빈은 이 책의 초판 이후 몇 차례, 아니 그가 1564년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까지도 계속 보강하여 증보판(1559년)으로 나왔습니다.
베인턴은 이 책이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以信稱義)로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시작한다는 말로 칼빈의 신학 사상 그 핵심 성격을 기술했습니다(329). 알다시피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다’는 것은, 루터가 표명한 종교개혁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칼빈은 초판에서부터 1559년 최종판에 이르기까지 줄곧 초판에서 말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강요 69-70)이라는 논의의 항목을 앞머리로 삼았습니다. 그는 초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자비로우시며, 진실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생명이 풍성하시다”는 사실과,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은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이 ‘하나님 지식’에 이어, 그는 <인간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강요 70-71).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실수하여 죄를 범한 까닭에 “하나님의 형상은 취소되고 지워졌[고]” 그에게서 받은 “지혜, 의, 능력, 생명을 박탈당하여” “무지, 죄, 무능, 죽음, 그리고 심판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고 풀이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아담의 후예입니다. “부패한 욕망”으로 가득하고 “어떤 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마음은 여전히 오염되고 왜곡된 내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가증스럽기까지” 합니다. 인간 속에는 “여전히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의 생각이 그 아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없는 바로 그것을 행해야만 한다”고 하고는, 피조물로서 “그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봉사하고 그의 계명에 순종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무지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주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율법을 새기시고 인치셨다(롬 2:1-16)”고 합니다(72).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줍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율법을 “제대로 준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얼굴의 상처와 흠들을 늘상 보는 것처럼 우리의 죄ㅏ와 저주를 분별하고 명상할 수 있[습니다]”(73). 이 점에서 율법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 자신의 행위에서 나오는 의(義)/구원은 기대할 수 없으므로 인간 바깥에서 오는 의/구원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무능함에 절망하며 바깥 “도움을 찾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처럼 겸손하고 거꾸러질 때” “주님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십니다].” “그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약 4:6; 벧전 5:5)”(73).
이처럼,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시작하여 ‘인간에 대한 지식’으로 나가는 ‘두 지식’, ‘두 겹의 지식’을 논하여,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정직하게, 겸허하게 깊이, 깊이 살피고 새기게 합니다. 철학자(신플라톤주의)나 여러 신비주의자가 인간이 ‘하나님과의 합일’할 수 있고 합일하고자 하는 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받을 자로 ‘선택’하고 안 하고는 오로지 하나님의 소관일 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논지를 폈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스스로 의로움/구원을 쟁취할 수 없습니다. 인간 능력(‘인간의 공로’)로는 불가능합니다. 여기 믿는 사람의 ‘염려’가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사람인지, 저주받은 사람인지, 확인할 길이 없기에 염려하고 불안한 상태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칼빈은 “선하신 하나님이 어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는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불평하거나 우리 자신의 구원에 관해서 염려해서는 안 되다”고 했습니다(베인턴, 329). 그러면서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합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자신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이른바 ‘칼빈주의’ 독특함이 있었습니다. ‘올바를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실제로 칼빈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올바른 삶’을 살려고 애썼습니다. 자기 욕망을 절제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온 힘 다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살고자 했습니다. 돈이 있다고 마구 쓰지 않고 절제하며 검소하게 살고자 했습니다. 번 돈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칼빈주의 신도들의 독특한 삶의 지향성을 학문 쪽에서도 예의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회학의 창건자 가운데 하나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막스 베버(1864-1920)입니다. 그는 1904-5에 발표한 두 편의 논문(“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신교인들, 특히 칼빈주의자들이 세속의 욕구와 쾌락을 그들이 표방한 신앙 윤리에 따라 엄격히 절제하고 억제하는 삶의 지향성—이러한 뜻에서, ‘금욕주의’라고도 한다--을 들추어내어, 이것이 지난날의 숱한 경제 이익 추구의 방식(여러 형태의 자본주의들)과 구별되는 ‘금욕주의’에 터한 ‘근대’의 자본주의를 일군 원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베인턴도 이러한 점을 생각하고 “자본주의 정신에 큰 자극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적었습니다(330). 칼빈주의자들은 다른 어떤 개신교파보다 ‘선택 받은 자’로 느끼며 “두려울 것도 없었고 굽힐 것도 없[이]” 부지런하게, 아니 ‘혹독하게’ 일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강력한 ‘적극’의 윤리 지향성은 경제 영역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어야 했고, 실제로 삶의 영역 곳곳으로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말씀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 살아 있어야 했습니다. 베인턴은 칼빈주의자들이 “도시들을 통치하고, 왕국들을 개종시키고, ‘왕을 굴복시키고’(the beheading of a king), ‘야만인들을 문명화하는’(the taming of wildness)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적었습니다(330).
*우리말 옮김을 살펴봅니다.
‘왕을 굴복시키고’(the beheading of a king)--단순히 굴복시켰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왕의 목을 베다/참수로 해야 할지 생각하고 싶습니다. 찰스 1세가 1649년 처형된 역사가 있습니다(제10장 <크롬웰>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