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4. 진제/승의제/제일의제란 무엇인가?
진속이제.....
즉 진제와 속제.....
속제는 사유하고 분석해서 유추해내는게 가능하지만,
진제는 이미 깨달음의 영역이라 사유/분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속제는 어떤 것들이 있어서 그걸 따져보고 관찰해서 알아낼 수 있지만,
진제는 그럴 만한 것들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제란 언어와 문자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고, 인식으로도 알 수 없고,
오히려 생각과 사유가 진제를 깨닫는걸 방해합니다.
무상/고/무아는 속제에 해당하고,
삼해탈문인 공/무상(無相)/무원은 진제에 해당합니다.
진제는 단 하나입니다. 즉 공이지요.
공/무상/무원......이 세가지는 단 하나를 세가지 언어로 표현한 것 입니다.
실체가 없어서 공한 것이며,
그러므로 공 그 자체에는 어떤 모습/형상이 없어서 무상이며,
또 그 어떠한 작용을 하지 않아서 무원입니다.
무원을 무작이라고도 표현합니다. 無作. 어떤 작용도 없다는 걸 말합니다.
공을 표현한 아주 짧고 명료한 용어가 바로 일상무상[一相無相]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단 하나의 모습이고, 그게 바로 상이 없다는 뜻 입니다. 공하단 얘기죠.
온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 본질이 공합니다.
그래서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모두가 다 똑같은 하나의 모양이지요. 그게 공입니다.
모양없는 모양.....즉 일상무상[一相無相]입니다. 그래서 둘이 아닌 즉 불이[不二]입니다.
진제를 다른 말로 승의제, 또는 제일의제라고도 표현합니다.
공이 곧 진제입니다.
존재를 포함한 그 모든 것들은 모두 다 인연화합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므로,
그 자체에는 어떤 고유한 실체로써의 그 무엇이 없어서 공합니다.
이 공을 아는게 지혜(반야)이고,
이 지혜를 키워나가는게 반야바라밀입니다.
반야바라밀이 완성된 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지요.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그래서 반야바라밀은 보살들의 것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부처님들의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아 완성해서 깨달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그 모든 걸 다 아는 일체지의 부처님이 됩니다.
불법승 삼보에서 법보가 곧 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이 반야바라밀이 부처님의 어머니, 즉 불모이지요.
공과 반야바라밀은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
대지도론에서 이 진제/승의제/제일의제/제일의실단이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온갖 언어의 길을 초월했고 마음으로 더듬을 곳이 없으며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아무런 법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법의 실상은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고 나중도 없으며 다함도 무너짐도 없나니,
이것을 제일의실단이라 한다.
- 대지도론/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동국역경원
진제는 말이나 언어로써 결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공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요.
뭐가 있어야 표현할텐데, 그 어떤 모습이나 형상, 그리고 작용이 없으니
그걸 말이나 글자, 언어로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그래서 공 그자체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의지할 곳/장소, 또는 실체 자체가 없지요.
그런 이유로 위에서 아무런 법도 보이지 않는다고 용수보살께서 말씀하셨죠.
모든 법의 실상, 즉 제법실상은 공입니다.
공 그 자체는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경계 자체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다하여 소진될 수도 없고, 결코 소멸되지도 못합니다.
없어지고 죽을 만한 것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공이란 제법실상...즉 모든 법의 실상입니다.
실상이란 어떤 현상의 본질을 뜻하지요. 그래서 뭔 작용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얼음은 차가운 성질이고, 쇠는 단단한 성질인것가 같습니다. 성질을 의미합니다.
공, 즉 진제란 모든 사물의 본래 그 성질을 뜻 합니다. 그게 실상이죠.
그러니 뭔 변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특성인데..
그래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풀이할 때 <공즉시색을 공에서 색이 나왔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겁니다.
대지도론의 내용을 이어 가겠습니다.
마하연의(摩訶衍義)의 게송(偈)가운데 설하는 바와 같다.
말로써 표현할 길이 다하고
마음으로 따질 수도 없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니
법이 그대로 열반이다.
모든 지어감[行]을 말한 곳을
세간의 법이라 하고
지어감이 없음을 말한 곳을
제일의제라 한다.
온갖 진실함과 진실 아님과
온갖 진실하기도 하고 진실하지 않기도 함과
온갖 진실 아니기도 하고 진실 아닌 것도 아닌 것
이들을 모든 법의 실상(實相)이라 한다.
이와 같이 경전의 곳곳에서 제일의실단을 말씀했지만,
이 이치가 심히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 출처 : 상동
위의 내용을 설명해보자면,
말로써 표현할 길이 다하고
마음으로 따질 수도 없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니
법이 그대로 열반이다.
이 진제는 말로써 표현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깨달으신 성인들께서는 말로써 표현해서 중생들을 깨우쳐주십니다.
아무리 진제가 말로써 표현이 안될지라도,
중생을 깨우쳐 주려면 말로 해줘야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지요.
그래서 오로지 단 하나의 방법이 바로 비유법입니다.
진제/공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비유법을 쓰시지요.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등등
공 그 자체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뭘 설명할 껀덕지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유법을 쓰는 수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뭐가 딱 있다면, 야 저거야. 바로 저거....이렇게 딱 찝어서 알려줄 수 있지만,
공, 즉 깨달음은 깨달을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렇게 알려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말로써 표현할 길이 다하고
마음으로 따질 수도 없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니
법이 그대로 열반이다.
그래서 위의 말씀처럼 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또 더군다나 마음으로써 헤아려서 따져서 알수도 없습니다.
불생불멸이니,
일체의 그 모든 법 그 자체가 열반이라는 말씀입니다.
일체 모든 것들이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났으므로,
그 모든 것들은 실체가 없어 텅빈 공이므로 열반과 같습니다만,
중생은 이걸 모르고, 그 모든 것에 실체가 있다고 여기고,
실체가 있다고 여기기에 거기에 집착하고, 번뇌를 일으켜 업을 짓습니다.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게 무명이고,
실체가 없이 텅 비어 있다고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뭔가 있어, 그게 진짜야..라고 여기는게 바로 고통의 뿌리, 집성제입니다.
일체 그 모든 것들은 공하므로, 열반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번뇌즉보리라는 명언도 있고, 윤회즉열반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위의 말씀은 완전히 진제의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즉 본질적인 측면의 말씀이지요.
모든 지어감[行,행]을 말한 곳을
세간의 법이라 하고
지어감이 없음을 말한 곳을
제일의제라 한다.
속제와 진제에 대한 아주 명확한 말씀입니다.
속제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작용하며 변화해갑니다만,
진제의 측면에서는 그 모든 것이 공하므로 작용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지어감, 즉 작용이 없는 것이 제일의제/진제/승의제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란 중생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그야말로 정반대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공이 뭔지 깨닫는게 어렵습니다.
깨달을게 없을 걸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공을 깨닫는다는 것의 의미는 뭐겠습니까?
이걸 잘 이해해야 공을 터득합니다.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겁니다.
뭔가 깨달을 만한게 있어서 그걸 깨닫는게 아니고, 그 반대로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는 것...
이래서 깨닫기가 오히려 훨씬 더 어렵습니다.
뭔가가 깨달을게 있다면, 누구나 다 쉽게 깨달을 겁니다. 근데 그 반대지요.
온갖 진실함과 진실 아님과
온갖 진실하기도 하고 진실하지 않기도 함과
온갖 진실 아니기도 하고 진실 아닌 것도 아닌 것
이들을 모든 법의 실상(實相)이라 한다.
모든 법의 실상, 즉 제법실상에 대한 말씀인데
다른게 아니고 공함에 대한 설명입니다.
공 그 자체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따질게 없어서,
그 어떤 표현을 가져다 붙인다 한들 다 틀리게 됩니다.
그래서 위의 말씀처럼, 복잡하게 써놓은 것 같지만, 사실은 간단합니다.
진실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것도 아니고,
진실하기도 하고 진실하지 않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고 진실이 아닌게 아니기도 하고 등등..온갖 표현을 가져다 붙인들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안된다는 걸 말씀하신 겁니다.
표현 할 것 자체가 없이 절대적으로 텅 빈 것이 진제 입니다.
그러니 말이나 글자로써 표현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이 경전의 곳곳에서 제일의실단을 말씀했지만,
이 이치가 심히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진제의 이치가 심히 깊어서 깨닫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석가세존께서 성불하신 후에,
과연 이 어려운 것을 어찌 중생들이 깨달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신 후에
선정에 들어 머무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공 그 자체는 그 어떤 경계나 한계가 없어서 그야말로 심오하고 깊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행심반야바라밀다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진제는 깨달음의 영역입니다.
대지도론 4. 진제/승의제/제일의제란 무엇인가?
[출처] 대지도론 4. 진제/승의제/제일의제란 무엇인가?|작성자 마하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