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나는 누구인가?
(3) 김 아무개는 누구인가?
- '나'의 형상(imago Dei)인 '김 아무개' -
본래 인간은 '나'를 몰랐고, '김 아무개'가 아니었습니다. 설화에 의하면 죄를 짓기 전에 인간은 '나'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으며 자신을 '김 아무개'와 동일시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삶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고 그랬기에 초라한 자기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어린아이 시절에 비유됩니다.
우리가 어린아이 시절에는 삶을 의식하지도 않고 자신의 모습이 초라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어른이 되면 달라집니다. 가족이 딸리고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설 때, 인간은 삶이 두렵게 느껴지고 불안하며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김 아무개'의 능력만으로 '나'라는 삶의 짐을 짊어져야 하는 이 불합리한 실존 속에 갇혀 신음하는 운명이라는 사실에 눈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의식하면서도 안심할 때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 감당할 수 없는 삶이나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는 늘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노년 생활을 생각해보십시오. 자식 공부시키랴, 먹고 살아가랴 지금도 빠듯한데 노후 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이며, 혹시 치매라도 걸릴까,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삶을 의식할 때 늘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별 뾰족한 자구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 내에서 부지런히 모아서 노후를 대비하고 건강도 보살핍니다만, 결국 삶에 내 맡기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인간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거운 짐 아래서 신음하며 이 굴레로부터 해방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이런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해방될까요? 그런데 그 해답도 역시 인간 자신 안에 있습니다. 확실히 '김 아무개'는 '내'가 아닙니다. '김 아무개'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 둘 사이의 부조화 아래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아무개'는 '나'입니다. 왜냐하면 '김 아무개'는 '나'를 감당할 능력은 없지만 '나'로부터 오는 고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김 아무개’와 '나'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공동운명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탈출구의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는 시공간을 초월해 있습니다. 반면 '김 아무개'는 시공간 안에 있습니다. '나'는 형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무어라 규정되지 않습니다.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김 아무개'는 김 아무개만의 유일한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보이고 만질 수 있습니다.
'김 아무개'와 '나'를 공동운명체로 본다면 '김 아무개'란 『보이지 않는 '나'의 보이는 형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 아무개'로 인해 규정할 수 없는 '나'가 규정되고,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나'가 보이고 만져진다는 뜻입니다. 즉 '김 아무개'를 통해 '나'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성서적 언어로 말하면 ‘하느님의 형상(imago Dei)’ 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뜻은 이런 뜻입니다. 이때 '형상'이란 ‘존재(存在)’를 의미합니다. ‘존재’란 시간과 공간을 의미합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시공간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이란 뜻은 시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느님이 시공간 안에 즉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모습이란 의미입니다.
성서에 보면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형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본질을 정의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이 완전해질 때 ‘김 아무개’도 그리스도처럼 ‘보이지 않는 나의 보이는 형상’이 될 것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의 희망이 있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형상....온전히 주님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 아무개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형상... 하지만 부족한 저는 아직도 ‘보이는 나’가 진짜 ‘나’라고 착각하며 허덕거리고 있네요. ‘보이지 않는 나’ 곧, 진아’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