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이야기1 - 메단 이야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번 인도네시아 여정 소식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중간중간에 아빠스님과 메일을 주고받고, 여러가지 생각하고 하느라 그랬습니다. 이제 제가 이번에 다녔던 곳들, 만났던 분들에 대한 얘기를 간략하게나마 전해 드릴게요.
1.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전교수녀회" 수녀원 이야기
수마트라 북부의 대도시 메단에는 한국에서 가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전교수녀회" 수녀님들 인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수녀님들은 10여년 전에 이곳에 진출하셨는데요, 벌써 현지인 수녀님들이 (지청원자 수련자 포함) 스물 세 분이나 되는 크고 탄탄한 공동체를 일구셨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수도자들이 생겼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 수녀님들 얼굴에 꽃처럼 핀 기쁨(복음의 기쁨!)이야말로 감동적이고, 제게 큰 희망을 주었답니다.
수녀원 전경. 오른쪽 앞은 유치원.
한국 수녀님들 세 분이 양성과 집안 살림을 관장하며 사시는데, 세 분의 삶 자체가 튼튼하고 복음적이기 때문에 생긴 '열매'라고 느꼈습니다. 수녀님들은 대도시 메단의 변두리 달동네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돈 생길 때마다 짓느라고^^) 수녀원 건물을 지으시고, 최근에는 이탈리아반도 산마리노 공화국 은인들의 도움으로 유치원 건물까지 완공하셨습니다. 이 건물에서 마을 주민들의 아이들 유치원과 방과후 공부방 등을 운영하시는데, 수녀원의 재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을 이웃들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어떻든 은인들의 도움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한국 수녀님들이 양성하신 인도네시아 수녀님들이 마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며 삶을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10여년에 걸친 한국 수녀님들의 수고와 노력과 인내의 결실이었지요.
아직 원체 가난한 지역이라, 수녀님들이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수익사업은 여러가지 시도는 해보고 계시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일은 없어보입니다. 머지 않은 장래 현지 수녀님들에게 집을 넘겨드려야 하는 한국 수녀님들이 고민하고 계신 대목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집은자라고 더 튼튼해질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고도 필요한 일, 그래서 시작된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수녀님들과는 원래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5월 꼰벤뚜알 프란치스꼬 수도회 수사님들 연중피정을 드리러 강원도 진부의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전교수녀회 피정집에 갔을 때, 그곳에서 18년 만에 우연히 한 수녀님을 뵈었습니다. 18년 전 고성에서 제 안내로 영신수련 한달 피정을 하신 수녀님이셨지요. 수녀님과 반가이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다가 인도네시아에 같은 수도회 수녀님들이 공동체를 만드셨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그래서 제가 그 수녀님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메단의 수녀님들께 실례를 무릅쓰고 방문해도 되겠느냐는 부탁을 드렸는데, 그것은 단순히 그냥 수녀원에 며칠 머물게 해 주시는 데 그치지 않고, 수녀님들의 안내로 메단 교구의 여러 장소들을 방문하도록 해 달라는 요청이었던 것이지요. 이런저런 일로 바쁠 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적지 않으신 수녀님들이 기꺼이 저를 받아주시고, 온 마음으로 저를 동행해 주셨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따듯해집니다.
생판 모르는 곳이어도, 필요하면 이렇게 인연은 생기는 것이 하느님 섭리로구나, 그런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수녀님들 공동체의 생기와 활력이 하도 훈훈해서, 제가 수녀님들 얘기를 글로 좀 써도 되겠냐고 부탁드리니, 수산나 원장수녀님께서 약간 어려워하셨습니다. 그래도 이런 정도의 얘기는 괜찮다고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떠나던 날 아침 수녀원 식구들과
2. 신학교와 피정집들
그곳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수녀님들의 안내로 나흘동안 여러 곳을 방문했습니다.
제일 먼저 간 곳이, 메단에서 차로 약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뻐마땅 시안따르)에 있는 신학교였습니다. 뻐마땅 시안따르는 가톨릭 남녀 수도회들이 많이 있는 지역으로, 예부터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자리잡아온 곳이라고 합니다. 약간 고지대여서 그런지 메단보다 기후도 훨씬 쾌적했습니다. 거기서 차로 30분 정도만 가면 수마트라의 유명한 담수호인 또바 호수가 나온다고 합니다. 신학교는 메단 대교구만의 것이 아니라 수마트라 섬 전체 약7-8개 교구와 여러 수도회들 소속의 신학생들이 모두 와 공부하는 곳이었습니다. 마치 정갈하고 아담한 수도원 같아서, 글읽고 쓰는 기쁨을 누리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습니다. 수도원 바로 옆에 꼰벤뚜알 프란치스꼬회 학생 공동체가 있었는데, 수마트라섬 전역에서 온 신학생 수사들이 약 30-40 명 함께 사는 곳이었습니다.
신학교 옆 꼰벤뚜알 수도원 양성담당 수도자들과 함께
그곳 원장 신부님과 다른 양성책임 신부님들에게 소중한 여러 말씀을 전해듣고, 밥까지 잘 얻어먹었습니다. 흰 밥과 나물볶음 같은 소박한 밥상에, 손님 왔다고 인도네시아 식탁의 대표선수 나시 고랭(볶음밥)이 특별히 올라왔습니다. 염치불구하고 두 그릇이나 비웠더니 프란치스꼬회 수사님들이 좋아하시더군요. 소박하고 다정한 분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차로 약 40-50분 떨어진 곳에는 같은 프란치스꼬 가족수도회의 카푸친회에서 운영하는 피정집이 있었습니다. 관구본부를 겸하는 피정집이었는데, 한국 뿐아니라 유럽을 다 포함해서 제가 가 본 어느 피정집보다 좋았습니다. 조용하고 쾌적하며 경치좋은 곳이어서도 그랬지만, 건물과 시설들이 훌륭했습니다. 마치 유럽의 어느 곳에 온 느낌도 살짝 들었습니다. 뒷 날 다른 곳에서 프란치스꼬회 계열 수녀님들(엘리사벳 수녀회와 요셉 수녀회)이 운영하시는 피정집들도 방문했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저 역시 , 훗날 공동체가 형성되면, 지역 성직자 수도자를 비롯해서 모든 이에게 활짝 열린 영성 센터를 건립해야겠다고 구상하고 있던 터라, 현지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제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느님의 가난한 백성들과 유리되지 않는 환대의 공간, 그러면서도 수도원의 수익에도 보탬이 되는 손님집 혹은 피정집을 ㄲ꾸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셉수녀회 피정집
3. 주교님과의 만남
수산나 수녀님의 주선으로 14일 오후 교구청 주교관에서 메단 교구장 시나가 주교님을 뵈었습니다. 카푸친 수도회 출신인 주교님은 연세가 70이 좀 넘으셨는데, 매우 활기차고 성격도 외모도 선이 굵직한 분이셨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선교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었고, 주교님은 만일 우리가 진출을 원한다면 교구의 문은 열려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교님은 제게, 동남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있는데 왜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냔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최근 몇 달간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교회에 대해 좀 공부하게 되면서,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형성될 때 이른바 '빤차실라'라는 이념이 전형적인 다문화 다종족 다종교 다언어 사회인 이 나라의 건국에 큰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되었더랬습니다. '빤차실라'는 우리 교회 용어로 하자면 대략 '다양성 안의 일치'와 비슷한 것인데, 다름이나 다양성을 희생시켜서 사회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존중하고 살리면서 '상생'을 추구하는 태도란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천주교와 개신교를 모두 포함해서) 이 '빤차실라'와 복음적 친교를 결합시키면서 사람들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여러 측면에서 인도네시아 교회는 한국 교회보다 성숙한 지점이 많고 그래서 배워야 할 측면도 많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주교님께 이런 제 느낌을 말씀드리면서, 특히 우리 수도회의 창설자인 성 베르나르도 똘로메이께서 가장 강조하시고 또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대목이 바로 '친교'인데, 빤차실라의 나라에 당신 공동체의 뿌리를 내리면서 수도승 생활을 통해 그 친교를 더욱 깊이 증언하기를 바라실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주교님은 이런 제 이야기에 만족하는 눈치셨지요. 그리고, 마침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마침 메단에서 '하느님 자비'(성녀 파우스티나에게서 시작된 신심) 대회가 열리는데, 주제가 "하느님 자비와 빤차실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여기 참석해 보라고 권하시더군요. 물론 우리 수도원이 메단 교구로 들어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나지 않았습니다만, 이 대회에는 참석해보는 것도 여러모로 좋지않겠느냐는 아빠스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석을 고려하고 있는 중입니다.
첫댓글 제가 그리 될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가시는 걸음걸음 주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임을......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며 여전히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수사님. 몸은 어떠신가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