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비행기 창문 밖으로 사진에서 보던 쪽빛 바다가 펼쳐졌다. 오랜 비행을 마치고 프랑스 남부 지중해 코트다쥐르(쪽빛 바다라는 뜻) 해안의 휴양 도시 니스에 도착했다.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알아듣기 힘든 프랑스어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따가운 햇빛이 선글라스를 뚫고, 길가의 야자수 나무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피부를 간질인다.
니스 공항 주차장 한편에 나란히 줄을 맞춘 빨간색과 흰색의 GTI들이 한국에서 날아온 취재팀을 맞이했다. 폭스바겐은 각국의 미디어를 대상으로 6세대 GTI 시승회를 니스인근 휴양 도시 생트로페(St. Tropez)에서 열었다.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유난히 진한 유럽식 커피를 마시면서 따끈한 신상 6세대 GTI를 차근히 둘러보았다.
GTI 아이콘 위에 그려낸 날카로운 얼굴
실물로 처음 보는 6세대 GTI와 기억 속의 5세대를 끄집어내 둘 사이의 차이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새 GTI는 둥근 느낌과 다소 높아보이던 5세대 골프의 살을 빼고 탄탄하게 다듬은 모양새다. 이 때문에 순했던 얼굴은 다소 날카롭고 과격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보닛부터 내려오는 싱글 프레임은 6세대로 넘어오며 그릴과 범퍼가 가로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양쪽 귀퉁이로 밀어넣은 안개등 때문에 중심이 낮아 보여 지면에 착 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제원상의 차이는 몇 mm 수준. 사이드 몰딩이 사라져 깔끔한 옆모습에선 레이저 커팅에 안쪽을 검게 칠한 18인치 리볼버 휠이 유난히 반짝인다. 5개의 구멍이 숭숭 뚫린 리볼버 휠은 5세대부터 이어진 GTI의 아이콘 중 하나다.
뒷모습은 빵빵한 5세대의 그것에서 군살을 빼고 테일램프를 직선으로 다듬었다. 아래쪽에 디퓨저를 달고 머플러를 양쪽으로 빼내 역시 낮고 안정된 자세를 만들었다. 구석구석에서 GTI만의 개성을 위한 디자이너들의 고심을 엿볼 수 있다. 육각형 벌집무늬 그릴과 빨간줄 포인트는 30년 전부터 내려오는 GTI의 상징이다.
여기에 헤드라이트 안의 램프를 감싼 헬멧 모양의 반사판은 6세대 골프에는 없는 GTI만의 특징. 안개등 옆에 그은 3개의 주름이나 뒤쪽 디퓨저는 공기흐름까지 고려한 디자인이다. 음각의 뒷범퍼 사다리꼴 번호판 라인이 아기쪽 디퓨저의 날개까지 이어지는 시각적 효과도 6세대 골프와 다른 점이다.
다 비운 커피잔을 들고 GTI를 계속 둘러보는 동안 7명의 일행에게 빨간색 3대와 흰색 1대의 GTI가 배정되었다. 그중 기자는 빨간색 3도어 DSG의 키를 택했다. 니스 공항 수화물 센터에서 찾아 태그도 떼지 않은 커다란 트렁크 2개를 트렁크에 넣었다. 폭스바겐 로고를 눌러서 여는 방식은 그대로여서 반갑게 느껴진다. 묵직한 도어의 움직임도 5세대 GTI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실내로 들어가니 5세대의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 틀과 푹신한 우레탄 대시보드도 그대로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6세대 GTI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과 높아진 완성도를 발견할 수 있다. 고급스러운 가죽시트의 질감과 특유의 냄새도 여전하다. 시트 좌우 날개, 볼스터가 아낌없이 튀어나온 버켓타입 가죽시트는 시각적으로 멋지고 몸도 편하게 꽉 잡아준다.
5세대부터 사용한 잭나이프 스타일 열쇠를 스티어링 휠 옆으로 넣고 돌려 시동을 거는 방식은 그대로다. 요즘 트렌트에 맞춰 스타트-스톱 버튼이나 파사트처럼 푸시 앤 고 스타일로 바꾸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으로 후끈해진 실내를 식히기 위해 에어컨 버튼을 찾았다.
밋밋한 5세대에 비교해 공조 시스템 버튼은 작아졌고, 기능성과 미적 감각을 살린 배열이 돋보인다. 센터페시아 안으로 들어간 오디오-내비게이션 모니터와 주변의 조작 버튼도 사용이 편리해졌다. 특히 계기판 안의 정보창에서 교차로 턴과 방향지시 같은 내비게이션의 일부 기능이 연동되는 것은 국내 수입모델에서도 빨리 만났으면 하는 기능이다.
양각으로 새겨진 GTI 로고가 빛나는 D컷 스타일의 굴곡진 스티어링 휠은 손에 착 달라붙는다. 그리고 기어 노브와 사이드 브레이크 가죽을 꿰맨 빨간색 바늘땀이 눈을 자극한다. 내비게이션에 설정된 목적지 생트로페(St. Tropez). 니스에서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는 정보가 뜬다. 루트는 고속도로, 산길 와인딩, 해안도로가 적당히 섞여 있어 GTI를 맛보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다.
멈추지 않는 짜릿한 퍼포먼스
서울에서 니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6세대 GTI의 자료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이전 200마력의 직렬 4기통 2.0L 직분사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이 210마력으로 올라갔다. 자료에 따르면 피스톤, 피스톤 링, 오일펌프, 진공펌프, 고압 연료펌프, 공기흐름 센서 등을 새로 설계했다고 한다. 그 결과 연비는 유럽 기준으로 13.5km/L로 올라갔다(5세대는 12.5km/L).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73g/km밖에 안되고 유로5 배기규정도 가뿐하게 넘겼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28.6kg.m의 최대토크가 1천700rpm부터 터져 5천200rpm까지 쭉 이어지는 것과 210마력의 최고출력이 5천300rpm부터 6천200rpm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력과 토크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잠깐 올려 쓰고 기운이 빠지느냐 아니면 끝까지 밀고 나가느냐는 엔진의 기술력과 성능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다.
니스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와 인터체인지를 거쳐 고속도로에 들어서며 GTI의 제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정속주행을 하며 동승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냥 액셀 페달에 힘만 주면 아스팔트를 박차고 달리기 시작한다.
1천rpm 부근에서 풀가속을 하면 회전계 바늘이 빠르게 올라가고 속도계도 함께 상승한다. 변속 타이밍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변속하는 DSG의 발군의 실력도 여전하다. 5세대 DSG의 다소 거칠고 빠른 변속감을 부드럽게 다듬어 정지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 6.9초 걸리는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수동 6단 모델도 6.9초로 DSG와 같다.
독일 아우토반이었다면 제원상 최고시속인 240km까지 거뜬하게 달렸겠지만 프랑스 고속도로의 제한속도인 시속 130km를 넘지 말아달라는 폭스바겐 담당자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일행은 눈치껏 시속 150km 정도까지만 달리며 순간 가속력을 맛보는데 만족했다.
내비게이션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왕복 2차선의 산길로 안내했다. 고속도로에서는 넘치는 출력을 절제하며 달렸지만 산길에서는 엔진 회전수를 마음껏 높일 수 있었다. 직진가속력이 200마력의 5세대와 막상막하였다면 코너를 돌아나가는 실력은 6세대가 한 수 위다. 굽어진 코너를 만날 때마다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패들 시프트로 다운시프트를 하면서 스티어링 휠을 원하는 방향으로 돌렸을 때의 쾌감이 온몸으로 짜릿하게 전해진다.
5세대 GTI는 앞바퀴굴림의 물리적인 언더스티어 현상을 피할 수 없었는데 6세대로 코너를 서너 번 돌아보면 현저하게 언더스티어가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그 비결은 6세대 GTI부터 새롭게 사용한 전자식 차동제한장치(XDS) 덕분이다.
코너를 빠르게 돌며 가속하면 좌우 앞바퀴의 회전차이가 감지된다. 이때 ESP를 통해 코너 안쪽 앞바퀴에 브레이크를 걸고 XDS가 바깥쪽 바퀴에 동력을 더 실어주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바깥쪽 바퀴가 더 빠르게 돌며 언더스티어를 줄인다. ESP와 브레이크를 개별적으로 전자 제어해 비싼 기계식 LSD를 사용하지 않고 같은 효과를 낸다.
5세대 GTI는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며 가속할 때 언더스티어 때문에 밖으로 살짝 밀릴 것을 염두에 두고 라인을 잡아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야 했다. 그러나 XDS가 달린 6세대는 원하는 코너 라인을 그리며 공략하면 된다. 뒷바퀴굴림 스포츠카 못지않은 발군의 실력으로 운전의 재미를 제공한다. 여기에 앞바퀴굴림의 안정성까지 더해져 쉽고 빠르게 스포츠 드라이빙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어떤 음악보다 자극적인 사운드
운전의 맛뿐이 아니라 GTI는 운전을 하며 귀로 듣는 즐거움도 한껏 선사한다. 액셀을 밟을 때마다 “빠아앙~” 뿜어내는 사운드는 어떤 음악보다 운전자를 흥분시킨다. 액셀 페달을 놓을 때 “퍼버벅~”거리며 배기압이 걸리는 소리도, 다운시프트로 “부앙~”거리며 회전수가 맞아 들어가는 음색도 일품이다.
프랑스 남부의 조용한 산길을 휘저으며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어느새 운전석 창문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지중해 해안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길에서 단단하게 잡아주던 스포츠 모드의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DCC) 서스펜션 세팅을 컴포트 모드로 바꾸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서스펜션 스트로크가 크지 않지만 해안도로 곳곳에 있는 요철을 넘을 때 충격을 제법 부드럽게 흡수한다.
교통량이 많은 해안도로에 합류하면서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자 짭짜름한 바다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최종 목적지는 생트로페. 지중해의 작은 파라다이스로 불리며 휴가를 즐기는 유명 영화배우나 백만장자를 찍은 파파라치 사진의 배경으로 자주 올라오는 곳이다.
4대의 GTI가 줄지어 생트로페 해안부두에 들어섰다. 파스텔톤 유럽식 건물 사이로 시골스러운 상점이 촘촘하게 늘어서 있고 부둣가에는 럭셔리한 요트가 빽빽이 정박해 있다. 노상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연인들, 개를 데리고 부두를 산책하던 노인들, 요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이날만큼은 자가용 헬기를 타고 온 할리우드 영화배우나 럭셔리 요트를 타고 온 백만장자보다 생트로페까지 신나게 달려온 6세대 GTI가 더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