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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전체의 내용이 그렇듯이 독자들과 신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시편기자의 영감은 개인 혹은 이스라엘의 체험이나 감흥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기자의 영감은 이스라엘의 메시야, 곧 전 인류의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서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성서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다. 시편은 시라는 장르의 특성상 시인의 영감에 의해서 시공을 초월하는 진리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편은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의 속성과 메시야에 대한 예언, 구원에 대한 소망과 이스라엘과 신자들의 최후 승리를 노래하고 있다.
오늘 살펴보게 될 22편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 견해가 있는데, 크게 두 가지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메시야 예언시라는 것과, 둘째, 극심한 질병과 죽음 앞에 있는 자들이 제의에서 사용한 기도서라는 것에 관해서이다.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
1. 메시야 예언시라는 견해
본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직접 인용하셨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라는 절규로 시작되는 다윗이 쓴 유명한 메시야 예언시이다(그랜드종합주석, 175). 이 시는 메시야 예언시들 중에서도 그 예언으로서의 양상이 가장 생생하고 구체적이며 '십자가 구속 수난'이라는 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예언성은 1~21절에 집중되어 있다.
BKC 주석을 집필한 앨런 존스는 이 시는 다윗의 생애와 일치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서 사형집행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더 적절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복음서 기자들 또한 이 시에서 그리스도의 수난 사건들을 인용 혹은 차용한 것을 지적한다. 이 시의 특징은 죄 고백에 대한 한마디 언급도 없다는 점, 원수들에 대한 저주도 없고, 악인에 의해 죽음에 처하게 된 의인에 대한 설명이라는 점에서 메시야적 시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복음서 기자들이 인용 혹은 차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6~8절(마 27:42~43)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
16절(눅 24:39~40)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
17~18절(마 27: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
22절(히 2: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
27~31절(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22편 이외에도 시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예언으로 기록하고 있는 곳이 많이 있는데, 이러한 시편들을 '메시야 시편'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 시편에서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언급해 주고 있고, 또한 신약성경에서 그 내용을 그리스도와 연관시켜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24편, 72편, 89편은 신약에 인용되지 않았지만 내용상 메시야 시편에 포함되는 것도 존재한다(그랜드 종합주석, 175).
2. 극심한 병과 죽음의 위협 앞에 있는 자들이 제의에서 사용한 기도서라는 견해
한편 WBC 주석에서는 이 시가 제의적 구조를 가졌다고 말한다. 이 시의 구조는 적어도 세 가지 종류의 다른 요소가 있는데, 애가(1~21), 애가 속에 포함되어 있는 기도의 요소(11, 19~21), 찬양과 감사(22~31)가 그것이다. 언어적 양식과 유형의 혼합은 시편 22편의 본문이 기도서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해 준다. 거기서 예배자는 애가로부터 기도로, 그리고 마침내 찬양과 감사로 옮겨가고 있다. 비록 기도서가 개인의 문제를 공동체 전체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 시편은 주로 개인의 찬양시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가 가진 제의적 구조의 가장 확실한 단서는 21절 마지막 행에 나타나는 예배자의 신뢰와 확신의 선언이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이 말은 앞에 나온 애가나 기도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기 때문에 기도 후에(19~21) 치유와 건강을 알려주는 예언적 선언이 있었음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찬양 속에서 예배자는 제의 절차의 보다 긴 부분을 차지하는 말을 두 번씩이나 회중에게 하고 있다(22, 25). 마지막 부분(27~31)에서 등장인물과 어조의 변화는 회중의 응답과 제의의 결말을 암시해 준다.
애가의 언어는 제의 이전의 예배자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의미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이 기도서의 확실한 목적과 배경을 결정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극심한 병을 앓고 있으면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Schmid, Wortund Dienst II(1971) p.119~40. 참조), 제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배자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희생 절기에 참여하는(26) 두 가지 일을 통하여 자신의 서원을 성취하려고 했다(25).
이 시편은 처음에는 극한 외로움을 표현하는 구약의 다른 작품들- 욥의 무서운 저주(3:1~26)와 예레미야의 비탄(20:14~18)- 을 보충해 준다. 그리고 욥과 예레미야처럼 이 시편 기자도 출생의 때를 회상하며 왜 자신의 삶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의아하게 여긴다(22:9~10). 그러나 이 시편은 제의적인 성격 때문에 욥과 예레미야의 경험적인 기록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성격을 띤다. 이 시편은 죽어 가는 자의 외로움을 즉각적으로 염려해 주는 공동체의 맥락으로 용해된다. 그리고 극심한 외로움 가운데서 말을 시작한 예배자는 동료 예배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함께 참여할 것을 권함으로 끝을 맺는다(22:22).
피터 크레이기는 이 시가 제의적 성격의 시라고 단정하면서도 신약적인 견지에서는 메시야적인 시편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의 말씀을 살펴보면 자신의 외로움과 고난을 이 시편 기자의 외로움이나 고난과 동일시하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마 27:46; 막 15:34), 그리고 복음서 기자들도 이 시편에 비추어서 십자가를 해석했고, 십자가의 장면을 묘사하는 데도 이 시편의 말을 인용했다(마 27:39; 막 15:29; 참조. 눅 23:35; 시 22:8). 실제로 이 시편은 예언적인 모습이 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이 시편 기자의 대적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예수께 행동했다(시 22:19; 참조. 요 19:24; 마 27:35; 눅 23:34).
이 시편이 십자가를 묘사하는 “제5복음서”라고 불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Forst, CJT 8(1962) 102~115)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 시편 기자의 경험과 예수의 경험 사이에는 괄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시편은 고난 받는 자가 죽음을 모면했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반면, 예수께서는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편의 후반부(21~31)는 메시야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21절의 변화는 시편 기자의 경우처럼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성취된 구원으로 이해한다. 그러한 구원은 이 고난 받는 자(22~26)와 “회중”(27~~31) 모두에게 찬양의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3. 주요 구절 분석
8절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이와 같은 말은 성경에서 의인이 악인에게 조롱을 받을 때 자주 발견된다(왕하 19:21; 사 37:22). 다윗도 이러한 조롱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삼하 16:7, 8).
12절 많은 황소가…
요단 동부 지역인 바산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비옥한 목초지였는바 건장하고 힘센 소들이 많이 생산되었다. 이 장면은 다수의 힘센 자들이 힘없는 한 사람을 에워싸고 위협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황소, 바산의 힘센 소, 사자, 개). 여러 야수들은 악인들을 상징하고 있다(톰슨Ⅲ 주석성경, 1180).
14절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수난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요 19:34)을 연상케 해준다(Keil). (마 26:38~42).
15절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진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파르’(עָפָר)는 ‘마른 땅’, ‘먼지’를 가리키나 때로는 ‘무덤’이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욥 10:9; 시 30:9; 전 3:20).
16절 개들이…에워쌌으며…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개들’은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를 상징한다(Keil). (요 19:17~37).
17절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이는 심한 고통으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육신이 완전히 쇠약해졌음을 뜻한다. 사도 요한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눈으로 분명하게 목격한 것은 본래 예언의 성취라고 보았다(요 19:37). 이처럼 악인들이 의인의 고통 받는 모습을 분명하게 목격한 사실은 장차 하나님이 그 의인을 구원하실 때 그들로 부끄럽고 두렵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8절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있을 일에 대한 분명한 예언이다(요 19:24). 이러한 시편의 예언이 십자가 사건에서 문자적으로 성취된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거해 준다.
22절 내가 주의 이름을…선포하고…찬송하리이다
이제까지 탄식의 부르짖음으로 계속되던 다윗의 시가 찬양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반드시 구원해 주실 줄로 확신하는 기자의 선취적 신앙의 표출이다. 본절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되었다(히 2:12).
25절 큰 회중
히브리어 ‘카할 라브’( קָהָל רָ֑ב)는 ‘큰 군중’을 뜻한다. 여기서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중을 가리킨다.
26절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이는 감사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 일단 바쳤던 제물을 백성들과 나누어 먹는 것을 의미한다(레 7:16), '겸손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나윔‘(עֲנָוִ֨ים ׀)은 '가난한 자' 또는 ‘곤고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식사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여 성도들이 기쁨으로 교제를 나누는 성찬식을 상기시켜줌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재림 후 모든 성도들이 참여한 천국잔치를 예표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산상수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했던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27~31절 땅의 모든 끝이…돌아오며
‘돌아오다’는 ‘회개하다'는 의미이다(겔 33:11).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제한될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들에게까지 미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강정주, 「시가서 강의」강의록(서울: 개신대학원대학교, 2007).
김영진, 『구약성서 읽기』(서울: 이레서원, 2006).
제자원 편찬위원회, 『그랜드종합주석 9』(서울: 성서아카데미, 1999).
앨런 존스,『시편』BKC, 전광규 역(서울: 두란노, 1983).
피터 크레이기, 『시편 상』WBC, 손석태 역(서울: 솔로몬, 2000).
첫댓글 내용이 신학공부 메뉴 칸에 들어갈 만한 내용이 맞네요.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깊이가 있는 글이네요. 세심히 읽어 봐야겠어요.
성경 공부가 되는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깊이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이 됩니다. 예수께서 처형 당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