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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제42주년 서울기념식을 초대합니다.
일시 : 2022년 5월 18일 10시 - 11시
장소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마당
1)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2) 내란수괴 전두환 잔재 청산
3) 5·18 진상규명(발포 명령 등)
4) 송암동·효천역 민간인 학살
5) 계엄군 양심 고백
6) 유령을 키우는 사람들
7) 증언과 치유 프로그램 운영
8) 2022년 5·18 인식조사
9) 오월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1)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5·18 민중항쟁 42주년 기념행사가 ‘오월, 진실의 힘으로! 시대의 빛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코로나19로 축소·취소돼 왔던 3년 만에, 광주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 일원에서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가 인원 제한 없이 개최된다. 주요 행사는 크게 △추모·기념사업 △계승행사 △연대협력사업 △역사탐방 △시민참여형 공모사업 등으로 구분된다.
52개 참가단체로 구성된 제42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이하 ‘행사위’)는 어제 5월 14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전국 민주주의 시민사회단체 원탁회의를 시작으로 오월시민 난장, 민주평화대행진, 오월풍물굿 등으로 민주주의 완성을 거듭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원탁회의가 개최됐는데, '오월 정신 계승'을 주제로 전국에서 모인 시민단체 대표자와 각계각층의 원로들은 이날 오후 2시 30분 광주 YMCA에서 광주시민사회원탁회의 결과를 발표했고, 이 자리에서는 종교·여성·노동 등 전국 179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행사위는 올해 대대적인 시민참여 행사를 열고, ‘오월 정신 계승·헌법 전문 수록·진상규명’을 다시 금남로와 광장 민주주의로 이끌어나간다는 복안이고, 5월 17일 밤 5·18 기념행사의 백미인 ‘5·18 전야제’가 정오부터 금남로 일대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체험 부스 ‘오월시민난장’이 펼쳐져 전야제의 부활을 알린다.
이어 ‘오월풍물굿’이 펼쳐지는바, 전국에서 결합한 500여명의 풍물패가 망월묘역, 광주역, 전남대 정문, 민주광장 일대 등 주요 사적지에서 출발해, 오후 5시부터는 일반 시민들과 풍물패가 5·18 민주광장 앞까지 진행하는 ‘민주 평화 대행진’은 항쟁 당시 총칼을 든 계엄군이 진을 치고 있던 옛 전남도청으로 진군하던 시위대의 모습을 재현한다.
전야제 무대는 같은 날 오후 7시부터 오월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각종 전시·공연·문화예술 체험의 향연을 온·오프라인에서 펼친다. 전야제 외에도 5월 한 달 동안 다채로운 추모 행사가 전국에서 잇따라 열린다.
서울에서는 제42주년 5·18 민중항쟁서울기념행사를 오전 10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개최하며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분향소가 차려진다. 전북, 대구, 부산을 비롯해 창원, 제주, 청주 등에서도 자체 기념식과 문화제가 열리고 울산과 인천 등에서는 주먹밥 나눔 행사와 추모 퍼포먼스 등이 열린다.
제42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5·18 주간 추모·기획사업 등 총 111개의 기념행사를 발표했다. 행사는 추모사업 4개, 계승사업 11개, 주먹밥 나눔 사업 3개, 시민공모사업 35개, 청소년 참여 행사 10개, 연대협력사업 5개, 협력사업 18개 등이다. '부산 대학생이 부르는 오월의 노래' 등 시민공모사업 35개 중 23개 사업이 교육·종교 등 청년·청소년 중심 사업이다.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은 “전두환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반란세력 즉, 5・18 내란행위자들이 1980. 5. 17. 24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헌법기관인 대통령, 국무위원들에 대하여 강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고 판시하였다.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 목적 살인,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받았고, 내란 수괴 전두환은 2,205억 원의 추징금이 확정됐으나 일부만 갚고 25년을 버텨 남기고 간 미납 추징금은 약 956억 원에 달하는바, 특별사면과 복권을 발표해 내란주요임무종사죄인 노태우와 함께 둘은 2년 남짓의 수형 생활 후 석방됐으나, 참회가 생략됐다.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반란 신군부 폭력과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에 맞서서 정당한 행위를 한 '광주민중항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 내란수괴 전두환 잔재 청산
내란수괴 전두환은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데 대해 끝내 사과하지 않은 채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타계하기 4년 전 펴낸 회고록에서도 5·18 학살의 진상을 밝히지 않고 자신의 공적만을 미화했다.
그런데도 전국 곳곳에는 내란수괴 전두환을 찬양하거나 미화한 시설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5·18민중항쟁 기념 대전행사위원회는 그제 대전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남기계공고 내에 세워진 ‘전두환 방문 기념비’를 철거할 것을 촉구했다.
경남 합천군 시민단체인 ‘생명의 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는 오는 18일 합천읍 일해공원 앞에서 5·18 기념식을 열고 내란수괴 전두환의 별호를 딴 ‘일해공원’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군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5·18 42주년을 맞아 ‘전두환 흔적 지우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경남 합천 주민들의 5·18 학살 주범에 대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의식 있고 용기 있는 행동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며, 합천 기념행사가 전국 각지에 산재한 내란수괴 전두환의 흔적들을 없애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알아 가는데 마중물이 되길 희망한다.
그동안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충북교육청은 2020년 일곱 개 공립학교에 있던 전두환 하사금 건립 표지판을 모두 철거한 바 있다. 국가보훈처도 2년 전 내란수괴 전두환의 글씨를 받아 만든 대전 현충원 현충문 현판을 ‘안중근체’로 교체했다. 전두환 부부가 1988~1990년 머물렀던 강원도 인제 백담사도 2019년 전두환의 흔적을 모두 없앴다.
광주시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을 찾은 참배객들은 입구 바닥에 파묻힌 전두환 비석을 밟고 지나간다. 광주시 서구 5·18자유공원 입구에도 ‘선진 조국의 선봉’이라 쓰인 내란수괴 전두환 비석이 거꾸로 땅에 묻혀 있다. 이 모두 살아생전 사과는커녕 반성조차 없었던 전 씨에 대한 준엄한 질타이다.
5·18 학살의 최고 책임자인 전두환을 미화한 기념물이나 군사반란 흔적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5월 영령들의 참뜻을 기리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특히, 올해 5·18 기념행사는 학살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등이 사망해 이들을 단죄할 기회를 놓쳤지만 5·18 진실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학습장이자 공감의 장으로서 활용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사태로 5월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데 다소 소홀함이 없지 않았다. 42주년을 맞은 이번 5·18 행사에 당사자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크고 작은 기념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운 5월 정신을 선양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3) 5·18 진상규명(발포 명령 등)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최고 지휘부가 ‘비무장 시민에게 발포한 반인도적 학살 행위를 감추려고 뒤늦게 자위권 보유를 천명했다’는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특히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일원 집단 발포 당시 "제3공수여단장이 무전으로 발포 승인을 요청했다"는 증언이 나온데다 발포 과정의 문건이 확인되면서 별도 지휘 계통에 의한 발포 명령이 있었는지 낱낱이 규명해 국가보고서에 기록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광주역 집단 발포가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 아니라 현장 지휘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다수의 증언이 확보됐다.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의 사진 속 시민군은 현재 살아 있고, 그가 북한군 ‘광수 1번’이라는 지만원의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5월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계엄군 840명 등의 증언을 토대로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일대 발포와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에 대해 집중 조사한 결과 두 지역 발포는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결정보다 하루 먼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위는 현장 작전 참여 계엄군 530명에 대한 방문 조사를 통해 최세창 당시 제3 공수여단장이 광주역 현장에서 지휘했고, 조사 결과 "최세창 3공수여단장이 광주역 현장을 지휘하는 과정에 무전으로 발포 승인을 요청했다"는 무전병 증언도 나왔다. 이는 군 최고 지휘부가 별도의 발포 지휘를 했을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는 증언이다.
전남도청 집단 발포도 7공수·11공수 부대원 진술과 부상 피해 현황 대조를 통해 ▲제11공수여단 병력 일부에 의한 1차 일제 사격 ▲도청 본관 2층·옥상, 민원실 옥상, 전일빌딩·수협 건물에서의 2차 조준 사격 ▲도청에서 철수하는 과정의 집중 사격 등 3차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진상조사위는 3개 유형의 발포 과정이 현장 지휘관의 재량에 의한 자위권 수준이었는지, 별도 지휘 계통에 따른 발포 명령이 있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1980년 5월 21일부터 24일 사이 광주 외곽 봉쇄 작전 당시 계엄군 일부에게 개인당 실탄 560발과 수류탄이 지급됐고, 집중 사격을 받고 정지된 차량 안으로 들어가 확인 사살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앰블런스를 포함한 민간인 차량에 대한 무차별한 사격, 시위대를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저질러진 송암동 일원 민간인 집단 학살, 화정동 통합병원 확보 작전 과정에서 주요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해 민가 지역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발포 전 조직·체계적인 실탄 분배가 이뤄졌고, 자위권 천명(80년 5월 21일 오후 7시 30분)에 앞서 발포 명령이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군 기록도 수두룩하다.
보안사령부의 '광주소요사태 진행 상황'에는 자위권 발동 전 4차례에 걸쳐 발포 명령을 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80년 기갑부대사'에는 5월 21일 오전 8시 전투태세인 진돗개 하나(실탄 분배와 발포가 허용)가 발령됐고, 오전 11시 각급 부대에 개인당 M16 소총 실탄 90발씩을 지급했다고 기록돼 있다.
진상조사위는 군 지휘부가 5월 19일부터 21일 오후 1시 사이 계림동, 광주역,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로 민간인을 학살한 이후 뒤늦게 자위권 보유를 천명했다는 점은 위법하며 반인도적 발포 행위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계림동, 광주역, 전남도청을 비롯해 5월 22일~26일 외곽 봉쇄 중 발포, 5월 27일 도청 진압 시 발포, 전남 지역 발포 등 총 6개 지역에 대한 발포 명령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또한 조사위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과 관련한 혼란도 정리했다. 조사위는 다큐에서 추적한 ‘김군’은 효덕동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 학살의 사망자인 ‘63년생 자개공 김종철’이라고 밝혔다. ‘금남로 페퍼포그 차량의 시민군’ 사진에 나오는 인물은 효덕동 사망자 ‘김군’이 아니라 경기도에 거주하는 차복환 씨로 판명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2년 6개월에 걸친 조사위의 활동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발표 내용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사실이라기보다는 기존 사실을 추가로 확인하는 데 그쳤고, 조사 달성율도 50%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행방불명 등 규명해야 할 과제도 한두 개가 아니다. 조사위는 남은 임기 6개월 동안 5·18의 온전한 진상 규명을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한편,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지휘관들이 광주에 파견된 계엄군에게 발포를 명령한, 명령사실·명령권자를 담은 군 문건도 최초로 확인됐다.
한편, 5·18 당시 계엄사령부가 5월 21일 오후 7시 30분, 공식 발포 명령인 '자위권 보유'를 천명하기 전에 이미 4차례에 걸쳐 발포 명령이 확인됐다.
전남대 5·18연구소와 5·18기념재단이 '광주소요사태 진행 상황'이라는 1980년 5월 보안사령부가 생산한 600여 쪽 분량의 문건에 대한 분석 작업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는데, 1980년 5월 작성한 문건은 5월 18일 오전 11시 전남대 앞 상황을 시작으로 계엄군의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린 5월 27일 오후까지를 담고 있다.
그간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반란세력의 "광주 발포는 상부명령 없이 현장 지휘관 판단으로 이뤄졌다"는 주장과 전면 배치된다. 21일 저녁 '자위권 천명' 이전에 이미 4차례 발포명령을 내렸고 계엄군에게 탄약이 지급되고 발포까지 허용되는 '진돗개 하나'도 발령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군 최고지휘부 교감 없이 불가능한 일로 최고위급들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광주에서 계엄군의 발포명령은 5월 20일 최세창 3공수여단장의 첫 명령 이후 다음날 31사단·2군사령부로 이어졌다. 21일 오후 4시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전에 이미 '실탄 배부 및 장착' '발포권한을 개인에게' 적시했고 계엄군은 그날 저녁 7시 30분에야 공식적으로 자위권 차원의 발포를 발표했다.
5월 20일 오후 9시 50분 첫 발포명령으로 광주역에서 최소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고 다음날 오후 4시 도청 앞 집단발포에 이어 발포는 도청이 함락되는 27일까지 이어졌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그동안 피해자들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불행한 역사의 진행이었다. 이번 군 문건에 대한 연구가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라고 명령한 최종 결정권자, 최종진실을 밝혀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반드시 발포명령자를 밝혀내 역사의 진실을 확립해가길 염원한다.
4) 송암동·효천역 민간인 학살
올해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2주년을 맞았으나 완전한 진실규명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계엄군에 의한 송암동·효천역 민간인 학살의 진실이다.
다른 학살지보다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송암동·효천역 사건은 군 당국이 확인한 인원보다 사망한 민간인이 많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나 아직까지 충분한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송암동은 나주, 목포 등지로 통하는 지리적 요충지로 1980년 5·18 당시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을 막으려는 계엄군의 과잉진압이 이뤄졌고, 군부대간 오인사격 분풀이를 주민들 탓으로 돌리려고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곳이다.
군부대 자료는 이곳에서 발생한 ‘민간 사상자를 3명으로만 명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파악되는 송암동 사건의 피해자는 항쟁기간인 21일부터 27일까지 ‘사상자 33명’으로(사망자 16명·부상자 17명)으로 잠정집계 되고 있다.
특히 과거 검찰 조사 과정에서 ‘훨씬 많은 인원이 희생됐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광주 남구가 지난 2020년 자체적으로 해당 지역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피해자 구술채록 용역에서도 ‘사망자가 더 있다’는 공통적인 증언과 정황이 잇따랐다.
반면 충분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확한 학살 규모, 희생자들의 사망 경위는 드러나지 않는 등 아직 규명되지 못한 의혹들이 산재된 상태다. 송암동·효천역 일대 민간인 집단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다각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현재까지 발굴된 군부대 자료는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만큼 군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진상 조사는 물론 5·18 관련 다른 사건에 비해 조명되지 못한 송암동·효천역 학살 사건에 대한 체계적인 아카이브 구축이 절실하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진다면 송암동·효천역 일대에서 학살을 당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이들의 아픔을 후세에 전할 새로운 추모 공간 조성도 마련해야 한다. 추모 공간은 사건의 역사적 의미, 국가폭력, 인권, 민주주의, 평화 등을 후대에 전승할 수 있는 교육의 공간의 개념을 포함해 조성해야 할 것이다.
5) 계엄군 양심 고백
5·18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또 한 명의 계엄군이 양심 고백을 하고 나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5·18진상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경기도 수원에 사는 A(69)씨가 광주항쟁 진압 장면을 촬영한 사진에 등장하는 계엄군이 자신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1980년 5월 당시 7공수여단 33대대 9중대(일명 번개 중대) 소속 화기 하사로 광주에 투입됐다”고 회고했다.
그가 지목한 사진은 트럭 적재함에서 계엄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양복을 입은 채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다. ‘공수부대의 만행이 얼마나 잔혹했으면 외마디 저항도 못한 채 저렇게 당했을까…’라는 탄식을 부르는 5월의 대표적인 사진 가운데 한 장이다.
그는 “무릎 꿇고 있는 시민을 직접 찾아뵙고 사죄하고 싶다”며 조사위에 연락했다고 한다. 조사위는 지난 5월 6일 A씨에 대해 대면 조사를 벌이려 했으나 지병을 앓던 A씨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미뤄졌다.
A씨의 고백이 반가운 것은 계엄군의 활동상 등 5월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2017년 보도한 공수특전여단 신순용 전 소령은 옛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민군 세 명을 사살해 직접 암매장했다고 고백해 학살 진상 규명에 크게 기여했다.
11공수 특전여단 이모 중위도 도청 앞 집단 발포 과정에서 현장 지휘관들이 지휘부에 발포권 하달을 촉구했다고 증언, ‘자위권’ 성격의 발포였다는 신군부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폭로했다.
이들의 증언이 아니었다면 5월의 진실은 미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 행방불명 등 5월의 핵심 의혹이 규명될 수 있도록 계엄군과 목격자 등의 증언과 고백이 잇따르길 바란다.
또한, 보수 정당의 추천을 받아 활동 중인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회의 한 조사 위원이 광주를 찾아 직접 조사한 결과 등을 발표하며 5·18 왜곡에 대해 보수단체 등의 반성을 촉구했다.
6) 유령을 키우는 사람들
5·18 기념재단은 4월 21일 오후 '유령을 키우는 사람들' 이란 제목으로 북한군 개입설 등을 다룬 집담회를 열었다.
발표자로는 전 월간조선 기자 출신인 이동욱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이 나섰다. 그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 한국당 추천을 받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이동욱 위원은 "1982년 발간된 육군본부의 계엄사부터 왜곡의 시작"이라며 "이후 5·18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 518에 대한 여러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북한군 개입설 등을 자취를 감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수논객인 지만원 씨가 2002년 신문 광고를 시작으로 북한군 침투설을 강조했고 주도적으로 터트렸다"라고 지적했다.
해당 광고를 계기로 5·18 단체 등은 같은 해 8월 29일 왜곡 광고 게재를 이유로 지만원을 고소했다. 지 씨는 10월 구속됐다. 이후 지 씨는 다음 해인 2003년 5·18 청문회, 내란수괴 전두환 전 대통령 재판 과정 등에서 5·18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 등이 밝혀졌지만,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 인정돼 징역 10개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동욱 위원은 "2002년 이후 5·18 북한군 침투설'은 확대·재생산됐다"며 "지만원과 탈북자 등이 여러 차례로 출판된 서적들을 통해 5·18 왜곡이 반복됐다"라고 강조했다.
또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등 5·18을 폄하하고 왜곡 발언을 일삼은 극우단체인 태극기 부대에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 위원은 "역사를 바로잡아 5월의 그 숭고한 희생을 감싸고 덮어줬던 태극기를 훼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화투쟁의 일부로 신군부의 권력 야욕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횃불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진상 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해 지만원 등 일부 극우 보수 세력의 5·18 폄훼와 왜곡으로 국론분열과 함께 전국화와 세계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7) 증언과 치유 프로그램 운영
국내 처음으로 계엄군의 증언 조사와 더불어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증언과 치유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5·18 진상규명에 한 단계 나아갈 것으로 기대감을 모으고도 있다.
5·18진상조사위원회는 5월 12일 대국민보고회에서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증언 조사 과정에서 트라우마, 죄책감, 우울증 등 피해사실을 확인하고 ‘조사와 치유’를 함께 진행하는 ‘증언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사위에 따르면 광주 투입 계엄군 총 2만 351명 중 1천 800명을 접촉해 약 800여명의 면담조사를 실시했다.
이 중 200여명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유의미한 진술을 청취했으며 조사 과정에서 이들이 광주에 대한 트라우마, 죄책감, 우울증, 대인기피, 고립감, 정신질환, 알코올 의존증 등이 있고 이로 인한 가정파탄이나 자살 사례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표출된 트라우마를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도록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종교인, 신경정신과 전문의, 미술치료사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자문회의를 통해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고 증언자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진술 청취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진전된 조사결과에 이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나갈 방침이다.
자문단 관계자는 지난 5월 10일 자문회의에서 “5·18은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가 피해자라는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면서 “증언과 치유 프로그램은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5·18조사위 관계자는 “80년 당시 부당한 명령에 의해 5·18민주화운동에 연루됐던 분들의 증언과 제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며 “정치적 이념적 악순환을 끊고 양심적 증언과 회복적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밝혔다.
8) 2022년 5·18 인식조사
5·18민주화운동 42돌을 맞아 국민들은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최우선 사안으로 ‘진상조사 및 진실 알리기’를 꼽았다고 한다.
5·18기념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인식조사’ 결과, 5·18민주화운동 관련 윤석열 정부 추진 과제로 ‘진상조사 및 진실 알리기’가 45.9%로 가장 높았다. 이어 ‘피해자 보상 및 치유’ 22.2%, ‘5·18정신 세계화’ 14.5%, ‘5·18기념사업 및 기념시설 조성’ 9.3% 순이었다.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선 ‘필요하다’가 69.1%에 달해 ‘필요하지 않다’ 15.5%를 크게 압도했다. 5월 18일을 세계 군사주의·권위주의 방지의 날로 제정하는 것에는 62.8%가 찬성 입장을 드러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5·18을 알고 있다. 재단 조사에서 응답은 88.7%로 나타났다. 5·18인지도, 기여도, 이미지를 종합해 산출하는 국민인식지수도 72.5점으로 지난해 보다 상승했다. 국민적 바람에 비춰서도 여태까지 감춰진 역사적 진실을 명백하게 밝혀내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자 의무다.
정부와 지자체, 5·18 기념재단 등은 5·18 42주년 기념행사가 연례 의식에 그치지 않고 ‘진상 규명’과 ‘헌법 전문 수록’ 등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여론 조사에서 나타났듯 5·18 광주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아 새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통성 확립에 크게 기여할 5·18 헌법수록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9) 오월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5월 13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리는 국가기념식에 참석할 계획이다. 지난 10일 취임한 윤 대통령이 참석하는 첫 국가기념일 행사이면서 첫 지역 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7명이 5·18민주화운동의 헌법전문 수록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나 국민적 공감대도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라, 5·18 인식조사 결과를 윤석열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지역사회와 5·18 정신을 연구해온 학계와 예술인 등 민주사회 진영은 대통령의 의지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 시기에 반드시 헌법전문 수록이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두환 씨에 대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있다"고 말해 5·18 관계자와 광주시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번 5월 광주 방문에서는 대통령 신분으로 오는 만큼 위상이 많이 달라져 있다. 관련 단체와 지역민들이 얼마나 호응할지 미지수지만 그의 방문은 원칙적으로 환영 받는 게 적절해 보인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 '5·18국제연구원 건립'이 국정과제로 채택됐고, 지난해 5·18 국립묘지 방문 때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다짐했던 터라 윤 대통령의 42주년 기념식사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광주를 방문했을 때 5·18의 헌법 수록을 얘기했었다. 비록 공약으로 채택하지는 않았으나 당선자가 헌법 수록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었다.
5·18민주화운동 42주년을 맞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5·18 기념식 참석 여부와 관련해 "참석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도 참석을 꾸준히 해왔고, 일정에 관해서는 모든 부분에서 열려있는 상태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5·18 묘지를 수차례 찾은 바 있는 그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고, 올해 5·18을 반드시 챙기겠다는 새 정부가 출범하는 즈음이어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0일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후 "5·18 정신은 헌법이 개정될 때 당연히 헌법 전문에 늘 올라가야 한다고 전부터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또 지난 2월 6일 민주묘지를 찾은 자리에서도 "오월 정신이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 오월 정신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오월 정신은 항거 정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국민통합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논의는 1987년 시작돼 35년여 동안 진행됐다. 당시 민주당 개헌안에 포함됐지만 합의 과정에서 삭제됐고,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원 포인트 개헌으로 '5·18정신의 헌법 전문 반영'을 논의하다 무산됐다.
이후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반영됐고 2018년 '대통령 개헌안'에 5·18민주화운동을 부마항쟁, 6·10민주항쟁과 함께 민주이념으로서 헌법 전문에 담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해 5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보수당이 불참해 의결 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됐다.
윤석열 정부의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추진을 강력히 기대한다. '5·18 정신'을 보편적인 역사 인식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민주국민의 시대'는 민주주의 기치를 내건 대통령에게도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무대다. 윤석열 정부에서 반드시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실증을 구현하길 기대한다.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5·18 정신을 이어가는 5월이어야 한다. 발포명령, 실종자 등 미완의 진실을 하루빨리 규명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도 속도를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 공약이지만 임기 내 완수하지 못한 헌법 전문 수록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진정으로 광주와 전남지역을 생각하고 발걸음을 예정하고 있다면 이번 5·18 기념식 참석과 묘지 참배 이전에 이 지역을 위한 배려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2022. 5. 15.)
2022.5.15
한상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