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6자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은 ‘북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양국은 핵무기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폐기에는 한 목소리를 냈지만, 핵의 평화적 이용을 용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는 대립했다. 결국 쟁점은 ‘핵을 무기의 근간으로 보느냐, 에너지원으로 보느냐.’다. 그러나,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하 방폐장) 예정지역을 취재하면서, 과연 핵이 무기가 아닌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해도 ‘평화’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현재 미국의 ‘무장해제시키고 보자.’라는 식의 북핵문제 해결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방폐장 예정지역의 갈등과 반목, 지역공동체의 파괴는 ‘평화적’ 이라는 말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주춤하던 방폐장의 불씨 다시 살아나 방폐장 예정지로 거론되고 있는 지역은 군산, 경주, 영덕, 울진, 포항, 삼척, 영광 등 7개 지역이다. 이 중 군산과 경주는 시의회의 찬성으로 이미 유치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고, 나머지 지역들은 찬성과 반대의 편차가 있다. 하지만 공통된 것은 모두 지역 공동체가 크게 갈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9월 15일 정부의 적극적인 방폐장 유치신청 독려에도 불구하고 신청한 지자체는 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30일 마지막 후보지로 남아있던 부안마저 방폐장 건설이 백지화됐다. 그러나 그에 앞서 10월, 이해찬 총리의 「중저준위 방사선폐기물 분리방침 발표」는 그동안 진행해왔던 사회적 논의를 무화시켰다. 이어 12월 <원자력위원회>에서 중저준위 방폐장 분리추진이 결정됐고,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연내에 방폐장 부지를 선정할 방침이다.
이에 맞춰 관계부처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산업자원부(이하 산자부)원전사업지원단은 조석 단장을 중심으로 이미 지역 순회를 마쳤고, 삼척, 군산, 경상북도, 양양 등지에서 사업설명회를 가졌다. 또한 경주, 포항, 영덕, 울진, 군산, 영광, 삼척 등 7개 지역에 본격적인 유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4월부터 6월까지 사전부지적합조사를 진행한 후, 6월 16일 부지선정공고를 내며, 8월 중으로 유치신청을 마감하고, 주민투표와 부지조사를 거쳐 11월경에 부지를 확정하게 된다.
울진 옆에 삼척, 끝나지 않는 핵의 위협 지리적으로 핵발전소가 인접한 울진과 가까운 강원도 최남단 오지인 삼척 역시 방폐장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실 삼척은 과거 반핵운동의 역사가 깊은 지역이다. 1982년 1월 당시 동력자원부에서 삼척시 근덕면을 핵발전소 예정지역으로 지정고시 하면서 반핵운동이 시작돼, 각 이장들과 지자체 공무원들의 집단사표와 삼척시민 총궐기 대회, 청와대 상경집회를 개최하고 그린피스와 연대활동까지 10년이 넘는 반핵운동의 결과로 1998년, 백지화를 이끌어냈다. 주민들은 자신의 힘으로 마을을 지켜낸 뜻을 기려 삼척 ‘원전 백지화 기념비’까지 세워 놓았다.
당시 투쟁을 이끌었던 근덕면 번영회장은 “그때는 삼척시민 전체가 다 핵발전소를 반대하고 그랬습니다. 우리 고장 지키자는데 나, 남이 있나. 죽을똥 살똥 핵발전소도 막아냈는데, 방폐장이 들어온다니… 반핵운동 이기고 나니, 찬성했던 사람들은 마을에서 못살고 떠났어요. 대역 죄인이라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라며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지역 공동체가 혼란에 휩싸였던 과거를 상기했다. 그의 회한은 핵문제가 지역공동체에 어떤 영항을 미치는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삼척 최고 오지, 상수원보호구역에 들어서는 방폐장 방폐장 예정지로 지목되고 있는 삼척시 원덕읍은 인구 6300 정도의 작은 마을이다. 그 중에서도 이천3리는 삼척 최고 오지로 꼽힌다. 백두대간의 줄기인 금봉산이 이어지는 해발 800미터 고지고,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이곳의 물은 용암, 임원, 이천으로 흘러가 삼척시민의 젖줄이 된다. 주민들은 ‘만에 하나 방사능이 유출되면 삼척시민들이 다 마시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22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측은 이천3리에 방폐장 타당성 조사를 위한 굴착기를 운반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증언한다. “22일 새벽에 관광버스가 한 대 올라가는 기래요. 우리는 관광 온 사람들인 줄 알았더래요.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올라가보니 큰 기계가 있는 거예요. 무슨 공사냐 물었더니, 굴착공사래요. 그래서 우리는 방폐장 관련된 공사는 무조건 반대다, 그랬지요. 그때부터 이틀을 꼬박 피감자 삶아 먹으면서 지켰어요. 그런데 25일 새벽에 다들 일 나가고 노인들이랑 부녀자들이 지키고 있는데 경찰이 온 거예요. 사람은 10명도 안 되는데 경찰이 150명이 와서 에워싸고… 무섭지요. 무서워서 발발발발 떨면서도 우리는 방폐장은 반대다, 내려가라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밥해먹은 쌀이랑 솥이랑 가스통이랑 물이랑 다 끄집어내고, 우리를 밀고 잡아내고 그래서 우리가 막 다친 기래요.” 당시 몸싸움 과정에서 혈압이 높은 노인 한 분은 삼척병원으로 후송돼 입원중이다.
이천3리 이장은 이 사태에 대해 “테레비 보니까, 잘 듣고 결정하라 카드니, 아무 설명도 없이 기계 들여오고, 공사하고 이래도 되는 기래요? 촌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기래요, 뭐래요?”라며 주민 동의 없이 장비를 밀고 들어온 한수원을 비난했다. 몸싸움 과정에서 허리를 다친 한 노인도 “우리는 암껏도 없어요. 불이 나도 우리가 끄고, 살아도 우리가 살고, 죽어도 우리가 죽는데, 여기서 그냥 살았으면 하지, 방폐장 같은 거 필요 없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천3리 주민들에게 ‘평화’는 자신들이 살던 이 땅에서 누대를 거쳐 살고 싶은 피감자처럼 소박한 평화다. 이들은 방폐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라의 결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5월에는 방폐장 유치 찬성측이 전문가 초청 설명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사업의 문제점을 제기한 한 시민단체 간부를 집단폭행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와 한수원의 조급함은 지역공동체를 폭력사태까지 몰고 가고 있다. 〈삼척시민연합〉 마경만 실장은 “민주화의 토대 위에 건설된 참여정부에서 공권력을 이용해 주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현재 정부의 방폐장 예정지 선정 정책을 힐난했다.
지자체 예산 3억6천만 원이 방폐장 유치운동에 쓰이는 군산 삼척이 소박한 주민정서로 반핵운동을 끌어가고 있다면, 군산은 아주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찬성측과 반대측이 맞서고 있다. 현재 유치측은 군산시청 내에 국책사업추진팀을 구성, 과장급 공무원 1인과 일반 공무원 2인이 업무를 전담하고, 〈원사모(원자력을 사랑하는 공무원모임)〉라는 조직까지 구성해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 예산 3억6500만 원을 유치예산으로 책정하고,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참여자치군산시민연대> 차태정 사무국장은 “형평성에 아주 어긋나는 찬성단체 지원은, 주민들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대규모 물량공세로 주민들을 세뇌시킬 수 있다.”며 지자체의 도덕적 책임과 형평의 원칙을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군산지역 시민단체로 이뤄진 <군산핵폐기장유치반대 범시민대책위>가 전주지방법원에 예산집행정지가처분신청과 함께 본안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반대측도 동단위와 기초선거구를 중심으로 반대세력을 조직, 규합해가며 내년 선거에서 공무원들을 “표로 심판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새만금 막아서 핵폐기장 세워? 울진 핵발전소 인근 삼척이 방폐장 후보지로 거론된 것과 마찬가지로, 군산도 영광핵발전소의 폐기물을 위시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03년부터 새만금 사업지구 내에 있는 신시도와 비응도, 어청도가 거론돼왔다. 그러나 신시도 핵폐기장은 활성단층 문제로 취소되고, 어청도는 군산보다 충남 서천에 더 가까워 유치에 많은 잡음이 예상될 것으로 보인다. 군산시내에서 10킬로미터 가랑 떨어져, 육지화되고 있는 비응도가 가장 유력한 타겟이다.
그러나 비응도에 건설되는 방폐장은 새만금 사업과도 상충한다. 정부의 말대로 농지로 사용하기 위해 간척을 한다면, 핵폐기장과 가까운 지역에서 난 농산물의 상품화와 판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응도에는 「군산 신항만 대체 어항 개발사업」이 한창이다. 이미 해수욕장, 관광시설, 해양목장, 군사시설 등의 다용도 계획이 수립, 기초공사 완료를 초읽기에 둔 상태여서 예산낭비와 국가정책 충돌이라는 치명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네모난 녹색병원, 황금상자 방폐장의 허구 유치찬성단체들은 방폐장 지역지원금 3천억 원 이상과 폐기물 반입수수료, 그리고 양성자 가속기 등이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대부분의 방폐장 예정지가 경제자립도가 낮고, 인구도 줄고 있는 낙후지역인 것을 볼 때, 분명 놓칠 수 없는 큰 장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과연 방폐장은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까? 환경연합 이승화 간사는 “대부분 핵발전소 지역처럼 건설 노무인력과 관리인력 일부를 비정규직으로 쓸 것이어서 단기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실익이 없다.”며 고용창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또한 3천억 원의 지역지원금 중 25퍼센트는 관리사업자에게, 75퍼센트는 5킬로미터 인근 지자체와 나눠야 한다. 실제로 해당지역에 지원되는 돈은 기대 액수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뿐만 아니라 드럼통 한 개당 80만원이라는 반입수수료도, 1천억 원이 넘는다는 지역의 기대와는 달리, 최근 5년간의 발생실적인 130드럼(본지 2005년 8월호 참고)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한 해 동안 발생되는 모든 폐기물을 한 곳으로 모은다 해도 1억40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1천억 원이라는 턱없는 금액은 낭설일 뿐이다.
지역에서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양성자 가속기다. 양성자 가속기는 양성자기반공학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단지로 연구시설과 병원 및 교육기관이 함께 들어오게 된다. 찬성주민들은 해당지역을 대덕과 같은 신공학 연구의 메카로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법률센터 박태현 변호사는 “객관적으로 엄밀히 살펴보면 주민들의 희망처럼 방폐장과 양성자 가속기가 함께 들어오는 건 아니다. 부총리인 과기부장관의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유치기관 선정절차에 대한 공고를 보면, 방폐장 부지로 선정되는 광역지자체와 협의해 선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북 군산에 방폐장이 들어오면 익산이나 전주, 부안 등 다른 지역으로 선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시설입지조건에 ‘시설접근의 용이성, 활용성 및 시설확장성 등을 고려하고, 중장기적으로 첨단과학기술단지 및 관련기업 입주환경 조성이 가능한 지역’으로 입지조건을 명시하고 있어, 방폐장예정지와 같은 오지에 건설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해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들은 일방적인 홍보정보만 듣고 방폐장을 지역경제 활성화의 꿈을 이뤄줄 시설로 인식하고 있다. 차분하고, 냉정하고,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광고대로 ‘우리 모두를 위한 네모난 병원’이 될지,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를 신비와 재앙을 함께 안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 지역의 미래를 주민 스스로 올바르게 결정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균형감 있는 정보가 절실하다.
문진미 기자 mjm@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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