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개하는 울림
- 부산시립교향악단 제586회 정기연주회 -
[예술의초대 2022 5월호]
정두환 (문화유목민)
소리는 사람의 인체 중 항상 열린 두 귀로 인하여 24시간 우리를 자극하고 있는 신비한 감각이다. 물론 여기엔 물리적인 소리도 중요하지만, 이 소리에 마음을 여는 심리적 관심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두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소리 나지 않음이 아니다. 존재의 현상을 두 눈으로 두 귀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더라도 소리의 존재는 창작의 영역에서 무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 소리를 다루는 음악인들은 자연스럽게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섬세할 수 밖에 없다.
지난 4월 1일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제 586회 정기연주회 ‘이방인’은 부산시립교향악단이 ‘올해의 예술가’로 선정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와의 첫 만남이 있었다. 2015년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자이기도 하다. 젊은 파가니니라는 이야기가 어울릴 만큼 그의 기교는 탁월하였다. 그는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에서 자신의 연주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먼저 작곡가 코른골트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클래식과 영화음악을 넘나들며 순수음악과 상업음악의 경계가 무의미함을 보여주는 작곡가이다. 영화에서 아름다운 푸치니 아리아 같은 음악을 들었다면 코른골트의 음악을 들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의 소리를 담는 작곡가의 모습.
이날도 그의 장엄하고도 서사적인 음악이 펼쳐졌다. 여기에 한가지 더한다면 젊은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기교로 더욱 새로운 음색이 입혀졌다. 1.2.3 악장 전체를 흐르는 대 서사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연주는 많은 관객들에게 오랜만에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특히, 앵콜로 연주한 ‘슈베르트의 마왕에 의한 그랜드 카프리스 Op.26’에서의 탁월한 기교와 빠른 연주력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음악 세계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연주자이다.
필자는 이번 음악회에서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차(Subito con Forza)’의 한국 초연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진은숙은 한국 현대음악의 이정표와 같은 사람이다. 지난 2018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에서 물러나며 우리나라와 조금 멀어지는 듯하였지만,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 복귀하여 우리와의 관계를 더욱 새롭게 하였다. 그녀의 곡은 베를린 필과 런던 필 등 세계 최고의 악단에서 소개한다. 이러한 작곡가의 곡을 부산시향에서 들을 수 있어 관객의 입장에서는 행복하다. 이러한 작업이 결국 부산시향의 연주작품 목록을 확장하는 길과도 연결되기에 더욱 기대하였다.
이번에 연주된 ‘수비토 콘 포르차’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2020년에 발표된 곡이다. 현대의 베토벤을 대면하는 듯한 이야기로 다양한 음색의 전개가 돋보였다. 내면의 소리와 외형의 균형감, 소리의 다이나믹이 요구된다. 첫소리의 일성이 지속적으로 절제된 내공의 소리로 담고 있어야 하며, 이 내공이 모여 만들어진 절제된 소리의 힘으로 이어진 뒤 다시금 터져나오는 소리의 힘은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그 여운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부산시향이 들려준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제2번’은 라벨 특유의 음색과 흐름을 느끼기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연주였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음색의 향연이라 하여도 무방한 색채가 그려지는 곡인데 몇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소리의 뒤 섞임에서 지휘자의 많은 고뇌를 볼 수 있었다.
연주자들이 무대 끝까지 나올 정도로 날것의 소리를 최대한 다양하게 들려주기 위한 모습, 이로 인하여 오히려 소리의 뒤 섞임이 느껴지는 무대, 이러한 것을 지휘자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보다 풍부한 소리를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연주자들의 자리 배치에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이또한 새로운 실험의 한 부분이다. 현 파트는 반사판없이 날것의 소리를 전달해야하며, 오히려 가장 잘 울리는 위치에 목관 파트를 배치함으로 목관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목금관의 울림은 섞여서 선명한 투명성이 떨어졌으며 하프의 아름다운 여운이 다른 악기들의 소리에 뒤섞여 버렸다. 후반부로 가면서 울려퍼지는 소리의 다양성과 다이나믹은 생동감보다는 섞임이 강하였다. 진은숙의 곡 ‘수비토 콘 포르차’와는 상반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기 위함은 끊임없는 도전이며 새로움을 향한 열정이다. 부산시향이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연주자들의 단결된 힘과 내적 공유를 통한 응집된 소리의 울림이다.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은 두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개인의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스스로의 시간이 충분하여야 한다. 연습량과 더불어 많은 사색의 시간을 연주자 개개인들은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한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하나된 소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다. 이는 스스로가 준비되고 함께 이루어 나간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지금 시향의 모습에는 아쉬운 부분이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은 우리 부산시민들의 자존심이자 우리 부산을 대표하는 최고의 오케스트라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최고의 음악으로 시민들에게 들려주어야 한다. 부산시향 60년의 역사는 교향악단의 역시임과 동시에 시민들의 역사이며 부산 음악 정신의 역사이다. 부산시향이 존재하는 목적과 이유는 최고의 음악을 시민들에게 들려줌에 있는 것임을 한순간도 놓쳐서는 않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모든 이는 이방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방인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다가감은 있다. 카뮈의 『이방인』 한 구절이다.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음악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본연의 일에는 충실하면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며 카뮈의 한 구절을 중얼거려 본다.
https://www.bscc.or.kr/01_perfor/?mcode=0401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