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평시 전철을 애용한다. 집에서 나오면 마을버스나 일반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전철역에 도착한다. 주로 걷기 위해 계단을 이용하여 대합실에 다다르면 먼저 나도 모르게 다음 열차의 도착 여부를 확인한다. 이에 따라 서두르거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기도 하며, 무엇인가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행동을 무심코 관찰하게 된다. 어제와 차이가 없는 듯하면서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우선, 사람이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말씨가 다르고, 오가는 발걸음도 다르고, 걷거나 뛰거나 하면서 서두르는 풍경이 날마다 다르다. 역사에 입점하고 있는 가게의 진열장이 바뀌거나 아예 업종이 바뀌기도 한다. 이런 모습에서 문득 잊고 지내던 계절의 민감한 변화를 느끼는 순간에 세월의 잔인한 냉기가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도록 한다. 차량에 탑승하면 누구나 머릴 숙이고 핸드폰과 씨름을 한다. 그러다보니 아예 양보의 미덕도 사라졌다.
여하튼 수많은 인파가 오고 가는 전철역은 활기가 넘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노력하는 의지와 축 늘어진 생활의 무게가 교차하는 삶의 교차점이다. 때로는 큰 소리가 나고 부딪히며 목적지를 찾아 오가는 사이에 살아가는 현장의 박동을 느낀다. 그곳에는 단순히 생활인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갈 곳 없이 떠도는 부랑인들의 포근한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단속을 피해 부지런히 곡예를 하듯이 물건을 파는 잡상인들의 직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인가 대출이나 신규 분양 등을 선전하는 안내 표지를 연달아 부치고 다니는 일꾼의 작업장이기도 하다. 어느 종파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부지런히 전도하는 안성맞춤의 현장이기도 하다. 언젠가 전철역에서 상근 예비역으로 근무하던 친구 아들 이야기가 떠오른다. 역에서 근무하는 병사가 마치 예수님과도 같다고 하였다. 소경을 눈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다고 하였다. 가짜 장애인이 전문적으로 단속하는 병사를 보면 곧 멀쩡하여 도망하니 그렇다고 하였다.
평소처럼 약속 장소인 서울역으로 가기 위해 전철에 탑승하여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미 출근 시간은 지난 시간이라 비교적 한적한 시내를 찬찬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이때 젊잖게 생긴 중년의 신사가 목소리를 높여 예수님을 믿어야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전도를 하였다. 성경책을 손에 들고 십자가를 좌우로 흔들면서 죄악에서 벗어나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고 예수님의 품에 안겨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때 맞은편에서 눈을 감고 있던 어떤 사람이 아마 졸음에 방해가 되었다고 느꼈는지, 아니면 마음이 심란한데 시끄럽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꽥하고 지르는 것이었다. 순간 멈칫하던 전도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좀 더 큰 소리로 잘못을 뉘우치고 예수님을 믿어야 천당에 간다고 그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람이 전도자의 멱살을 부여잡더니 조용히 하라는데 시끄럽게 한다고 항의하면서 아수라장이 되었다. 둘이서 엉겨 붙어 몸싸움이 시작되어 전도자의 성경책과 안경 등이 바닥에 떨어지고, 사나이의 모자도 나둥그러졌다. 사나이는 전도자를 가격하여 회심의 일격까지 멋지게 날리면서 주도권을 잡고 씩씩거리니 누구도 감히 말리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경찰에 가자고 전도자는 사내의 목을 부여잡고 다음 정차역에서 함께 하차하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그들을 따라 내렸다. 현장을 목격한 역무원이 서울역으로 가면 지하철 경찰이 있다고 알려주니 다시 다음 전철로 서울역으로 향하는데 나도 동참하게 되었다. 둘은 계속하여 다툼을 이어갔고 서로가 잘 했다며 시비를 하였다.
나는 조금 떨어져서 그들을 따라갔는데 그중 한 명이 나를 돌아보며 왜 따라오느냐고 물었다. 대답하길 내가 전철 안에서의 일들을 목격한 사람인지라 누가 잘못을 했는지 증언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이어서 먼저 사내에게 말하길 이유를 불문하고 먼저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무조건 잘못이니 서둘러 사과를 하라고 하였다. 전도자에게는 예수님의 사랑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하는 것이 옳으니 용서를 하라고 하였다. 그들은 곧 서울역의 사무실에 당도하여 간단한 조사를 받았다. 듣고 보니 사내가 두 살이 더 많았다. 몇 가지 질문을 받는 과정에 두 사람도 어느 정도 진정을 하였고, 최종적으로 전도자가 고소할 의사를 철회하여 사건은 무마되었다. 웃는 얼굴로 사무실을 나오면서 우리 세 사람은 서로에게 안부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일에 참견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아마도 사회에 진출하여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의 여기저기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가래침을 뱉는 꼴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던 혈기가 왕성한 시절이었다. 험한 꼴을 보기 전에 참견하지 말라는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여 요즘은 아예 보지 못한 체하고 지나간다.
강남역에서 하차하면 10분을 걸어서 사무실에 도착한다. 주로 지하상가를 지나 4번 출구로 나가는데 계단 밑에는 언제나 할머니 한 분이 자리하고 계셨다. 주로 껌을 진열해두고 행인에게 팔고 있었는데 전혀 호객행위를 하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이 원하면 판매를 하고 있었다. 오가며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니 날마다 미묘한 변화를 관찰하게 되었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껌을 사주고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광경을 보았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절에는 나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소량의 현금을 건네기도 하였다. 먼 옛날 그토록 손자를 잊지 못하시며 한도 많은 세상을 떠나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항상 속으로는 제발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머물러 생존의 현장을 지켜 주시길 빌며 지났다. 중간에 서울을 떠나 대전에 근무하면서는 매주 한 번씩만 서울 사무실에 나갔다. 점점 얼굴이 핼쑥해지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되었는데 그나마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남아 있었다. 대전에 있다가 어느 날 지나가는데 할머니가 계신 곳에 여러 개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이미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잊지 못하는 시민들이 남긴 마지막 인사였다. 나도 모르게 현장에 잠시 머물며 속으로 추모를 하였다. 언젠가는 이날이 올 것이라는 예감은 했으나 막상 영원한 이별의 현장에서 가슴이 쓰렸다. 이렇게 분주하게 오가는 삶도 그 언젠가는 마무리를 해야만 하는 숙명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니 현재에 숨을 쉬며 주변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어찌 축복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하상가에는 오가며 눈인사를 나누는 친구가 있다. 다른 곳에서 평생을 시계 수리를 하다가 이곳에 자리한 분인데 연배가 비슷하여 알고 지낸다. 물론 개인적으로 손목시계를 수리한 계기로 말문이 트였다. 예물 시계를 방치했다가 내부 청소라도 필요할까 하여 수리를 하였고, 주로 평소에 사용하는 시계가 문제가 되면 수리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특히 소주라도 걸치게 되면 어김없이 가게를 지나다가 말문이 트이기도 하는 관계이다. 할머니가 떠나신 후 이 친구와도 언젠가는 작별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다른 번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먼저일지 모르지만 스치는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전철을 기다리며 무심코 이중 안전유리 벽에 쓰인 시(詩)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혀 생소한 무명 시인의 시도 많다. 그리 길지 않은 단문의 시가 함축한 내용에서 재삼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경험한다. 물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 외에도 적절히 무료한 시간을 달래준다. 그러다 갑자기 뭉클한 순간을 맞이하면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으로 남긴다. 나중에 보면 그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언제 다시 읽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야 마음이 푸근해진다. 주변을 살펴보면 시와 밀접한 시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공원에 가면 유명 시인의 시비가 있고, 도시 주변의 공원 구석구석에도 시인들의 작품들이 게시되어 있다. 그만큼 정서적으로 시민의 가슴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희망을 주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어느 곳에 설치된 시는 양면에 각각 다른 내용의 시를 써놓고 정작 한쪽 면만 보이게 하여 작업자의 무심한 태도에 경악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주기적으로 진열된 시의 내용을 바꾸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몇 년이고 그대로 고정되면 누구나 식상하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인상에 남는 시의 전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
사막에서 새 풀을 찾아 쉴 새 없이 달리는 양들은 잠잘 때와 쉴 때만 제 뼈가 자란다. 푸른 나무들은 겨울에만 나이테가 자라고 꽃들은 캄캄한 밤중에만 그 키가 자란다. 사람도 바쁜 마음을 멈추고 읽고 꿈꾸고 생각하고 돌아볼 때만 그 사람이 자란다. 그대여, 이유 없는 이유처럼 뼈 아프고 슬프고 고독할 때 감사하라, 내 사람이 크는 것이니, 힘들지 않고 어찌 힘이 생기며 겨울 없이 어찌 뜨거움이 달아오르며 캄캄한 시간 없이 무엇으로 정신의 키가 커 나올 수 있겠는가
언젠가 불가피하여 출퇴근 시간에 전철을 탔다가 하마 죽는 줄 알았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 진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밀리면서 숨조차 쉬기 어려운 경험을 하였다. 여기저기에서 밀지 말라고 젊은 여자의 비명이 터진다. 이후로는 가능하면 그 시간대를 피하여 이용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젊은 자식들은 날마다 저런 고통을 겪어야 하니 참으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군 생활을 하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출퇴근 전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지간하면 노약자석은 비어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인파 속에서도 가능한 공석으로 두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융통성을 발휘하여 한 석이라도 줄여주는 것이 서로를 돕는 길이다. 나이 든 사람은 가능하면 출퇴근 시간 이용을 삼가는 것도 공동체의 번영을 위한 배려라고 본다.
한가한 전철에서 각종 물건을 판매하는 호객행위도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었다. 지속적인 단속으로 예전보다는 감소했으나 빈틈을 비집고 판매하는 경우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런 생생한 삶의 현장이 전철에서 느끼는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몇 가지 물건을 구매했다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해 오히려 아내로부터 핀잔을 받기도 하였다. 그나마 유일하게 활용하는 물건은 세면대의 하수구를 뚫는 제품이다.
오늘도 외출하면서 전철을 탄다. 약속 장소에 비교적 정확한 도착이 가능하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전철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편이다. 화장실은 아마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전철 자체도 악명높은 뉴욕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고, 런던이나 파리 혹은 모스크바나 보스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물론 눈살을 찌푸리는 장면이 있다. 내리기 전에 비집고 타는 행위, 대자로 뻗어 눕거나 임산부석에 버티고 앉아 있는 행위, 큰 소리로 전화하거나 떠드는 행위, 속 옷이 보이게 정숙하지 않은 행위와 지나친 애정표현 등은 고쳐야 할 점이다.
그런데 아직껏 서울시에서 준 무임승차권을 사용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사용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노인임을 부정하고 있는데 무임승차로 스스로 별난 자존감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라의 곳간도 어렵다 하는데 그냥 소량이나마 짐을 덜어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본다고 자위한다. 그러다 보니 굳이 노약자석을 찾아가지 않아도 떳떳하게 아무 자리나 앉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항상 전철을 타면 다소 마음이 놓인다. 우선 정한 시간과 장소에 늦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더구나 서울의 지하철 노선은 잘 발달 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차량 간격도 일정하게 유지되니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더구나 귀가하는 길의 종착역에는 쇼핑몰이 있어 오늘은 무슨 물건이 있는지 습관처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시설물을 잘 가꾸고 유지하기 위한 일반 탑승객 모두가 아끼고 애용하는 분위기가 오래오래 지속이 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명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2022. 2. 27 작성/3. 16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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