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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쪽에 있다. 화학산(華虐山), 명지산(明智山)을 비롯한 여러 거봉이 솟아 있는 산악 지대이다. 북한강이 동서로 흐른다. 운악산(雲岳山), 현등사(懸燈寺)가 오래 된 사찰이다. 호명산(虎鳴山) 위의 호명호(虎鳴湖)가 경탄을 자아내며 수력발전에 이용된다. 청평호반(淸平湖畔)에 좋은 산책로가 된다. 유명산자연휴양림(설악면), 청평자연휴양림(외서면)이 있다. 아침고요수목원(상면)이 아름다운 곳이다. 산천이 수려하고 볼 것이 많은 별세계이다. ‘쁘띠 프랑스’라는 놀이동산이 있다.
1) 아기장수
2) 장자못
3) 호묘골
4) 연인산
1) 아기장수
아기장수전설이 외서면 하천 2리에 전승되고 있다. 옛날 그 곳 어느 농가에서 사내아기가 태어났는데,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있었다. 높은 선반 위에서 놀고 있었다. 이 아기가 장수인 것을 알고 놀란 부모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맷돌을 얹어 눌러 죽였다.
그러자 서북쪽의 산에서 흰 용마가 솟구쳐 날아와 그 집 주위를 큰 소리로 울면서 돌다가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용마가 죽은 자리라 하여 이 곳을 ‘마죽이(마직이)’라 부르며 용마가 나온 산을 마산(馬山)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용마가 나온 구멍에는 효험이 큰 약수가 있어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온 마을이 병신들로 가득할 것을 염려한 마을사람들이 개를 잡아 약수터에 넣자 약수가 말라버렸다고 한다.
=> 이런 유형의 아기장수 이야기가 전국 도처에 전승되고 있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더 보탠 사연이 있다. 용마가 나온 구멍의 약수를 고갈시키기까지 한 옹졸한 처사를 나무라지 않고 소개했다. 변혁의 가능성이 압살된 좌절의 역사를 안타까워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2) 장자못
옛날 어느 때 동냥하러 온 중에게 인색한 부자가 돈 대신 쇠똥을 자루 속에 넣어주었다. 이를 지켜본 그 집 며느리가 쌀을 한 되 주며 용서를 비니, 중은 “내일 정오가 되면 뒷산으로 올라가되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라고 하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튿날 정오에 뒷산을 향하여 고갯길을 오르던 며느리가 마을에서 나는 천둥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며느리는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었다. 그 부자집은 연못이 되었다. 그래서 그 연못을 장자늪, 마을의 이름을 장자골이라 부른다.
=> 이런 유형의 장자못 이야기의 현장이라고 하는 곳도 여기저기 있다. 인색함을 미워하고 천별이 내릴 수 있다고 믿어본다. 인색한 부자집이 함몰하고 못이 되었다는 것은 인과응보의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그러나 선량한 며느리가 돌로 변했다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는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당부를 어긴 벌이 너무 커서, 천리(天理)의 엄중함이나 천리 전달자의 권능을 말하는 더 큰 주제를 간과할 수 없다.
3) 호묘골
북면 목동리 사리재 입구에 호묘(虎墓)골이라는 곳이 있다. 그 근처에 사는 정(鄭)씨가 논물을 보러 나갔다가 호식(虎食)을 당했다. 가족들이 찾아 나섰다가 머리 부분만 발견했다. 장례를 지내려고 하니, 그 마을에 사는 지관(地官)이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다놓은 곳이 명당이라고 했다, 머리 부분이 있는 곳에 무덤을 썼더니, 가난하던 정씨네가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호랑이가 잡아 준 무덤 터라고 해서 그 곳 지명을 호묘골이라고 한다.
=> 가난만 해도 서러운데 호식을 당하기까지 하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답은 없을 때 있다. 호식을 당한 더 큰 고난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전연 말이 되지 않는 억설이다. 그러나 억설을 역설로 삼아 전환을 이룩할 수 있다. 무덤을 잘 써서 발복했다는 풍수설화는 모두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니지만, 전환의 비약이 가능하다고 일깨워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면 관심을 가질 만하다. 전환의 비약은 경험적인 합리성을 넘어선 차원에서 진행된다. 명당에 무덤을 써서 잘 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이야기를 구체화할 수 있는가?
4) 연인산
가평에 연인산(戀人山)이라는 산이 있다. 옛날에 길수라는 청년이 그 산 속에서 화전을 일구기도 하고 겨울에는 숯을 구워 팔기도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길수가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다. 김참판 댁 종으로 있는 소정이었다. 소정은 원래 종은 아니었지만 흉년을 넘기기 위해 쌀을 꾸어다 먹은 게 화근이 되어 김참판댁에서 종처럼 일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길수는 일 년에 서너 번씩 김참판 댁으로 숯을 가지고 오면서 소정을 만나게 되었고 서로 외로운 처지임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 번은 길수가 숯을 져 오다가 눈길에 넘어져 김참판 댁에서 병 치료를 하게 되었다. 꼬박 열흘을 누워 있으면서 길수는 어떻게 하든 소정과 혼인하기로 마음먹고는 김참판에게 소정과 혼인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김참판은 길수에게 조 백 가마를 내놓던가 아니면 숯 가마터를 내놓고 이 고장을 떠나 살면 허락하겠다고 한다. 삶의 터전을 내줄 수 없어 고민하던 길수는 결국 조 백 가마를 가져오겠노라고 약조를 하고 만다. 하지만 가진 게 없는 길수가 조 백 가마를 마련할 길이 없다.
고민하던 길수는 우연히 연인산 꼭대기 바로아래에 조를 심을 수 있는 커다란 땅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기쁨에 들뜬 길수는 그곳에서 밤낮으로 밭을 일궈 조를 심을 아홉 마지기를 만든다. 아홉 마지기는 조 백가마도 넘게 나오는 아주 넓은 밭이다. 길수가 심은 조는 무럭무럭 자라 이삭이 여물어가기 시작하고 길수와 소정의 꿈도 함께 익어가면서 둘은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정을 줄 마음이 없던 김참판은 길수를 역적의 자식이라고 모함을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친 길수는 더 이상 이곳에 살수 없다는 생각으로 소정과 함께 도망가고자 소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소정은 길수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잡혀갔다는 소문에 그만 삶의 희망을 잃고 남은 생을 포기한 뒤였다. 소정의 시신을 안고 아홉 마지기로 돌아간 길수는 자신의 희망이었던 조를 불태우며 그 안으로 뛰어든다. 이때 죽었다던 소정이 홀연히 아홉 마지기를 향해 간다.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올라가 보니 두 사람은 간 곳 없고 신발 두 켤레만 놓여 있었다. 신기하게도 신발이 놓여 있는 자리 주위에는 철쭉나무와 얼레지가 불에 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금도 봄이면 연인산 정상에는 얼레지꽃과 철쭉꽃이 눈부시게 피어오르고 있다. 연인산에서 사랑을 기원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길수와 소정의 영혼이 아홉 마지기에 영원히 남아 이곳을 찾는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비극은 이처럼 순수하게 말해주는 작품이 구전설화에나 있다. 소설은 유식한 척하면서 다른 말을 공연히 많이 늘어놓다가 핵심을 놓치는 것이 예사이다.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고 다시 분발하고자 하는 작가가 있으면 위의 이야기를 그대로 살리고 꼭 필요한 살만 붙여야 할 것이다.
▶얼레지꽃
[풀·꽃·나무 친해지기] (17) 야생화의 여왕 얼레지 국민일보 2015-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