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 on the present - 타인에게서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작년(2008년) 들어서부터 묘하게도 다른 자폐아와 그 부모님들을 만나는 일이 조금씩 많아졌는데, 엄마가 활동하던 장애아부모들의 인터넷 까페에서 만난 분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서로 상담하는 것이었다.
물론 엄마의 까페활동은 이미 4, 5년이 넘어갔지만 고등학교 때는 거의 만난 적이 없었고, 대학교 때에나 2번 정도 다른 자폐아와 그 부모님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정도였다. 무엇보다 엄마는 내가 평상시 중요한 일 이외에는 끌려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나를 데리고 가는 일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작년(거듭 말하지만 2008년) 3월의 일이었다.
당시 엄마는 대전에서 장애아까페 회원 분들과 직접 만나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평상시보다 많은 인원이 모이기 때문에 나까지 직접 끌고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싫어했었지만 당시 용돈이 궁했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 용돈 낚시는 엄마도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쓰는 일이 없다. 약발이 안 먹히는 것도 있지만.) 더구나 열받게도 당시 내키지 않으면 노래부르기 싫어했던 나한테 노래까지 부르게 시켰는데 내키지는 않았지만 따라온 이상 할 수 없이 부르게 되었다.
핵심 사건은 질문 시간 중 생각지도 못하게 찾아왔는데 엄마가 날 키울 때의 사례를 응용해서 대답하던 중 내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이 생겨났고, 다른 질문에도 속속들이 대답을 했었다.
그렇다. 거의 정상화 되면서 내가 어릴 적 했던 행동에 대한 이해가 생각지도 않게 다른 자폐아들에 대한 부모의 이해를 돕게 된 것이었다.
여기가 시발점이었나,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나서 인턴쉽 준비가 한창이던 8월에 뷔페에 낚여서 다른 자폐아와 부모님을 만나러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그 자폐아는 특이하게 비틀비틀 걸으며 갔었는데 순간 내가 어릴 적 행동했던 것이 딱 떠올랐던 것이다.
훗날 알았지만 초등학교 까지만 해도 이웃 사람들이 날 부르는 별명 중 ‘술취한 아이’라는 왠 취권도사틱한 별명이 붙었는데 이 무렵부터 난 보도블럭의 금을 밟지 않으며 걷는 상당히 특이한 걸음걸이가 습관이 되있었다.
이와 비슷하게도, 위험한 절벽이나 뾰족한 곳을 뛰어다니거나 아슬아슬한 지형을 넘곤 하였는데 사실 이 행동의 근원은 전부 무언가 스릴을 즐기거나 나름의 룰로 노는 것에 있었다.
뭐, 한마디로 말하자면 걷는 시간에도 재미있게 놀기 위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당시에는 일상이었는데, 옆에서 보는 엄마나 어른들한테는 상당히 위험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다소 위험하지만)
지금은 어떠냐고? 티 나지 않게 잘 걷는다. 그 덕분인지 남들보다 다소 걸음걸이의 속도가 빨라지게 되었다. (엄마나 다른 사람들과 있을때는 나름 걸음걸이를 조절한다.)
이야기한 김에 한가지 더, 8월에 만난 자폐아가 중얼거린 것도 내 시점에서는 상당수 이해가 갔는데 내 경우를 들어보자면 인상적인 장면이나 상상한 것 중 재미있는 장면이 폭포수 흐르듯 넘쳐 흐르면서 생각한 내용이 순간 입밖에 나와 통제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은 남들 있을 때는 머릿속으로만 기억하다 슬쩍 킥킥대는 정도지만, 솔직히 이 특성 덕에 갖가지 아이디어가 남들보다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나름 쓸모 있는 소재가 되어서 상당히 도움이 된다.
또한 감성적으로도 상시 즐거운 마음이 되기 쉬워서 일상이나 일도 수월해지게 된다.
적어도 내 입장에선 그랬다.
그런데 이 2가지 일을 엄마한테 말하니 엄마는 놀라면서 내 행동에 대한 것을 이제야 이해하게 될 수 있었다며 매우 좋아했다. 하긴, 내 사례 자체가 자폐라는 케이스에는 드문 케이스니.
최근(2009년 3월초)다른 자폐아 부모와 만날 때는 아예 다른 자폐아에 대한 상담까지도 조언했을 정도니 내 경험이 얼마나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기억 나는대로 내가 겪은 경험을 써서 다른 장애아와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