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레고 ‘덕후’, 삼성SDS 이정구 수석보
임지윤 기자 2015-01-23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아봤을 장난감 레고! 요새는 ‘키덜트 문화’가 퍼지면서 레고를 취미로 가지는 어른들도 많아졌다. 레고는 덴마크어 ‘레그 고트(leg godt)’를 줄인 말이다. ‘잘 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레고가 가진 의미대로, 어릴 적부터 아이 아빠가 될 때까지 레고를 가지고 ‘잘 논’ 사람이 있다. 바로 삼성SDS에 근무 중인 이정구(40) 수석보이다.
그는 어릴 때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우주선 시리즈를 가지고 놀며 레고와의 사랑을 키우기 시작했다. 몇 안 되는 부품을 활용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보면서 레고의 재미를 알게 됐던 것. 그때부터 갖게 된 레고에 대한 사랑은 그가 입사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와 레고의 러브스토리를 지금부터 시작하려 한다.
레고? 10점 만점에 10점
레고는 몇 천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사실 저렴한 취미는 아니다. 사고 싶다고 다 살 수는 없는 까닭에 그는 한 작품을 완성한 후에는 다시 해체시킨다. 갑자기 한 달에 그가 레고에 얼마나 투자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는 요즘엔 가정이 있어 절제하고 있는 편이라고 말하며 정확한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요즘은 주로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선물이 필요한 날 구매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 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주말에 간간이 시간을 내서 같이 레고 조립을 해요. 그래도 저 혼자 하고 싶은 레고가 생기면 아이들을 다 재우고 시작하기도 합니다.”
레고는 나의 힘
온종일 업무로 바쁘고 지쳐 집에 돌아오면 쉬고 싶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렇기에 레고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레고라는 취미활동을 통해서 오히려 하는 일의 활력과 동기를 얻고 있었다. 그에게는 ‘레고’가 곧 휴식이었던 것. 그의 레고에 대한 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레고 숍에는 꼭 들른다. “레고는 한정판도 많고 나라별로 출시되는 제품의 수량과 품목이 다 다르거든요.” 평소 해외에 나갈 수 없을 땐 해외 구매 대행을 이용한다. 보통 부품 단위로 구매한다. 그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언제 한 번은 집을 만들기 위해 창문, 타일, 난간 등을 주문했어요. 그걸 본 친구가 진짜 집 짓는 걸로 오해하기도 했죠.” 귀여운 사건이다.
레고와 함께라면 말랑말랑한 뇌를 가질 수 있다
그가 레고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입사 후 레고 동호회에 들면서부터다. 그는 레고 제품군 중 테크닉(기계 공학 원리를 접목한 레고) 시리즈에 관심이 많았다. 레고 부품으로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을 조립해서 만들고 버튼을 누르면, 움직인다. 이외에도 그는 ‘마인드 스톰’이라는 시리즈를 좋아한다. 레고로 이루어진 로봇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특이한 건 그가 절대 설명서(Instruction)대로 조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만들어보고 싶은 대상을 정하고, 그 작동 원리와 부품 등을 조사하고 연구해 스스로 레고를 조립한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그는 ‘공대생(산업공학과)’이기에 좀 더 수월했다고 설명한다.


▲버튼을 누르면 레고가 움직인다!! 뚱~치 뚱~치♬
하지만 그가 만들었던 작품은 보통의 장난감 수준이 아니다. 유명한 레고 커뮤니티에서 소개된 그의 작품은 전시회에 전시되기도 하고, 레고 관련 교재에 실리기도 했다. 이정구 수석보가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은 비행기였다. 비행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자료를 모아 스스로 계산하고, 생각해서 만들었다. 그는 “대학교 때 왜 배우는지 몰랐던 원리를 되레 레고를 통해 알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레고는 상상력을 향상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아이와 함께 하면서도, 그가 도안을 새롭게 만들면서도 말이다. 그에게 평소 어떻게 상상력을 키우는지를 물었다.
“제 생각에 상상력의 시작은 관찰입니다.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아 어떻게 생겼고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를 기억합니다. 마치 부품을 모으듯 상상력의 재료를 모으는 거죠. 그러고 나서 왜 그런지를 생각해보고, ‘그래서 어떨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그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다 보면 그게 상상력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작가와도 비슷하네요.”

▲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레고 부품 개수만 해도 몇 개나 될까?

▲전시된 비행기 작품의 모습! 월드컵 시즌일 때라 뒤의 응원 모형은 보너스~
한편, 레고가 이어준 인연은 의외로 다양했다. 다른 직종에서 종사하는 사람들과도 레고 하나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온라인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몇몇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였는데,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행운이었죠. 덕분에 많은 사람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나이와 하는 일도 전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좋아요”라며 그는 웃음을 보였다.
아이와 함께 하는 레고는 더 사랑스러워~
그에게 레고는 자녀와의 친밀함을 쌓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는 아이들이 생기고 자라면서 아이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레고 제품군을 좋아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레고 시티’다. 도시를 구성하는 소방서, 경찰서, 공원 등을 만들 수 있다.
그는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레고로 설명한다. 아이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다. 한 번은 아파트를 함께 만들며 아파트에서는 왜 뛰면 안 되는지를 보여준 적도 있다. 또, 아이가 영국의 랜드마크인 런던아이를 보고 좋아해 함께 만들어 보기도 했다. 취미와 함께 육아를 병행한 셈이다. 그런 그의 자녀들도 당연히 레고를 매우 좋아한다고.
아이들과 함께 ‘이걸 만들어 볼까’, ‘이렇게 해 볼까’라며 고민하는 것은 분명 남들은 하지 못하는 좋은 교육법이다. 결국 레고는 그를 아이들의 눈높이를 이해하는 1등 아빠가 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레고, 만드는 자체가 즐거워~
인터뷰를 마치며 이정구 수석보에게 ‘레고’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물었다. 그는 약간의 생각 후에 “만드는 즐거움 그 자체죠”라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들은 레고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매일 레고만 잡고 있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레고를 수집하고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되파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우표가 편지에 붙어 제 기능을 할 때 가장 의미 있는 것처럼, 레고도 그 자체로 만들어질 때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레고 자체를 정말 사랑할 줄 아는 이정구 수석보. 그는 은퇴한 후에도 레고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자녀들이 다 크면 혼자서라도 레고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앞으로 또 어떤 레고 작품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질지 기대된다.
글 임지윤 사진 김예원
.출저: with영삼성 2015.01.27 No.826 _ 영삼성이 만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