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1031. 교회신문 > 제 641호 우리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기도독)
1997년 2월 7일생인 딸 예지가 세 살 무렵, 갑자기 아기가 몸을 비틀고 뒤로 넘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검사란 검사를 다해보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떤 의사의 권유로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귀에 대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양쪽 달팽이관이 없는 아이로 결과가 나오자 양가 집안은 원자폭탄을 맞은 것처럼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말았습니다.
IMF 위기에 저는 딸아이 수술비 마련을 위해 아시아나항공에 사표를 내고 렉카 사업에 뛰어들어, 밤낮 없이 고속도로를 오가며 먹고, 자고, 일하며 비좁은 렉카 차안에서 6~7년을 지냈습니다. 처음 생각과 달리 고난과 역경 속에서 술, 담배로 심신을 달래고, 생각지도 못한 사고들을 여러 건 당하게 되면서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던 중 고속도로 상에서 4중 충돌사고가 났는데, 사고처리 중에 가해자가 야반도주하여 천만 원이 넘는 손해를 보게 되고, 다쳐서 집에서 쉬는 중 꿈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중심교회 세 번 참석에 이단이란 것을 밝혀내려다가 부질없는 짓임을 알게 되고, 장성예루살렘기도원 봄 집회에 참석하자마자 성령이 임하여 눈물 콧물 다 흘리고 회개했습니다.
그 후 3일, 7일, 15일, 21일 금식을 통해 세상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내 안에 주님만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3문3답 식으로 계시가 세 번이나 왔고, 이초석 목사님, 이시대 목사님을 보필하면서, 군함과 에쿠스를 타고 동행하는 꿈을 꾸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온갖 핍박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자식 수술 안 시키고 가정과 자식 버리고 신학 갔다는 이야기가 제일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이 KT에서 청각장애인 인공 와우 무료수술지원(3,000만원)이 생기고, 의료보험법도 바뀌면서 그 많은 장애아들 중에 예지가 당첨되어 한쪽 귀를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생도대의 합심기도의 위력이었습니다.
예지는 초등학교 시절에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어느 날 학교행사가 있어서 가보니 다른 아이들은 반주에 맞추어서 노래도 참 잘하는데, 우리 딸의 입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목이 메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철부지 아이 둘을 품에 안고 사역한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때론 포기하고 싶을 극도의 한계에 부딪칠 때도 있었지요. 그래도 포기 안하고 달려왔습니다. 아내는 “집주고 차주고, 사례비 많이 주는 교회로 가라. 아니면 돈 벌어라. 왜 그렇게 사니?” 하며, 마치 욥의 아내처럼 말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저는 물러날 수도, 타협할 수도 없었습니다.
딸 예지는 질풍노도의 시기(사춘기)를 만나 가출을 밥 먹듯 하고, 그러면 저는 교구 일을 마치고 밤늦은 시각에 딸을 찾아서 안양이며, 부천지구대며 속을 태우며 찾아다녔고, 혹 나쁜 친구 만나 탈선이라도 하여 인생 망칠까봐 울며불며 주님께 매달린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예지(16살)가 말하더군요. “아빠! 이제는 다른 사람들 말소리가 잘 안 들려.” 비염으로 인해서 이제는 코로 냄새도 맡질 못한다는 겁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운 형편에도 눈물로 심은 자는 기쁨의 단을 거두리라는 것을 믿기에 더 좋은 것을 미래를 위해, 영원을 위해 믿음으로 더 많이 헌신하며 심었습니다.
2012년 봄, 기도원 집회를 두고 일주일전 꿈에 총회장 목사님께서 찾아오셨어요. “나랑 포도주 한잔할래?” 하시면서 잔을 하나 내미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권 전도사야 많이 힘들지? 외롭지? 사실 나도 그렇단다. 네 마음 나도 다 안다. 나도 그럴 적이 있었고, 나도 그렇게 살았어.” 라고 하시면서 힘내라며 저를 어루만져주셨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저와 대화를 나누시길 자청하시기에, 저는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밤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털어놓는데 목사님은 다 듣고 계셨습니다.
예전에는 믿음이 없어서 어린 예지를 수술시키면서까지 고생시켰는데, 이제는 성령님의 인도함 따라 믿음으로 고쳐보리라 작정하고 예지와 함께 5월 21일 기도원에 내려갔습니다. 여러 주의 종들과 동기들에게 합심기도를 부탁하고, 늘 하던 습관대로 첫날부터 산기도로 매달렸습니다. 배창자가 뒤틀릴 정도로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습니다.
새벽까지 기도하고 내려와 잠을 자는데 꿈에 제 기도독이 보입니다. 2/3정도 기도독이 찼는데 나머지 부분은 여러 사람이 지나가면서 주먹만 한 크기의 주먹밥을 통에 던져 넣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독이 아귀까지 꽉 채워지는 겁니다. 할렐루야! 오늘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참 희한한 꿈도 다 있다 했는데, 집회 마지막 날인 그날 밤, 이초석 목사님을 통하여 귀신이 떠나고 예수 이름 앞에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예지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달팽이관(소리전달)과 신경이 소멸되어 보청기 없이는 듣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비염도 치료되어 냄새도 잘 맞고 보청기의 도움 없이 듣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울증상도 사라지고, 얼굴도 밝아져 자신감이 넘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는 말씀이 저를 통해 이루어짐을 감사드립니다. 오직 주만 위해 더욱 애쓰고 힘쓰는 충성된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신림교구 권종성 전도사
***간증: 797. 교회신문 > 제 438호 세 번째 사는 인생,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가끔 성도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신학생 맞습니까?” “네, 신학생입니다.” “지금 몇이신데요?” 저는 웃으면서 “5학년 9반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 성도는 “아휴 졸업하시면 몇이고, 전도사 생활에, 목사 안수까지는 몇 살이네”하며 금방 계산도 잘합니다.
사람들은 제 나이에 관심이 많지만 저는 나이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우선 공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봉사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강단을 설치하는데 신학생 20여명이 2시간 이상을 단설치 작업을 해야 강단이 완성됩니다. 저는 이 단 설치 작업을 하면서 출애굽기에 광야에서 이동하며 성막설치 작업을 했을 모세를 연상하곤 합니다.
저는 우리 예루살렘 교단이 축복받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이초석 목사님을 24년 동안 변함없이 쓰시는지도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예배를 위하여 그 많은 정성과 수고와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감탄하지 않겠으며, 지구상에 이렇게 정성을 다해 단을 쌓는 교회가 또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일손이 부족한 이곳에 저를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앞뒤, 상하, 좌우, 어디를 봐도 제가 할 일이며,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 즐겁게 봉사하며 또한 자부심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강단에 천사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생각만 해도 기쁨과 은혜가 넘치고 또 넘칩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만큼 매도 많이 맞고서 정신을 차려보니 5학년 9반, 59세가 되었습니다.
2007년 11월초, 자동차 운행 중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시속 7, 80km로 달리던 차가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앞면을 땅에 처박고 다시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차 지붕이 땅에 떨어져 박히고, 네 바퀴는 하늘을 향해 서는 대형사고로 차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 지붕 안쪽에 제가 앉아 있었고, 차 바닥이 지붕이 되어 있습니다.
깨진 옆문으로 나와 차를 보니 차는 납작해져 휴지처럼 됐으나 저는 안경도 그대로 쓰고 있었고, 마치 차에서 살짝 내린 사람처럼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늘을 보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저를 어디에 쓰시려고 살려주셨습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때 구경꾼들이 몰려왔습니다. “이봐요? 시체는 꺼냈나요? 몇 사람이나 탔어요? 다 죽었겠네.” 하며 웅성거리는 구경꾼들 속에 끼여 저도 기웃거리며 구경했습니다.
1993년, 저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원서를 썼지만, 세상이 붙잡는 것들이 많아 순종하지 못하고 세상과 짝하며 살다 1995년, 또다시 35톤 중장비가 대파되는 대형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다친 곳 없이 무사했습니다. 나는 인생을 다시 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사업에 거듭 실패하면서 ‘올해는 좀 낫겠지.’ 했는데, 이 사고로 세 번째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한 대 맞았습니까? 한 대 더 맞기 전에 깨달으세요. 깨닫는 게 복입니다. 사고 후, 열흘이 됐을 때 꿈속에서 이초석 목사님이 체크남방 차림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장로님들 사이에 앉아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복이 너, 기도원에 들어가 일 좀 해라.” 저는 “세상에서 하는 일이 있어 기도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흘이 되었을 때, 다시 꿈을 꾸는데 녹음이 우거진 높은 산 위에 만 톤이 넘는 큰 무역선이 있고 그 배를 제가 샀다며 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열흘이 됐을 때 꿈을 꾸는데, 갈증으로 목이 타 들어가 죽을 지경인데 누런 흙탕물 속에서 생수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어느 집이 있어 문을 열어보니 그 건물은 화장실이었고, 인분이 넘쳐 흙탕물처럼 보였습니다. 그 물은 허리까지 찼습니다. 생수를 찾아 얼마를 헤맨 끝에 높은 평상 위에 수정 같은 생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배가 부르도록 생수를 마셨습니다.
저는 이 꿈을 해석받기 위해 2008년 1월 8일, 기도원에서 총회장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목사님은 저를 보자마나 “너한테서 목사 냄새가 난다.”고 하시며, 지금 박진수 학장이 와있으니 상담하고 원서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갑작스런 목사님의 말씀에 할 말을 못하다 “목사님 제가 지금 몇 살인데요. 쉰아홉입니다.” 했더니 “야, 71살 먹은 사람도 목회를 하고 있다. 너 여기까지 오는데 한 20년 걸렸지?” 하시는 거 아닙니까? 사실 저는 여기까지 오는데 광야길 같은 17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장정이 일주일이면 들어갈 가나안 땅을 40년 걸려 간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부족한 모습 이대로 주님께 저를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로 세 번째 사는 인생, 이 몸에 힘이 다하는 날까지 오직 주만 위해 살리라 결단하고 5학년 9반에 신학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의지를 놓은 신학생도의 마음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미력하나마 주님을 위하여, 부족하지만 예루살렘 교단과 교회를 위하여 이 한 목숨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할렐루야!
신학생 한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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