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1. 15
야구팬들에게는 ‘야구 관람’이 중요한 취미 가운데 하나다. 야구장을 찾아 ‘치맥(치킨과 맥주)’을 곁들이며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정작 직접 야구를 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취미는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 1년 열두 달 가운데 열 달은 단체생활을 해야 하고, 매일 야간경기를 치르느라 날 밝을 때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남들이 다 쉬는 주말에도 늘 야구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이다.
▲ 지난 2016년 야구인 골프대회에 나선 NC 포수 양의지. / 연합뉴스
늘 치열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감독과 코치, 선수들에게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과 시간이 필요하다. 비시즌 혹은 시즌 중 경기가 없는 날을 이용해 틈틈이 그들만의 여가를 즐긴다. 김태형 두산 감독처럼 휴식일마다 직접 키우는 대형견과 농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례도 있고, KIA 양현종처럼 집안에 따로 방까지 만들어 놓고 피규어를 열심히 수집하는 선수도 있다. 겨울을 맞은 야구인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대표적인 취미와 각 분야의 고수들을 모아봤다.
# 으뜸가는 취미는 단연 ‘골프’
골프는 가장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취미로 삼고 있는 운동이다. 겨울이면 KBO가 주최하는 ‘야구인 골프대회’가 열리고, 한 방송사는 매년 선수들과 해외에서 골프 경연을 벌이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정도다.
과거에 골프는 ‘비싼 운동’으로 여겨졌다. 커리어와 수입이 어느 정도 안정된 30대 이상 선수들의 골프 선호도가 높았다. 요즘에는 20대 중반의 젊은 선수들도 억대 연봉을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하나 둘 골프에 입문하고 있다.
LA 다저스 류현진과 KIA 윤석민은 한국에서 뛸 때부터 비시즌 때 골프를 치며 머리를 식혔고, 유명한 프로 골퍼들과 친분도 쌓았다. 이들은 야구뿐 아니라 골프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대표 출신인 한 투수는 “24시간 동안 야구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필드에 나가 자연 속에서 골프를 치는 게 능률과 집중력 면에서도 훨씬 도움이 된다”며 ‘골프 예찬론’을 펼쳤다.
감독들과 코치들 가운데서도 비시즌만 되면 골프에 푹 빠져 지내는 애호가들이 많다. 과거 한 구단은 시즌 후 코칭스태프 단합대회를 골프장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그 아이디어를 냈던 감독은 “12월 휴식기에 시간을 내 같이 모이는 게 서로 민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골프는 모두 좋아하기 때문에 코치들도 별다른 불만 없이 참석하곤 한다”며 “모여서 술만 마시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인 워크샵이 된다”고 귀띔했다.
매년 열리는 야구인 골프대회때면 감독들 사이에 은근히 장외 신경전이 펼쳐지는 것은 물론이다. 류중일 LG 감독은 “다시 태어나면 골프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을 만큼 골프를 좋아한다. 세미프로급 골프 실력을 자랑하는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아들을 야구가 아닌 골프 선수로 키웠다. KBO 리그 통산 최다승 투수인 송진우 한화 코치도 골프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한 전직 프로야구 감독은 “늘 마운드에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투수들에게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골프가 가장 좋은 취미”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다소 아찔한(?) 일화도 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LG 코치는 한때 장남 이정후에게 골프를 시키려 한 적이 있다. 한눈에 봐도 운동 신경이 좋은데, 야구가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망설인 것이다. 야구 외의 많은 스포츠 가운데 취미로 좋아하고 잘 치던 골프를 아들의 진로로 점찍었다. 하지만 이정후가 “골프는 하기 싫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그렇게 골프선수 대신 야구선수로 성장한 아들은 2017년 괴물 같은 활약을 펼치며 신인왕에 올랐고, 소속팀 키움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 2017 KBO 신인왕을 수상하는 넥센 히어로즈의 이정후 선수 / 일간스포츠
# 낚시와 당구도 고수가 많다
낚시는 골프 이전에 프로야구 선수들이 가장 좋아한 취미 가운데 하나다. 야구보다 낚시를 먼저 시작했다는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삼성에서 현역 선수로 뛰던 당시 ‘양태공’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 버스를 타고 대구 외곽의 저수지로 나가 낚시를 하다 밤이 돼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양준혁은 “야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낚시를 하고 오면 다음날 이상하게 공이 잘 보였다”면서 “월척을 낚았을 때의 손맛은 큰 홈런을 쳤을 때의 짜릿함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손민한 NC 코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웠고, 골프 클럽만큼 비싼 낚시 장비를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 낚시광 양준혁 “님만 빼고 다 낚아봤죠” / 스포츠동아
김선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한강에서 잉어를 잡으면서 낚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미국에서 뛸 때는 숙소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바다가 있었는데, 그 지역이 바로 세계 3대 낚시터 가운데 하나였다. “그 바다에서 상어 세 마리도 잡아봤다”며 “내가 낚은 최대어는 길이만 1m가 넘는 레드피시였는데, 40분 가까운 사투 끝에 포획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LG 김현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낚시를 다니며 취미도 즐기고 집중력도 키웠다. KBO 리그 최장수 외국인 투수였던 더스틴 니퍼트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낚시와 사냥 같은 애외에서 하는 활동을 주로 취미로 삼았다”며 “한국에 있다 미국에 돌아가면 낚시를 즐겼다”고 했다.
당구도 빼놓을 수 없다. 손으로 공을 던지고 배트를 잡는 야구선수들은 직업 특성상 손의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당구 역시 손을 섬세하게 사용해야 하는 스포츠라 고수가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레전드’는 김재박 전 LG 감독. 스스로는 700점을 친다고 주장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전성기 때는 1000점 정도는 됐을 것”이라고 증언한다. 앞서 언급한 이종범 코치 역시 선수 시절 500점을 놓고 게임을 했다. 과거 소속팀 관계자는 “내공이 깊고 승부욕이 남달라 팀내에서 적수가 없었다”고 귀띔했다. 김민호 KIA 코치도 한 방송사가 주최한 프로야구 코치·선수 당구대회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실력이 좋다. 불미스러운 일로 리그를 떠난 한 홈런왕 출신 선수는 무명 시절 당구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야구가 잘 안 풀릴 때 당구장 창업을 고민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외에도 많은 코치와 선수들이 학창시절부터 갈고 닦은 기량을 자랑한다. 이호준 NC 코치와 조성환 두산 코치는 수 년 전 이벤트 경기로 치러진 한 3쿠션 당구대회 결승에서 맞붙기도 했다.
특이한 점도 있다. 일부 선수들은 자신이 경기 때 주로 사용하는 손이 아닌, 반대쪽 손으로 당구를 친다. 자칫 어깨나 팔꿈치에 무리가 오거나 부상을 당해 경기에 지장을 줄까 염려해서다. 김시진 KBO 기술위원장과 이종범 코치가 ‘왼손 당구’로 고수의 자리까지 올라선 대표적 인물이다. 요즘은 공만 왼손으로 던지는 투수(좌투우타)나 타석에서만 왼쪽에 서는 타자(우투좌타)들이 늘어나 팔은 팔대로 관리하고 취미는 취미대로 즐기기에 더 좋다.
▲ 박용택은 2013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뛰어난 패션으로 화제를 모았다. / 사진제공=LG 트윈스
# 쇼핑이 취미가 된 시대
옷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시대다. 선수들이 헐렁한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야구장을 나서던 시대는 지났다. 물론 과도기도 거쳤다. 최근 몇 년간 야구선수들의 사복 ‘유니폼’은 미국 전지훈련 때 100명 중 99명이 구입한다는 A 브랜드 티셔츠와 커다란 스티치로 유명한 T 브랜드의 청바지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옷들은 자취를 감췄고, 각자의 개성을 살려 옷을 입는 선수들이 늘고 있다. “쇼핑이 취미”라고 말하는 선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고, 일부 선수는 해외 전지훈련 때 인근 쇼핑몰에서 좋아하는 브랜드 세일 기간을 미리 알아 놓았다가 귀국 전 알뜰하게 구입하기도 한다.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LG 박용택이다. 그의 패션센스는 전 구단 선수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옷 잘 입는 유부남 선수들은 대부분 아내를 잘 만나 환골탈태한 케이스가 많지만, 박용택은 오히려 멋쟁이 아내보다 더 섬세한 패션감각을 자랑한다. 연말 시상식에서 박용택을 만난 이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는 옷차림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는 스트라이프 패턴의 수트에 벨벳 소재의 단화를 신고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의상보다 신발에 모아졌는데, 그는 “영국 왕실에서 실내용으로 신는 살롱 슈즈다. 시상식장에 깔린 레드카펫을 고려해 특별히 신어봤다”고 말해 감탄을 자아냈다. 선수들이 주로 입는 검정색이나 회색 수트 대신 다양한 소재와 색상의 턱시도를 골라 입거나 아무나 소화하기 힘들다는 화려한 행커치프를 가장 먼저 시도한 사람도 박용택이다. 평소 가족 나들이를 할 때도 아내, 딸과 의상 콘셉트를 맞출 정도다. 그는 “격식 있는 자리에 참석할 때는 격식에 맞게 잘 차려 입는 게 예의인 것 같다. 팬들 앞에서 나설 때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별다른 취미가 없는 대신 패션 쪽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야구 관계자들은 “서울이 패션의 메카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지방 구단 선수들보다는 서울 구단 선수들이 더 옷을 잘 입고 패션에 관심도 많은 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예전부터 LG는 ‘패션 리더’들이 많은 구단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선수 전원이 패셔니스타”라는 우스개소리도 들렸고, “LG 라커룸에 가면 모 브랜드 신상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제보(?)한 선수도 있었다.
1994년 신인왕에 오른 김재현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그 ‘계보’의 선봉에 선 인물이다. 배우 뺨치는 외모에 깔끔한 패션감각까지 더해 여성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서울팀 두산에서 오래 뛰었던 홍성흔 역시 모델 출신인 아내의 내조 덕에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스타일로 각광받았다. 과거 한 시상식에서는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여우털 목도리를 수트 위에 두르고 나타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두산에서 뛰다 롯데로 이적하던 입단식에도 계약 기념으로 새로 맞춘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이 외에도 LG 출신인 KT 이대형과 두산 오재원, 배우 출신 아내와 결혼한 한화 이용규 등이 옷을 잘 입는 선수로 꼽힌다. 이숭용 KT 단장은 현역 시절 깔끔한 마스크와 트레이드마크였던 귀고리로 인기를 끌었다.
각 팀 사령탑들 가운데선 단연 염경엽 SK 감독이 으뜸이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염 감독은 늘 “어릴 때부터 옷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쇼핑을 하다 보면 다른 생각이 안 난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헤어스타일부터 신발은 물론, 머플러와 안경을 비롯한 액세서리까지 섬세하게 신경 써서 매일의 ‘착장’을 결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외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입국할 때 ‘공항 패션’까지 화제가 되는 사령탑은 오직 염 감독밖에 없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39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