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08
각 팀들의 스프링캠프가 마무리 되고 있다. 이제 3월 12일 부터는 시범경기가 시작된다. 추위로 인해 초반엔 힘들었던 스프링캠프를 지나 언제 그랬냐 싶은 따뜻한 날씨가 야구에 찾아왔다. 물론 가끔 심술궂은 변덕도 부리겠지만, 이제 2022년의 야구가 다시 시작된다.
연습경기에 대한 소식을 들으면 새로운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시범경기도 아마 그럴 것 같다. 많은 야구팬들도 잘 아시겠지만, 새로운 이름이 많이 불릴 수 밖에 없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다.
베테랑은 컨디션 조절, 신인은 120%!
시범경기를 치르면 어린 선수들의 긴장도는 더 올라간다. 해도 따뜻하고, 바람이 살랑이는 봄이 건만, 신인들은 스스로 한국시리즈를 치른다. 그러니 좋은 숫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갖고 있는 기량의 120%를 한다.
최근 들어 스프링캠프에 신인 선수들을 데려가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얘기가 많다. 동의한다. 아무래도 신인은 무리할 수 밖에 없고, 특히나 유망한 선수라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한 마디 씩 해주게 된다. 아직 10대인 선수들이 그 수 많은 말을 다 걸러내고 좋은 것만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 사진 - 한화이글스 제공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섬에 꽁꽁 숨겨둘 수도 없는 일이다. 기회가 왔는데, 기회를 주는데, 언제 올지 모르는 순간을 위해 여력을 남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름을 알리는 것,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 신인에게 그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무리라는 생각보다는 '최선'을 다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반면 자리를 어느 정도 보장받은 선수들에게 시범경기란 컨디션 조절이다. 한 시즌을 충실히 보내기 위해 감을 조절하는 것이다.
2006년의 기억과 테스트
2006년. 2군행 통보를 받았다. 밀어치는 타격을 강조하던 시기였는데, 당겨치는 타격을 버릴 수 없었다.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잘 안됐다. 그때 생각했던 것은, 숫자였다. '2군에서 숫자를 남기면 불러주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희망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숫자를 남기기도 전에 개막 3~4일을 남기고 올라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시범경기 롯데전, 3타수 3안타를 쳤다. 기억엔 밀어치고, 당겨치고, 중앙으로도 공을 보냈던 것 같다. 경기가 끝나고 조범현 감독님께서 따로 부르셨다. "니 마음대로 쳐도 괜찮다"라는 말을 해주셨다.
감독님이 경기만 보고 결정을 내리신 건 아니었을 것 같다. 전력분석에서도 '정근우는 당겨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들었다.
그 때 생각했던 것은, 잘 해도 내가 잘하는 거고, 못 해도 내가 못하는 거니까 내 마음대로 한 번, 후회 없이 해보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들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팀에서 뽑은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부딪쳐 본 후에 뭔가를 바꿔도 늦지 않다는 거다.
테스트는 필요하다. 괜찮다고 생각이 되면, 갖고 있는 것을 더 잘 할 수 있게 한 동안은 그냥 두는 것이 선수의 발전을 위해서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선수도 안 풀리면, 도움을 청한다. 그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시범경기는 선수만 테스트를 받는 자리가 아니다. 코칭스태프도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기다려주는 연습을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새로움과 낯섬의 공존
▲ 킹험은 경험치가 있는 선수지만, 리그에 첫 데뷔하는 외국인 선수에게 시범경기란 또 하나의 도전이다 / 사진 - 한화이글스 제공
시범경기는 새로움과 낯선 것들이 모두 모이는 큰 그릇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채 다듬어지지 않은 것을 최종 테스트 해보는 리허설 같다.
베테랑들은 상대 투수가 외국인 선수일 때 눈이 반짝인다. 나가지 않는 날이어도, 코칭스태프에게 양해를 구해서 꼭 출전하고 싶다는 얘기를 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규 시즌에서 상대하려면, 한 타석이라도 최대한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범경기에서는 천천히 끌어올리고, 정규 시즌에 최선을 다 해서 전력 노출을 꺼린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렵다. 신인들처럼 외국인 선수들도 첫 무대다. 경험이 많아도, 리그가 바뀌었다. 시범경기를 대충 한다? 오래 머물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록 시범경기라고 하지만, 외국인 선수도 뭔가를 보여줘야만 한다. 그리고 기 싸움이다. 그 선수들 입장에서도 지금 꺾어놔야 나중이 편할 거다. 그래서 베테랑과 외국인 선수와의 대결은 시범경기에서 의외로 불꽃튀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 2022시즌 KBO리그의 가장 큰 변화는 스트라이트존 확대다 / 사진 - KBO 제공
시범경기의 또 하나의 테스트는 바뀐 규칙이다. 2022년에는 스트라이크존이 화제가 될 거다. 그렇지만, 올 해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매 해 시범경기는 많은 테스트를 한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반발심이 생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그건 스프링캠프까지 생각할 수 있는 불만이다.
시즌이 시작되면, 결과는 나온다. 누군가는 적응하지 못해서 나쁜 결과를 받을 거고, 누군가는 좋은 결과를 받을 거다. 숫자는 냉정하다. 반발심 따위는 털어내야 한다.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로 생각을 바꾸는 시기가 지금이다.
재미로 본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의 차이
수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신인들에게 다른 단 한 가지를 얘기한다면 전광판의 유무다. 국내에서 캠프를 하고 있는 요즘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연습경기는 전광판이 없거나, 있어도 굳이 켜지 않는다. 그러다 시범경기가 시작하면, 전광판에 불이 들어온다.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자신이 타격을 하고, 투구를 하고, 수비를 한 결과가 큰 전광판에 찍혀 나온다. 못한다면 기분은 크게 침체 되겠지만, 잘했을 경우, 타율 4할! 이런 숫자가 보인다면, 사기는 크게 올라간다. 누군가에게 말 하진 않아도, 분명 마음 깊은 곳의 뿌듯함이 생겨난다.
우리는 흔히 ''기세가 좋은 팀은 못 막는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선수도 그렇다. 한 껏 사기가 오른 선수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신인은 그 기간이 짧을 뿐이다. 그 이유는 상황에 대한 대처가 안돼서다. 그런 상황에 대한 대처를 조금이나마 맛 볼 수 있는 시기가 시범경기다.
모든 것이 낯설다.
라커룸도 더그아웃도 그라운드도 심지어 출근길도 낯설다. 아마추어의 상징과도 같은 짧은 머리가 채 길어지지 않은 시점. 그것이 시범경기다.
정근우 / 전 프로야구 선수, 현 최강야구 멤버
자료출처 : 네이버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