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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아직도 뛰냐? --
권여선 작가가 쓴 책 『오늘 뭐 먹지?』는 나처럼 술 좋아하고 먹는 것 좋아하는 사람 기호에 딱 맞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읽는 내내 맛있는 술안주하고 술 이야기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게 된다. 권 작가는 주당임에 틀림없다.
권 작가가 2016년에 쓴 『안녕 주정뱅이』 가 발표되었을 때 작가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책 제목만 봐도 술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다. 술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권 작가의 명성에 맞는 책이 탄생했다고 동료 작가들은 평가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술 이야기, 음식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즐겨 읽는 편이다. 비록 내가 직접 맛보는 음식과 술은 아니라 하더라도 입맛을 쩍쩍 다셔가며 대리만족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제주 올레길을 만들고 많은 책을 쓴 서명숙 작가가 쓴 『식탐』이라는 책에 푹 빠져들기도 했다. 『식탐』을 펼쳐든 순간 이 책은 나를 위해 탄생한 책이라 여기며 흥분하기까지 했다. 『식탐』 속에는 나의 침샘을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고 있다.
공선옥 작가의 글에도 음식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전남 곡성이 고향인 공선옥 작가는 유년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겪었고 가난한 청년을 만나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선옥 작가가 어려서부터 가난을 경험해서인지 공선옥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인 데다가 잔잔한 슬픔이 배어 있어서 나는 공선옥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는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경험이 공선옥 작가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선옥 작가의 책은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옆에 끼고 수시로 꺼내 읽고 있다. 이 책은 명작이라고 나는 평가한다.
공선옥 작가가 몇 해 전 전남 담양의 시골로 들어가 집 짓고 정착해 살고 있다고 하던데, 공선옥 작가에게 실례가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공선옥 작가가 담양 시골장터 한켠에서 막걸리집을 운영하면 어떨까 한다. 공선옥 작가는 전라도 여인인 데다가 자신의 저서에 음식 이야기도 많이 썼으니 음식 솜씨는 검증이 됐다고 봐야 한다. 번잡한 식당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막걸리에 몇 가지 안주 정도만 내서 파는, 시골 인심 풍겨나고 정이 넘쳐나는 조그만 막걸리집을 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이다. 말 나온 김에 내가 아예 가게 상호까지 정해주려고 한다. ‘공작가네집’ 또는 ‘선옥이네집’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공선옥 작가가 담양에서 막걸리집을 한다는 소문이 쫙 퍼지면 그 집은 동네 주민들뿐 아니라 전국의 작가들,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독자들의 ‘막걸리 순례코스’가 될 것이고 나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담양으로 막걸리 순례를 떠날 것이다. 막걸리 안주로는 홍어찜.홍어회.홍어찌개.홍탁삼합.돼지머리.돼지껍데기.가오리찜.갈치조림 등이 좋겠고, 여기에 제철나물 한두 가지만 첨가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책 써서 버는 것보다 막걸리 팔아 버는 돈이 훨씬 많을 것이다. 저녁에는 막걸리 팔고 낮에는 책도 읽고 글도 쓴다면 공 작가의 일상은 예전보다 훨씬 다이나믹하게 흘러갈 것이다. 장사가 잘 되면 동네에서 착실한 아주머니 한 분 알바로 쓰면 될 일이다. 막걸리집을 운영하다보면 수많은 글감도 생겨날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권여선 작가가 『안녕 주정뱅이』를 발표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동료 작가들이 환호했다는데, 마라톤계에서도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칠마회(칠순마라톤동호회) 어르신들이 칠마회 창립 15주년을 맞이하여 회원들의 마라톤 이야기를 모아 『너, 아직도 뛰냐?』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칠마회는 칠순마라톤동호회이긴 하지만, 팔순의 어르신들까지 아우르는 동호회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따진다면 80대 어르신들은 독자적으로 팔마회라 칭해야 할 것인데, 70대.80대 노장 마라토너들이 현재 전국적으로 40명에 조금 못 미치는 형편이다보니 전부를 합쳐 칠마회로 통칭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여성 회원은 65세부터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칠마회 회원들은 대부분 마라톤 풀코스를 수백 회를 완주했고, 더러는 1천 회를 완주한 분들도 계시다. 참고로 금년 나이 60이 되는 나는 풀코스를 겨우 40회가량 완주했다.
70대.80대에도 씩씩하게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나처럼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은 엄청난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집안에 아버지가 존재하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식들에게 큰 힘이 되듯 마라톤에서도 아버지뻘 되시는 어르신들이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식뻘 되는 우리들은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럼 책 『너, 아직도 뛰냐?』에 소개된 회원들의 마라톤 이야기를 간추려서 소개하겠다.
손유현 회원은 38년생으로서 57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300회 넘게 완주했다.
내년 춘마(춘천마라톤)에서 금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칠마회 가입이 인생 최대의 영광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공준식 회원은 1938년생으로서 61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915회 넘게 완주했다.
그에게 마라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들의 죽음을 잊게 해주고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건강을 지켜주는 ‘친구’라고 한다.
장재연 회원은 1939년생으로서 66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755회 넘게 완주했다.
장재연 회원은 마라톤을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혈액순환이 잘 되고, 혈관이 젊어지고, 다리.허리 노화가 예방되고, 각종 암을 예방하고, 심장 기능이 향상되고, 변비가 해소되고, 당뇨가 예방되고, 뇌의 노화가 방지되고, 우울증에 좋고, 배설 능력이 좋아지고, 노년 골다공증이 예방되고, 정신적 육체적 기능이 향상되는 등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한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김진환 회원은 1937년생으로서 나의 부친과 동갑이신데, 66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426회 넘게 완주했다. 김진환 회원은 마라톤 뛰면서 나하고 여러 번 인사도 나눈 바 있다.
내가 주로에서 어르신과 마주치면 “제 부친과 연세가 같으신 어르신!”이라고 인사하곤 했는데, 언젠가 내가 “제 부친과 연세가 같으신 어르신“이라고 인사하니까 어르신이 “어허, 그 얘기 열두 번도 더 하시네”라고 화답하시며 허허 웃으셨다.
또 한번은 내가 “어르신, 제 부친께서 저를 마라톤한다고 미친 놈 취급합니다. 하고많은 운동 중에서 왜 하필 마라톤이냐, 마라톤 하는 놈들은 죄다 정상이 아니다,라고 저를 비난합니다”라고 일러바치니 김진환 어르신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어허, 안 되겄네. 내가 자네 부친을 만나서 얘기를 한번 해주던가 해야겄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이철로 회원은 1941년생으로서 64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95회 이상 완주했다.
젊어서 테니스로 몸을 단련했고 등산도 열심히 하며 체력을 자랑했는데 어느 날 운동장에서 트랙을 빠르게 달리던 두 명의 아줌마들을 따라가다 두 바퀴도 못 가서 퍼지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그 뒤로 마라톤에 입문했다고 한다.
김동호 회원은 1941년생으로서 62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636회 완주했다. 운동은 항상 웃으며 욕심을 버리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무언 회원은 1941년생으로서 61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633회 넘게 풀코스를 완주했다.
러시아 바이칼 호수 마라톤 대회 참가 후기를 생생하게 올렸다.
정진원 회원은 1944년생으로서 60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547회 넘게 완주했다.
마라톤을 하면서 좋은 분들을 만나 지금껏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보니 살아가는 데 자신감이 생겼고, 매사에 능동적으로 접근해 주인의식을 갖고 즐겁게 일을 하다보니 업무의 효율성이 올라갔고, 남들이 기피하는 일도 마다않고 자신있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래서 마라톤은 위대한 것이다.
김용석 회원은 1944년생으로서 55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080회 넘게 완주했다.
다니던 회사가 IMF로 존폐 위기를 맞으면서 회사를 다시 살리자는 운동이 벌어져 “다시 뛰자”는 슬로건 하에 마라톤 참가를 대대적으로 하게 되었고 모든 직원들이 함께 뛰면서 회사 살리기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마라톤이 개인도 살리고 회사도 살린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라톤은 이렇게 위대한 힘이 있다.
이재승 회원은 1944년생으로서 57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361회 이상 달렸다.
젊은 시절에는 산행이 최고인 줄 알고 국내외 명산을 찾아다니는 재미로 살았는데, 지금은 마라톤에 풍덩 빠져 살고 있다고 한다. 마라톤의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고 나면 산행도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산행 잘하는 사람들이나 수영 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산행 실력(체력)이나 수영 실력(체력)을 은근히 자랑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단언컨대, 진정한 체력은 달리기가 말해주는 것이다. 산행 아무리 잘해도, 수영 아무리 잘해도, 당장 달려보라고 하면 1~2km도 못 가서 뻗을 것이다.
정유희 회원은 1939년생으로서 66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389회 이상 완주했다.
5년 전 참가한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연대별(80대) 시상에서 1위에 입상했다고 한다.
김관식 회원은 1945년생으로서 61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83회 이상 완주했다.
인생 황혼에 노인대학이나 드나들 나이에 칠마회에서 회원들과 형제자매와 같은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고 한다.
전용구 회원은 1946년생으로서 55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084회 넘게 달렸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전국의 달림이들과 사귀면서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청년,중년들에게 꼭 필요한 운동으로 마라톤을 추천하고 싶다고 한다.
이우찬 회원은 1946년생으로서 54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516회 이상 완주했다. 2018년 아테네 마라톤 대회에 다녀와 생생한 후기를 올렸다. 연습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운섭 회원은 1947년생으로서 60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613회 이상 달렸다.
더 나이 들어 풀코스를 뛸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지면 그때는 마라톤으로 단련된 기본 체력과 지구력으로 마지막 운동을 수영으로 전환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 어르신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즉, 수영할 체력이 남아 있으면 충분히 마라톤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남수 회원은 1947년생으로서 58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604회 이상 달렸다. 칠마회 회원 중 최고기록 보유자인데, 천천히 즐기며 달리지 않고 입상 욕심에 몸이 많이 망가진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최명남 회원은 1946년생으로서 69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52회 이상 달렸다.
이범재 회원은 1946년생으로서 58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55회 이상 완주했다.
2012년 과천 혹서기 마라톤 대회 경험을 썼는데, 나도 2012년 이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으니 분명 나하고 이 어르신은 주로 어디선가 마주쳤을 것이다.
박종무 회원은 1947년생으로서 61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317회 이상 달렸다. 2009년 대구 국제마라톤에 참가했는데 레이스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해 포기할 지경이었는데 하필 그때 단체팀(40명)으로 참가했기 때문에 자신이 부상으로 레이스를 포기하면 단체팀 상금 100만 원이 날아갈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끝까지 달려 완주는 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부상이 심해져 오래 고생했다고 한다.
정진우 회원은 1948년생으로서 53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77회 이상 달렸다. 2019년 3월 동아국제마라톤 대회 참가 후기를 생생하게 올렸다.
정태환 회원은 1941년생으로서 71세의 늦은 나이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63회 이상 완주했다. 매주 한 번씩 ‘신도림 공원사랑마라톤’에서 칠마회 회원들을 만나 같이 달리면 속이 후련하고 스트레스도 확 날아간다고 한다.
이익재 회원은 1944년생으로서 61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307회 이상 완주했다. 50대 중반 종합건강검사에서 심각한 결과가 나왔지만 마라톤으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마라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저승길 기로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희석 회원은 1949년생으로 52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67회 이상 달렸다. 매일 아침 5시에 탄천을 달린다고 한다. 마라톤을 하면 몸 전체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고 땀을 많이 흘림으로서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결과적으로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다.
김유봉 회원은 1946년생으로서 69세에 마라톤 입문하여 첫 풀코스는 71세에 도전했다. 지금까지 풀코스를 23회 이상 완주했다. 위암 수술도 했지만 마라톤으로 이겨냈다고 한다.
2021년 6월 6일 현충일에 언택트 대회로 혼자 풀코스를 달렸는데, 이날이 사랑하는 큰딸의 49번째 생일이었다고 한다. 큰딸은 2년 전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올해도 큰딸 생일에 달릴 것이라고 한다. 딸을 추모하며 달리는 아빠라고 할 수 있겠다. 달리면 슬픔이 정화되고 건강도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이래서 마라톤은 위대한 것이다. 나도 훗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부모님 기일에는 하프코스라도 달리면서 부모님을 추모하려고 한다.
이홍근 회원은 1949년생으로서 51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610회 이상 달렸다고 한다. 원래는 지병인 당뇨 합병증이 심해서 건강이 매우 안 좋았다고 한다. 마라톤이 아니었으면 벌써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라고 한다. 살기 위해 뛴다고 한다.
이태현 회원은 1950년생으로서 63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428회 넘게 달렸다. 여러 난관과 부상을 극복하고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정금순(여성) 회원은 1954년생으로서 54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22회 이상 달렸다. 산행의 즐거움에 빠져 살다가 어느날 남편 따라 마라톤에 입문했다. 처음 마라톤을 뛰는데 뛸 만했고 그 뒤로 마라톤에 풍덩 빠졌다고 한다.
평소 산행.수영.라이딩 등의 운동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은 기초체력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마라톤에 적응할 수 있다고 본다.
양회만 회원은 1949년생으로 54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65회 이상 달렸다. 마라톤을 뛸 때마다 자신감과 희열을 느끼며 동시에 자존감도 증가하고 또 무슨 일을 당했을 때도 그 어려운 마라톤 풀코스도 뛰었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하는 용기가 생긴다고 한다.
나이 일흔이 넘은 2019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2022년에는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용기는 마라톤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라톤은 이렇듯 위대한 것이다.
김은기 회원은 1951년생으로서 53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052 이상 완주했다.
9일 동안 풀코스를 무려 12회를 완주하는 등 엄청나게 무리를 하는 바람에 결국 무릎 연골 부상을 당해서 재활 치료 중에 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풀코스 레이스 도우미를 328회 했을 정도로 봉사정신이 투철한 분이시다.
손문희(여성) 회원은 1958년생으로서 50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04회 이상 완주했다. 심장병.고혈압.당뇨를 앓았는데 건강해지려교 산행을 했지만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아서 지인의 권유로 마라톤에 입문했다고 한다. 마라톤을 하면서 당뇨약만 최소치로 약하게 복용할 정도로 건강이 좋아졌고 생활에 활력을 되찾으면서 삶의 질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것이 마라톤을 한 것이라고 지인들에게 말한다고 한다.
김병곤 회원은 1946년생으로서 59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63회 이상 달렸다. 무거운 볼트 상자를 옮기다 허리를 다쳤는데, 5년간 수영과 등산으로도 못 고친 허리를 달리기 하면서 고쳤다고 한다.
운동도 부지런하고 힘이 있어야 할 수 있고, 또한 잘 먹고 부상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본인은 과격하고 급한 성격 탓에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대회에 출전하면 연대별 입상에 눈이 멀어 발톱은 항상 죽어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마라톤을 뛰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배종근 회원은 1950년생으로서 51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05회 이상 달렸다. 마라톤의 긴 코스를 뛰다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없이 찾아오듯 우리네 인생도 길고 긴 여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런 과정 중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쉽게 타협하기보다는 강한 의지로 극한 상황을 이겨내야 완주의 진정한 성취감을 얻는다는 점에서 마라톤이나 인생살이가 닮았다고 강조한다.
이완섭 회원은 1952년생으로서 47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40회 넘게 완주했다. 중.고등학교 6년간 매일 20km나 되는 통학거리를 달린 것이 체력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첫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한 1999년 10월 춘마에서 춘천댐(28km) 지나서 갑자기 체력이 뚝 떨어지고 배는 고파오고 30km 지점에서 바나나 12개로 겨우 배고픔을 해결하는 등의 악전고투 끝에 4시간 15분의 기록으로 완주하고 감격하여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최고기록은 3시간 1분 6초로서 칠마회원 중 가장 빠른 주자라고 한다.
김용구 회원은 1953년생으로서 51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1,000회 넘게 달렸다. 2014년 11월 YTN 손기정평화마라톤에서 풀코스 500회를 달성하고 YTN에 특집으로 보도가 되는 바람에 많은 지인들로부터 엄청난 축하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육용국 회원은 1953년생으로서 56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00회 넘게 달렸다. 한때 사업을 크게 벌이기도 했고 부도를 맞기도 했는데, 마라톤 인생 후반부의 멋진 대반전은 늘 고락을 함께하며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는 칠마회 회원들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고 있다.
김관행 회원은 1953년생으로서 50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270회 이상 완주했다. 세상살이 힘들고 어려운 고비에 직면할 때마다 마라톤 첫 풀코스를 힘들게 극복하면서 완주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역경을 극복하고 헤쳐나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라톤은 자신의 삶 그 자체이자 등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보약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힘들면 피똥 산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첫 풀코스 뛴 다음 날 대변에서 새까만 피똥이 나왔다고 한다. 나도 2015년 3월 서울 동아마라톤 풀코스 뛰고 피똥 싼 적이 있다.
신정묵 회원은 1950년생으로서 55세에 마라톤에 입문하여 풀코스를 400회 이상 완주했다.
마라톤을 하는 가운데서도 헌혈을 생활화함으로써 이웃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상 칠마회 전체 회원들의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했다. 놀랍게도, 회원들이 마라톤에 뛰어든 것은 대부분 나이 60이 넘어서였다. 이처럼 마라톤은 나이 들어서도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나는 일찍이 설파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원들이 풀코스를 수백 회씩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생업에서 은퇴하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보니 마라톤 대회장으로 ‘출근’한다는 마음으로 마라톤을 즐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칠마회원들도 나이가 80대 중반이 되면 풀코스를 달리는 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마라톤이 꼭 풀코스를 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프코스 달리면 어떻고 10km만 달리면 또 어떤가. 나이 들어 풀코스 달리는 것이 힘들어졌다면 하프코스 또는 10km를 달리면서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너, 아직도 뛰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인들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곧바로 몇 권을 구매했다.
B라는 직원이 몇 달 전 다른 교도소에서 근무하다 이곳 진주교도소로 전출왔는데, 얼마 전 B가 불쑥 나를 찾아와 내가 쓴 책 『마라토너와 사형수』를 잘 읽었다고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의아해서 “어떻게 그 책을 읽게 되었느냐?”고 묻자 진주교도소에 와보니 사무실에 내가 쓴 책이 굴러다니길래 아주 흥미있게 읽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B는 건강이 안 좋다고 했다. 고지혈증에다가 당뇨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얼핏 보기에도 B의 건강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몇 년 전 트랙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무릎이 아파서 달리기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달리기를 잊고 살았는데, 여기 와서 내가 쓴 책을 읽고 나서 자극을 받아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랑 첫인사를 나눈 뒤부터 B는 나를 볼 때마다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마라톤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서 나를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마라토너와 사형수에』서 인용한 책들을 전부 쪽지에 적어와서 나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내가 교주가 된 듯한 기분이다. 우리 사이가 교주.신도가 된 듯하다. 내가 비록 무명 작가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도 이런 열혈 독자가 생긴 것이다.
나는 『너, 아직도 뛰냐?』 한 권을 나의 신도라고 할 수 있는 B에게 선물하고 말았다. 신도 관리하려면 이렇게 비용도 드는 것이다. 앞으로 B하고 나는 가끔 달리기도 같이 하기로 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는 금년 12월까지만 출근하고 직장생활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이제 나이 찼다고 직장에서 밀려나 길거리로 내몰리게 생겼다. 물론 내년 12월이 내 정년이니까 1년 더 출근할 수는 있겠으나 나는 금년 12월까지만 출근하고 한 많은 유배생활 청산하고 짐 싸서 고향으로 가서 내년 1년은 출근 않고 월급만 타먹으며 사회 적응 훈련을 하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연로하신 고향의 부모님께 내가 직접 밥도 해드리고 병원도 모시고 다니고 보살펴드려야 한다. 노인이 된 자식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봉양하는 이른바 ‘노-노 케어’가 나에게 닥친 현실이다. 나의 부친은 나의 모친이 해주시는 밥이 예전같지 않고 맛이 없다고 불만이시다.
모친께서 나이 들어 기력도 많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많이 떨어지다보니 요리를 예전처럼 솜씨있게 못 하시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데도 나의 부친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식사 때마다 모친을 타박하고, 모친은 음식 투정을 부리는 부친에게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두 분은 늘 찌그락 짜그락 다투신다. 내가 고향 가서 찌그락 짜그락 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내가 다행히 유배기간 중 요리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부친 입맛에 맞게 밥을 해드릴 수 있다. 물론 나의 아내가 효부이긴 하지만, 나의 아내는 돈 벌러 다니느라 바쁘시다.
내가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 마라톤을 한 것이라면 두 번째로 잘한 선택은 요리를 배운 것이다. 내가 생업에서 은퇴하고도 아내 눈치 안 보고 내 맘껏 요리를 해먹을 수가 있고 부모님께 밥도 해드릴 수가 있고 맛있는 술안주도 언제든 해먹을 수가 있으니 요리를 배운 것은 참으로 나에게 신의 한수가 되었다.
내가 쓴 책을 읽고 열심히 달리던 B가 며칠 전 곤혹스런 얼굴로 내게 말했다. 다리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장경인대염이었다. 당장 한의원 가서 치료 받고 당분간 달리기는 쉬고 걷기만 하라고 충고했다. 내가 마라톤 하면서 수없이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에 다리 부상에 관해서는 웬만한 돌팔이의사보다는 낫다고 자부한다. B는 부상 안 당하려고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살살 달렸는데도 부상을 당했다고 탄식했는데, 달리다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부상은 필연적인 거라고, 마라토너에게 부상은 숙명과 같은 것이라고, 부상을 이겨내고 달리면서 진정한 마라토너가 되는 것이라고 나는 B에게 말해주었다. B는 “이렇게 마라톤이 재미있는 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라고 말한다.
내가 좀 더 오래 B하고 같이 근무할 수 있다면 B를 나의 뒤를 잇는 ‘위대한 마라토너’로 만들 수 있었는데, 너무 늦게 B를 만난 것이 아쉽다.
내가 언젠가 언급한, 충남 강경 사는 유명한 마라토너인 H형에게 전화를 해서 “『너, 아직도 뛰냐?』를 몇 권 사서 지인들에게 뿌리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니 H형이 『나 돈 없어. 내게 한 권 보내줘봐』라고 쌀쌀맞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견실한 중견기업의 고위 임원씩이나 하면서 1억 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 H형이 책 한 권 살 돈이 없다고 죽는 소리를 하길래 할 수 없이 H형에게도 한 권 보내주고 말았다. 사실 H형과 나는 일종의 갑을 관계라고 볼 수 있다. H형이 사회적 지위도 나보다 낫고, 마라톤 경력도 나보다 훨씬 낫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런저런 아쉰 소리를 H형에게 해야 하는 처지라서 H형이 갑이고 내가 을인 셈이다.
2018년에 92세 되는 마라토너 김인자 할머니가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충남 아산에 사는 김인자 할머니는 1926년생으로서, 1979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서 조깅하는 모습에 반해 1987년 62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나의 저서 『마라토너와 사형수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을 언급한 적이 있다.
김인자 할머니는 매일 새벽 한 시간 달리기를 한다고 하는데, 90이 넘은 나이에도 전국의 마라톤 대회를 찾아다니며 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할머니는 10km를 뛰는데 86세에는 딱 한 번 하프코스도 정복했다고 한다. 김인자 할머니는 “하루라도 안 뛰면 몸이 근질근질하고, 뛰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라고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김인자 할머니가 대신 해주고 있다.
할머니는 몸만 건강하신 게 아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내고 있고 젊은이들과의 독서토론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인자 할머니의 방송 인터뷰 마지막 멘트가 내 가슴을 때린다. “뛰다가 죽으면 내 인생으로는 최고라고 생각해요. 뛸 수 있을 때까지는 달리려고 해요”
김인자 할머니의 무운을 빈다. 그렇지만 이준석의 무운을 빌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칠마회 어르신들보다, 김인자 할머니보다 더 위대한 마라토너를 소개하려고 한다. 칠마회 어르신들하고 김인자 할머니는 내가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마라토너에게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 것이다. 파우자 싱이라는 세계 최고령 마라토너 이야기이다.
인도 태생인 싱 할아버지는 1911년생으로서 할머니와 사별하고 아들을 따라 1960년 영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싱 할아버지는 89세 되던 2000년에 우연히 영국 젊은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달리기를 시작하여 그해 런던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여 6시간 54분의 기록으로 완주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100세가 되던 2011년에는 토론토 마라톤에서 8시간 11분의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하여 세계 마라톤 사상 풀코스를 완주한 첫 100세 인간이라는 위대한 명성을 남겼다고 한다.
103세가 되던 2013년에는 홍콩 마라톤에서 10km를 완주하고 마라톤 은퇴를 했다고 한다.
이러니 내가 우리 칠마회 어르신들하고 김인자 할머니는 싱 할아버지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겠다는 말씀이다.
누가 나에게 “당신, 아직도 뛰고 있소? 대체 언제까지 뛸 참이오?”라고 묻는다면 나는 “나는 말이오, 칠마회 어르신들을 넘어 김인자 할머니, 싱 할아버지처럼 오래오래 달리고 싶소”라고 대답해주려고 한다.
2022년 10월 남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