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의 ‘과학관리의 아버지’라 불렸던 로모노쏘브는 가난한 어부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운 생활 형편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명성을 얻은 뒤에도 계속해서 근검절약하는 생활 습관을 유지하며 옷차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학문연구에만 몰두했다. 어느 날 옷차림만 신경 쓰고 학문에는 전혀 힘쓰지 않으면서 잘난 척하는 자가 로모노쏘브의 옷소매에 뚫린 구멍을 가리키며 비웃듯이 말했다.
“이를 통해 당신이 박식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소? 선생.”
로모노쏘브는 상대의 말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아니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 통해 선생의 우둔함을 볼 수 있지요”
위의 두 사람의 사용한 방법은 ‘상대방의 방법으로 상대방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흔히 일반적으로 사람을 대함에는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서로 신뢰감이 형성되어 존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무가내인 사람, 비열한 사람에게는 상대의 방법으로 되돌려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진실에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끼리는 마치 두 개의 젓가락이 힘을 합쳐 밥을 뜨고 반찬을 집듯이, 숯불이 마주쳐 영농한 불꽃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필요에 의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경우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쌀 한 가마니를 주면, 나 역시 상대에게 쌀 한가마니 이상을 갚는 도리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교활하게 대하면 상대의 방법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 하겠다. 즉 상대방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다스리는 형태는 비열한 사람을 징벌하는 방법이라 보면 된다. 그렇지 않는다면, 상대는 지금까지 사용해 온 방식으로 누구에게나 이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열한 자에게는 상대의 방법으로 되돌려 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