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정동 31번지로 공장이 들어서 자취를 볼 수 없다. 1964년 9월 장규환이 밭을 갈다 유물이 나와 신고되어 국립박물관의 윤무병 교수에 의해 조사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로 유물로는 돌도끼, 돌칼, 돌화살촉, 창 등이 출토 되었다. 봉서산 선사 유적지, 성정동 구상골의 지석묘등과 같은 유물로 확인되었으며 국립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다. |
북부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723천평에 따라 시굴조사(108천평, 공주대학교 박물관)결과 4개지구 16천평에 대한 발굴조사가 1998. 12.23 ~ 1999. 5 21동안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재 연구소(A지구), 공주대학교 박물관(B지구), 충청매장문화재 연구원(CㆍD지구)에 의하여 828백만원의 사업비로 조사되었다. B지구의 주거지 : 분묘만 공원지역으로 지정 현장 보존하고 있다. 1. 주거지 4기가 조사되었다. 땅을 파서 만든 수혈 주거지로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가장 큰 것은 길이 11m, 너비 6m나 되며, 3호 주거지는 불에 탄 채 매몰된 상태로 가옥을 지었던 목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채로 조사되었다. 2. 옹관묘 지하로 무덤구덩이를 파고 옹을 관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조사된 11기의 옹관묘 모두 백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대체로 2개의 생활 용기를 사용한 합구식의 항아리를 가로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3. 토광묘 4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22기가 조사되었다. 무덤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목관 또는 목곽을 설치한 다음에 시신을 안친한 것으로 모두 동고선 방향으로 장축을 두어 만들었다. 목관은 길이 180~250㎝, 너비 60~80㎝ 내외로 결구에는 관정이나 꺽쇠와 같은 별도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목재만을 이용하였다. 시신은 동쪽으로 머리를 두어 안치한 흔적이 확인되고 출토된 유물은 토기, 철기류와 장신구가 있다. 4. 분규묘 지상에 흙을 돋우어 만든 것으로 전체 지역에서 가장 탁월한 위치인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남북길이 18m, 동서너비 14m, 높이 110㎝이며 장타원의 평면형태이다. 분구묘 내부에서 조사된 매장시설은 토광 2기, 토장 2기, 석곽 2기, 옹관 4기로 모두 9기이다. 출토 유물은 삼발형 토기, 단경로등의 토기류와 도자, 꺽쇠 등의 철기류이다. 이 분구묘는 충남지역에서 처음 조사된 것으로 가락동과 석촌동에서 비슷한 유적이 알려져 있다. 이런 형태의 분구묘는 백제국가의 형성과 관련되어 연구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