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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 북한이 공개한 KN-08 지대지(地對地) 미사일의 핵탄두
탄두: KN-08 핵탄두
KN-08(ICBM): 사거리 12,000km인 대륙간 탄도미사일[대륙간탄도유도탄(大陸間彈道誘導彈,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ICBM)은 사거리가 5,500 km 또는 3,500 마일 이상인 탄도유도탄으로, 주로 핵탄두를 탑재하기 위하여 개발된다]
지대지(地對地) KN-08 핵탄두
KN-08 핵탄두는 2016년 3월 9일 북한이 공개한 KN-08 미사일의 핵탄두를 말한다. 북한이 공개를 하면서, 핵탄두의 정확한 모델명, 제원은 밝히지 않았다.
1.SS-20
2003년 9월 탈북한 북한 원자력총국 부설 38호 연구소장 김광빈(51) 박사는 "북한은 20여년 전 옛소련에서 6,000km 사거리의 40kt급 핵탄두미사일 3기를 수입했다"며 "이중 1기는 1983년 38호연구소에서 해체해 개조용 실험연구에 사용했고 2기는 동해안과 백두산 삼지연기지에 각각 실전 배치돼 있다."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극동지역에 SS-20 배치 문제로 크게 대립중이었다.
2.수소폭탄
수소폭탄의 디자인. 길쭉하다공개된 핵탄두가 수소폭탄은 아니라고 한다. 영국의 군사정보업체 IHS 제인스의 칼 듀이 선임연구원은 단순한 내폭형 플루토늄 핵폭탄일 수도 있고, 또는 증폭형 핵분열탄일 수도 있다고 평가한다. 팻맨에는 없는 마개 같은 장치가 붙어있기 때문에, 이 마개를 통해 이중수소, 삼중수소를 주입해 핵융합을 일으키는 증폭형 핵분열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소폭탄은 길쭉한 형태이기 때문에, 구형은 수소폭탄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미국의 핵탄두는 대부분이 수소폭탄인데, 모두 W80 핵탄두 처럼, 텔러-울람 디자인을 사용하기 때문에, 길쭉하게 생겼다. 반면에 증폭형 핵분열탄은 내폭형 핵분열탄과 같이, 보통 축구공, 골프공 모양이다.
내폭형 핵분열탄의 디자인
수소폭탄의 디자인. 길쭉하다
3.폭발력
지름 60 cm, 무게 200 kg인 골프공 모양의 증폭형 핵분열탄일 경우, TNT 몇 킬로톤의 폭발력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직 답변하지 않고 있다.
2016년 4월 19일 이스라엘 피셔항공우주전략연구소의 탈 인바르 우주연구센터장은 미국 하원 세미나에 참석해, 탄두 지름을 60cm로 계산할 경우 폭발력 40∼80kt에 달하는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1월 북한은 4차 핵 실험이 성공했다면서,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매우 자랑스러워 하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3월 김정은이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언론에 KN-08 핵탄두를 공개했다.
4차 핵 실험은 대한민국 기상청, 일본 기상청, 미국 지질조사소(USGS), 유럽지진센터는 모두 리히터 규모 5.1이라고 판단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리히터 규모 5.1는 핵출력 6kt 정도로서, 그 정도로 북한이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하기는 무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62년 미국 네바다 핵 실험장의 세단 핵 실험은 핵출력 TNT 104 kt의 수소폭탄을 터뜨려, 리히터 규모 4.75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4.95면 208 kt, 5.15면 416 kt이라는 의미이다.
만약 3월에 공개한 KN-08 핵탄두가 1월의 4차 핵 실험에 사용하고, 첫 수소폭탄이라며 자랑하며 곧바로 김정은이 실물을 공개한 것이라면, 핵출력이 TNT 400 kt일 수 있다.
소련이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하는 RDS-6가 축구공 모양에, 400 kt이었다.
4.크기
축구공, 골프공 모양의 핵탄두 직경은 50-80 cm이다.
장영근 한국항공대학교 교수는 통상 무게 1톤, 지름 90cm 정도가 소형, 경량화한 핵탄두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 사무차장인 올리 하이노넨 하버드대 부설 벨퍼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직경 50~63cm, 무게 300kg 내외이며, 북한이 보유한 중ㆍ장거리 미사일에 최적화한 형태라고 평가했다. 1차 북핵위기, 2차 북핵위기 때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해 영변 핵시설 사찰 작업을 주도하는 등 북한의 핵 기술 발전과정과 수준에 대해 가장 정통한 인물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름은 대략 50~60cm로, 직경이 각각 90cm, 135cm로 알려진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으며, 구형 물체의 중량도 500~700kg이고, 나머지 탄두 및 폭약을 주입해도 1톤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고폭렌즈도 90개 이상이라 정교하다고 평가한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공개된 것이 조악한 모조품으로서, 핵탄두 중량이 2톤으로 보여, 스커드, 노동 미사일에 탑재할 수 없다고 본다.
2016년 3월 11일, 미국의 대표적 핵 전문가로 꼽히는 뉴아메리카 재단의 제프리 루이스 미국 비확산센터(CNS) 소장은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의 핵탄두가 지름 60cm, 무게 200∼300kg 정도라고 보았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소형화가 지나치게 복잡한 기술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으며, 1980년대부터 핵 프로그램을 추진해 수 차례의 핵 실험까지 거친 북한에게 핵탄두 크기를 작게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은 핵탄두 소형화가 매우 어려운 기술인 것 처럼 과장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핵무기 폭발력을 높이는 것과 핵탄두를 탑재한 대기권 재진입 로켓을 개발하는 것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016년 3월 9일 북한이 공개한 KN-08 지대지(地對地)미사일의 핵탄두(사진)
5.기술수준
NRDC의 핵군축 담당 수석 과학자인 토마스 코크란 박사는 고급기술시 3kg, 중급기술시 3.5kg, 저급기술시 6kg의 플루토늄이면 히로시마 핵폭탄 리틀보이에 해당하는 TNT 20kt급 핵폭탄을 만들 수 있으며, 고급 1kg, 중급 1.5kg, 저급 3kg이면 TNT 1kt급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공개한 수소폭탄이 고급, 중급, 저급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전세계에 자랑스럽게 수소폭탄을 공개한 것을 보면, 중급, 저급이 아니라 고급기술 수준임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2005년 3월 월간 말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이라는 김명철(61) 박사는 북한이 1980년대 중반 300 kg의 수입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었고, 요즘은 플루토늄 1 kg만 있으면 핵폭탄 1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고급기술을 보유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6.반응
한국군 내부에서는 "북한의 블러핑(bluffing, 엄포)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북한의 핵탄두 공개 직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특별보좌관과 정치잡지 인콰이어리의 편집장을 지낸 보수 논객 더그 밴도우는 "한국의 핵무장이 필요한 시점"이며,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나쁜 녀석들'은 모두 핵무기를 갖고 있는데, 일본이나 한국 등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한국과 일본이 독립적인 핵 억제력을 갖게 된다면 북한뿐 아니라 중국 저지에도 효과가 있으며 이는 미국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40여 년 전 한국의 핵무장을 추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이제 동북아의 '좋은 친구들'(미국의 우방국) 역시 핵무장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2차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 2차남북 정상회담( 2007년 10월 8일 )의 노무현 전대통령이 고향에서 투신 자살로 서거한 지 2일 뒤였다.
북한은 같은 곳에서 2006년 10월 9일 1차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의 3차 핵 실험도 2013년 2월 12일 역시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다시 3년 뒤인 2016년 1월 6일 동일한 장소에서 4차 핵 실험을 기습적으로 실시 했다.북한은 수소 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햇다.
4차 핵 실험 뒤인 2016년 3월 2일 2 유엔 안보리는 2270호 결의안을통과, 북한에초강수 제재를가햇다. 이는북한 정권의 자금줄인 석탄 수출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했으며 이해 9월 9일 또 다시 제 5차 핵실험을 감행햇다.
유엔 안보리는 같은 해 11월 30일 보다 강화한 대북 제재를 내용으로 한 2321호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석탄수출 상한은 금수조치가 유명무실해진 점을 감안해 설정했다. 2270 결의안에서 석탄 수출을 금지하면서도 '민생 목적'은 허용하였는데 북한 석탄 수입국이 단서 조항을 악용한 것을 방지한 것이다.
북한산 석탄 수출 총량은 2017년 1월부터 연간 4억 달러(약 4700억원) 혹은 750만t으로 제한하기로 했는데, 이는 2015년 대비로는 62% 대폭 감축하는 것이다. 석탄수출은 북한의 외화 수입 전체에서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밖에도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의 북한산 구리와 니켈 등 금속을 수출금지 품목으로 추가했다.
이같은 대북제재 강화로 연간 30억 달러에 이르는 북한의 수출과 외화수입에 8억 달러 넘는 타격을 줄 것으로 추산됐다.
이같은 북한 제재에 중국의 이행 여부가 주목되었는데 중 국 정부는 이해 12월 11일 2016년도 북한의 석탄 수출량이 제재 결의안의 상한 선을 넘어섰다는 이유를 들어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북한 석탄 수입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12월 23일에는 북한 산 구리와 니켈 등 제재품목 대상 광물의 수입을 바로 다음날인 24일부터 전면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북한의 4차 핵 실험과 5차 핵 실험 사이인 이해 7월 8일에는 한국 정부가북한의 미사일 공격 방어를 위해 주한 미군에 사드 배치를 허용하기로 결정, 한중 간에 심각한 갈등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갈등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017년 중국의 주요 외교 주요 과제 중의 하나로 한국 사드 배치 저지를 제시했다.
5차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은 모두 지하 핵실험 방식으로 실시됏다. 1, 2차는 김정일이, 3~5차는 김정은이 실시했다.
1차부터 4차까지는 3년전후 기간 간격( 1차와 2차 사이 2년 7개월, 2차와 3차 사이 3년 9개월, 3차와 4차 사이 2년 11개월) 으로 실시되었으나 4차와 5차 사이는 불과 9 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2016년 9월 9일 북한 5차 핵 실험
북한 중앙 TV는 2016년 9월 13일, 북한의 수도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이날 핵 실험의 성공을 축하하는 군민(軍民)들의 활동을 개최했다고 보도했다[핵탄두는 대부분이 수소폭탄 핵실험이다]
2016년 9월 9일 오전 9시 30분 경 북한은 정권 수립일에 맞춰 2016년 1월 핵 실험에 이어 8개월만에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핵 실험을 감행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은 공식 성명을 통해 5차 핵 실험이 성공적이었고, 핵탄두를 탄도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최종적으로 검토 확인했다고 밝혔다.
1.폭발력
대한민국 국방부는 본 핵 실험은 진도 5.0 규모의 인공 지진을 일으켰다고 파악되며, 추정 핵출력은 10kt 정도로 현재까지 핵 실험 중 가장 큰 규모라고 밝혔다.
미국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는 "핵 실험 위력이 최소 20∼30kt(킬로톤)으로 지금까지 북한의 핵 실험 가운데 최고"라고 말했다.
2013년 함형필 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진도 4.7~4.8 정도면 TNT폭약 15kt 위력을 보인 히로시마급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013년 대한민국 기상청은 "진도 4.9면 20kt 정도로 추정되며, 진도 규모가 0.2가 상승한 5.1이면 50kt, 5.3이면 100kt까지 커진다"고 본다. 모멘트매그니튜드(Mw)가 0.1 증가하면 지진에너지는 약 1.4배가 된다.[6]
유럽지진센터는 최초 속보에서 5.5라고 판단했다가 5.3으로 수정했다.[7] 진도 5.5면 200 kt 핵출력이다.
미국 지질조사소(USGS), 유럽지진센터, 일본 기상청은 진도 5.3으로 본다. 즉 2016년 1월의 4차 핵 실험 당시 진도 5.1 보다 폭발력이 2배 증가했다고 본다.
대한민국 기상청도 4차 핵 실험보다 폭발력이 2배 증가했다고 본다. 그런데, 4차 핵 실험 당시 한국은 미국 일본 유럽과 동일하게 진도 5.1로 보았는데, 이번 5차 핵 실험은 폭발력이 2배라면서 진도 5.0이라고 발표했다. 4차 핵 실험 당시 한국 기상청은 처음엔 5.1이라고 했다가, 4.8이라고 수정했었다.
2013년 대한민국 기상청은 진도 5.3이면 100 kt 핵출력이라고 말했다. 국방연구원은 통상적인 기상조건 하에서, 서울을 대상으로, 100kt 핵무기가, 지면폭발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24시간 이내 서울 인구의 절반인 580만 명이 사망하거나 다친다고 본다.
2015년 2월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ISIS 소장은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에 "2020년까지 북한이 많게는 100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2015년 12월 16일, 38노스 운영자인 조엘 위트 존스홉킨스대 방문연구원은 2020년까지 100 kt급 수소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1962년 미국 네바다 핵 실험장의 세단 핵 실험은 핵출력 TNT 104 kt의 수소폭탄을 터뜨려, 리히터 규모 4.75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4.95면 208 kt, 5.15면 416 kt이라는 의미이다.
2.핵 운반체 개발과의 연계
2016년 북한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핵 실험은 모두 잠수함발사 탄도유도탄 KN-11 실험 직후 이루어져, 잦은 핵 실험이 SLBM에 장착할 핵탄두 소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북한은 2016년 8월 24일 KN-11 시험발사에 최초로 성공했다.
북극성(KN-11)의 개발원형이라고도 보도되는 러시아 R-27U는 200 kt 수소폭탄 3발이 탑재된다. 북한의 북극성과 이름이 같은 미국 UGM-27C 폴라리스 A-3도 무게 117 kg, 핵출력 200 kt인 W58 수소폭탄 3발이 탑재된다.
미국 폴라리스 미사일은 1959년 6월 9일 진수된 세계 최초의 SLBM 잠수함 USS 조지 워싱턴 (SSBN-598)에 탑재된 SLBM이다. 즉,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된 SLBM이다.
3.대응조치
2016년 8월 24일 북한이 북극성 발사에 최초로 성공하자,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미국 공군은 2016년 9월 5일 미니트맨 미사일을 시험발사해 무력시위를 했다.
북한 14톤 북극성(Polaris)의 참조모델인 미국 폴라리스 미사일, 러시아 R-27은 핵출력 200 kt 수소폭탄 3발을 탑재한다. 미국 공군이 대응조치로 발사한 35톤 미니트맨 미사일도 170 kt 수소폭탄 3발을 탑재한다. 최근에 475 kt으로 개량했다. 즉, 미니트맨은 연료량이 2배 이상 많아 사거리가 길고 무게가 무겁지만, 탑재하는 핵탄두 3발의 폭발력은 서로 비슷하다.
2016년 9월 9일 북한은 5차 핵 실험을 단행했는데, 일부에서는 핵출력 20 kt의 진도 5.5의 인공지진이 관측되었다.
4.반응
(1)대한민국
핵 실험 직후 대한민국 정부는 황교안 국무총리의 주재로 긴급 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였다. 회의 후 조태용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핵 실험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도발"로 규정하고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또한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고, "유엔 안보리 및 양자 차원에서 더욱 강력한 제재 조치를 강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갈 것"이라고 말했다.
라오스를 공식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5차 핵 실험 사태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당초 예정됐던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약 4시간 앞당겨 귀국했다. 또 오전 15분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여 핵 실험 관련 공동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5차 핵 실험과 관련해 "각 부처는 소관 상황을 빈틈없이 점검하고, 이번 사태로 인해 국민 생활과 안전, 그리고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또 "모든 공무원은 유사시에 비상근무체제 전환에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한편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기시다 일본 외무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전화통화를 하여 긴밀한 협조와 대응에 협의했다.
(2)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15분간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를 비롯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입각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16년 9월 11일 한미 군사당국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다음달인 10월 미 해군이 USS 로널드 레이건 항공모함 타격단을 한반도로 파견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3)중국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는 북조선의 핵 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히며, 한반도 비핵화와 핵확산 반대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강조하였다.
(4)일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 실험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히며,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긴급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를 소집할 것을 촉구했다.
-2016년 9월 9일 북한 5차 수소폭탄 핵 실험:핵탄두는 대부분이 수소폭탄이다 수소폭탄 W80 핵탄두 처럼, 텔러-울람 디자인을 사용하기 때문에, 길쭉하게 생겼다 5차 핵실험이 KN-8핵탄두.
SS-20[RSD-10 파이오니어]
.SS-20 이동식 차량 전술 탄도 미사일(사진)
RSD-10 파이오니어는 소련의 트럭 이동식 중거리 탄도 핵미사일이다. NATO에서는 SS-20 세이버라고 부른다. 1979년에 개발된 최신형 파이오니어는 SS-28 세이버2라고 부른다.
탄두 SS-20: 1.6톤 1Mt 핵탄두 1발
SS-28: 150kt MIRV 핵탄두 3발
150kt 수소폭탄 3발을 탑재한 SS-28 세이버(사진)
1.미소경쟁
1980년대 초반은 미국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중거리 핵미사일로 경쟁한 사건이 세계적으로 매우 이슈가 되었다. 2000년대에 미국의 유럽에 패트리어트 미사일 설치와 러시아의 유럽에 SS-26 배치라는 대립관계 처럼, 1980년대 초반에도 그러한 미소경쟁이 있었다.
1979년 소련은 유럽에 SS-20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했다. 14곳의 발사장이 있었다.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서, 미국은 서독 등 유럽에 퍼싱-2 중거리 탄도 미사일과 BGM-109G 그리폰 중거리 순항 미사일을 배치하려 했다.
당시 미소간의 대립은 매우 팽팽한 긴장을 유발하였는데, 양국이 한 발 물러나 상호간에 중거리 핵미사일 유럽배치가 취소되자, 소련은 SS-20을 극동지역으로 이동시켰다. 한국과 일본에 있는 미군이 중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87년 드디어 INF 조약이 체결되어, 양측이 중거리 핵미사일을 모두 폐기하는데 합의하였다
2.수출
(1)북한
2003년 9월 탈북한 북한 원자력총국 부설 38호 연구소장 김광빈(51) 박사는 "북한은 20여년 전 옛소련에서 6,000km 사거리의 40kt급 핵탄두미사일 3기를 수입했다"며 "이중 1기는 1983년 38호연구소에서 해체해 개조용 실험연구에 사용했고 2기는 동해안과 백두산 삼지연기지에 각각 실전 배치돼 있다."고 진술서를 작성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극동지역에 SS-20 배치 문제로 크게 대립중이었다.
(2)일본
국가안보에 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기관인 국가안전보장뉴스서비스는 1999년 8월 9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1992년 러시아로부터 소련제 중거리 미사일 SS-20의 기술을 도입, 미사일 기술을 향상시켰다는 독자적인 정보도 공개했다.
(2)이란
러시아의 최고 핵무기 전문가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드보르킨(Vladimir Dworkin, 예비역 중장)은 러시아가 서유럽을 사정권에 두기 위하여 이란에 수개의 SS-20 미사일을 핵탄두를 제거하고 판매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드보르킨은 구소련의 전략핵무기 연구를 담당하는 러시아 국방부 제4중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미국과의 군축회담 협상실무자로 활동했다.
(3)중국
미국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1997년 중국은 벨로루시에서 SS-20 세이버, SS-28 세이버2를 획득했다.
3.트럼프 행정부
2016년 3월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주일미군, 주한미군이 주둔비용 문제로 철수할 경우, 일본,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핵무장을 할 경우, 중국 전역의 사거리를 가지려면 SS-20 정도의 사거리가 필요하다. 일본의 미사일 사거리와 동일한 허용을 한다고 가정하면, 미국은 한국에게도 SS-20 정도의 사거리를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중국 베이징의 군사 퍼레이드,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대회에서 DF-26을 최초로 전세계에 공개했다. 2016년 북한은 무수단 미사일을 최초로 시험발사하는데 성공했다. SS-20 세이버, SS-28 세이버2, DF-26, 무수단 미사일은 모두 고체연료 2단 로켓으로서, 수소폭탄 3발을 탑재하고, 사거리 3,000-5,500 km 정도 되는 중거리 핵탄도 미사일(IRBM)이다. 동북아에 한국, 일본, 중국, 북한 사이에 무수단 미사일(IRBM) 배치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극동지역(동북아시아지역)은 한반도와 일본열도 그리고 중국 동북3성(만주),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등입니다
북한, 성공적인 핵탄두 폭발실험 단행 선포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사진제공=38노스-에어버스디펜스 앤드 스페이스)
북한이 9월 9일 핵탄두 폭발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북한 중앙통신사가 이날 전했습니다. 이는 북한이 2006년부터 진행한 5번째 핵실험입니다.
글은 북한 핵무기연구소의 성명을 인용해 북한 노동당의 전략적 핵무력 건설 구상에 따라 북한 핵무기연구소의 과학기술인원들이 북부 핵실험장에서 새로 연구개발한 핵탄두 위력을 확인하기 위한 핵폭발 실험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글은 북한 노동당중앙위원회가 성공적인 핵실험을 축하했다고 전했습니다.
성명은 이번 핵실험을 통해 전략탄도로켓에 장착할수 있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의 구조와 성능, 위력을 최종적으로 검토 확인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성명은 향후 북한은 요구에 따라 소형화,경량화, 다양화한 보다 높은 타격력을 갖춘 각종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 수준이 효과적으로 제고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성명은 이번 핵탄두 폭발실험은 북한이 미국을 위수로 하는 적대세력의 대북한 위협공갈과 제재활동을 상대로 취한 조치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성명은 미국의 핵전쟁 위협에 대처하고 북한의 존엄과 생존권을 보위하며 진정한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조선은 지속적으로 조치를 취해 질적, 양적으로 핵무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언명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9일 발표한 성명에서 비핵화 약속을 지키고 안보이사회 관련 결의를 준수하며 모든 정세 악화 행동을 멈출 것을 북한에 촉구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 정부는 즉시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모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중지할 것을 조선에 재차 촉구한다고 표했습니다.
성명은 한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제사회와 함께 안보이사회와 양자관계를 통해 북한에 대해 보다 엄한 제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이에 앞서 한국 언론은 한국군 연합참모본부의 소식을 인용해 서울시간으로 이날 9시 30분경 북한 풍계리 일대에서 규모 5.0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군부측은 지진규모로 보아 이는 북한이 진행한 최대 규모의 핵실험이라고 표했습니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9일 오전 인공지진으로 추정되는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해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유럽지중해지진센터는 이날 북한시간 오전 9시 북한에서 규모 5.0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 규모를 5.3이라고 밝혔고, 중국지진센터는 5.0이라고 전했습니다.
진앙은 북한 청진 남서쪽 78㎞ 부근으로, 핵실험장이 위치한 풍계리 인근입니다. 유럽지진센터는 진원 깊이를 당초 2㎞라고 밝혔다가 15km로 수정했습니다.
중국지진센터는 이번 지진이 폭발로 의심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상균 대변인은 이날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에서 감지된 인공지진과 관련해 핵실험으로 판단하고 있고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추가 분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핵실험의 지진규모 5.0으로 파악한다”며 “폭발력이 대략 10㏏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또 “올 1월 4차 핵실험 때는 지진규모가 4.8이었고, 폭발력이 6㏏이었던 것에 비춰, 그 때보다는 규모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북한이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도 규모 5.0의 인공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북한정부 3차 핵실험 장소로 풍계리[Pungge-Yok, 함북 길주군 풍계리,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과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 장소]와 용덕동[Youngdoktong, 고폭실험은 영변에서 북서쪽 40㎞ 지점에 위치한 북한 평안북도 구성시 용덕동에서 실시되었다고 미국CIA정보 바탕]으로 파악해오고 있습니다
장거리 탄도 미사일 실전 배치지역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Musuda-Ri], 함경남도 호천군 상남리[Sangnam-Ri], 양강도 김형직군 영저리[Yong Jo Ri]등입니다
북한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포동 1호는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상에 떨어져 세계를 경악시켰으며 미국이 국가 미사일방어(NMD) 추진을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북한 등 이른바 '불량국가'의 대량 살상무기를 통한 미국 본토 공격 가능성을 제기하며 미국 본토 미사일 방어체제인 NMD 추진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이는 도널드 럼즈펠드엿다. 그는 1970년대 중반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행정부 시절 이미 국방장관을 역임했으며 민주당의 빌 클린턴의 후임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취임 때인 2001년부터 2기행정부 중반까지 다시 국방장관으로 재임하였다.
그는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NMD를 동맹국에대한 미사일 방어체제인 전역(戰域) 미사일방어(TMD)와 통합하여 현재의 미사일방어(MD)구상이 되었다.
대포동 1호라는 명칭은 미사일이 발사된 지명을 따 미일 정보기관이 명명한 것이며 북한은 이 미사일을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리기 위한 우주 발사체 로켓이라고 주장햇다.
북한은 이로부터 8년 뒤인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이 실험은 1호 때와는 달리 실패로 끝이났다.
일본 방위청(현 방위성의 전신)은 2006년 7월 말 보고서에서 대포동 2호 미사일이 7기의 미사일 중 세 번째로 발사됐는데 수십 km 떨어진 북한 인근 해안에 떨어져 완전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 같은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 실험 실패는 이해 10월 9일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감행케 하는 동인이 되었다.
북한은 2009년 4월 5일 대포동 미사일 2호 또는 그 개량형의 발사 실험을 감행햇다. 이 발사체는 역시 일본 열도 상공을 넘어가발사 장소인 북한 무수단리로부터 3200km 떨어진 태평양 상에 낙하햇다. 이해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이 실시됐다.
이후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 금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 됐다. 그러나 북한은 2012년 4월 13일, 같은해 12월 12일 잇따라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햇다. 4월 발사는 실패햇으나 12월 발사는 성공햇다. 북한이인공위성을 우주 공간에 띄우기위한 은하 로켓으로부르는 이 미사일 발사체는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 상에 일단 진입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파악됏다.
이 미사일은 동해를 거쳐일본 열도 상공을 통과하는 궤도 대신 서해를 거쳐 필리핀 동부 태평양 상에 낙하했다. 발사 장소는 함경북도 무수단리가 아닌 평안북도 동창리였으며 미국의 군사 기지 괌도를 겨냥한 실험이었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이 미사일 발사 실험 2개월 뒤인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이 강행됐다.. 이후 중국이 동참한 가운데 북한 제재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됐다.
2016년 1월에는 4차 핵실험을 실시햇으며 이어 여러 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도발을 지속하고 잇다. 특히 수 차례의 실패를 거쳐 이해 8월에는 수중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을 성공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은 플루토늄 추출, ICBM 발사 싫험, 지하 핵 실험을 거쳐 SLBM 실험에 이르기까지 핵 위협을 진화 시켜오고 잇다. 이에 맞서 국제적 제재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 1980년 5월 18일 첫 ICBM 발사 실험
1980년 5월 18일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대륙간탄도탄 미사일 실험을 성공시켰다.
이날 운반로켓은 고공 중에서 단계별 분리 작업을 거쳐 예정 궤도를 항진한 끝에 목표 해역인 태평양 해역의 모 지점에 정확하게 도달했다.
중국은 원자탄(1964년 10월 16일) , 수소탄(1966년 12월 28일 원리 실험 성공거쳐 1967년 6월 17일 투하 실험 성공), 핵무기 운반 미사일, 그리고 인공위성 개발( 1970년 4월) 에 이어 ICBM 개발마저 성공시킨 것이다. 1982년 10월 16일에는 잠수함에서 순항 미사일 발사까지 성공시켰다.
ICBM 발사 실험 성공 이후 중국은 운반로켓의 계열화, 통용화 및 상업화를 추진해나갔다. 7 · 5 계획(7차 5갬년 계획, 1986~1990) 기간 중국은 14 기의 인공위성 발사를 성공시켰는데 이중 12기가 자체 개발한 운반 로켓을 이용했다.
1990년 4월 장정3호(長征三號) 운반로켓을 이용, 인공위성 ‘아시아 1호’를 발사한 것을 계기로 국제로켓 발사 시장에 뛰어 들었다. 1992년 오스트렐리아와 스웨덴 인공위성의 발사를 성공시킴으로써 중국의 항공기술 분야에서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중국은 1955년 소련과 원자력 평화이용에 관한 협정을 맺어 원자력 개발 이용에 나섰다.
중국은 1957~59년에는 국방신기술에 관한 중소협정이 체결되어(1959 파기)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핵무기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소련으로부터 흡수할 수 있었다. 중소대립의 격화와 함께 독자적 개발에 나선 중국은 1964년에 란저우[蘭州]에 우라늄 농축공장을 완성했다. 1964년 10월에는 제1회 원자폭탄실험에 성공했고 1967년 6월에는 3Mt급의 수소폭탄실험에 성공했다. 또 1966년 10월에는 미사일을 사용한 수소폭탄(실험위력 20kt으로 추정)에도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