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와 장안고가 야구부 창단 협약을 맺는 장면 |
기름값은 한 번 오르면 좀체 내리는 법이 없다. 고교야구팀 수는 반대다. 한 번 줄면 웬만해선 늘지 않는다. 2006년 대한야구협회(KBA)에 등록한 고교야구팀은 전국 56개였다. 그러나 2007년 고양 주엽고와 성남서고, 2008년 춘천고 야구부가 연쇄 해체하며 팀수가 줄었다. 도미노처럼 고교야구부가 잇달아 해체할 때 안양 충훈고가 창단해 그나마 고교야구팀은 2009년부터 53개교를 유지한다.
4년째 정체. 프로야구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리틀야구팀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여전히 고교야구팀 수가 ‘그대로’라는 건 미스터리다. 그도 그럴 게 야구의 최상부와 최하부 구조가 발전하는 가운데 중간지대인 고교야구만 정체됐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마(魔)의 53’ 벽을 넘어야 한다"고 목소릴 높이는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그 미스터리를 해결하려 올해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 벗고 나섰다. KBO는 말로만 ‘고교야구 발전’을 외치기보다 ‘실질적 지원’으로 고교야구팀 창단을 유도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7월 열린 KBO 이사회에서 초·중·고교 야구 활성화를 위해 새로 창단하는 학교 야구팀에 거액의 지원금을 주기로 한 게 ‘실질적 지원’의 시작이었다.
당시 KBO는 초등학교 창단 야구부에 해마다 1천만 원씩 3년간 3천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중학교 창단 야구부엔 해마다 5천만 원씩 3년간 1억 5천만 원, 고교야구 창단 야구부엔 첫해 2억 원, 2·3년째 1억 원씩 최대 4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KBO는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포스트시즌 수익금 및 KBOP(KBO 마케팅 자회사) 매출 일부를 적립, ‘BASEBALL TOMORROW FUND’를 조성키로 했다. 기존팀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KBO는 기금 일부를 떼 2013년부터 운영이 어려운 기존 고교 야구부에 해마다 2천만 원의 지도자 인건비를 보조하기로 했다. KBA 역시 아마추어 신생팀 창단을 위해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자세다.
KBO와 KBA의 노력은 채 3개월도 넘지 않아 결실을 맺었다. 10월 5일 KBO와 KBA는 경기도 소재의 금릉중, 모가중, 원당중 등 3개 중학교와 송삼초 1개 초교 야구부 창단을 이끌어냈다. 4개 학교는 KBO가 약속한 ‘실질적 지원’의 첫 번째 수혜자가 됐다.
야구계는 야구 저변 확대에 기쁨을 나타내면서도 신생 고교야구팀 소식이 들리지 않자 다소 실망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10월 15일 야구계에 반가운 뉴스가 들렸다. 4년 만에 54번째 고교야구팀 창단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장원고 창단의 숨은 주역들 바구니에 담긴 야구공만큼이나 한국 아마추어 야구팀이 늘어날 때 비로소 야구는 '항구적인 국민 스포츠'가 될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10월 15일 경기도 수원시청에선 의미 있는 협약식이 열렸다. 수원에 있는 장안고가 수원시청을 방문해 야구부 창단의사를 전달하고, 시와 창단과 관련한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1999년 개교한 장안고는 지난해 경기도 교육청으로부터 ‘창의적 체험활동’ 시범학교에 지정될 만큼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개발을 지원하는 학교로 유명하다. 야구부 창단도 학생들에게 일체감을 심어주고, 야구 특기가 뛰어난 학생들에게 재능발전 기회를 주려고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안고 야구부는 11월 창단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선수확보와 지도자 영입, 연습장 확보 등에 매진하고 있다. 내년부터 각종 대회에 출전할 계획으로, 이를 위해 초·중·고교간 연계체계를 구축할 생각이다. 만약 장안고의 계획대로 창단 준비가 진행된다면 장안고 야구부는 수원지역 야구 활성화에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장안고 야구부 창단으로 수원지역 아마추어 야구팀은 리틀야구팀 3개, 초교 1개, 중학교 2개, 고교 2개, 대학 1개팀이 됐다. 경기도까지 포함하면 리틀야구팀 35, 초교 15개, 중학교 11개, 고교 7개, 대학 5개팀으로, 야구기반이 어느 지역보다 탄탄하다.
장안고 야구부 창단의 숨은 주역은 수원시였다. 수원시는 지난해부터 고교야구부 창단을 위해 다각적 노력을 기울였다. 지역 내 고교를 찾아가 창단을 설득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이번 협약은 수원시가 지역 내 고교야구부 창단을 위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려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시 조인상 체육진흥과장은 “앞으로 수원시 야구협회와 협의해 장안고 야구부 창단과 운영에 관한 제반 사항을 지원할 예정”이라며 “야구부 창단으로 지역 야구붐이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수원시 염태영 시장 역시 ”지역내 야구 유망주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각계 의지가 맞물려 그동안 추진한 장안고 야구부 창단이 마침내 결실을 봤다”며 “지난해 매향중 창단에 이어 올해 장안고까지 창단하며 수원이 명실공히 중부권의 야구 메카로 우뚝 서게 됐다”고 기뻐했다.
수원시는 야구 발전을 위한 ‘실질적 지원’을 계속 할 예정이다. 중·고교 야구부 추가 창단뿐만 아니라 2013년 10월 말까지 수원야구장을 2만2천 석 규모로 증·개축하고,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전국 리틀야구대회, 각종 사회인 야구대회 등을 개최해 지역뿐만아니라 전국 야구붐 조성에 앞장설 계획이다.
KBA 이상현 사무처장은 “장안고 외에도 야구부 창단을 계획하는 고교가 많다”며 “2008년 해체한 춘천고 야구부도 적극적으로 재창단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협회와 지자체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설 때 한국야구가 중흥할 수 있다는 걸 KBO와 KBA 그리고 수원시는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에서 보여줬다. 앞으로도 협회와 각 지자체의 활발한 아마추어 야구팀 창단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