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평론> 이란 방에 올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적당한 방이 없어서 이 방에다 올립니다.
대학원에서 공부 할 때 과제물로 제출했던 것입니다.
정지용의 시 <유리창1>
20065002 우영화
1. 詩人 정지용은 우리 詩史에서 큰 획을 그은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시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恨과 한숨의 시에서 탈피하여 現代詩의 문을 연 탁월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그 시대의 문인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질곡의 생애를 살다간 불행한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더구나 그는 분명하지도 않은 최후의 행방을 두고 독재정권은 월북 작가라는 굴레를 씌워 주옥같은 그의 詩들이 한 세대나 방치되거나 死藏되어 있었음은 우리의 문학사적으로는 큰 불행이었다. 더구나 근래의 보도 이기는 하지만 그는 1950년 9월 경기도 소요산에서 知人과 걷던 중에 미군기의 사격으로 현장에서 숨졌다는 증언(문화일보 2004.4.29보도)도 있는 것을 볼 때 월북 작가라는 굴레는 너무나 안타깝고, 또한 이데올로기의 희생물이 된 것 같아 痛恨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이제 그의 시 <유리창>을 통해서 시 전체의 분위기와 각 구절의 의미를 나름대로 알아 보고자한다.
2. <유리창1>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바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우선 이 시는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안타깝고 슬픈 감정을 직접적으로 외부에 吐露하지 않고 극도로 자제하면서
그 슬픔마저도 객관화하여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이 시와 같이 詩作동기가 같은 김현승의 <눈물>, 김광균의 <은수저>가 있는데
특히 김현승의 시 <눈물>이 이 <유리창1>과 같이 작자의 감정을 외부로 露出시키지 않고 극도로 자제하였다. 그러나 김현승의 <눈물>은 자식을 잃은 슬픈 감정을 종교적인 힘으로 昇華시킨점이 <유리창1>과는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시의 제목과 같이 유리창은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죽은 어린 것과 화자를 갈라놓는 경계이자 차단의 벽이다. 또한 이 유리창은
逆說的으로 보고 싶은 자식을 만날 수도 있는 유일한 매개체이기도하다. 유리의 밖은 차고 실내는 따듯하여 유리의 안쪽에 성애가
끼어있다. 화자는 입김으로 성애를 녹여 밖을 내다 보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깜깜한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 중의 한 개가
죽은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곧 성애가 끼고 또 입김으로 녹여 손으로 닦고 아기의
별을 보고 아기를 생각하고 있는 작자의 애달픈 心情의 表現이다.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유리창 밖에 있는
무한한 어둠은 자식을 잃은 허전하고 슬프고 괴로운 마음에 對等한다.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빛 난다’ 유리창을 닦고 또 닦고
하면서 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눈물이 고여 별이 희미하게 보였겠지만 자기의 귀엽고 고운 아이의 별이기에 보석처럼
빛나게 보였을 것이다. 여기서 이희중은 (현대시의 방법연구, 도서출판 월인 205쪽) 눈에 어린 눈물 때문에 조금 어른거려 보이는
별일 수 있으며 유리 위 입김 자국이나 성애너머로 보이는 별을 의미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 아기를 잃은
아버지의 심정이 외롭고 슬픈 것은 당연 하지만 또한 별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잃은 아이를 만날 수 있음과 같아 황홀하고 기쁜
心思가 될 수도 있다. 즉 자신의 심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북받치는 슬픔과 애통함을 겉으로는 자제하면서
억눌러온 감정이 마지막 행에서는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 갔구나’라고 직접적인 표현을 썼다. 인간이 슬픔을 참는 忍耐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다른 가족이 잠든 깊은 밤 혼자서 유리창에 붙어 서서 유리를 닦아 아기의 별을 보는 이 시인의 애틋한 부성애를 느끼게 한다.
3. 이 작품은 어린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유리창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투명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고도로 切除하며 아름다운 이미지로 形象化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 시의 핵심재제인
유리창은 이승과 저승의 運命的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승과 저승, 즉 먼저 간 아이와 유리창 이쪽에 남아서 아이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아버지를 媒介해주는 交感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차가우면서 안으로는 뜨거운 정지용 詩의 특징과 절제된
정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