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우리 주 하나님은
Date 2011. 1. 30
Text Ezk 33,10-12
(10)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11)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12)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1.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명절이 주는 의미도 사람 나이에 따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 받고 맛난 것 먹으며 재미난 데 놀러가는 즐거운 날이라면, 청년들에게는 집안 어른들에게서 진학, 취업, 결혼 등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수없이 받아야 하는 괴로운 날일지도 모릅니다. 제 나이가 되니까 명절이 되면 부모, 형제, 고향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회가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대수롭잖게 여기며 지나쳐왔던 과거의 기억들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죄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 일들이 떠오릅니다. 특히나 부모형제에 대한 소회가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부모님들에게 잘 해드리고 형제들과의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만드시는 명절이 되길 바랍니다.
2. 1월 달 우리 교회의 인사말이 “나의 사랑하는 자가”입니다. 이 1월에는 우리가 고백하고 있고 동행하고 있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아서 꼭 주님과 행복한 동행이 이루어지는 복이 있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하였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저 지난 주 화요일 새벽 시간에 ‘아버지’란 말이 뜨겁게 제 마음을 때렸습니다. 여적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란 말이 그렇게 뜨겁게 느껴진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란 단어는 기도시간 내내 눈물을 흐르게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하나님이 제 아버지란 사실이 제 마음을 녹였습니다.
아주 가끔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어서 그렇지 않은 아버지 얘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거의 모든 아버지들은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못해줘서 한이지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때로 철부지 자식이 ‘아버지가 내게 해 준 것이 뭐 있어요?’라는 말로, 안 그래도 못해줘서 늘 죄 지은 것처럼 미안했던 마음에 못을 박을 때에도 화를 내기보다는 아비가 못나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지 않습니까?
또한 모든 아버지들은 자녀가 곱게 잘 살기를 바라지요. 나쁜 짓 하지 않고 남에게 칭찬을 들으면서 남에게 덕을 끼치며 사는 훌륭한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디 가서 아이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마음에 자랑으로 새겨놓지 않습니까? 행여라도 어디서 못된 사람들과 어울려 물이 들어 정도에 어긋난 일이라도 하지 않는가 늘 걱정하지요.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자녀들에 대하여 무한대의 책임감을 가지고 늙어 숨가쁜 순간까지도 자식들을 마음에서 떼어놓지 못합니다. 자식이 아픈 것도 내 책임 같고, 자식이 못사는 것도 내 잘못 때문인 것 같으며, 자식이 잘 나가고 있어도 혹여 잘 나가는 자식에게 내가 걸림돌이라도 될까봐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 손가락질 하며 욕을 할지라도 아버지는 그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왜요? 다른 아무 이유 없습니다. 단지 아버지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그렇습니다. 단지 부모가 된 죄 하나로 자식에게 목이 매여 평생을 끌려 다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게 그런 아버지가 되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우나 고우나, 미운 짓을 하거나 이쁜 짓을 하거나, 말을 잘 듣거나 안 듣거나 관계없이, 심지어 아버지 손 발에 다시 못을 박는 불효막심한 짓거리를 하며, 아버지 주신 좋은 몸, 좋은 재주로 아버지 얼굴에 똥칠하며 사는 탕자 같을지라도, 버리지도, 모른 체 하실 수도 없으시는 아버지가 되신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이 못난 놈, 그냥 발길로 확 걷어차고 마시지, 이 배은망덕한 놈, 기껏 좋은 재주 주고, 잘 될 수 있게 길을 열어줬더니 다 저 잘나서 제 힘으로 다 한 것 마냥 아버지 뜻은 나 몰라라 하고 제 편한 것만 추구하는, 이 불효막심한 놈, 그냥 몽둥이 찜질이나 하시지, 뭐 예쁘다고, 이런 놈도 자식이라고 그렇게 참고 참으시며 기다리고 기다리시고, 별로 반기지도 않는 데도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그렇게 애쓰십니까?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울며 고백했습니다.
3. 에스겔 예언자는 조국이 망하여 민족이 적국에 의해 세계 방방 곳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고 그나마 이름이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허수아비 국권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10)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11)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에스겔은 먼저, 우리의 허물과 죄가 우리로 쇠퇴하게 하니 어찌 살 수 있겠느냐는 동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인이 그냥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시라고 외칩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심을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는 분, 심지어 도울 능력도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뒤에 있는 17절과 20절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주의 길이 바르지 않다’, 즉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돌아보거나 해결해 주는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습니까? 억장이 무너지지 않습니까? 저를 어떻게 얻었고 얼마나 귀히 여겼으며 얼마나 지극 정성을 다해 키웠는데 고맙단 말은 고사하고 그런 말을 듣는다니 할 말이 없어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답답하여서 가슴만 치지 않습니까?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의 심정이 그러하십니다. 누구보다도 살려주고 싶고 잘 되게 하고 싶은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악인이 그냥 죽는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아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이제라도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살 길을 놔두고 죽고자 하느냐? 언제라도 악을 떠나기만 하면 틀림없이 구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악을 떠나 살길을 가야 살 텐데 망할 길에서 꼼짝 않고 그냥 있으면서 힘들다고 불평만 하고 있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30-31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겠다고 와서는 하나도 그 말을 듣지 않고 행동할 때는 오직 자기의 이익을 따른다고 지적하십니다.
“(30)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에 대하여 말하며 각각 그 형제와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 보자 하고 (31)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여러분, 아버지이신 우리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더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결하기를 원하십니다. 남에게 덕을 끼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당신과 소곤소곤 정다운 교제를 나누시면서 그 행복이 점점 더 많이 풍성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로 우리는 마음을 고쳐먹고 우리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12)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온갖 방법을 다 찾아봐도 생명의 길, 승리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길입니다. 악인이 돌이켜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하라고, 하라고’ 해도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아버지께서는 때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할 길을 명하시기도 합니다. 좁은 문 험한 길로 가라고 하실 때도 있습니다.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도 돌려대고, 오리를 억지로 가게 하는 자와 십리도 동행하며,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하는 바보 같은 삶을 살라고 하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당장은 그 모든 것들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나에게 어찌하든 살 길을 가게 하시려는 그 아버지께서 명하신 길입니다. 때문에 그 험한 길이 생명길입니다. 그 좁은 길이 승리의 길입니다. 그 사랑의 길이 행복의 길입니다. 할렐루야!
4. 여러분, 아버지란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애3,22절에서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간혹 실수를 합니다. 그때 이웃은 조롱하고 친구는 멀리하며, 선생님이나 심하게는 처자와 부모까지도 냉대하여 우리는 쉽게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만은 나를 버리지 않고 사랑해 주십니다. 또한 아버지란 자녀를 위해 무한대로 그 필요를 리필, 재충전하여 주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미 삼킨 것이라도 도로 끄집어내어서라도 원하는 자녀 입에 넣어주고 싶어 하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더 아버지란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시는 분임을 의미합니다.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함께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계3,21에서는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겠다고 하셨고, 계20,4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씀하시고, 또 우리 교회에게 행복을 배가시키는 아름다운 동행을 하자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이 분이십니다. 부디 행복을 배가시키는 아름다운 동행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