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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열쇠 - 다니엘의 70 이레
성경은‘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라는 말씀으로부터 그 문을 연다. 여기서 태초란 말을 통해 종말에 대한 암시를 얻을 수 있지만, 구약 성경에 나타난 종말에 대한 기록은 구약의 계시록이라 불리는 다니엘서에 가장 정확히 나타난다. 다니엘서 전체가 다니엘이 살던 바벨론 시대 이후, 세계역사에 대한 안내를 하는 계시의 책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그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그 중 9장에 나타나는 70 이레에 대한 내용은 종말론 해석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하는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려면 70 이레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70 이레는 단9:24-27절에 나타나고 있다.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9: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위의 70 이레에 대한 내용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다니엘이 민족의 장래운명에 대한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단9:3-19) 천사 가브리엘이 내려와 다니엘에게 유대민족의 운명에 이어 전 세계의 운명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다.
9장 24절에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을 통해, 허물이 마치고 죄가 끝나고,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 이상과 예언이 응해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다. 허물과 죄가 끝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시대는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왕국 시대이며, 이 왕국시대에 나타난 지극히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어 25절부터 70 이레에 대한 안내를 하는데, 우선 70 이레의 적용대상은 유대인임을 고려해야하며, 이는 유대인의 성경적 시간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성경에 나타난 유대인의 시간 법으로 따르면 한 이레는 7년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70 이레는 490년을 말한다. 고로 유대인의 완전한 회복은 70 이레인 490면 뒤에 일어나며, 490년 뒤 유대인들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회복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들의 허물과 죄가 사해지지 않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성경이 잘못 된 것인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가. 성경에서 계시한 70 이레에 대한 부분을 검토해 보자.
70 이레의 시작은 단 9:25절의 말씀에 의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이다.
단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 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 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성경에 예루살렘의 건축에 대한 기록은 3번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 70 이레의 시작을 알려주는 중건의 영은 마지막 세 번째의 영이 유력하다. 그리고 중건의 영이 나서 69이레가 지나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일어나서 끊어진다고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 죽음까지의 전체를 망라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단어는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루살렘성이다. 두 번째 칙령은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명이 었으나, 마지막 세 번째 영만이 예루살렘에 대한 중건의 영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70이레의 시작은 세 번째 영이 확실하다.
1. 첫 번째 칙령(스1:1-3) : B.C. 536년 고레스 왕의 칙령(중건의 명령이 없음, 그리고 성전에 대한 명령임)
스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 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스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 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스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 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왕 고레스에 의해 귀환 명령을 받게 되고, 성전건축에 대한 허락을 받아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성전 건축은 사마리아 인들의 방해로 그 건축이 중단된다.
2. 두번째 칙령(스6:1-12) : B.C. 519년 다리오 왕의 칙령(중건의 명령이 없음, 역시 성전임)
6: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전각에서 조사 하게 하여
6:2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
6:3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 노니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6:4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6:5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성전 금, 은 그릇들을 돌려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전 안 각기 제자리에 둘지 니라 하였더라
6:6 이제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너희 동관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들은 그 곳을 멀리하여
6:7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
6:8 내가 또 조서를 내려서 하나님의 이 성전을 건축함에 대하여 너희가 유다 사람의 장로 들에게 행할 것을 알리노니 왕의 재산 곧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
이상의 내용은 고레스왕의칙령에 의해 멸망당했던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 되었으나, 사마리아 인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이 중단 되었다. 이렇게 중단 되었던 성전 건축은 다리오 왕이 고레스 원년의 기록을 찾아 성전건축은 선왕의 유지였음을 알게 되어 건축을 재개하도록 허락한 내용으로 B.C 516-15년경 완공 된다.
3. 세번째 칙령(느2:1-8) : B.C. 445년 아닥사스다 왕의 칙령(성전이 아니라 성임)
2:1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2: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이 내용은 바사의 아닥사스다왕 20년, B.C. 약 445년경에 일어난 사건으로, 다시 재건된 성전을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들이 살펴보지 않아 성전이 엉망으로 훼파 되게 되었다, 당시 아닥사스다 왕을 섬기던 느혜미야가 이 사실 알고, 왕에게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훼파된 성전을 중건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건축이라는 단어와 중건이라는 단어는 ‘바나’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앞의 두 칙령에서는 건축이라 번역 하였고, 세 번째 칙령인 느헤미야서 에서는 중건으로 번역을 했는데, 아주 좋은 번역으로 보여 진다. 건축을 뜻하는 바나는 ‘짓다’ ‘만들다’ ‘건축하다’ ‘수선하다’ 등의 여러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다.
에스라1장과 6장에 나오는 건축이라는 단어인 바나는 ‘건축’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성전을 다시 지었기 때문이다.
바벨론을 무너뜨린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다시 성전을 건축하게 되나 사마리아인의 방해로 다 완공하지 못하다, 다리오 왕에 의해 다시 건축이 시작되었으니 건축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그러나 느헤미야 2장에 기록된 바나는 이미 건축 된 성전의 보수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이는 ‘건축’이 아니라 수선의 의미인 ‘중건’이라는 번역이 더 어울린다. 이때가 B.C 445년경으로 영국의 그리니지 천문대에서 확인된 정확한 년도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70 이레의 시작년도를 대략 알 수 있는데, 그 년도는 B.C.445년경이 된다.
성경은 70 이레를 세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일곱이레(49년), 육십 두이레(434년), 한이레(7년) 이렇게 하여 구분하고 있다. 왜 이렇게 구분하였는지는 성경의 기록에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곱이레 즉 49년 뒤인 B.C. 396년경은 말라기 선지자의 사역이 마무리 되고, 구약성경이 끝이 나는 해와 비슷한 해가 된다. 우리가 말라기 선지자의 사역기간에 대해, 성경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 단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B.C 5세기부터 B.C.4세기 말에 걸쳐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한 것은 말라기의 기록을 통해보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곱이레로 나눈 것은 선지자의 마지막과 구약성경의 마무리와 관계가 있지 않나 감히 추측해 본다.
70 이레의 시작을 B.C. 445년경으로 잡으면, 이어 나타나는 62이레는 62*7로 해서 434년이 나오는데, 일곱이레의 끝인 B.C.396년에다 434년을 더하게 되면 A.D. 38년이 된다.
단 9:26절에 일곱이레 후 육십 두 이레가 지나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일곱이레와 육십 두이레를 합치면 육십 구 이레 후 이다.
9: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여기서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말하는 것으로, 일곱이레와 육십 두이레 즉 육십 구 이레가 끝나는 해는 대략 A.D. 38년이 되는데, 그리스도의 죽음이 이 해에 일어났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A.D.31-32년경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약 6년 이상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오차가 생기는 이유는 성경의 일 년 은 오늘날 우리가 계산하는 일 년과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의 일 년은 365일이지만, 성경의 일 년은 360일로 계산하고 있다. 노아 홍수사건이나 에스더에서의 아하수에르의 축제에 6개월을 180일로 계산한 내용(에1:4), 계시록11:3,12:6절 그리고 단 7:5에서 적그리스도의 통치기간을 3년 반으로 묘사하면서 전체일수를 1260일로 계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일 년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일 년간의 날수를 동일시 계산하면 안 된다.
70 이레 계시의 당시로 돌아가 일 년의 날 수를 계산하려면 5일의 날을 빼야 정확한 계산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해서 69이레 끝인 483년에서 매년 5일씩 빼게 되면 360*483=173,880일이 나온다. 현재의 태양력대로 하면 483*365= 176,295일이 나온다. 여기서 성경적 년 수를 알려면, 태양력의 일 수 - 성경의 일수 에다 360으로 나누면 대략적인 년 수가 나온다. 계산해 보면 176,295일 - 173,880 = 2,415 일다. 2,415일을 다시 성경의 일 년인 360으로 나누면 6.7083333...으로서 약 6년 7개월이라는 오차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적 년대로 계산하여 69이레의 끝은 A.D 38년 - 6년 7개월 하면 A.D 31년 5개월 정도 된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 계산해 보면 69이레의 년 수는 483년이다. 이 483년은 1년을 360일로 계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 태양력대로 하면 5일씩 증가된 것이 된다. 고로 483*5에다 360일을 나누면 오차 기간이 나오게 되는데 483*5는 2,415일 이며 여기다 360을 나누면 6.70833....으로 같은 년수가 나오게 된다. (483*5÷ 360 = 6.70833....)
이상의 계산을 통해 69이레 후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겨지는 해, 즉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해는 A.D. 31년에서 32년 사이가 되는데, 성경연구가들이 추측한 년대와 일치하고 있다. 어떤 연구가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A.D. 32년 4월 6일로 보고 있다.
많은 분들이 종말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년대와 일자를 오늘날 우리들의 계산법으로 계산해 그 일자를 맞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일자와 우리들의 일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결코 종말에 대한 일자는 주님 외 누구도 알 수 없다. 단지 성경에서 계시한 징조를 통해 시대적 상황만 감히 예견해 볼 뿐이다.
마지막 한이레
70 이레를 정상대로 계산하면,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 돌아가신 후(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긴 후) 바로 이어 한 이레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마지막 한 이레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70 이레 후 유대인들의 완전한 회복과, 지극히 거룩한 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와야 하는데 아직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에 있어 무 천년설을 지지하는 자들은 69 이레 후 한 이레가 바로 이어 끝났고 본다. 그 이유는 한 이레 즉 7년을 상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한 이레는 전 교회시대를 포괄하는 것으로, 7년 환난이란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그 설득력을 잃어 버린다.
1. 마지막 한 이레를 상징으로 보면 앞에 나오는 69이레도 상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69 이레는 정확히 이루어진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69 이레에 대한 예언은 성경적으로 정확히 이루진 사건이다.
2. 한 이레를 상징으로 보게 되면 다니엘과 계시록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는 7년 환난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게 한다.
1) 계 11 : 3 1260일간 (두 증인의 예언 기간)
2) 계 11 : 2 마흔 두 달 (짐승이 거룩한 성을 짓밟는 기간)
3) 계 12 : 6 1260일간 (해 입은 여자를 양육하는 기간)
4) 계 12 : 14 한때, 두 때, 반 때 (남자를 낳은 여자의 양육 기간)
5) 계 13 : 5 마흔 두 달 간 일할 기간(적 그리스도가 용의 권세로)
6) 단 9 : 27 한 이레의 절반 (제사와 예물을 금지 당하는 기간)
7) 단 7 : 25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짐승이 예루살렘에서 지낼 기 간)
8) 단 12 : 7 반드시 한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짐승의 통치 기간이 끝난 후)
이상과 같은 환난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전 혀 할 수 없다. 이들은 단 9:26절에 나타나는 예수살렘성의 파괴는, A.D 70년에 로마 장군 디도의 공격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사건으로 본다. 그러나 이는 뒤의 26절 하반절과 27절에 나타나는 내용과 문맥상 맞지 않게 된다. 26절 하반절 부분과 27절은 명확히 마지막 때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26절에 등장하는 한 왕은 마지막 한 이레 때 나타날 적그리스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견해는 한 이레가 상징이 아니라 69 이레 후 잠시 중단 되었고, 문자 그대로 마지막 한 이레는 미래의 어느 시기에 반드시 시작 된다는 견해다. 이 때 시작 되는 한 이레는 하나님께서 지구상에 내리는 심판의 한 이레로, 즉 7년 동안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며, 이 7년은 전 3년 반의 환난과 후 3년 반의 환난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보수라 자칭하며 성경을 연구하는 많은 분들이 이러한 해석을 세대주의적 해석이라 하여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사실 이 해석은 세대주의적 해석이 아니라 올바른 성경 연구의 결과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 진다. 본인도 이 견해를 따른다. 이러한 7년 환난에 대한 견해가 세대주의자들의 해석과 부분 일치하는 면도 있으나, 실제로 세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다른 여러 종말론적 해석들은 거의 성경적으로 옳지 않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특히 휴거문제는 더욱더 그렇다.
마지막 한 이레가 하나님의 이 땅 심판의 7년 환난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69 이레 후 어느 정도의 기간이 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단 9:26절과 이어 나타나는 27절에서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9: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9: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위 26,27절에 육십 구 이레가 끝나면, 장차 한 왕이 온다고 하였다. ‘장차’라는 단어는 곧 바로 이어지는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날을 말하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한 이레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미래의 그 어느 날에 다시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되어 질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리고 한 이레가 시작되는 시점에 한 왕이 나타날 것이며, 이 왕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굳게 정한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한 이레의 시점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한 왕의 등장’이다.
한 왕의 등장은 마지막 한 이레가 시작 될 쯤 나타날 것으로 보이며, 사도바울은 살전 2:2-3절을 통해 한 왕의 정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요한은 계시록을 통해 이 왕은 평화를 가장한 왕으로 등장해 사람들에게 거짓 평화를 주는 왕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가 첫 째 인이 떼어지는 7년 환난의 시작점이 되는 시기로 보여 진다.
계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계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시록 6장부터는 하나님의 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장으로, 일곱인 중 첫째 인이 떼어 질 때 백마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후 천년주의나, 무 천년주의를 주장하는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 백마 탄 자를 그리스도라 해석을 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현재 어린양인 그리스도는 인을 떼고 있는 순간인데, 백마를 탈 이유가 전혀 없으며, 백마 탄 자는 활을 가져 전쟁에 나가는데, 그리스도는 활이 필요 없는 분이시며, 또 면류관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이미 면류관을 받은 자이며, 그리고 이기려고 노력하는 분이 아니라 이미 이긴 자이다. 계시록 19장에 백마를 탄 그리스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계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계19: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여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이 어떠한가. 그는 백마를 탔고, 이미 면류관을 받았으며, 그는 활로 싸우는 분이 아니라, 공의와 그 입의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며 싸우는 자이다.
계6:2절에 말하는 백마 탄 자는 일시적 평화를 가져주는 적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어 계속 된 인의 심판에서 전쟁과 기근, 사망 등의 심판이 나타나기 때문으로 첫 때 인을 떼는 순간도 심판의 한 순간으로 보아야 하며, 이 심판은 거짓 평화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는 적그리스도가 주는 평화로, 다니엘서에 기록한 것처럼 한 왕이 많은 사람들과 7년간의 언약을 체결할 때 주는 거짓 평화를 말한다. 한 이레, 즉 7년 심판이 들어가면 잠간의 거짓 평화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왜 마지막 한 이레가 69 이레 뒤 바로 진행되지 않고 오랜 시간의 기간이 주어졌는지에 대한 문제를 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한 이레의 멈춤은, 이방인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중지된 기간이다. 사실 인간의 시간으로 멈춘 것이지,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계속 진행 중인 것으로 봐야 한다. 롬 11장 25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롬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 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고 마태복음 24장 14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 이 오리라
만약 69 이레 뒤 한 이레가 바로 진행 되었다면,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이 이방인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대상은 오직 유대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모든 이방 민족들도 구원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의 많은 백성들이 이방인들 가운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한 이레를 잠시 중지 시키시고 그 기간 동안 복음이 전파되게 하여 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 중 나와 여러분들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종말 타임 테이블은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종말의 그 중심에 마지막 한 이레가 있고, 한 이레의 시작점은 한 왕의 등장으로 진행 될 것이며, 이 왕은 초기통치에 있어 거짓 평화를 통해 사람들로부터 우상화 되면서, 자기를 높여 자기를 하나님으로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를 무자비하게 박해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를 종말의 중심에 놓아,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전쟁이 일어 난다니, 3차 대전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마지막 시대를 짜 맞추고 있는데,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아무리 성경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있지만,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렇게 왜곡되게 해석하고, 겁도 없이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을 제대로 보고나 있는지, 아니면 성경을 믿기나 하는지 알 수 없다.
70 이레에 대한 이상의 내용들을 간단히 도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70이레 (490년) | 일곱이레(49년) | * 한이레의 시작은 B.C.445년경 * 일곱이레의 끝은 B.C.396년경 (구약성경이 마무리 되고, 선지자가 끝나는 기간) |
육십두이레(434년) | *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기는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 |
이방인 구원시기 | * 복음을 통한 이방인들의 구원시기 | |
마지막 한이레 (7년 환난) | * 한 왕의 등장과 협약, 7년 환난의 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