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첫 순교자 원시장이 홍주 옥터에서 순교한다. 55세때 천주교에 입교하여 자신의 것을 나누고 베풀며 끊임없이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여 하루 동안에 무려 30가구나 천주님을 믿게 되었다. 신해박해 때 옥중 세례를 받고 추운 겨울 끼얹은 물에 얼음덩어리가 되어 숨을 거둘 때에 “저를 위하여 온 몸에 매를 맞고, 제 구원을 위해 가시관을 쓰신 예수여,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얼고있는 이 몸을 봉헌합니다.” 라고 봉헌기도를 바치며 충청도의 첫 순교자가 탄생되었다.
방 프란치스코 (?-1799)
감사의 비장까지 지낸 방 프란치스코는 교리를 실천하는데 비상한 열정을 가졌다. 그는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식사를 받고 슬퍼하는 동료에게,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것도 천주의 은혜이지만, 사또가 마지막 후한 대우를 해주는 것도 섭리의 은혜인데, 어째서 슬퍼만 하오. 만일 우리가 천당 가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오리오.” 하며 함께 옥고를 치른 후 순교하였다.
박취득 라우렌시오 (1769-1799)
박취득은 지황(사바)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심문중에도 천주교를 전하며 “인생이란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인생을 나그네길이요,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리를 부러뜨리고 곤장을 1천4백대나 맞았으며, 8일동안 물한방울도 마시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굶겨도 죽지않고 맞아도 죽지 않으니 목을 매면 죽을거요” 이렇게 그는 새끼로 목을 졸라 순교하였다.
황일관 시몬 (1757-1802)
홍주의 천한 백정집안의 출신으로 태어나 진심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실천하였다. 그의 아름다운 행실로 교우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는 “나에게는 두 개의 천국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 있고, 다른 하나는 죽은 후에 있는게 분명합니다.” 하였다. 45세의 나이에 태어난 고향 홍주로 이송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는 천민의 신분이었지만 신앙의 힘으로, 자신안에 편등과 자유를 실현한 순교자로 칭송이 이어지고 있다.
- 앞으로 홍주성지를 관광 자원화하여 더욱 많은 순례객과 관광객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