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스탠퍼드 대학교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텍사스의 한 목장을 청춘 남녀 둘이 머리칼을 휘날리며 무개차(無蓋車)로 달리고 있다. ‘빅 베네딕트(록 허드슨)’가 막 시집온 아내 ‘레슬리(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5만 마리의 소를 가진 자신의 농장을 자랑삼아 구경시켜 주는 모습이다. 종마(種馬)를 사러 버지니아주에 갔다가 ‘린튼’ 가의 아름다운 처녀 ‘레슬리’를 만나 결혼하고 집에 막 데려온 참이다. 새로 산 소들은 빅의 개인 화물 기차에 싣고 왔다. 자동차로 종일 달려도 끝이 없이 넓은 목장. 서부영화 천재 작곡가 ‘드미트리 디옴 킨’이 만든 ‘이곳이 바로 텍사스다(This then is Texas)’라는 주제가가 영화 ‘자이언트’의 상징적인 이 장면을 관객들의 뇌리에 영원히 심어준다. 멕시코의 통치를 갓 벗어나 가난을 면치 못하던 땅 텍사스 주를 목장에서 석유까지 개발하여 거대한 부의 땅으로 전환시킨 ‘글렌 매카시’의 실제 삶을 영화 한 것이다.
중년의 두 부부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8,180 에이커에 달하는 거대한 그들의 말 목장을 차로 달리고 있다. 운전하고 있는 ‘릴런드 스탠퍼드’는 ‘란초 스탠퍼드’에 넓은 땅을 사서 ‘팔로 알코’라는 말 목장을 만들었다. 목장은 발전하여 범죄의 도시로 낙후되어 있던 인근의 ‘메일필드’까지 전부 사서 목장 땅을 넓혔다. 사업은 발전했지만 가정에 비극이 찾아온다. 16세 체 못된 외동아들이 장티푸스로 죽은 것이다. 비극을 이기기 위해 부부는 “캘리포니아의 젊은이들을 모두 우리의 자녀로 삼자”라고 선언하고 자신의 목장에 학교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주위 사람들은 이 부부가 슬픔을 딛고 학교 만들 장소를 보러 다니는 희망의 모습을 자주 본다.
릴런드 스탠퍼드는 6년간의 준비 작업과 토목공사를 마친 뒤 1891년 10월 1일 아들의 이름인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약칭 스탠퍼드 대학교)’라는 이름의 대학교를 개교한다. 이 학교의 애칭 ‘목장(The farm)’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학교의 건축과 조경은 뉴욕시의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유명한 ‘프레더릭로 옴스테드’에게 맡겼다. 그는 여느 대학의 틀에 박히고 진부한 캠퍼스의 모습을 떨쳐버리고 앞서가는 대학의 혼을 표현하기 위해 일생현명(一生懸命)의 힘을 기울인 덕에 캠퍼스는 예술적이며 신비한 공원 같은 분위기가 된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 이런 멋있는 부부들이 있어 신생 미국은 위대한 나라가 된다.
S.F의 명물 중 하나는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중 한 곳인 스탠퍼드 대학교다. 학교의 넓이가 여의도 4배나 된다. 마거리트(Margurite)라는 이름의 학교 버스가 다니는 교내 캠퍼스 노선만도 20개다. 그 학교를 한번 보아야겠다고 가족들과 함께 나섰다. 캠퍼스를 모두 돌아보려면 하루도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 계획을 잘 세우고 행동을 빠르게 하기로 마음을 다잡고 학교로 갔다. 볼 곳은 일단 캠퍼스의 중심에 가서 일정을 잡아보기로 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니 ‘팜 드라이브(Palm drive)’라는 이름의 진입로가 곧게 나 있었다. 길 양쪽으로는 생뚱맞게도 키 크고 멋있게 자란 야자나무들이 1마일 이상 길게 심어져 있다. 열대 지방도 아닌 곳에서 야자수를 그것도 대학의 가로수로 심어 놓은 광경을 보니 소문대로 스탠퍼드는 일상적 인간들의 보편적 사고를 뛰어넘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학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학이 관악산으로 이사 가기 전 법대와 문리대는 동숭동에 있었다. 그 대학로에 마로니에 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그 나무들은 ‘마로니 길’이라는 멋있는 이름에 비해 정작 나무는 별 볼 볼품이 없었다. 그나마 심어진 마로니에도 몇 그루 없는 허름한 짧은 가로수 길이었다. 그러나 나무 이름이 덕인지, 감미로운 박건의 노래 덕인지 하여간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누구나 그 길은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 거리였다. 연세대학교에도 유명한 ‘백양로’라는 길이 있었다. 정문을 들어가면 길 양쪽으로 백양나무들이 줄 서 있었다. 백양나무는 당시 가로수로는 흔하지 않은 나무였다. 나무의 흰 잎이 바람을 맞아 반짝이면 아름답게 보이긴 했지만 백양로도 그저 그런 밋밋한 길일 뿐이었는데도 실제보다 과하게 이름이 나 있었다. 스탠퍼드의 진입로 팜 드라이브는 멋있었다. 마로니에길이나 백양로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가로수인 야자수도 크고 잘생겼고 진입로도 길게 뻗어 있어 이 길 보는 것만으로도 구경이 될 정도였다.
야자나무의 사열을 받으며 팜 드라이브의 끝에 다다르자 ‘메인 쿼드(Main quad)’라고 불리는 넓은 직사각형의 광장이 있었다. 이 광장 주위로는 38개의 2층 건물과 그 건물들을 서로 연결하는 회랑이 있었다. 그 많은 건물 중에도 미국식 건물은 한 채도 없었다. 모두가 로마네스크 양식과 스페인 식민지 시대 양식으로 지어진 예술적인 건물들이었다. 모든 건물들의 벽은 고풍스런 연황색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지붕은 예쁘게 디자인된 붉은색 자료로 덮어 놓았다. 학교를 처음 지을 때 예술성을 고려해 건물마다 모양과 높이를 다르게 설계를 했고 일부러 산호세에서 옅은 노란색 사암을 채굴해 와 건물의 재료로 썼다고 한다. 나중에 자료가 모자라자 사암과 비슷한 노란색을 넣은 벽돌을 썼다고 한다. 그 후 콘크리트를 보강할 경우에도 페인트 칠을 그렇게 해서 초기 색깔을 유지한다고 한다.
캠퍼스는 야자나무 외에도 구석구석 여러 종류의 기화요초(琪花瑤草)가 심어져 있었다. 식물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조경이었다. 이 숲 같은 정원에는 조각 공원이 있는데 로댕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부 복제품이기는 하지만 프랑스가 보증한 진품 대접을 받는 작품들이다. 조각 정원 외에도 메인 쿼드 입구, 도서관 등에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등에도 로댕의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이런 고색창연하고 예술성이 높은 건축물과 체육관. 골프장 등을 갖춘 정원은 이곳이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고급 리조트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 대학의 창의성과 진취성은 대학을 구성하는 인적 요소 외 이런 건물과 예술품들의 영혼도 함께 스며든 결과일 것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 광장 한가운데는 ‘메모리얼 처치(Memorial church)’라는 이름의 큰 성당 모양의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천주교와는 관계없고 창립자인 스탠퍼드가 학생들의 영적 활동을 하라고 만든 상징적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 안을 들여다보니 이탈리아 장인이 정성껏 만들었다는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가 방문객의 영혼을 평온하게 해주고 있다. 어떤 종교도 이곳에서 활동이 가능한 곳이라고 한다.
광장을 둘러쌓고 있는 건물 중의 한 곳으로 들어가 보니 벽 한가운데 이 학교의 휘장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둥근 원 두 개로 되어있는 휘장의 바깥 큰 원에는 ‘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이라는 교명과 1891이라는 창설 연대가 쓰여 있었고 안쪽의 작은 원에는 독일어로 ‘DIE LUFT DER FREIHEIT WEHT(자유의 바람이 불어온다)’이라는 모토가 적혀 있었다. 왜 독일어로 적었을까? 이유를 알 수 없다. 서울대학교가 모토를 우리말로 쓰지 않고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라고 라틴어로 쓴 이유와 같은 것일까? 서울대학 것을 참고로 했는지 하버드대학교도 VERITAS(진리)라는 모토를 쓰고 예일대학교는 ‘LUX et VERITAS(빛과 진리)라는 라틴어를 모토를 쓴다. 미국대학들이 그들의 모토를 구태의연(舊態依然)하게 성경의 말씀을 라틴어로 옮겨 놓은 것인데 비해 역시 스텐포드는 고집스럽게 제 갈 길로 가는 모습 같아 박수를 보냈다.
저명졸업생들의 이름이 잔뜩 적힌 방이 있었다. 85명의 노벨상 수상자, 20명의 튜링상 수상자, 5명의 필즈상 수상자 이름이 있었다.
정관계에는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영국 총리 리시 수낙, 제93대 일본 내각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등의 이름이 보였다.
경제계는 74명의 억만장자가 이름이 있었고 그중에서 내가 아는 유명인사로는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전 마이크로소프 CEO : 스티브 발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