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울적하거나 고민에 쌓여 있을 때에는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아무 느낌이 없고 단지 괴로울 뿐이다. 반면 기분이 좋을 때에는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던 보잘것없는 것들도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모든 것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인데 명예와 이익에 대한 집착(욕심)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경쟁자나 가해자로 보인다. 그리고는 난 피해자인데 하면서 매우 힘들어한다.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방황하는 인생이 어찌 흰 구름과 파란 하늘, 그리고 이 추운 겨울의 하얀 설산을 올려다볼 여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인생이란 善한 곳을 향하고 바로 서서 그곳을 올려다보며 크게 기지개를 켜야 한다. 물론 기지개를 켠다 하여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만이라도 활짝 열어서 형통한 삶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제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답답한 나 아니 우리네 모습을 보게 된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여자아이가 거식증에 걸려서 음식물을 먹지를 못한다. 아니 정신이 먹는 것을 외면한다. 몸무게가 18K 정도다. 몸에 살은 없고 가죽만 입혀져 있다. 그러면서도 이 아이는 먹는 것을 거부한다. 먹지를 못하니 기운이 없어서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우울증에 합병증 등등 각종의 병을 몸에 가지고 산다. 거식증 환자의 자살률이 최고로 높다고 한다. 죽는 것보다 먹는 것이 더 힘들다.
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의사의 처방을 따라 반강제로 고침을 시작하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는 그 아이의 병은 과연 고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마음이 단단히 잠겼다. 누가 이 아이의 마음을 열 수 있으려나. 오은영의 답은 이렇다. 부모가 나서서 끊임없이 자식에게 향한 진솔한 사랑을 전해야 된다. 그래야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나 열 수 있다. 神보다도 더한 사랑을 남겨야 한다. 부모가 눈물을 흘린다. 저 눈물 속에는 무엇이 담겼으려나.
정하여져 있는 삶의 기한 속에서 누구나가 다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겠나. 예수가 과연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왔겠나. 깊은 고민에 빠져서 하루하루를 허우적 거린다. 삶에 정답이 없다. 만사형통의 복이 있나. 절대권력을 가진 조선 시대의 왕들이 과연 행복하였겠나. 독재자 김정은이는 행복해서 그 어린 딸을 데리고 사람을 죽이는 미사일을 보여 주었겠나. 검은돈은 정치를 하면서 지금껏 단돈 1원도 받지 않았다는 대장동 이재명은 행복하려나.
결국 사람이 그나마 하루를 살다가 가더라도 행복하게 살다가 갈 수 있는 길은 모두를 향한 열린 마음뿐이지만 사람은 이런 행복 갖기를 원하지 않으니 오늘도 나도 너도 누구도 다 거식증 환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한다. 이런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고 오늘도 창조주 神께서 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