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 대재(大哉)
생년 1735(영조 11)
졸년 ?(미상)
시대 조선후기
본관 온양(溫陽)
활동분야 문신
[문과] 영조(英祖) 47년(1771)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7위(37/74)
[진사] 영조(英祖) 38년(1762)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61위(91/100)
정원시(鄭元始)
1735년(영조 1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대재(大哉)이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증조부는 정수곤(鄭壽崑)이고, 조부는 정광겸(鄭光謙)이다. 부친 통훈대부(通訓大夫) 대구진관병마동첨절제사(大丘鎭管兵馬同僉節制使) 정창유(鄭昌兪)와 모친 낙창군(洛昌君) 이탱(李樘)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동생은 정형시(鄭亨始)이다. 부인은 윤원동(尹遠東)의 딸이다.
1762년(영조 38)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하였고, 1771년(영조 47)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3년(영조 49)에는 응제(應製)에 합격하여, 상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1776년(영조 52)에는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고, 1777년(정조 1)에는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 임명되었으며, 1779년(정조 3)에는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다. 1780년(정조 4)에는 사은사부사(謝恩使副使)에 천거되어, 중국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1781년(정조 5)에는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에 임명되어, 각 지역의 민심을 살피고, 폐단을 시정하도록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고, 1782년(정조 6)에는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