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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ha Argerich
말타 아르게리히는 194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러시아 출신 유대계 이민자인 조부모집안에서
태어난다. 3세때 피아노를 시작하고 5세부터 이태리 출신 피아니스트 빈센테 스칼라무짜에게 배우면서 두각을
나타내 8세때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으로 아르헨티나에서 데뷔를 한다.
1955년 오스트리아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관에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하여 빈 음악원
에서 프리드리히 굴다의 제자가 되고 그녀의 나이 16세때인 1957년 3주간 간격으로 있었던 쥬네브 국제
피아노콩쿨과 부조니 국제 피아노콩쿨에서 최연소 우승을 해 세계 음악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16세의 이른나이에 이미 세계적 콩쿨에서 우승을 한 그녀는 20세때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든다.
이때 부조니 콩쿨 심사위원이었던 미켈란젤리를 찾아가 제자가되고 슬럼프를 벗어나게 되는대
미켈란젤리가 가르쳐 준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책 읽는법,음식 만드는 법이었고 정작
피아노를 배우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때 미켈란젤리의 같은 문화생으로 있었던 마우리치오 폴리니와
당대의 최고의 신인 피아니스트로 쌍벽을 이룬다. 24세때인 1965년 쇼팽 국제피아노 콩쿨에서
심사위원 전원 일치의 우승을 차지하고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게된다.
그의 피아니즘은 섬세함과 폭발적인 강열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여류
피아니스트의 섬세함과 남성 피아니스트를 능가하는 강력한 양손의 타건은 폭넓은 레파투어를 만들어
내 국제 피아노콩쿨의 특성상 쇼팽 작품만을 연주해 극도의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쇼팽 콩쿨과 폭넓은
레퍼투어를 요구하는 부조니,쥬네브 콩쿨에서 우승을 한 유일한 여성 피아니스트로 남는다.
이런 그녀의 특징이 잘 나타낸 현상중 하나가 1980년 쇼팽콩쿨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그는 크로아티아 출신 이보 포고렐리치가 세번째 라운드에서 탈락하자 심사위원직을 항의하는 차원에서
사퇴한다. 쇼팽의 섬세함만을 유독 강조하고, 폴란드 자국 심사위원들이 넓게 포진하여 폭넓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피아니스트에게 불리한? 쇼팽콩쿨은 그동안 심사위원 사퇴같은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
"2010년 있었던 지난번 쇼팽콩쿨에서 차이콥스키 콩쿨 대상을 받고 현존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 중 가장 각광을
받고있는 다닐 트리포노프가 참가자들 중 4번째인(2위 두명)3위에 입상한다. 이런점들이 쇼팽 콩쿨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있다.
필자가 글을 쓰고있는 지금 바르샤바에서 열리고 있는 쇼팽 콩쿨에서 쥬네브,부조니 콩쿨우승자인 우리나라의
문지영이 참가를 포기를 했는지 첫번째 라운드 참가명단에 빠져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집중력과 섬세함이
뛰어난 문지영이 이번 콩쿨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많은 안타까움이 있다. 5년주기로 열리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고 지난 4월에 있었던 첫번 예선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를 보여주어 더욱 더 아쉬움뿐이다.
차이콥스키 국제콩쿨에서 3위를 차지하여 가능성을 보여주고 좋은연주를 하고있는 조성진에 많은 기대를 해본다."
![Lyda Che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encrypted-tbn1.gstatic.com%2Fimages%3Fq%3Dtbn%3AANd9GcR68PEghNGBQGeLmp0cCushDb6rkA86dM5Hx-XkZ5rTSRobSAZFcw)
Lyda Chen-Argerich
20세에 그의 첫째 딸인 리다 첸(현 비올라연주자)이 태어나고 그녀는 심각한 삶의 위기를 맞는다.
그녀의 첫번째 남편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중국계 로버트 첸이고 어린나이에 결혼과 첫딸의 출산은
의외로 심각한 혼란기를 겪게되어 연주생활에도 큰 슬럼프를 맞게 된다. 그녀가 택한 돌파구는
미켈란젤리라는 당대 거목 피아니스트의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비록 그에게 피아노의 기법과 음악의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특수한 피아니스트의 길을 선택한 연주자가 인생에서 지켜야 할 도리,음악을
대하는 태도,예술인으로써 자존심을 지키며 자신만의 삶을 완성시키는 자세등 그녀가 꼭 인생에 있어
갖춰야 할것들을 적시에 배우게된다.미켈란젤리 역시 당시 건강에 이상이 생겨 피아노연주를 할수없게
되자 고향에서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제자들을 받아드려 새로운 삶을 이룰때라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르게리히에게는 슬럼프를 벗어나는 가장 좋은 선택의 시간이었다고 보여진다.
슬럼프를 벗어나 다시 활력을 찾은 그는 1965년 쇼팽콩쿨에서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의 결과로 우승을
차지하고 당시 가장 바쁜 연주활동과 음원 출반을 한다. 당대에 젊은 거장 지휘자인 아바도와의 음원
작업과 연주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출중한 결과물이었다. 막힘이 없는 절정의 테크닉에 남성 피아니스트
들도 흉내내지 못하는 폭발적인 에너지, 섬세한 건반의 타건력, 폭넓고 크게 그려내는 음악, 여유를
동반한 고도의 집중력등은 연주인으로써, 세기의 피아니스트로써 당대 뿐만아니라 역대 세계 최상의
피아니스트라는 칭송을 받는다.
아바도와의 작업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등은 전설적인 음반으로 남아있고, 그의 두번째 남편인 스위스 출신 지휘자 샤를르 뒤투아와의 음반,
오이겐 요쿰, 리카르도 샤이와의 음원도 역사에 길이남을 훌륭한 작업이었다. 특히 전성기의 1980년
이전에는 어느 음악인들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최상의 많은 공연과 음원작업을 이루어내 세계
음악사에 큰 업적을 이루어낸 피아니스트로 존경 받는다.
1980년 이후부터는 독주회뿐만아니라 실내악 연주에 관심을 가지고 서서히 앙상블 연주를 하며
레파투어의 폭을 넓혀나간다. 귀돈 크렘머,넬슨 프레이레,가브리엘라 몬테로, 미샤 마에스키,
릴리아 찌벨스타인등과의 실내악 연주를 하면서 2002년 부터는 이태리 루가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Progetto Martha Argerich“ 음악제를 시작하여 후진양성에도 기여하고 2004년부터는
피아노 독주회를 완전히 접고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협연, 엄청난양의 실내악 연주만을 소화한다.
올해로 74세를 맞이한 아르게리히는 쇼팽 콩쿨등 세계적 피아노 콩쿨의 심사위원으로 각종 여름
음악제에서 교육자로 앙상블 연주자로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다.
Aufnahmen (Auszug)
franciscopa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