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종요(妙法蓮華經宗要) 將欲解釋此經. 略開六門分別. 初述大意. 次辨經宗, 三明詮用- 다음 해석에는 '명능전용(明能詮用)이라 함-. 四釋題名, 五顯敎攝, 六消文義.
장욕해석차경. 약개육문분별. 초술대의. 차변경종, 삼명전용. 사석제명, 오현교섭, 육소문의.이 경을 해석하고자 함은 대략 육문(六文)을 열어 풀이하기로 한다.
처음은 이 경의 대의를 서술하고 다음은 이 경의 종지(宗旨)를 가리고, 세 번째는 경문의 묘용(妙用)-해석에 '능전용(能詮用))'을 밝힌다 한 것은 곧 경문의 요의-을 밝히고, 네 째로는 이 경 제목의 명의(名義)를 해석하고, 다섯번째는 이 경이 어떤 교(敎)에 속하는 가를 드러내고, 여섯 번째는 경문(經文)을 풀이한다. 初述大意者. 妙法蓮華經者. 斯乃十方三世諸佛. 出世之大意. 九道四生. 咸入一道之弘門也. 文巧義深. 無妙不極. 辭敷理泰. 無法不宣. 文辭巧敷. 華而含實. 義理深泰. 實而帶權. 二深泰者. 無二無別也. 辭巧敷者. 開權示實也.
초술대의자. 묘법연화경자. 사내십방삼세제불. 출세지대의. 구도사생. 함입일도지홍문야. 문교의심. 무묘불극. 사부이태. 무법불선. 문사교부. 화이함실. 의리심태. 실이대권. 이심태자. 무이무별야. 사교부자. 개권시실야. 첫째, '이 경의 대의(大意)를 서술한다' 한 것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곳 시방(十方).삼세(三世)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신 큰 뜻이요, 구도(九道)사생(四生)이 다 부처되는 한길로 들어가는 넓은 문이다. 글이 교묘하고 뜻이 깊어 묘법(妙法)의 극치에 이르렀고, 말이 활짝 펴이고 이치가 탁 트여 법을 드러내지 않음이 없다. 글과 말이 교묘하고 활짝 피었으므로 꽃처럼 화려하면서 그 속에 열매를 품었으며, 뜻과 이치가 깊고 트였으므로 진실하면서 방편-'권(權)'은 곧 방편(方便)-을 함께 하였다.
이치가 깊고 트였다는 것은 둘-일승(一乘)뿐이라는 뜻-도 없고 다름-이승(二乘).삼승(三乘)을 가리킴-도 없음이요,
말이 교묘하고 활짝 피었다는 것은 방편문-삼승방편(三乘方便)-을 열어진실을 보임이다. 開權者. 開門外三車是權. 中途寶城是化. 樹下成道非始. 林問滅度非終. 示實者. 示□-'□'는 '사(四)'자(字)인 듯-生. 是吾子. 二乘皆當作佛. 算數不足量其命. 劫火不能燒其立- '입(立)'은 '토(土)'의 오자(誤字)임-. 是謂文辭之巧敷也. 言無二者. 唯一大事. 於佛知見. 開示悟入. 無上無異. 令知令證故. 言無別者. 三種平等. 諸乘諸身. 皆同一揆. 世間涅槃. 永離二際故. 是謂義理之深妙也. 斯則文理滅-'멸(滅)'은 '함(咸)'의 오자(誤字)인 듯-妙. 無非玄則. 離 之軌. 乃稱妙法. 權化開敷. 實菓泰彰. 無梁之美. 假喩蓮花.
개권자. 개문외삼차시권. 중도보성시화. 수하성도비시. 임문멸도비종. 시실자. 시□-'□'는 '사(四)'자(字)인 듯-생. 병시오자. 이승개당작불. 산수부족량기명. 겁화불능소기입- '입(立)'은 '토(土)'의 오자(誤字)임-. 시위문사지교부야. 언무이자. 유일대사. 어불지견. 개시오입. 무상무이. 영지령증고. 언무별자. 삼종평등. 제승제신. 개동일규. 세간열반. 영리이제고. 시위의이지심묘야. 사칙문이멸-'멸(滅)'은 '함(咸)'의 오자(誤字)인 듯-묘. 무비현칙. 이추지궤. 내칭묘법. 권화개부. 실과태창. 무량지미. 가유연화. '방편을 열었다' 한 것은, 만 밖의 세 수레(문외삼차(門外三車=법화경벽유품(法華經譬喩品)에 장자(長者)의 아기들이 불타는 집 안에서 작난하고 놀므로 그 아버지가 문 밖에 양차(羊車).녹차(鹿車).우차(牛車)를 배치하고 아기들에게 권하여 나와 타라고 함. 삼승(三乘)에 비유한 것)가 그것이요,
'중도의 보배성 (중도보성(中途寶城))은 그것이 환술이며, 나무아래-보리수아래-에서 도를 이룬 것이 비로소 성불이 아니며 숲아래서 열반에 든 것이 마지막이 아니다.
'진실을 보였다' 한 것은, 사생(四生)이 다 내 아들이요, 이승(二乘)이 마땅히 부처가 되며 산수로 그 수명을 헤아리지 못하고 겁화(劫火)가 능히 그 국토를 불사르지 못한다 한 것은 이것을 글과 말이 교묘하다는 것이다.
'둘이 없다 한 것은, 오직 한 가지 큰 일-일대사(一大事)인연을 위하여 세상에 출현-은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 보이고 깨쳐 들어오게 하여 (개(開). 시(示). 오(悟). 입(入)) 더 없고 다름이 없이 알아 깨닫고 증득(證得)하게 하기 때문이다 -최상의 도에 깨쳐 들어가게 했다는 것-.
'다른이 없다' 한 것은 삼종(三種)이 평등하여 삼승(三乘)과 모든 불신(佛身)-대(大).소승(小乘)에서 보는 불신(佛身)-이 다 같은 법칙이며, 세간(世間)과 열반(涅槃)이 그 길이 두가지 경계를 여의었기 대문이니, 이것을 의리(義理)가 깊고 묘하다 한 것이다. 이것은 문리(文理)가 다 묘하여 현묘(玄妙)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묘법(妙法)'이라 일컫는다. 방편의 꽃이 피어나자 진실한 열매(일승(一乘))가 드러난다. 물듦이 없는 아름다움을 연꽃에 비유했다. 然. 妙法妙絶. 何三何一. 至久('구(久)'는 '인(人)' 자(字)가 옳음)至冥. 誰短誰長. 玆□□總('자(玆)' 이하(以下)는 별본서문(別本序文)에 '자처황홀(玆處 惚)'로 됨). 人之不易. 諸子瀾漫. 出之良難. □('어(於)'자(字) 보인(輔人) 가(可)함)是如來. 引之□('이(以)'자(字) 보인(補人)이 가(可)함)權. 羨□('양(羊)' 보인(補人)이 가(可)함)車於鹿苑. 示有□(대(待)?)之 身. 駕白牛於鷲岳. 顯無限之長命. 斯 □(借) 一以破三. 三除一捨. 假□(脩)以□(斥)短. 短息而□(脩)忘. 是法不可示. 言辭相寂滅. 蕩然靡據. 肅(蕭)焉離寄. 不知何以言之. 强稱妙法蓮花. 是以. 分座令聞之者. 當受輪王. 釋梵之座. 逕(經)耳一句之人. 得無上普提之記. 況平受持演說之福. 豈可思議所量平哉. 擧斯大意. 以標題目. 故言妙法蓮華經也. 연. 묘법묘절. 하삼하일. 지구('구(久)'는 '인(人)' 자(字)가 옳음)지명. 유단유장. 자□□총('자(玆)' 이하(以下)는 별본서문(別本序文)에 '자처황홀(玆處 惚)'로 된). 인지불이. 제자난만. 출지양난. □('어(於)'자(字) 보인(輔人) 가(可)함)시여래. 인지□('이(以)'자(字) 보인(補人)이 가(可)함)권. 선□('양(羊)' 보인(補人)이 가(可)함)차어녹원. 시유□(대(待)?)지추신. 가백우어취악. 현무한지장명. 사내□(차) 일이파삼. 삼제일사. 가□(수)이□(척)단. 단식이□(수)망. 시법불가시. 언사상숙멸. 탕연미거. 숙(소)언이기. 부지하이언지. 강칭묘법연화. 시이. 분좌령문지자. 당수륜왕. 석범지좌. 경(경)이일구지인. 병득무상보제지기. 황평수지연설지복. 기가사의소량평재. 거사대의. 이표제목. 고언묘법연화경야. 그러나 묘법(妙法)의 묘(妙)는 절대적인 것이니, 무엇을 삼(三)이니 일(一)이니-삼승(三乘)이니 일승(一乘)이니 할 것이 없다.-하며, 지인(至人)-부처님-이 본각(本覺)에 명합(冥合)함에 누가 짧고 누가 길다 하겠는가-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 여래(如來)가 과거 구원겁전(久遠劫前)에 성불(成佛)했으므로 그 수량(壽量)이 무량(無量)하다 하였으니, 본각(本覺)에 합하고 보면 누구나 무량수(無量壽)이다. 누구는 짧고 누구는 길다 하겠는가?-. 이 불지견(佛知見)은 황홀하여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어린 아기는 철을 몰라서 나오기가-화택(火宅)에서 나오기가- 실로 어렵다. 이에 여래(如來)는 방편으로 인도하여 양차(羊車)-소승(小乘)에 비함)를 녹야원(鹿野苑)(부처님이 되어 처음 오비구(五比丘)를 위하여 녹야원(鹿野苑)에서 사체법(四諦法)을 설한 곳-에서 굴리게 하였고, 상득적(相得的)인 화신(化身)을 나타내 보이어 백우차(白牛車)-일승법(一乘法)-를 영취산(靈鷲山)에서 몰게 할 적에 한량 없는 수명(壽命)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일(一)을 빌어사 삼(三)을 깨뜨림이니, 삼(三)을 제하면 일(一)도 놓아버리게 되며, 긴 것을 빌어 짧은 것을 물리치니-무한(無限)한 수명(壽命)을 보이어 짧은 수명(壽命)을 물리침) 짧음이 그침으로써 긴 것도 잊게 된다. 이 법은 보여줄 수 없으니 말의 상(相)이 적멸(寂滅)하여 텅 비어 걷잡을 것이 없고, 탁트이어 아무 것도 덧붙일 것이 없으니 무엇이라 이름지을 수 없으므로 구태여 '묘법연화(妙法蓮華)'라 일컬었다.
그러므로 자리를 나누어 같이 듣게(이경을) 하면 장차 전륜왕(轉輪王)과 제석(帝釋).범왕(梵王)의 자리를 얻게 되며, 한 글귀라도 귀에 거친 사람은 최상 보제(菩提)의 수기(授記)-장차 부처가 되리라는 증언-를 얻게 되나니, 하물며 받아 지니고 연설하는 복을 어찌 생각하고 헤아리겠는가? 이러한 대의(大意)를 들어서 이 경의 제목을 표시하므로 "묘법연화경"이라 하였다. 제이(第二)에 경'경의 종지(宗旨)를 가림'. 이 경은 광대(廣大)하고 매우 깊은 일승실상(一乘實相)으로 종지(宗旨)를 삼는다. 총설(總說)은 비록 그러나 그 가운데 구분하여 말하면, 일승실상(一乘實相)이 대략 두가지가 있으니 일은 '능승인(能乘人)-법(法)을 실천 수행하는 사람-이요, 이(二)는 '소승법(所乘法)'-'법화경(法華經)에서 설(說)한 법(法)-이다. 이 경에서 설한 '일승인(一乘人)'이란 삼승법(三乘法)을 수행하는 사람이나 네 가지 성문(聲聞)-사체법(四諦法)을 듣고 닦는 소승성문(小乘聲聞)에 수타원(須陀洹). 사다함(斯多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의 사종계위(四種階位)가 있음-과 삼계(三界)-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사생중생(四生衆生)이 아울러 일불승(一佛乘)을 탈 사람이며 다 불자(佛子)며 다 보살이니, 다 불성(佛性)이 있으므로 장차 부처의 지위를 잇기 때문이며, 내지 무성유정(無性有情)- 무성유정(無性有情)은 극히 악하여 불성(佛性)이 끊어져 없다고 함-도 또한 장차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 '보운경(寶雲經)'에 "보살은 발심(發心)할 적에 이렇게 생각한다. 일체 세계 가운데 슬기롭지 못한 중생으로 어리석고 귀먹고 벙어리어서 열반(涅槃)의 성분(性分)이 없어 신심을 내지 않는 자는 보살의 버림을 받을 것이니, 이런 중생을 내가 교화하여 마침내 도장(道場)에 앉아 최상의 보제(菩提)를 얻게 하리라. 이런 마음을 낼 적에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느니라." 하였다. 또 "보살이 성불할 적에 온갖 원이 만족하다"하였다. 이 경의 방편품(方便品)에 "삼세 모든 부처님이 다만 보살을 교화한다"하였고, 비유품(譬喩品)에는 "일체 중생이 다 내아들이라"하였으며, 또 "모든 법(法)이 본래부터 항상 적멸(寂滅)한 모습이라, 불자(佛子)가 도(道)를 행하여 마치면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리라"하였으니 이것이 즉 한 중생도 불자(佛子)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광대(廣大)"하다고 한다. 이 중생계가 곧 열반계(涅槃界)이다. 그러므로 '매우 깊다'고 한 것이다. 론(論)에서 "삼계상(三戒相)이란 중생계가 곧 열반계(涅槃界)이다"하였으니, 중생계를 여의지 않고 여래장(如來藏)-중생성(性) 가운데 여래(如來)가 갈무리해 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능히 일불승(一佛乘)을 타는 사람이라 이른다. 이 일승인(一乘人)의 탈 법(法)을 대략 말하자면 사(四)종이 있으니, 일승(一乘)의 리(理)와 일승(一乘)의 교(敎), 일승(一乘)의 인(因), 일승(一乘)의 과(果)가 그것이다.
일승(一乘)의 이(理)란 '일법계(一法界)'며 또한 '법신(法身)'이라 하며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한다. <살차니건자경(薩遮尼 子經)>에 "문수사리(文殊師利)가 부처님께 사뢰기를, '만일 삼승(三乘)의 차별성(差別性)이 없다면 어찌하여 여래(如來)께서 삼승법(三乘法)을 설하셨습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이 삼승(三乘)을 설(說)한 것은 지(地)-수행하여 가는 계위(階位)-의 차별을 보임이요, 승(乘)-삼승법(三乘法)-의 차별은 아니며, 인(人)-삼승근성(三乘根性)-의 차별을 설(說)할지언정 승(乘)의 차별은 아니다. 모든 부처님이 삼승(三乘)을 설(說)함은 적은 공덕(功德)을 보이어 많은 공덕(功德)을 알게 한 것이다.- 삼승법(三乘法)의 적은 공덕(功德)을 보이어 일승(一乘)으로 인도한 것- 불법(佛法) 가운데 승(乘)의 차별이 없으니 왜냐? 법계법(法界法)이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 "법계(法系)에는 분별이 없다. 그러므로 다른 승(乘)-삼승차별(三乘差別)이 없건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분별하여 三乘을 설한다" 하였으며 또 이 경에 "모든 부처님이 저 法의 구경실상(究經實相)-절대한 참 모습-을 아신다" 하였다. 론(論)에서 이것을 해석하기를, "실상(實相)이란 여래장(如來藏)을 가리킴이니 법신의 바탕으로서 변하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였다. 또 하문(下文)에, "같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법신의 체성은 모든 범부(凡夫).성문(聲聞).벽지불( 支佛)-연각(緣覺).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에 관하여 도(道)를 성취한 분)과 같아 평등하다. 법신(法身)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하였다. 요컨대 여래(如來)의 법신(法身)과 여래장성(如來藏性)은 일체 중생이 평등하게 소유한 것으로서 능히 일체를 운전하여 같이 본원(本原)에 돌아가나니, 이 도리(道理)로 말미암아 다른 승(乘)이 없다. 이 법(法)을 '일승성(一乘性)'이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일승리(一乘理)'라 한다. '일승교(一乘敎)'란 십방(十方).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처음의 성도(成道)로부터 열반(涅槃)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설(說)한 일체 언교(言敎)가 다 '일승교(一乘敎)'라 한다. 방편품(方便品)에는 "이 모든 부처님이 한량없는 방편(方便)과 갖가지 인연.비유.언사(言辭)로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법(法)을 연설한 것은 다 일불승(一佛乘)을 위해서이다. 이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법(法)을 듣고 마침내 다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게 된다. 이 교(敎)는 십방(十方).삼세(三世)에 두루 통하여 한량 없고 끝이 없으므로 '광대(廣大)'라 한다. 한마디 말과 한 구절과 일상(一相).일미(一味)가 다 불승(佛乘)이다. 그러므로 '매우깊다'고 한다. 이것을 '일승교(一乘敎)'라 한다. '일승인(一乘因)'이란 총설(總說)하면 둘이 있으니. 일(一)은 성인(性因)이요 이(二)는 작인(作因)이다. '성인(性因)'이란 모든 중생이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이 삼신(三身)-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과(果)의 인(因)이 되기 때문이다. 당불경보살품(當不輕菩薩品)에, "내가 너희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너희들은 다 장차 부처가 되리라"하였다. 論에서 해석하기를, "모든 중생이 다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결정적인 증상만(增上慢)-자기가 제일이며 더 배울것이 없다는 소승(小乘)-과 두가지 성문(聲聞)-성문(聲聞)으로서 공적(空寂)에 취입(趣入)하는 자와 대승(大乘)에서 물러나서 소승(小乘)이 된 자-은 근기(根機)가 익지 않았으므로 부처님이 수기(授記)-성불(成佛)의 증언(證言)-를 주지 않고 보살에게 수기(授記)를 주었으니, 보살에게 수기(授記)를 준 것은 방편으로 발심(發心)시키기 위해서이다. 이 경 뜻에 의하여 취적(趣寂)-일향(一向)히 적멸(寂滅)에 취입(趣入)하는 것-이승(二乘)과 무성유정(無性有情)도 다 불성(佛性)이 있어서 장차 성불(成佛)한다"는 것이다. '작인(作因)'이란 성인(聖人)이나 범부(凡夫)나 내도(內道)-불도(佛道)를 신행(信行)하는 자-나 외도(外道)나 도분(道分)-도(道)닦을 성분(性分)-. 복분(福分)-복(福)의 성분(性分)-의 일체 선근(善根)이 다 같이 최상의 보리에 이르는 것이다. 하문(下文)에, "사람이 혹 예배하거나, 다만 합장하거나, 내지 한 손을 들거나, 혹 조금 머리를 숙이거나, 혹은 산란심(散亂心)으로 탑묘(塔廟)안에 들어가 한번 '남무불(南無佛)'이라 부르더라도 다 성불(成佛)하리라"하고 내지 널리 설하였다. <본승경(本乘經)>에는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의 일체선(一切善이 유루(有漏)-생사(生死)에 윤회하는 것-의 과(果)를 받지 않고 오직 상주(常住)-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보리의 과보-의 과를 받는다"하였으며, <대비경(大悲經)>에 "부처님이 아난(阿難)에게 이르시기를, 만일 사람이 삼유(三有)-곧 삼계(三界)를 말함-의 과보(果報)를 받기를 즐기어 복을 닦기 위하여 보시(布施)와 나머지 선근(善根)을 닦으면서 내가 세세(世世)로 열반(涅槃)에 들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선근(善根)으로 열반(涅槃)에 들지 못한다는 이치는 있을 수 없다. 이 사람이 비록 열반(涅槃)을 즐겨 구하지 않더라도 그러나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善根)을 심었다면 나는 이 사람이 반드시 열반(涅槃)에 든다고 말하리라"고 하였다. <니건자경(尼建子經)> 일승품(一乘品)에 "부처님이 문수(文殊)에게 말씀하시되, 나는 불국(佛國)가운데 있는 승가(僧伽)와 니건자(尼乾子)-갖추어 '니건타보득자(尼乾陀若提子)'또는 '니건타도제불다라(尼乾陀 提佛多羅)'라고 하는데,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일(一)로서 불타시대(佛陀時代)자이나 교(敎)의 중흥자(中興者)로서 큰 세력(勢力)이 있던 외도(外道)임-등도 다 여래(如來)의 위신력(威神力)의 방편(方便)으로 이 모든 외도(外道)와 선남자(善男子) 등을 나타내 보인다. 비록 갖가지 다른 모습을 나타내지만 다 같이 불법(佛法)의 한 교량(橋梁)으로 건너게 되나니 다른 건널목이 없기 때문이니라"고 하였다. 이런 글을 감안하여 보면 불법(佛法)은 오승(五乘) -인천승(人天乘).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일불승(一佛乘)-의 모든 선근(善根)과 외도(外道)의 갖가지 다른 선근(善根), 이러한 일체가 모드 일승(一乘)으로 다 불법(佛法)에 의함이요, 다른 바탕이 없기 때문이다. <법화론(法華論)>에는 이 뜻을 드러내어 "어떤 것을 법(法)의 체(體)라 하는가? 이를테면 이치에 두가지 체(體)가 없으니, 두가지 체(體)가 없다함은 무량승(無量乘)이 다 일승(一乘)이기 때문이다. 하문(下文)에, "너희들이 소행(所行)이 이 보살도(菩薩道)라 한 것은 보제심(菩提心)을 발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발하는 것은 전에 닦은 선근(善根)이 없어지지 않고 뒤에 과(果)를 얻기 때문이다." 하였다. 이것은 다 종자(種子)의 최상의 뜻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또 발심(發心)한 선근(善根)을 들어 말함이요, 나머지 선(善)이 불과(佛果)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전에 인용한 글과 어긋나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말하면 범부(凡夫)와 성인(聖人)과 일체 중생과 내도(內道).외도(外道)일체의 선근(善根)이 다 불성(佛性)에서 나와서 다 같이 본원(本原)으로 돌아가나니, 이러한 본말(本末)은 오직 부처님만이 추궁(推窮)하신다. 이런 뜻에서 '광대(廣大).심심(甚深)하낟'고 한 것이니, 이것을 '일승인(一乘因)'이라 한다. '일승과(一乘果)'란 이종(二種)이 있으니, 본유과(本有果)와 시기과(始起果)-닦아서 얻은 결과-가 그것이다. '본유과(本有果)'란 법불보제(法佛菩提)-법신불(法身佛)의 본유(本有)한 보제과(菩提果)-를 말한 것이다. 수량품(壽量品)에 , "여래(如來)는 여실(如實)히 삼계(三界)의 참모습을 보되 생사(生死)와 물러서거나-보리심을 발한 뒤 도로 물러서는 것- 나오거나- 생사(生死)에서 벗어나오는 것- 하는 것이 없으며, 또한 세상에 있거나- 여래가 세상에 생존(生存)하거나- 열반(涅槃)에 드는 것도 없으며, 실(實)도 아니고 허(虛)도 아니며, 여(如)도 아니요 다름(이(異))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감안하건데 이 글은 일법계(一法界)에 나아가서 일과체(一果體)를 드러낸 것이다. 체(體)(과체(果體))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실(實)이 아니며, 체(體)가 없는 것도 아니므로 허(虛)도 아니며, 진체(眞諦)-세간(世間)을 뛰어난 제일(第一) 의체(義諦)-만도 아니므로 여(如)가 아니며, 그렇다고 속체(俗體)-세속적(世俗的)인 법(法)-마도 아니므로 다름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본승경(本乘經)>에, "과체(果諦)는 원만하여 덕(德)을 갖추지 않음이 없고, 이치가 두라하지 않음이 없으며, 이름도 엾고 형상도 없으며, 일체법(一切法)을 허용하지 않는다. 체(體)-과체(果體)-가 있는 것도 아니요 체(體)가 없는 것도 아니라"하여 널리 설(說)했다. 또"이체(二體)-유체(流體)와 무체(無體)- 밖에 홀로 뛰어나 둘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불보제(法佛菩提)의 과체(果體)를 밝힌 것이다. '시기과(始起果)'란 나머지 이신(二身)-보신(報身).화신(化身)-이니, 론(論)에 "보불(報佛)-보신불(報身佛)- 보제(菩提)는 십지행(十地行)이 만족하여 상주(常住)의 열반증(涅槃證)을 얻었기 때문이다."하였고, 經에 "내가 실로 성불(成佛)한지는 한량 없고 끝없는 백(百).천(千).만(萬).억나유타(億那由他)-나유타는 만억 이상- 겁(劫)-범어(梵語)'칼파'는 오랜 시간, 세계(世界)가 이룩되었다가 없어지는 동안-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응(應).화(化)-중생의 인연따라 나타내 보이는 몸-보제(菩提)는 감응해 보일만한 데를 따라 그를 위하여 시현(示現)함이니, 석가궁(釋迦宮)에서 나와 나무아래서 성도(成道)한 부처님과 및 시방분신(十方分身)의 모든 부처를 말한 것이다. 보탑품(寶塔品)에서 널리 밝힌 것과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다 萬行을 닦으면 다 같이 이와 같은 불보제과(佛菩提果)를 얻게 되나니 이것을 '일승과(一乘果)'라 이른다. 방편품(方便品)에 舍利弗아 알겠는가? 내가 본디 서원(誓願)을 세우기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같이 다름없게 하리라 하였나니, 나의 옛적 원한 바와 같이 이제 이미 만족하였으니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다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리라"하였다. 감안 하건데 이 글은 바로 여래(如來)의 소원이 만족함을 밝힌 것이다. 그 까닭은 삼세(三世)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마땅히 제도 받을 자는 다 불도(佛道)를 얻게 하였기 때문이다. <보운경(寶雲經)>에 "비유컨대 기름 사발이 이미 가득 차게 되면 단 한 방울을 투입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듯이 보살이 성불(成佛)함에 있어서 온갖 원(願)이 다 만족한 것도 이러하여 다시 티끌만한 원(願)도 모자람이 없다"하였고, 또 <대운밀장경(大雲密藏經)>에는 "대운밀장보살(大雲密藏菩薩)이 부처님께 사뢰기를, '바라옵건대 여래(如來)께서는 미래세(未來世)에 박복중생(薄福衆生)을 위하시와 깊고 넓은 큰 바다 수조삼매(水潮三昧)를 연설하소서'하자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선남자(善男子)여! 그런말을 하지 말라,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出現)하기 어렵고 이 <대운경(大雲經)>을 듣기도 어렵나니 어찌 치우쳐 미말중생(未末衆生)만을 위하겠는가? 나는 마땅히 삼세중생(三世衆生)을 두루 위하여 넓은 문을 열어 분별하리라" 하셨다. 또 <화엄경(華嚴經)>에 "여래(如來)가 법륜(法輪)을 굴리는 것은 삼세(三世)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이런 글에 의하면 모든 부처님이 처음 정각(正覺)을 성취하매 한 생각 동안에 삼세(三世)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한 중생도 무상보제(無上菩提)-최상의 정각(正覺)-를 이루지 않음이 없으니, 옛적 소원이 이미 만족했기 때문이다. 설사 한 사람이라도 보제(菩提)를 이루지 못하였으면 옛적 소원이 만족치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실로 다 제도되었더라도 가장자리가 없으며-보살의 본원력(本願力)으로 보면 그 원력(願力)속에서는 모든 중생이 다 제도를 받았지만 현실로 보면 다 제도되지 않았음- 비록 살제로 가장자리가 없지만, 제도되지 않음이 없다. -보살의 본원력(本願力) 속에서는 이미 다 제도되었음- 한량 없는 지력(智力)으로 한량 없는 중생ㅇ르 제도하기 때문이다. 이 경 하문(下文)에는' "내가 본디 보살도(菩薩道)를 닦음으로부터 이룬 수명(壽命)-이룬바 수명(壽命)이란 이미 성불(成佛)한 수명(壽命)-은 이제도 만족치 않거니와 다시 위의 수(數)보다 갑절이나 되느니라"-보살도를 닦던 기간보다 갑절이나 된다는 뜻-하였다. 론(論)에서 이것을 해석해 이르기를, "내가 본디 보살도(菩薩道)를 닦음으로부터 지금도 아직 차지 않았다."한 것은 본원(本願)이기 때문이다. -이미 성불(成佛)했지만, 원(願)이 오히려 차지 않음- 중생계(衆生界)가 다 하지 않으면 願이 끝나지 않기 때문에 차지 않았다 함이요, 보제(菩提)가 만족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이룬 수명(壽命)이 다시 위의 수(數)보다 갑절이나 된다 한 것은 여래(如來)의 항상된 수명(壽命)의 무량(無量)함을 시현(示現)함이니, 위의 수량(數量)-보살도를 닦는 겁수(劫數)-보다 많이 지나가서 수로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 론(論)의 뜻은 이제 중생(衆生)을 다 제도하지 못하면 이때에 본원(本願)도 차지 못함을 밝힘이요, 보제(菩提)가 이미 찾는데 본원(本願)이 차지 않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또한 보제(菩提)가 이미 찾는데 본원(本願)이 차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며 또한 본원(本願)이 차지 않았는데 불법(佛法)이 이미 족(足)하다는 것도 아니다. <화엄경(華嚴經)>에 "일체 중생이 보제(菩提)를 이루지 못한다면 불법(佛法)이 족(足)하지 않고 본원(本願)이 차지 않는다"하였으니, 원(願)과 보제(菩提)가 함께 차지 않으면 그만이려니와 차면 같이 차야 한다. 이것을 '일승과(一乘果)'라 이른다. 합하여 말하면, 이(理).교(敎).인(因).과(果) 이 사법(四法)이 서로 호응(呼應)하여 다 같이 한 사람을 운반하여 살바야(薩婆若)-'살바야'는 일체지(一切智) 곧 불지(佛智)임-에 이르기 때문에 이 네가지를 '일승법(一乘法)'이라 한다. 마치 네 필의 말이 서로 힘을 모아 한 수레를 운전하므로 네 필의 말을 '일승(一乘)이라 하는 것과 같다. 이 일승법(一乘法)의 도리(道理)도 그러하다. 묻기를 "교(敎).리(理)와 인(因)이 같이 중생(衆生)을 운반하여 살바야(薩婆若)에 이른다 한 것은 그러하려니와, 果는 이미 구경처(究竟處)-살바야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삼(三)-리(理).교(敎).인(因)의 삼(三)-과 같이 중생을 운반한다 하는가?" 이(二)는 당과보불(當果報佛)-당래(當來)의 과(果)로 얻을 보신불(報身佛)-이 모든 응신(應身)-중생의 인연에 응하여 몸을 타나내는 것-과 화신(化身)-위의 응신(應身)과 같이 화현(化現)하는 몸-이 지금의 중생을 교화하여 증진(增進)하게 하는 것이다. <대승경(大勝經)>에, "스스로 자신(自身)의 당과(當果)에 대하여 부처님이 마정설법(摩頂說法)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행함-범부(凡夫)의 몸으로서 당과(當果)의 불에 대하여 부처님의 자비(慈悲).원력(願力)으로 스스로 모든 가운데 마정설법(摩頂說法)하는 신비성(神秘性)-이 불사의(不思議)하다 하였다. 삼(三)은 이 경의 여섯곳에서 수기(授記)하기를, -여섯곳의 수기란 ③비유품 ④신해품(信解品) ⑥수기품 ⑧오백제자(五百弟子) 수기품 ⑨ 학무학인(學無學人)수기품 ⑩ 권지품(勸持品)에서 사부중(四部衆)의 수기를 준 것- "당내에 아누보제(阿 菩提)-최상정각(最上正覺)-를 얻으리라"하였다. 이 수기(授記)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경책하여 정진(精進)하므로 당과(當果)가 그에 속하며, 또한 저-당래(當來)의 과(果)-에 운반하기 때문이다. 하문(下文)에, "각기 모든 아들에게 일대차(一大車)를 주었다" 한 것이 그것이다. 사(四)는 이 경 가운데 일체종지(一切種智)-최상의 불지(佛智)를 말함-를 설(設)한 것이 미진(未盡)함이 없고 온갖 덕(德)을 다 갖추었으니 일체중생이 다 같이 이 불과(佛果)에 이르게 된다. 중생이 이 경의 교리(敎理)로 말미암아 발심(發心)하고 정진(精進)하여 사십심(四十心)-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십지(十地)-을 거쳐서 신통(神通)을 운용하여 사생류(四生類)-난(卵).태(胎).습(濕).화(化)의 사생(四生)-로 화(化)하므로 중생이 과승(果乘)-불승(佛乘)을 말함-을 탄다고 하였다. 삼승(三乘)이 능히 인지중생(因地衆生)-불과(佛果)에 이르기 전의 모든 중생-을 운반하나니, 아래 송(頌)-법화경(法華經)비유품(譬喩品)-에 "모든 아들이 이때에 기뻐 날뛰면서 이 보배 수레를 타고 사방에 노닌다 "-처음 양차(羊車).녹차(鹿車).우차(牛車)의 삼차(三車)를 주어 화택(火宅)에서 나오게 하고, 뒤에 백우(白牛)가 끄는 보배 수레를 준 것-하였다. 이 사의(四義)로 말미암아 과승(果乘)이 나머지 삼법(三法)-리(理).교(敎).인(因)-과 같이 한 사람을 운전한다. 사람마다 사법(四法)의 인연이 화합하므로 모든 변두리를 멀리 여의어 파괴할 수 없는 불도(佛道)를 성취하게 된다. 이것을 제하고 다시 이보다 나은 법(法)이 없다. 이것을 이름하여 '광대(廣大).심심(甚深)한 구경일승(究竟一乘)의 진실상(眞實相)' 이라 한다. 이 경의 종지(宗旨)는 대략 이러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