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郞公 永慕齋 改築 경과보고서
경과 보고에 앞서 지금까지 영모재(永慕齎)가 내려온 역사를 조금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① 택(鐸)자로부터 20대 祖考 通政大夫 吏曹正郎 仁자 權자인 성취옹(醒醉翁)이 강릉최씨 평장공과 함께 고려 말엽에 강릉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편안하게 지내라고 경포호 남쪽에 나라로부터 정자를 하사받아 관심정(觀心亭)이라 이름 짓고 노후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세월이 흘러가면서 관심정이라는 정자는 실종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고 고려 공민왕 당시 강릉 임영문 제작에도 참여 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82세의 壽를 다하면서 묘를 강릉 경포 증봉에 썼다는 기록만 있고 실전되어 찾을 길 없고 현재 포남동 153번지에 설단(設壇)하여 음력3월15일에 시제를 올리고 있다.
19대조 우정(遇禎), 18대조 윤(崙), 17대조 민행(敏行) 모두 내려오면서 묘소를 실전하고 16대조 성명(性命)은 실묘(實墓)로서 호는 신암(愼庵)으로 조산대부(朝散大夫)行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간성훈도와 봉직랑 본도학관을 지냈었다. 음력 3월 15일 시제를 올린다.
② 지금부터 85년전 임신년 단기 4265년(서기 1932년)에 포남동 산 156번지 경포여중(현 하슬라중)옆 동쪽 기슭에 선조들의 얼을 기리기 위하여 永慕齋를 세우고 落鄕祖 仁勸(醒醉翁)의 業績과 관심정 실정에 대한 애틋함과 性命(신암공)에 대한 업적을 기린 내용인데 14세손 창섭(昌燮)
글을 쓰고 13세손 병집(秉楫)께서 삼가 기록하였다.
간사에는 규섭(圭燮), 두섭, 응섭, 춘섭 어른이하고 감서(監筮)에는 병재(秉梓)어른이 담당하였다.
그 후 영모재는 동쪽 陰地에 세워진 관계로 많이 毁損되고 墓所와 거리도 있고 하여 정유년 가을 단기4290년(서기1957년)에 25년 만에 현 위치로 이전하여 重建하게 되었고 지금부터 59년 전이다. 당시 문중 종인들의 뜻과 春燮, 在德, 基鐸, 준택, 永達등 여러 어른들의 중의를 모아 현위치에 세우기로 하고 愼庵公(性命)의 遺志를 받들어 오래토록 奉養키로하고 세웠다.
영모재 중건기 글은 평장최씨 명원 최만희씨가 짓고 후손 호택(虎鐸)이가 글을 쓰고 간사에는 계섭(啓燮)께서 맡아 했다.
③ 재실(사우)관리는 그동안 여러분이 들고 나고 하였지만 현재까지는 우리 종인 전영섭씨가 재실관리와 벌초까지 해 왔다. 그런데 금년 3월10일 갑자기 몸도 불편한데다 서산에 있는 아들과 합치기로하고 이사 간다고 하니 당장 재산관리가 문제가 생겨 긴급 문중 임시총회를 2016,3.12일 청기와 한정식당에서 회의를 갖게 되었다.
회의 결과 여러 안이 있었으나 재실 상태도 기둥이 썩고 석가래도 부식되어 비가 샐 정도로 위험하여 다수안으로 수리(보수)하기로 결론을 보고 수리 견적을 내보기로 하였다.
두세 명의 업자를 불러 견적을 받았지만 광신공업사 대표 현영춘에게 낙찰되어 시행은 음력 3월15일 시제를 지내고 하기로 하였다.
(당시 참석자: 전재준, 전재풍, 전용택, 전성탁, 전현탁, 전찬택, 전근택, 전화택, 전기택, 전유택 )
견적내용은 재실15평으로 잡고 평당2,800,000원으로 42,000,000원, 폐기물 처리비는 별도 3,000,000원으로 합계 45,000,000원
4월22일(음3월16일) 광신공업사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으로 10,000,000원지불하고, 중도금 15,000,000원 잔금(작업 완료시)20,000,000원으로 5월말 작업완료와 동시에 지불한다는 약속으로 4월23일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서산에 내려가 아들과 합쳐 살겠다던 전영섭씨가 4월28일 올라와 도저히 타향객지에서 못살겠다고 하면서 하려고 하냐고 물어 마땅한 관리자를 찾아 주기로 한다고 하니 그냥 되살게 해 달라고 하여 그렇게 하라 승낙하였다.
④ 애당초 시작할 때는 協贊이나 支援없이 우리 예산으로만 하기로 하였는데 뜻밖에 河南宅(전선집)에서 전화가 와서 몸통은 큰댁에서하고 齋室備品이나 가벼운 것은 鏡浦 河南宅에서 하겠다고 해서 생각 끝에 비품할 것은 없고 앞에 바람막이로 샷씨 창문제작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서 업자보고 물어보니 할 수 있는 견적을 산출해보니 약 4,000,000원정도면 할 수 있다고 했다. 전선집씨에게 전화해 주었더니 하남댁 집안회의를 해서 연락이 온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전하집500,000원, 저동문중 1,000,000원, 전찬길1,000,000원, 전선집1,000,000원, 전유집1,000,000원 계4,500,000원이고, 또 一根之下 한 할아버지 子孫으로서 그냥 默認하고 있기는 困難하여 參考로 襄陽宅(전세영)에게 알려주었더니 그 즉시 答信이 와서 많이는 못하고 조금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1,000,000원이 송금되어왔다. 그래서 그 돈으로 정화조에서 배수공사를 쉽게 할 수 있었다.
⑤ 영모재 공사 내역
공사내용-팔작지붕, 함석기와, 철근기둥, 벽 외부판넬, 벽 내부 석고보드, 출입문 양쪽으로 제사상 설치하고 창문달기, 방2개 사이 밀창, 화장실, 보일러실, 싱크대, 옥내 전기시설, 작은방 출입문, 정화조, 샷시 창문(쌍다지), 정화조 하수구 설치, 영모재 현판수리, 주련 수리 및 색칠
예산규모
본재실공사 15*2,800,000원=42,000,000원
폐기물처리비 3,000,000원
샷시창문 4,000,000원
영모재 현판수리 200,000원
주련3개 수리 및 색칠 210,000원
정화조 및 하수구공사 1,000,000원
계 50,410,000원
집행내역
재실 공사비 45,000,000원
샷시창문 공사비 4,000,000원
정화조하수구 공사 1,000,000원
영모재현판, 주련수리비 410,000원
우편엽서, 경과보고 인쇄비 23,000원
계 50,433,000원
정산액
예산합계액(본예산+경포+양양) 50,500,000원
집행액 50,433,000원
집행잔액 67,000원
위와 같이 집행하였음을 보고 드립니다.
2016. 6. 재실개축총무 전찬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