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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멍뭉큥이님 '
둘이 분위기가 되게 다른 것 같아요. 뭔가 종인이는 귀엽다는 듯이 보는 것 같고, 백현이는 장난치는 것 같네요. 꼭 1화에서 나온 그대로를 묘사해주신 것 같아요. 표지가 되게 캐주얼스러워요!!! 로고도 색감이 너무 예쁘고 사진 대칭도 너무 예뻐서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루한 제 글에 예쁜 표지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
' 수니팬킥님 '
어머 이번에는 위에 표지랑 아예 느낌이 다르네요? 서로 싸우는 것 같아요ㅠㅠㅠㅠ 둘 다 분위기가 다운되어서 약간 이번화 분위기랑 비슷한 부분도 조금 있는 것 같아요! 늘 떨리고 말랑거리는 짝조 느낌만 보다가 이런 다크다크한 느낌으로 보니까 또 색다르네요? 예쁜 표지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
" 괜찮냐? "
어느 상황에서나 어울리지 않을 법한 말이 있다. 예를 들면, 방금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온 친구에게 놀러 가자며 귀찮은 재촉을 해대는 것과, 반 등수가 5등이나 넘게 하락한 동생 허리를 툭툭 찔러가며 라면을 끓여오라 시키는 것, 그것도 아니라면 며칠 새, 살이 더부룩하게 오른 친구에게 때아닌 돌직구를 날리는 것처럼 지금도 딱 그짝이었다. 괜찮냐, 말꼬리의 화살표가 애멎은 내게로 박혀왔다. 난 괜찮다. 정말 그렇다. 애써 꾹 참고 넘겼다. 천천히 고개를 들고 앞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난 정말 괜찮은데 김종인 넌?
그 옆으로 빠르게 사라져가는 인영을 눈에 담았다. 아, 예상이 어긋나지 않았다는 게 참 애석했다. 유난히도 밝은 갈색 머리를 가진 김효정이 익숙한 향기를 흘려가며 내 옆을 지나치기에 바빴다. 여전히 제 얼굴을 감추기에 바쁜 김종인은 그 뒷모습을 눈에 담지 않을 생각인가 보다. 그렇게 많이 좋아했던 여자애였으면서, 그렇게 날 아프게 했던 여자애였으면서.
짝사랑의 조건 다섯 번째 :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여자들에게서 자격지심을 느낀다.
" 괜찮냐. "
" 뭐가. "
" 김종인. "
" 내가 괜찮을 게 뭐 있어. 내가 차인 것도 아닌데. "
" 와, 존나 독하다 너. 좋아하는 남자잖아. "
" 내가 왜 독해?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건데. "
" 뭐? "
" 이제 김종인이 그 여자애 안 좋아할 거 아니야. "
" ……. "
" 뭐. "
" 여자애들 존나 무섭다 진짜……걔 우는 건 상관 없다 이거냐? "
흔히 하는 일종의 허세였다. 내가 어떻게 안 괜찮을 수가 있겠냐. 두 가지의 줄기가 나란히 기둥을 이루며 눈앞을 막아왔다. 하나는 말 그대로 이제 종인이가 그 여자아이를 안 좋아할 거라는 기쁨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심란함이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 단어로밖에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잔혹한 짝사랑이다. 기둥만 이루기에 급급하지, 죽었다 깨도 교점을 이루기는 힘든. 그런 잔혹한 짝사랑.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들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기막힌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변백현의 시선 따위는 차단한지 오래였다. 집에 가서 심란한 기분을 씻어낼 계획이다. 예를 들면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우울해있거나, 수지에게 오늘 일을 말하며 영양가 없는 허영심을 잔뜩 두르기 위한 일. 이제 김종인이 그 여자애 안 좋아할 거 아니냐, 넌 오늘 김종인하고 같이 게임도 했다. 이게 얼마나 가능성 있는 일이야, 곧 얼마 안 가서 사귈 거다. 내가 장담한다. 이런 흔한 말.
종알종알 내 귓가를 간질이는 놈의 말에도 난 애써 못 들은 척 무시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놈의 버스정류장은 왜 이렇게 멀리 위치해있는지 텁텁한 이곳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금 가방을 고쳐매고 조금 더 빠르게 속도를 높였다. 변백현 새끼가 또 어떤 말로 내 현실을 직시시켜줄지 모르는 일이었다.
" 야, ○○○. "
" 아, 안 놔? "
" 똑바로 말해봐, 네 생각만 한다 이거냐? 넌 조금이라도 가능성 열렸다고 좋아하겠지만 김종인도 너처럼 똑같이 짝사랑하던 새끼라고. 근데 이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
" 그럼 내가 뭐 같이 울기라도 해줘야 하냐? 내가 너만큼 김종인이랑 친한 친구야? 그것도 아니면 가족이야? 하다 못해 썸이라도 타고 있어? 네가 말한대로 그냥 짝사랑하는 사람이야. 근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 ……. "
" 나도 진짜 속상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
" ……야. "
" 아파, 놔. "
놈에게 손목을 잡힌 일만 벌써 세 번째였다. 욱신거리는 열기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냅다 버스 정류장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아, 정말 말로 형용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좋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애매한 기분. 웃자 하니 나쁜년이 되는 것 같고 울자 하니 너무 오버하는 것 같고. 김종인이라는 사람에게 있어 내가 위치해있는 거리가 딱 이만큼인 것 같았다. 너무 멀지도 않고, 또 너무 가깝지도 않은. 언제나 난 그의 곁에 있지만 그는 내 존재를 모르는. 애매하고도 애잔한 거리. 한 끗 차이로 희비가 갈리는 거리.
수지에게 전화부터 하자는 내 계획이 보기 좋게 엇갈려나가고 있었다. 그럴만한 정신도 없었다. 놈이 그렇게 울고 있는 모습에 희열이 느껴지기보단, 초라한 내 상황이 더 부각되어 나타나는 것 같았다. 꼭 미래의 내 모습 같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김종인에게 고백과 동시에 차인 후, 아주 잘근잘근 조각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나를 보다니. 오버도 이런 상오버가 없지만.
" 좋은 거 아니야? 이제 김종인이 그 여자애 안 좋아한다는 거잖아. "
" 좋아해야 하는 거야? "
" 그럼 이제 너랑 더 자주 만나겠네, 방해꾼 없어졌으니까. "
방해꾼, 친구는 늘 내 편이었다. 정작 김종인과 김효정 사이에 방해꾼은 내가 분명한데도 친구는 늘 내 편을 들어주곤 했었다. 계속해서 내게 희망만 심어주는 친구에게 그럴 리 없다며 반복적으로 고개만 흔들어댔다. 할 수 있는 부정은 미리 다 해놔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개쪽을 당할 때 조금이라도 쪽팔림을 면하지. 분주히 움직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느긋하게 음악책을 팔뚝 사이에 꼈다. 어쩔 땐 너무 현실적인 조언만 쏙쏙 골라해 주는 보미가 그렇게도 밉더만, 오늘은 그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너무 긍정적인 배수지 말만 들어서 그런가.
" 음악이야, 가자. "
" 아, ○○○ 가기 전에 화장실 좀 들리자. "
" 아, 그래. 그럼 너 화장실 갈 때 나 거울 좀 봐야겠다. "
" 나도 거울 보러 갈 건데? "
" ……. "
" 화장 고치러 가는 건데? "
존나 딱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제대로 된 의사소통 하나 안 통하는 친구와 말하는 그런 기분. 제 얼굴만 한 파우치를 들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내게 팔짱을 끼는 배수지였다. 입꼬리만 실룩거리며 띄꺼움을 표현했다. 그래 봤자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만. 아, 윤보미 보고 싶다. 그럼 쉬는 시간마다 화장 고치러 화장실같이 안 가줘도 되는데.
" 내 말 믿으라니까? 야, 이거 존나 기회야 기회. "
" 또 무슨 기회. "
" 아, 이럴 때 김종인이랑 친해지면 되는 거지. 너 변백현이랑도 친하잖아? 그걸 이용하는 거지. "
" 그게 무슨 친한 거야, 그거 그냥 일방적으로……. "
" 어어, 야 잠깐만. 나 얼굴 좀 봐줘. 아이라인 다시 안 그려도 되겠지? "
배수지는 눈이 없나 싶었다. 대문짝만 한 거울을 눈앞에 두고 내게 제 화장 수정 문제를 물어보는 이유가 뭘까. 나라고 화장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었지만 배수지는 거의 화장 중독 수준이었다.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수정이라니. 내가 보기엔 아침이랑 비교해도 달라진 것 하나 없는데. 그럴 때마다 배수지가 하는 변명은 딱 하나였지만.
" 이 비비가 지속력이 너무 없더라고, 새로 사야겠어 그치? "
응, 맞아 네 비비가 존나 이상한가 봐. 그냥 눈 감고 속아주는 척하자 했다. 그래도 바보 같은 친구의 짝사랑을 위해 같이 PC방도 가주고, 제 일인 것처럼 조언도 해주고. 딱 그거였다. 친구들이 나 같은 친구를 둔 것과 같이 나도 골치 아픈 친구 하나 뒀다는 셈 치고. 뻘쭘한 손가락 사이만 죽어라 꼼지락댔다. 이젠 아예 숨까지 먹어가며 비비를 덧칠하고 있는 수지만 흘깃 쳐다보며 머쓱한 잔미소를 토했다.
" 야,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그 여자애 존나 이상하지않아? "
" 누구? "
" 그 효정이라는 애, 그때 등교했을 때 변백현이랑 김종인이랑 같이 왔었잖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등교는 왜 같이하고……그래 맞다, 영화도 같이 봤다며? 그리고 PC방에서도 존나 웃으면서 나가더만. "
" ……. "
" 김종인 어장당한 거 아니냐? "
" 어장? "
" 아니면 뭐야, 할 거 다하고 분위기 좋아지니까 발 빼는 거랑 뭐가 다르냐? "
" ……. "
" 너만 기분 존나 나빠진 거지. "
" ……. "
" 그냥 김효정 그 미친년 하나 이겼다고 생각……. "
" 미친년? "
" 아, 시발! "
" 너네 나 알아?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이 뒤에서 왜 내 욕을 해? "
평균적이었던 눈이 일시적으로 커졌다. 예쁘게 자란 갈색 머리, 익숙한 향기, 머리끝을 지끈거리게 만드는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도……미친, 하고 속에서 짧은 욕이 일렁였다. 김효정이었다. 잔잔하게 조용해서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안에서 화장이라도 고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아. 아무 일 없이 규칙적으로 잘만 뛰던 심장이 위급함을 느낀 건지 경고음을 내며 방향을 빠르게 전향했다. 헉하고 흉한 헛기침이 튀어나왔다. 나로선 위기를 넘길만한 능력이 없다. 숨기만 급급하고, 피하기만 능해서 이런 일을 겪기에는 처음이었다. 하필이면 오늘 심한 감기에 걸렸다며 학교에 나오지 못한 보미가 미치도록 급하게 보고 싶었다.
" 너 저번에 변백현이랑 같이 있었던 애 아니야? 아, 난 변백현이 하도 친하게 인사해서 걔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김종인을 좋아하는 거였네. 그래서 내가 꼴보기 싫었던 거고? 그래서 이렇게 찌질하게 뒤에서 욕하는 거고? "
" 우리가 근거 없이 욕했어? 네가 오해받게 행동하고 쏙 빠져버리니까 하는 행동이 어장같아서 그런 거지. "
" 내가 너한테 물어봤어? 나 얘한테 물어봤거든? "
" ……아, 그 김효정. "
" 와, 김종인이 나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냥 질투나서 어장이라고 생각한 거야? 존나 어이없어서 진짜. "
" ……. "
" 물어보면 될 거 아니야, 내가 어장한 건지 아닌지. "
김효정의 불쾌한 표정이 내게서 다른 곳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그제야 김효정이 향하려는 곳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짜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눈만 마주하며 쳐다보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복도로 튀어나가는 수지와 나였다. 김효정이 김종인에게 간다면 이 잔혹한 짝사랑의 꼬리는 잘려버리는 것이다.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앞반으로 진격하는 앞사람의 어깨부터 냅다 잡고 봤다. 숨통을 조일만 한 위기가 다가오면 없던 용기도 생긴다던데, 지금이 딱 그짝이었다.
족제비 같은 눈으로 양껏 나를 흘기는 그 시선에 진득한 호흡이 부르텄다.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이걸 어떻게 해명하지. 잘못한 건 우리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욕부터 하는 건 나쁜 거다. 그래, 그건 인정하겠는데 그걸 어떻게 해명하냐 이거였다.
" 김효정 잠깐만! 아아, 진짜 잠깐만! "
" 어장했는지 안 했는지 직접 물어보면 될 거 아니야! "
" 네가 어장했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그랬던 거 아닐까하고 생각한 거야, 응? "
" 너 나랑 친하냐고, 알지도 못하면서 왜 찌질하게 뒤에서 뒷담인데? 김종인 여친도 아닌 게 어디서 내 욕이야. 네가 김종인이랑 썸을 탔어 뭘 했어, 존나 사람 한 순간에 나쁜년만드네. 지가 못난 거면서 왜 죄없는 사람한테 화풀이야? "
" 뭐? "
" 김종인이 나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너 김종인 좋……. "
" 야, 사람 말 듣지도 않고 나쁜년 만드는 건 너야. "
" 와, 존나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너 혼자 자격지심느껴서 애꿎은 나한테 지랄하면 안 되지. "
" 야, ○○○이 너한테 욕했어? 너 어장한 거라고 한 건 나야, 제대로 듣고나 말해. "
" 불쌍한 친구 자격지심 안타까워서 편들어준 거겠지. "
" ……시발, 말 진짜. "
" 네가 이러니까 짝사랑을 하는 거야. 평생 짝사랑해봐, 김종인이 너 좋아할……. "
" 야, 너 진짜 입 안 다물어? "
" 아, ○○○ 잠깐만 왜그래, 여기 복도라고! "
" 저게 말을 존나 못돼쳐먹게 하잖아! "
" 아, 복도라고! "
" 내가 너한테 쌍욕을 했어 뭘했어? 그래, 말그대로 자격지심 있어서 그랬다고 쳐. 그래서 우리가 네 이야기를 안 좋게 하고 다녔냐? 그냥 그런 거 아닐까 하고 생각도 못 해? 아, 그냥 짝사랑하는 사람은 생각도 못 해? 그렇게 위안도 못 해? 내가 너한테 허락받고 그걸 해야 하냐? "
" 자격지심 맞네. "
" ……아, 말 존나 안 통하네 진짜? "
친구끼리는 닮는다더니, 내 성격도 점점 윤보미화 되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넘어가려 했다. 상황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건 나였다. 그걸 깨뜨린 건 밝은 머리색과는 다르게 꽉 막혀있는 김효정이었다. 답답함의 쓴 한숨이 길게 늘어졌다. 목울대로 차오르는 거친 호흡에 반복적으로 손부채질을 하며 두 눈을 지긋이 감아내렸다. 아, 진짜 더럽게 못됐다. 성격 한번 더럽게 꼬였구나.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사람을 깎아내릴 수 있을까 싶었다. 변백현이 김효정을 그토록 부정적으로 언급했던 이유가 미치도록 공감됐다. 단지 김종인을 짝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김효정은 나를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깔보며 무시했다.
동등한 위치였다. 똑같은 여자였고, 똑같은 나이였다. 무시받아야할 건 없다. 김종인에게는 한없는 약자일지라도 이곳에서는 그럴 이유 따위가 없었다. 물러터진 내 성격이 제대로 폭발한 거였다. 다름이 아니라 내 단점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김효정과 모든 것이 같지만, 난 단지 놈을 짝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거. 그게 단점이었다. 사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자격지심이 맞았다. 나보다 얼굴도 예뻐 보이고, 몸매도 좋아 보이는 사람에게 자격지심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지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발악해봤자 이미 반은 내가 지고 들어간다는 것.
거만한 표정의 김효정이 크게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빠르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단점을 찔러버려 무심결에 튀어나온 욱이 금세 수그라 들어버렸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긴장의 끈을 조마조마하게 잡고 있었다. 앙칼진 목소리가 귀 주변에 강하게 꽂혀 들어왔다. 그에 자연스럽게 오만상이 찌푸려졌다. 뒤이어 내 머리 위로 올라오는 손에 느리게 움직였던 내 시공간이 점차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아, 하고 고통의 신음이 튀어나왔다. 내 일은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복도 한복판에서 머리채를 잡히고 있는 꼴이라니……김종인 하나 때문에 가지가지 한다, 정말.
" 아, 놔라 진짜. "
" 사과부터 해, 그래야 놓아주지. "
" 나도 손 있어, 싸가지 없는 년아! "
" 아, 시발 안 놔? "
" 누가 먼저 잡았는데! "
" 누가 먼저 뒷담깠는데! "
" 넌 그렇게 피해망상 쩔어서 어떻게 사냐? 존나 망상증 걸렸나 봐? "
" 그럼 넌 자격지심에 쩔어서 그렇게 뒤에서 내 이야기 하냐? "
" 다 네가 과대망상증이라는 이야기 아니야? "
" 아아, 아 시발! "
" 헐 대박, 야 싸움 났다. "
" 여자냐? 야, 미친 여자 싸움 났다! "
" 여자다, 여자! 김효정이랑 ○○○! "
복도 사이사이마다 김효정과 내 이름이 잔인하게 울려 퍼졌다. 아, 진짜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옆에 있던 수지는 안절부절못하며 김효정의 손을 떼기에 온 전력을 다했다. 몸은 약해 보여서 힘 하나 없을 것 같았는데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생각했다. 두피 끝을 당겨오는 비릿한 고통에 눈물이 질끔 나올뻔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허세란 허세는 다 부려놓고 정작 힘 하나 못 쓰는 내 행세가 초라했다. 옆에서 우악스런 비명을 질러대는 수지의 목소리도 멍하게 들려왔다. 딱, 내 고등학생 인생에 끝을 보는 것 같았다.
" 야, 싸움 났……. "
" ……. "
" ……다며. "
" 야, 누구랑 누구? "
" 어, 야 김종인……야, 그게. "
" 응? "
" ○○○이랑 김효정인데? "
" 응? "
그 혼잡한 상황에서도 튀는 목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자마자 동시에 굳어지는 내 표정이었다. 멍한 얼굴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놈들의 얼굴에 온 수치심이 다 치솟았다. 아, 시발 진짜 죽었다. 머리카락 뭉텅이를 잡고 있던 내 손이 일순간 떨어졌다. 미친년처럼 제정신을 잃고 본능에 충실했던 암사자들의 싸움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어서였다. 김종인 앞이다. 김효정 넌 죽었다 깨도 상관없겠지만, 난 멀쩡히 숨 쉬고 있는 상황에서도 죽어라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김종인 앞이다.
둥글게 말아 쥐고 있던 손을 떼고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주변은 구경꾼들 투성이었다. 옆에선 거의 울기 직전으로 내 이름을 불러대는 수지가 있었다. 다시금 느릿하게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변백현과, 김종인도 보였다. 그제야 정신이 딱 들었다. 나 지금 뭐 한 거지. 그 사소한 자격지심 하나에 돌아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다. 누구보다 예쁜 김효정에게 단순히 질투가 나서, 단순히 자격지심 때문에 이런 못할 짓을 한 건가. 이제 김종인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자기가 좋아했던 여자를 동물원 원숭이로 만들어버린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참담한 내 미래에 안개가 꼈다. 두려움에 두 눈부터 감고 봤다.
" 니 거기서 뭐하냐? "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입을 여는 변백현의 목소리에 멀쩡하게 박혀있던 핀트가 어긋났다. 윙윙, 방관자들의 웅성거림이 머릿속을 엉망으로 흩어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격지심……이러면 내가 정말 나쁜 년이 돼버리지 않느냐. 아직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신하기에는 어려운 놈이 좋아하던 여자가 눈앞에 있고, 그 여자는 내게 사과를 하라며 달려들고 있고, 난 머저리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하고.
눈물 끝이 핑 하고 돌았다. 내가 너무 비참해서였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까지 성질을 낼 필요 없는 일인데도 상황을 크게 만든 거 보면 정말 김효정에게 큰 자격지심이라도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거였다. 김효정이 김종인을 어장하던 말던 무슨 상관이냐 이거였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는데, 그래 봤자 김종인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희망이었다. 게임 한번 같이했다고 호의적인 길이 열려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착각한 거였다.
내가 너무 초라했다. 이기지도 못하는 싸움에 냅다 뛰어든 게 단순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했다. 김종인이 날 미워할 게 뻔하다. 두려움은 나를 도망치게 만들었다. 두 놈들이 이곳에 와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김효정은 끝까지 내 머리채를 잡고 늘어졌다. 머리카락이 엉킨 채 김효정의 악력에 속수무책으로 끌렸다. 아, 정말 싫었다. 너무 수치스러웠다. 이제 맘 놓고 김종인을 좋아하는 일도 못할 것 같았다.
" 그만해라, "
" ……. "
두피가 찢길 것 같던 고통이 일순간 사라졌다. 그건 보다 못해 우리를 말리러 온 변백현과 김종인 덕분이었다. 김효정의 손목을 잡고서 나를 응시하는 변백현이 있었고, 저릴 만큼 낮은 톤으로 김효정만 바라보고 있는 김종인이 있었다. 수지는 괜찮냐며 나를 부둥켜 앉았다. 혼미해졌다. 역시 김종인은 아니구나. 둘 다 김효정한테 가는 구나. 그러나 아예 눈이 뒤집힌 김효정은 제 손목을 잡고 있는 변백현을 밀쳐서라도 내게 사과를 받고 싶은 모양이었다. 암사자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있던 팔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렸다. 내가 예상하고 있는 사람인가 싶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 하고 의아한 말이 튀어나왔다. 변백현은 여전히 김효정의 양쪽 손목을 잡고서 미쳤냐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 음성이 내 귓가를 찔러왔다.
" 그만해라, 김효정. 애들 다보는데 뭐하냐. "
" ……. "
" 정신차려라. "
말꼬리를 잇기도 전에 김종인은 우악스럽게 내 손목을 잡고 복도 끝으로 걷기 시작했다. 방관자들의 수군거림은 잔잔하게 바뀌어갔다. 그건 아마 비밀스러운 귓속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사람도, 나를 끌고 나온 사람도 모두 믿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다시 한번 되새겼다. 모두 김종인이다. 이 모든 게……정말 김종인이었다.
짝사랑의 조건 다섯 번째 :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도 모두 다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 다만, 나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할 뿐.
곧 다 밝혀질거예요.
ㅠㅠㅠㅠㅠ뭐야
뭐지?????
헐 헐??
어머... 옵항... 박력이쪙
?????
뭐야...설레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12 11:20
모야
헐?!?!?!
뭐야
모르겟는데 말투 넘 설레ㅜ.ㅜ
진짜 법칙들 잘 봅아내셨어요ㅜㅜㅜ
짝사랑의 조건 몇 번째:~~ 너무 좋은거 같아요... 완전 공감되고.. 걍 너뮤 조아여!!
헐 뭐야뭐야
머죠??ㅋㅋ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30 18:0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31 01:21
와 무섭다. 그러다가 아주 사람 잡아먹겠다.
예?? 뭐가 밝혀져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17 10:3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18 01:05
헐 뭐야
헐 종인이 뭐죠!?!?!
허걱 떨려요 ㅠ
종인이 여주끌고 가서 뭐할려고..수지 진짜 미안하겠다..그나저나 법칙들이 너무 잘맞아서 마음 아파요ㅠㅠㅠㅠ뭐가 밝혀질까요..
뭐죠? 뭡니까? 뭐길래 백현이가 아니라 종인이죠?
싸우지마 얘드라....무섭 ㅠㅠㅠㅠㅠ
ㅋㅋㅋㅋ꺄♡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5 21:04
뭐지....종인이..
설렌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야 ,, 뭐에요 ,, 종인아 ,,
헐 대박이담 ><
엥???????뭐지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16 01:37
효정이 인성이 거어어의 세계적 악녀급인듯 하네요..
여주짝사랑하는거너무마음아프다
효정이 인성갑갑 아 진짜 여주 너무 맴찢이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11.04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