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퇴계원교회(1961~1987년)
(1) 교회 조직과 새 출발
안식일학교로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던 퇴계원교회에 새로운 여명의 아침이 밝아왔다. 그것은 교회 조직에 대한 부푼 꿈이었다. 드디어 1961년 12월 16일 역사적인 날이 다가왔다. 1960년 11월에 박노선, 하두이 외 5명이 침례를 받음으로 교회가 면모를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한대회장 이여식 목사가 “안식일학교”에서 “퇴계원교회”로 승격하여 조직하였다. 초대 예식 담임으로 이창규 목사, 학생전도사 주한승(교적 1번) 장로가 부임하였다. 남집사로 심복래, 여집사는 김옥순, 교회서기는 박노선 형제를 세우고 봉사하게 하였다. 주한승 학생전도사는 충청농대를 졸업하였으며, 결혼한 상태(사모 서복희)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삼육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하였다. 삼육대학교 농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퇴계원교회 사택에 살면서 교회를 돌보았다.
1962년 12월에는 학생전도사 정희목 장로, 교회서기 손영진이 봉사하였다. 7월 14일에는 정동심 목사의 집례로 손영진, 김다남, 윤길우, 이순범, 장기순, 장권희, 박흥순, 성효선, 윤옥경, 김영희(교적 21번, 충청합회 안영택 은퇴목사 사모, 현 미국에 거주하는 김숙자와 김동호 목사 동생) 등 10명의 영혼이 지고석 목사의 집례로 새롭게 거듭났다. 1963년 7월 13일에는 이창규 목사의 집례로 박옥례, 유해숙, 김신덕 3명의 자매가 성도로 새 출발을 하였다. 11월 22일부터 29일까지 삼육신학원 신학과 4학년 공중전도반 대전도회가 “인간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실시되었다. 이때 전도대원은 14명으로 32명의 결심자를 내었으며, 고문 조병서 교수, 대장 김균, 서기 겸 회계 윤영성이었다. 12월에는 학생전도사 강정민 장로, 남집사 손영진, 여집사 장귀순 등이 헌신하였다. 예식목사와 학생전도사의 협력하는 선교활동 결과로 1962년부터 1985년까지 71명의 새로운 영혼이 주님 안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성장은 둘째 성전의 부지를 기증 받으면서 발전하는 퇴계원교회로 가는 디딤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