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5대 양종호 목사 부임
양종호 목사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삼육영어학원 바이블 클래스에서 실무적인 영어회화를 배우면서 오늘의 신앙,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공부한 후 장로교에서 개혁하였다. 삼육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교수직을 사임하고, 삼육대학교 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어서 미국 앤드류스 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D.MIN.)를 취득한 학구파 목회자였다. 양목사는 서중한합회 여러 교회를 거쳐 대방교회에 시무하다가, 2004년 3월 1일에 제5대 퇴계원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양종호 목사는 학구파 목회자답게 말씀을 중심으로 목양을 하며, 6년 동안 수 많은 침례자를 내어 도약하는 퇴계원교회를 운영하였다. 청년교회와 학생교회를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세계적인 교회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서중한합회의 선교 방침에 따라 소규모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해외 선교에도 인력과 재정을 투자하는 교회가 되었다.
(7) 말씀 중심의 목양
양종호 목사는 깊이 있는 성경 연구로 강단과 각종 모임에서 말씀을 은혜롭게 선포하고 감동을 주어서, 국내 교회는 물론 해외의 모임에도 강사로 초빙 받는 목회자였다. 2005년 1월 1일부터는 직원들의 요청에 따라 인터넷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안식일 대예배 설교를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 국내와 해외에서 시청하도록 김학성 집사를 중심으로 '방송담당부 직원들'이 수고하였다. 당시에는 유튜브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기였기에 매주 선포된 설교 말씀을 동영상 인터넷으로 올리면, 300회 이상 접속하여 국내의 성도들은 물론 24개 나라에 이르는 전세계의 성도들이 시청하였다.
삼육교육을 위하여 몰려온 성도의 자녀들과 지역사회 어린이들을 수십 명의 지도교사가 합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지도하였다. 어린이 성경학교를 매년 운영하여 수많은 어린 영혼이 교회의 주역으로 자라났다. 2007년에는 210명이 수료하였고, 2008년에는 160명이 수료하였다.
1998년부터 계속 실시해온 장수대학과 무료급식은 남양주시청의 보조금과 성도의 후원을 받으며 여집사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었고, 70여명의 노인들이 찾아오는 지역사회의 사랑 받는 장수대학이 되었다. 어린이반과 학생반 135명, 장수대학 47명과 성도들의 선교 봉사를 통하여 94명, 모두 276명의 새로운 영혼이 양종호 목사가 시무하는 동안 거듭났다. 이은희 구도자 부장과 여러 성도들의 헌신과 수고와 봉사가 큰 역할을 하였다. 한편 교회예배에 출석을 할 수 없는 성도들을 위하여 사경회, 전도회, 기도주일에는 녹음테이프를 '테입사역부'를 비롯해 성도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서 김향숙 집사가 실비로 제공하여 많은 성도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8) 청년교회, 학생교회 운영
학생과 청년을 위한 교육관이 확보됨에 따라, 2004년 10월 23일 안식일에는 한국교회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퇴계원 청년교회”가 탄생하였다. 약 7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김연철 전도사를 전담목회자로 청년교회의 문을 열었다. 청년교회는 안식일학교뿐 아니라 설교예배, 오후활동까지 모든 순서를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소화하며 교육과 운영, 양육을 책임지는 ‘맞춤형 교회’였다. 이처럼 청년들만으로 구성된 교회는 ACT교회나 학교교회를 제외한 독립교회로는 퇴계원 청년교회가 한국에서 처음이었다. 퇴계원 청년교회는 앞으로 재림교회의 청년문화와 사역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청년선교의 중심에 서고자 하였다. 청년들은 “미력이나마 교회의 발전을 위해 성심껏 돕겠다”고 입을 모으며, “청년교회가 학생과 개척대, 장년교회까지 아우르는 선교활동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재림마을 뉴스, 2004.10.25).
2005년 5월 28일에 세계 십대 교회로 보고되어 있는, 퇴계원학생교회는 대예배를 독립적으로 드리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이 예배운영의 주체가 되는 ‘학생교회’가 한국연합회장 홍명관의 영상 축사로 창립되었다. 퇴계원학생교회는 안식일학교뿐 아니라 설교예배, 오후활동까지 모든 순서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 양육을 책임지는 ‘맞춤형 교회’이다. 권영걸 학생전도사가 전담목회자가 되고, 5명의 지도교사들과 함께 봉사하며 운영되었다. 학생회장 김병규 군은 이날 “교회에 오면 거의 어른 중심으로 순서가 진행되는데다,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는데 우리만의 공간이 생겨 무척 기쁘다”고 웃어 보이며, “전국 최초의 학생교회라는 말이 무겁고 부담스럽지만 우리가 부흥하는 모습을 통해 학생교회가 더욱 확산되길 바란다”고 다부진 포부를 그렸다(재림마을 뉴스, 2005.6.1).
학생들이 안식일 오후에 PC방에 가고 떡볶기를 사 먹는 등 여러 행위로 성도들의 염려가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아사모)이 조직하였다. 학부모 되는 여집사들이 안식일 저녁 식사를 떡볶이, 김밥, 오므라이스, 짜장면 등 음식을 변화있게 해서 학생들에게 먹였다. 반응이 매우 좋아서 더 이상 안식일에 무엇을 사 먹는 유혹을 받지 않았고, 개척대 활동과 학생교회가 활성화되었다. 심지어는 청년들이 "우리도 먹게 해 주십시오" 해서 허락했고, 그 때 약 100-120명의 식구들이 안식일 오후 활동을 한 후, 아사모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아사모 봉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9) 국내외에 펼치는 구호봉사와 선교활동
퇴계원교회는 이제 이웃을 돌보는 맏형과 같은 교회이며, 지역사회의 노년기 어르신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봉사하는 교회가 되었다. 2004년 5월 3일에는 문산교회 선교 및 발전을 위해 자매결연을 맺었다. 7월 24일에 문산교회에 전도대를 파견하였다. 그 결과 구도자 6명이 전국 야영회에 참석하였다. 자매교회와 협약을 맺고 정책적인 지원과 인력과 재정 지원을 하였다. 정기적으로 안식일에 방문을 하여 설교와 자원봉사를 하며, 치료봉사도 베풀었다. 2007년 8월에는 호원동 교회, 2008년에는 수락산 예배소와 자매결연을 맺고 수년 동안 지원하였다.
2004년 5월 15일 안식일에는 특별 헌금 7,400만을 약정하였다. 이 특별헌금은 5월 22일에 북한 륭천 대폭발 참사 구호자금으로 100만원을 지원하였다. 5월 29일에는 남양주지구 송릉교회 건축을 위해 400만원을 지원하였다. 6월 5일에는 서중한합회 본부 건물 건축을 위하여 300만원을 지원하였다. 2005년 3월 19일에는 필리핀 현지 교회 건축을 위하여 100만원 헌금을 보냈다. 8월 30일에 캄보디아 씨엔립 고아원에 의류 12상자를 평신도 훈련센터에 선교 지원금을 지원하였다. 2006년 2월 4일에 삼육구호봉사회 퇴계원지회 발대식을 황춘광 서중한합회장과 이광길 남양주시장을 모시고 가졌다. 남양주시에 자원봉사단체로 등록하였다. 2007년 7월 14일 청년 몽골 해외 선교 봉사를 1,655만원으로 결의하여 실행하였다.
2007년 방글라데시 삼육대학교 기도주일 및 전국 청년대회 강사로 갔을 때, 교직원 사택을 두 동을 건축할 수 있도록 퇴계원교회 여러 성도들이 자금을 후원하였다. 2009년에는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의 솔루시대학교 기도주일 강사로 갔을 때, 대학교가 전기가 나갈 때마다 수업이 중단되었는데, 발전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여러 성도들이 발전기 구입할 자금을 후원했다. 그리고 대학교 교직원 교회가 지붕이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던 차에 지붕을 얹도록 자금을 후원하였고, 극빈 학생들 장학금을 후원하였다. 솔루시 대학교 총장이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의 퇴계원교회에 감사합니다!"하고 새벽기도회 시간에 일어나 고마움을 표시했다.
(10) 12년 연속 모범 성장 교회
2010년 1월 11일 서중한합회 총회에서 퇴계원교회는 셋째 성전을 헌당한 1997년부터 12년 연속 모범 성장교회로 3대 성장 표준을 달성하여 수상하였다.
3대 성장목표 달성
년도 | 수침자수 | 안교생수 | 십일금 | 년도 | 수침자수 | 안교생수 | 십일금 |
1998년 | 20명 | 367명 | 1.5억원 | 2004년 | 44명 | 484(출석생) | 2.8억원 |
1999년 | 25명 | 392명 | 1.8억원 | 2005년 | 43명 | 557명 | 3.5억원 |
2000년 | 27명 | 446명 | 2.0억원 | 2006년 | 46명 | 561명 | 3.1억원 |
2001년 | 25명 | 526명 | 2.3억원 | 2007년 | 42명 | 570명 | 3.1억원 |
2002년 | 27명 | 580명 | 2.8억원 | 2008년 | 59명 | 577명 | 3.3억원 |
2003년 | 33명 | 591명 | 2.8억원 | 2009년 | 31명 | 579명 | 3.8억원 |
2005년 1월에는 특별헌금을 하여 부목사 사택 마련하였고, 2006년 7월에는 담임목사 사택 구입과 숙원 사업을 위하여 특별헌금을 약정하였다. 그리하여 10월 11일에 담임목사 사택으로 퇴계원 70-3번지 신도아파트를 매입하여, 2007년 1월 6일 안식일에 담임목사 사택 봉헌 및 입주예배를 드렸다. 구입 과정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집주인이 계약 파기를 하여서 김정원 수석장로와 같이 부동산과 집주인을 만나서 목사 사택임을 강조하여 계약을 성사시켰다. 곧바로 아파트 값이 폭등하였으며, 목회자의 사택이 마련됨으로 안정적으로 사역하게 되었다. 여집사들의 요청으로 양목사는 교회 사택에 계속 거주하였고, 문성준 부목사가 입주하여 살다가, 이승동 목사가 부임하여 입주를 하였다. 7월 28일에 그랜드 스타렉스를 구입하였고, 8월에는 교회 야광 간판을 설치하였으며 본당 음향시설 일체를 새것으로 바꾸었다. 성도들과 장수대학생들이 편안한 음향과 편리한 수송 수단으로 교회 생활에 즐거움을 누렸다.
2008년 7월에는 특정사업 헌금을 약정하고 교회 주요 사업을 계획하여, 9월에는 영아부 교실을 리모델링 하였고, 10월말에는 스크린, 액정, 외벽 발수 처리, 성전 바닥 카펫 교체를 하였다. 또한, 10월 8, 9일에 장수대학을 헌신 봉사하는 35명이 하반기 소풍으로 금강산을 다녀왔다. 10월 15일에 장수대학 소풍을 북한 개성으로 40명이 다녀왔다(사진은 화보 수록됨, 다음해부터 북한 방문이 차단됨). 2009년 7월에는 그랜드 스타렉스 승합차를 구입하여 선교 활동에 박차를 가하였다.
(11) “도약하는”퇴계원교회
2010년 3월 1일에 양종호 목사는 6년의 퇴계원교회의 목회를 마치고 용인교회로 전임하였다. 그 후 삼육대학교 교회교목으로 봉사하다가 방글라데시 삼육대학교 총장으로 부름을 받아 근무하였다. 양종호 목사는 시무하는 동안 인터넷 선교사역을 실시하였고, 청년교회에 이어 학생교회를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청소년을 위한 전문 목회의 장을 한국 재림교회 최초로 열어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다. 여러 합창단이 운영되었고, 목양장로 제도가 시작되었으며, 화금요일 밤집회에도 좌석이 가득차는 부흥을 이루었다. 7890찬양대는 박병철 장로가 목양장로로 봉사하며 찬양 지휘를 겸하여 찬양대원의 사랑을 받았다. 양목사가 6년 동안 말씀에 충실한 목양으로 276명의 영혼이 거듭나는 “도약하는” 퇴계원교회를 만들어, 성도들이 맡은 일을 최선껏 하는 “위대한 교회”로 나가는 기초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