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학은 단위를 재는 수학이다. 수학은 낱개, 길이, 너비, 부피, 질량으로 단위가 정해져 있다. 구조학은 그 단위를 찾는다. 자연의 단위를 찾기는 쉽지만 사회적 행동의 단위를 찾기는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행동들이 있다. 인지부조화 현상, 스톡홀름증후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행동, 선거전에서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소동, 도박꾼의 심리, 계급배반투표 등은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야 하는 게임상황이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수렁에 빠진 상황, 도박장에 갇힌 상황, 승부를 걸어야 하는 상황, 몰린 상황이다.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다. 닫힌계에 갇혀 압력을 받고 있다. 계체각선점에서 계의 상황이다.
압력이 걸리면 유체화 현상이 일어난다. 사건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요소를 무시하고 딱 한 가지로 결정하려고 한다. 선거판에서 의외의 돌풍과 이변이 일어나는 이유다. 게임 참가자들이 압력을 받아 다른 변수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수학은 수를 사용하고 구조학은 질, 입자, 힘, 운동, 량 다섯 개의 단위를 사용한다.
수는 어떤 둘을 연결하고 구조는 둘 사이에서 결정한다.
수의 연결은 밖에서 일어나고 구조의 결정은 안에서 일어난다.
수학은 원인측 변화 사이에서 결과측의 정지해 있는 값을 구하고 구조학은 반대로 원인측의 격발을 구한다.
수학은 결과를 찾고 구조학은 원인을 찾는다.
수학은 변화 속에서 정지된 것을 찾고 구조는 정지에 앞선 변화를 찾는다.
수학은 둘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하나를 찾고 구조학은 하나를 낳기 앞서 만나는 둘을 찾는다.
수학은 좌표의 X축과 Y축 사이에서 P를 구한다. 6와 6 사이에서 36을 구한다. 구조학은 36을 가지고 대칭을 추적하여 6과 6을 구한다.
과학은 인간과 직접 연결된다. 수학은 인간과 상관없이 객체 자체에 내재한 질서를 따르지만 관찰자가 있으므로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구조론은 순수하게 객체 자체의 내재적인 질서를 따른다.
물리학은 인간이 개입하여 물질을 쪼갠다. 수학은 물질을 쪼개지 않고 밖에서 자로 잰다. 그 과정에 물질과 접촉한다. 구조학은 대칭을 고리로 객체 내부의 원인에 의한 자발적 변화를 추적한다.
수학은 밖의 크기를 재고 구조학은 안의 단위를 잰다.
수학은 관찰자 입장을 따라 변화의 결과측을 해석하고 구조학은 객체 자체의 논리를 따라 변화의 원인측을 해석한다.
수학은 자연과 인간의 만남이 원인을 이루고 값이라는 결과를 얻는다. 구조학은 인간과 상관없이 객체 내부의 자체적인 만남을 추적한다.
지식은 존재와 인식과 생각이 있다. 존재는 인간과 상관없이 존재한다. 인식은 인간이라는 스크린에 비춰진 존재의 그림자다. 생각은 그림자를 해석한다.
인식은 분해와 조립과 작동이다. 자연의 존재를 분해하여 인간의 뇌 안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조립이다. 작동은 에너지를 투입하여 변화를 끌어낸다.
존재는 분해되고, 인식은 조립되고, 생각은 작동된다. 그것은 다른 것이다. 분해와 조립과 작동을 모두 갖추어야 지식은 완성된다. 과학은 존재를 분해하고 수학은 인식을 조립하고 구조학이 생각을 작동한다.
과학과 수학이 사물에 대한 접근이라면 구조학은 사건에 대한 접근이다. 사물은 분해되어 죽은 것이고 사건은 살아서 작동하는 것이다. 사물에 에너지를 태우면 사건이 된다.
사물은 방대하지만 사건은 숫자가 많지 않다. 죽는 길과 사는 길 중에서 사는 길만 선택하기 때문이다. 불이 옮겨붙는 길과 불이 꺼지는 길 중에서 불이 옮겨붙는 길만 선택하면 갈수록 선택지가 좁아진다. 서너번 구조의 체로 걸러버리면 남는게 없다. 결국 모두 한 곳으로 모이게 된다. 등산객은 산의 정상으로 모이고 물은 바다로 모인다.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길은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구조에 떠밀린다. 구조에 휩쓸린다. 구조에 빠진다. 코너에 몰린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