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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경상도 사람들은 지렁이를 사투리로 '꺼깨이'라고 한다. 지렁이를 닮은 회충 등의 신체 내부의
지렁이같이 생긴 기생충들도 '꺼깨이'라고 한다.
지렁이라는 말은 하늘의 용에 대하여 '땅속의 용'이라는 의미로 지룡(地龍)에서 '지룡이 - 지렁이'
가 나왔다는 그 어원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다분히 한자의 해석에 불과 하다. 그런데
지렁이를 왜 경상도에서는 '꺼깨이'라고 했을까? 그 음운의 기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사투리이기 때문인지 아무도 이에 대한 추적을 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필자가 처음으로 밝히는 '꺼깨이' 어원은 재미있게도 경상도 울산 앞바다에 와서 '귀신고래'를
만난 앤드류스와도 관련이 있다. 과연 필자가 경상도 사투리 '꺼깨이'에 대하여 그 뿌리를 추적
하다보니 로이 채프맨 앤드류스가 몽골 고비사막에서 '꺼깨이'와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꺼깨이'는 지렁이 또는 신체 내부에서 기생하는 회충 등의 기생충에 대하여 경상도 방언으로
사용하는 말이면서 특히 지렁이든 회충이든 촌충이든 무시무시하고 징그러운 뜻을 말할 때 특히
'꺼깨이'라는 음운이 사용된다. 그런데 왜 앤드류스가 그 '꺼깨이'에 개입되어 있었는가 궁금할
것이다.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가 동해안에 오기 전에 먼저 몽골의 고비사막으로 공룡 화석을 채취하러
탐험대를 이끌고 갔다. 그때 그는 거기에서 '꺼깨이' 소문을 듣게 된다.
그때부터 앤드류스는 꺼깨이 존재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되었는데 그 사실은 그가 '괴물' 사냥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또 하나의 예가 된다. 그 당시 공룡이 괴물(devil)로
알려져 있었듯이 공룡 화석 채취는 비록 죽은 공룡이라도 '괴물' 사냥으로 받아들였던 면이 있다.
그때 몽골 정부로부터 앤드류스는 몽골의 고비사막의 토착 주민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오랜 전설
적인 괴물인 '꺼깨이'를 잡아주도록 요청을 받는다. '꺼깨이'는 몽골 발음에서 유래한 것이며
경상도 사투리 음운 뿐만이 아니라 경상도에서 의미하는 '꺼깨이'를 그대로 닮아 있는 괴물이라는
것을 지금부터 밝혀보겠다.
먼저 고비사막의 '꺼깨이'의 모양을 살펴보자. 그 몸통 사이즈는 1.5m 크기의 큰 지렁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독을 뿜고 사람도 해칠 정도의 무서운 괴물로 인식되어 있었다.
'꺼깨이'에 대한 몽골 이름은 '커코이(khorkhoi)'이다. 발음하기에 따라서는 '껄꼬이'가 된다.
경상도 안동에서는 '꺼깨이'를 '껄깨이'로 발음한다는 것은 몽골 고비사막의 khorkoi는 '껄깨이'와
아주 유사한 음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비사막 꺼깨이의 그 전체 이름은 '올고이 커코이( olgoi-khorkhoi. олгой-хорхой)'인데
'olgoi'라는 말의 뜻은 '큰 창자(대장)'라는 뜻이다. 그래서 '올고이 커코이'는 'olgoi(대장)와
'커코이(khorkhoi ) 즉 지렁이(worm)의 조합어로서 '큰 창자 지렁이'라는 뜻인 것이다.
그러니까 '올고이 커코이'는 '대장 지렁이'로서 경상도 사투리에서 말하는 '꺼깨이'와 위장이나
대장 안에서 서식하는 회충 등의 기생충을 의미한다는 것에서 결정적으로 그 음운에서나 모양
식생에서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몽골에서는 그 크기가 워낙 커서 '대장(큰창자)' 길이만큼 크다는 뜻이 '대장(큰 창자)'을
강조하여 교차되어 있는 뜻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도로 말하자면 '창자에 사는 꺼깨이'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적어도 몽골 고비사막의 '커코이(khorkhoi)'가 경상도 사투리의 '꺼깨이(껄깨이)
가 되었다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발음에서 그 모양에서 그 징그럽고 두려움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몽골(원)지배 당시에 많은 풍속과 의복 가구 등에서 몽골 풍속이 한국 전통 문화에 영향
을 주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혼인식 때 신부가 쓰는 족두리는 몽골의 귀족부인들의
모자였고 전통 검은 이불의 한 쪽 끝이 붉은 단으로 덧댄 것 또한 원나라 풍속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꺼깨이 사투리가 원나라 지배 영향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이글의 말미에서 상세히 다루겠
지만, 이미 '고비사막의 커코이'는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모래밭의 지렁이 토템숭배 현상'으로
삼국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꺼깨이'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꺼깨이'의 어원은 몽고(원)시대가 아닌 우리민족의 삼국시대 때부터 '꺼깨이'가
존재했을 여러 개연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몽골의 고비사막에서 목격되어 왔다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큰 '커코이(khorkhoi)'가 고려시대 언어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던 신라 때에 존재했으며 나중에 경상도
사투리 '꺼깨이'에 남아졌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생각컨대 사막에는 지렁이와 유사하게 생긴 red sand boa라는 독사가 있다. 그 머리는 뱀의 머리
라기보다 지렁이 머리와 유사하여 오히려 '거대한 지렁이' 즉 '꺼깨이(khorkhoi)'로 불려졌을 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독을 뱉아내는 뱀과 지렁이의 형상들이 혼합되어 전설적으로
두려운 '커코이'로 알려져 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비사막의 '커코이'는 Death Worm
으로도 불려지는 '살모사 지렁이'로 알려졌을 것이다.
용이 일곱 가지 이상의 동물의 조합으로 표현되듯이 무서운 동물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괴물은
다양한 동물들의 조합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만 합해진 복합적인 짐승 전설의
'꺼깨이' 묘사는 그 비슷한 예로 '깡철이'에게서도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 '깡철이'라는 미확인 전설의 실제는 '야간 혜성' 또는 '야간 별똥별 지상 추락
현상'이었을 것인데 여러 유사한 동물신 믿음들이 혼합되어 민간 전승으로 전해져 '깡철이'로 칭
해졌다. 이와 유사한 미확인 동물이 고비사막의 오랜 전승인 '커코이'일 수가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 이름과 모양이 경상도 사투리 '꺼깨이'가 의미하는 것과 일치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찾아내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고비사막에서 나타난다는 거대한 '커코이(khorkhoi)'는 사막 독사였는지 지금까지 정확히 확인
되지 않은 미확인 동물(cryptid)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고비사막의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오랫
동안 잘 알려져 온 사막의 괴물로 받아들여져 왔다. 아마도 붉은 사막 보아 뱀(Red sand boa)을
보았을 때 그들은 전설의 그 '커코이'라고 믿어 분명히 실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고비사막 주민들의 목격담을 보면 '커코이'는 붉은 색의 지렁이 모양으로 작게는 0.6m 크게는
1.5m의 몸길이로를 가진 지렁이 형태로 황산(sulfuric acid)을 내뿜는다는 것이다. 특히 커코이를
사람이 접촉했다 하면 어떤 부위이든지 살갗이 노랗게 변하면서 썩어들어가고 결국 그 독은 사람
의 생명을 죽이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이나라 먼 거리에서도 전기를 발산하여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고비사막 토착민들의 그러한 꺼깨이(khorkhoi)에 대한 오랜 전승이 결정적으로 서구인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 배경은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 교수의 1926년 책 On the Trail of Ancient Man
에 의해서였다.
그 당시 미국의 고생물학자(paleontlogist)로 알려진 앤드류스는 '커코이'에 대하여 몽골 지방사람
들이 상세하게 묘사하고 실존한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으며, 그곳 관리들이 '괴물
사냥꾼' 앤드류스에게 '커코이'를 실제로 잡아주기를 바라기까지 했던 것이다.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는 그 당시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의
감독으로서 몽골 수상인 담딘바짜르(Damdinbazar)가 1922년에 묘사한 것을 바탕으로 '커코이'에
대하여 그의 책 On the Trail of Ancient Man (1926) 에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It is shaped like a sausage about two feet long, has no head nor leg and it is so poisonous that merely to touch it means instant death. It lives in the most
desolate parts of the
"그 모양은 2피트 길이의 소세지 같은데 머리는 없고 다리도 없으며 단지 그것을 건드리
기만 해도 인간은 즉사하게 되는 독이 있다. 커코이는 고비사막의 대부분의 황량한 들판
에 산다."
앤드류스가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도 이것은 그대로 '거대한 지렁이'를 말하는 것으로 경상도
사투리의 '꺼깨이(커코이)'를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32년 앤드류스가 출판한 The New Conquest of Central Asia 에서도 '커코이'는 언급되고 있다.
앤드류스는 그 ‘커코이(꺼깨이)’가 실재하는 동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상세히
묘사될수록 '꺼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커코이’는 땅 밑에 사는데 연중 대부분을 동면 상태로 지내다가 6-7월에야 활동을 개시한다.
비가 올 때면 젖은 땅 위로 나온다는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말하는 꺼깨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앤드류스의 소개로 인하여 1940년대에는 Ivan Yefremov에 의하여 ‘큰 창자 꺼깨이
’(Olgoi-Khorkhoi)'는 최초로 문학 속에서도 소개되었다. 이러한 '꺼깨이'에 대한 무용담은 나중에
1990년도의 헐리우드 영화 Tremors (Ron Underwood 감독) 작품의 땅속에서 공격하는 거대한
'꺼깨이' Graboid 괴물로 묘사되기도 했다.
이렇게 경상도 사투리 '꺼깨이'의 어원이 몽골의 '커코이(khorkhoi)'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필자
의 주장은 보다 원천적으로 우리 민족의 고대 역사에서 '꺼깨이'의 어원과 그 의미가 동시에 존재
했다는 것을 여러 다른 사투리들의 방증으로도 여기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말의 많은 말에서 '꺼깨이'의 꾸부러진 의미인 '깨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몽골 고비사막의 '커코이'가 경상도 사투리 '꺼깨이'와 그 음운의 전이 방향이 어땠을지를 짐작
하게 해주는 다른 사투리들 가운데 '꺼깨이'의 '깨이' 어미에 대한 경상도 사투리의 여러 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팡이 cane과 사투리 부지깨이(부지깽이), 깨이(괭이)
'커코이(khorkhoi)'와 연관하여 우리말 '꺼깨이(껄깨이)'의 '깨이'가 그 꾸부러진 모양과 함께 광범
위하게 경상도 사투리에 분포된 된데는 기존 우리말 사용에서 '꺼깨이 토템'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그 말들이 습합된 것으로 필자는 보고 있다. 그 증거를 경상도 사투리에 나오는 여러 명칭들의
'깨이'에서 볼 수 있다. 그 명칭이 의미하는 사물들의 모양들은 꺼깨이처럼 구부러진 모양을
하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깨이'로 끝나는 말은 '꺼깨이' 말고도 몇가지 주목되는 중에 '부지깨이
'(부지깽이의 사투리 발음)가 있다. 여기에서 부지깽이에 대한 어원을 살펴보면 19세기 우리나라
에서 사용된 외국어 사전들에서 '부짐강(火杖)<한불자전>(1880)으로도 부짐강이(火杖)<국한회어(1895)> <한영자전(1897>) 등이 '부지깽이'를 대신하여 표현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19세기 외국어 사전들에서 표기된 '깨이' 부분은 한자로는 장(杖)으로 표기하면서 발음
은 '강'으로 되어 있는 것을 나는 주목한다. 지팡이 한자 장(杖)을 '강'으로 표현한 것은 외국어
cane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어원 추적에서 과거 역사 속의 선재 발음을 논하면서 조선시대 한양이나 고려시대 개경의 도읍
중심의 음운 표현만 참고할 수는 없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고려 조선시대에서 특히 천년 신라말
은 지방 사투리로 치부되기 이전에 이미 전국화된 통일신라 말이었으며 중세국어의 근간이 되었
다는 사실은 국어학자들에 의하여 이미 잘 알려져 왔다.
동아시아는 물론 멀리 중동 및 신대륙 연안까지 이어져 있었을 신라말은 한반도권을 넘어 영향을
주고 받았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고향이 오늘날 경상도
문경 가은이었던 후백제의 견훤이 지렁이로 둔갑했다고 기록한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그 지렁
이는 그 시대에도 '꺼깨이'로 발음되었을 수가 있다.
몽골 고비사막에서는 '커코이'로 쓰이고 같은 의미가 오늘날까지 경상도 사투리로 남아 있는
'꺼깨이'가 한자말 지렁이(地龍)이기 동아시아에서 한자말 지렁이(지룡) 이전에 쓰였을 오랜 토착
어였을 개연성이 충분한 것이다. '꺼깨이'가 지역에 따라 모래 사막에 숨는 큰 뱀과 같은 '큰 꺼깨이'가 존재한다고 믿었을 수 있다는 것에서 견훤에 대한 그 영웅적인 신비감을 강조하기 위하여
<삼국유사>에 지렁이(꺼깨이)로 묘사되었을 수가 있다.
'깨이' 어미가 가지는 여러 사물들의 모양은 오랜 꺼깨이 토템 숭배에서 유래했을 개연성을 높여
준다. 토템숭배처럼 종교적인 신비성이 강조되는 것은 19세기 근대 우리 말에서 외래어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여기에서 필자는 구부러진 지팡이인 영어인 cane(캐인)이 꺼깨이의 '깨이'와 같은 모양으로 우리
말의 '깨이'에 습합되었을 수가 있다는 개연성을 제시해두고자 한다.
지팡이에 대하여 영어 표기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종교적인 영향을 가지는 지팡이는
'cane'으로 그 발음은 '케인(kéin)'이다. '케인'은 쉽게 '캐이-깨이'로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특히
cane은 구부러진 지팡이를 가르켜 캐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각각 '꺼깨이', '부지깨이' 등의
'깨이' 접미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 부엌 아궁이에서 쓰던 부지깨이(부지깽이)는 길이 1미터 정도에 손잡이는
길게 나무 자루이고 그 끝에 쇠가락을 길게 하고 그 끝은 불을 뒤집기 좋게 쇠붙이 끝이 조금
꼬부러져 있는 아궁이 도구가 '부지깨이'였다.
단순히 길다란 쇠창살이 아니라 그 끝이 약간 꼬부러진 부지깨이 모양은 전체적으로 cane을
닮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지깨이의 '깨이'는 영어의 cane(캐인)에서 '깨이'로 변이되는 과정
에서 '꺼깨이'의 '깨이' 음운이 보다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부지깨이 어원 해석이다. '깨이'는 그렇게 지팡이이면서도 꺼깨이의 구부러진 모양으로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한 연장도구
이름 뒤에 붙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깨이'의 유래가 되었을 cane의 서양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 캐인은 크리스마스 심볼로
등장하는 꼬부라진 모양의 지팡이다. 특히 캔디로 만들어 더욱 어린이들의 우상인 산타크로스의
지팡이로 만든 것이 캔디캐인이다.
서양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러한 산타크로스의 지팡이 캔디캐인은 유럽에서 그들의 수목신앙
에서 나무에 거는 데코레이션에서 유래했다. 한국전통 서낭목에 거는 오색헝겊과 같은 배경이었다.
이러한 전통 파간(pagan) 수목신앙이 기독교의 크리스마스 트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백년 전인 17세기 크리스마스 트리가 기독교 안에 들어오던 때의 일이었다. 캔디캐인은 처음에는
단순히 길다란 캔디바였지만, 1670년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분위기를 돋구기 위하여
목동의 지팡이(shepherd’s crook)처럼 구부린 캔디를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준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구부러진 지팡이는 더욱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특히 알파벳 ‘J’를 닮아
있는 ‘캐인’의 모습은 Jesus의 J로 해석되다가 나아가 ‘좋은 목자 예수의 지팡이(shepherd’s
crook)’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캔디캐인은 본래 목동이 양 목을 걸어 당기기 좋게 하기 위한 구부러진 지팡이에서 기원
했다. 나중에 목동이 아니더라도 지팡이를 짚은 종교적인 목자의 모습에서 일반적으로 구부러진
지팡이인 ‘캐인(cane)’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지팡이로도 발전했다. 서구인들이 드나들던
19세기에 영어나 불어, 네델란드어 등의 일부 외래 언어들은 직접 또는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우리
말 생활 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이러한 서양의 ‘캐인’이 ‘깨이’로 와전되는 것은 ‘아이스 케이크’가 ‘아이시깨끼’로 변하는 것과
같이 쉽게 탁음에서 경음화한 것이다. 더불어 경상도 사투리에서 받침의 'ㅇ'이나 'ㄴ'은 사라지
면서 콧소리로 비음화하는 과정을 밟아 '캐인'은 '깨이'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음화 현상은 경상도 사투리의 하나로 괭이를 이응 받침이 사라지는 비음화되어 ‘깨이’
로 발음하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형아'를 '히야'라고 하는 비음화와 같은 경상도
사투리의 경향이다.
특히 cane 지팡이는 우리의 전통 말인 '꺼깨이'의 '깨이'와 함께 구부러져 있어서 우리 말에 구부
러진 모양의 말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경상도에서 '깨이'로 발음되는 농기구 연장은 표준
말로 '괭이'이다. 괭이(깨이)의 모양은 흥미롭게도 cane 지팡이처럼 구부러져 있다. 아래 그림은
'캐인'과 '깨이(괭이)'인데 서로 닮아 있다. 동시에 지렁이 '꺼깨이'를 닮아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징그러운 꺼깨이(지렁이) 보다 cane이라는 외래어가 들어오면서 '깨이'라는 말은 구부러진
지팡이 cane(캐인)에서 그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수도 있다.

*캐인과 깨이(괭이)
삽
경상도 사투리 '깨이(괭이)' 어원이 서양의 cane과도 관련이 있으면서 괭이의 짝인 삽의 어원에서
더 확실해질 수 있다.
삽을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인 '수금포(또는 수군포)'의 어원이 네델란드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제 수금포의 짝인 깨이에 대하여 필자의 cane - 깨이
어원설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삽은 본래 꽂는다는 한자인 삽(揷)에서 나온말이다. 삽에 대한 본래 우리말은 나무로 된 '가래'로
칭해졌는데 한자인 '삽'을 의식하여 <석보상절>에서 가래초(초. 金변에 가을 秋)를 '삷'으로 표기
한 것이 나온다. 이러한 '삷'이 갑자기 '수금포(또는 수군포)'가 된 것은 일제 강점기때부터이다.
일본인들이 삽에 해당하는 농기구인 네델란드어 스콥(schop)에서 일본인들의 발음으로 '스코푸'
로 발음되고 다시 한국인들에게는 '수금포'로 와전되어 불려지게 된 것이다.
수군포(삽)가 그렇듯이 깨이(괭이) 또한 외래어에서 나온 것으로 필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그
구부러진 '깨이' 연장의 모습에서 보듯이 cane(캐인) 지팡이에서 '깨이'가 유래한 것이다.
고양이를 의미하는 '개이' 및 개를 의미하는 '워리'의 어원과 '구구닭'의 어원
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경상도에서 '개이(괭이)'라고 발음하는데서도 같은 배경으로 필자는 생각
한다.
고양이를 '개이(괭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농기구 '깨이(괭이)'와 유사하게 'came' 지팡이와 관련
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 꼬리를 보면 cane 지팡이처럼 구부러져 있기 때문이다. 농기구
괭이를 '깨이'리고 불렀듯이 고양이 '괭이'를 부드럽게 '개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다만 동물의
살로 된 cane이라서 '살개이'라고 한 것을 나중에 보다 와일드한 삵의 영향을 받아 '삵개이'로
불렀을 것이다. 고양이(괭이)든 삵(삵괭이)이든 그 꼬리는 cane 지팡이 꼬리처럼 구부러져 있어
'개이'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개이(괭이-고양이)'가 cane에서 유래했다는 것에 의심이 된다면 고양이와 가까운 개에
대한 칭호가 영어의 영향을 입고 있다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상도 사람들의 개에 대한
칭호에서 '워리'라는 것이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 개를 부를 때 온동네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두
'워리 워리! 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 워리란 무멋인가? 우리의 전통 개 칭호인가? 아니다. 영어
이름 warry에서 나온 것이다.
닭에 대해서도 전통 자장가에서 '구구닭아 울지마라'라고 하여 '구구닭'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하여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구구닭의 그 뿌리는 외래어였을 수가 있다. 서양에서도
'구구닭'은 'kukuta'이기도 하고 인도의 전통 수탉 신상의 모습에서도 kukuta는 rooster cock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신라 때에 인도사람들은 계림의 나라 칭호를 '구구타(矩矩吒)'라고 불렀던 것은 자장가의 '구구닭'
이 외래어에서 왔을 수가 있는 것이다.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阿骨打) 이름이 필자는 신라 즉
'구구타'의 후예라는 의미로 그렇게 '아구타(阿矩吒) - 아골타(阿骨打)'로 불려졌을 수가 있다고
추정한다.
유럽인들도 신라인들도 인도인들도 쿠쿠타(kukuta)를 숫탉(구구닭)의 의미로 불렀다면 본래
쿠쿠타 어원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쿠쿠타(kukuta)는 산스크리트어로 숫탉(cock)을 의미
했고 그것이 인도-유럽계 언어로 확산되어 갔다고 서양인들은 믿고 있다.
kukuta와 warry에서 우리말 구구닭과 워리(개)가 나오듯이 우리의 오랜 가축 이름들에서 외래어
흔적이 있다는 것에서 '꺼깨이'와 '부지깨이' 및 깨이(농기구)와 개이(고양이)가 cane에서 왔을
것이라는 필자의 주장은 이제 외람된 것은 아닐 것이다.
'꺼깨이'의 '깨이'가 구부러진 cane의 모습이라면 거기에 왜 '꺼'가 더 붙어 '꺼깨이가 되었을지
궁금할 것이다.
필자는 우리 민족 전통 언어에서 사람이 늙어 '꼬부랑 할매, 꼬부랑 할배'가 된다는 그 '꼬부랑'의
말 속에서 위대한 '꺼깨이'의 꼬부랑 '커코이'의 두렵고도 무서운 은유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cane 지팡이나, 경상도 사투리에서 깨이, 개이는 모두 꺼깨이(지렁이) 처럼 구부러진 모습이다.
거기에서 '꺼깨이'의 '꺼'는 더욱 많이 꺾어지고 꼬부라진 것에서 '꺼(꼬) + 깨이=꺼깨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투리로 사람 칭호에서 등이 굽은 사람을 '꺼꾸리'라 표현한 것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등 꺾여
있다는 의미의 '꺼'가 사람을 의미하는 '구리-꾸리'에 조합되어 '꺼꾸리'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꺼+깨이'의 '꺼'인 것이다. 우리말 '꺼꾸러지다' 역시 '꺾어져서 꿇어진다'는 S자 형태의 지그
재그로 꺾인 중복된 의미를 가진는 '꺼'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구부러진 cane이 '깨이'에 영향을 미쳤다면 거기에서 더욱 많이 꺾어지고 꼬부라진(曲) 모양이니
'꺼깨이'가 된 이러한 현상은 한번 구부러진 농기구 깨이(괭이)에서 한번 더 꼬부라진 '꼬깨이'가
'곡괭이'에 대한 경상도 사투리 발음이라는데서도 드러난다.
농기구 곡괭이(꼬깨이)는 한자로 곡(曲)을 의미하는 꼬부러진 괭이를 말한는 것이면서도 '깨이'가
더욱 꺾이고 또 꺾였을 때에 '꺾깨이 - 꺼깨이'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지렁이일텐데 꺼깨이가 왜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을까? 그것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몽골 말 '커코이(khorkhoi)'에서 경상도 사투리 '껄깨이 - 꺼깨이'가 유래했다기보다 오히려 몽골
이전에 삼국시대 우리 민족에게서 '꺼깨이'라는 음운이 존재했을 개연성이 더 높다고 보여진다.
특히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가 그 커코이(꺼깨이)를 최초로 서구문명 사회에 소개했다는 데서
동해안 귀신고래 소개와 같은 반열의 동아시아 '괴물 소개' 속에 들어간다. 그것은 코리안 꺼깨
이를 제대로 알리지는 못했지만, 앤드류스가 몽골 고비사막에서 추적하고자 했을 '커코이
(khorkhoi)'는 결국 고대 한국역사의 '꺼깨이 토템 숭배제단'이었을 경주 포석정 모양에서나
견훤의 '꺼깨이 활약'에서 그 증거들을 여기에서 찾아내 보이고자 한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깨이' 또는 '개이' 및 접미사 '깨이'로 끝나는 말들은 영어의 지팡이 '캐인
(cane)'에서 유래하기 이전에 '꺼깨이'의 '깨이'가 구부러진 지팡이를 의미하는 'cane'으로 서양
으로 건너갔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경상도 사투리 '깨이' 또는 '개이'는 전통 '꺼깨이'에서 직접
그 어원이 더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꺼깨이'에서 유래한 '깍쟁이'는 '서울 땅꾼' 또는 '서울지역의 뱀'을 의미
여기에서 경상도 사투리 '꺼깨이' 어원과 관련된 결정적인 우리말을 하나 더 밝혀보려 한다. 그것은
'깍쟁이'라는 말이다.
강원도 평안도에서 '깍쟁이'는 농기구로서 긁어모으는 '갈퀴'를 의미하기도 한다. '갈퀴'의 모양은
역시 cane과 같이 구부러져 있다. 그런 '깍쟁이'는 본래 '꺼깨이'와 관련이 있었다.
표준말 깍쟁이라는 말은 강원도 평안도의 영향으로 고려시대 말인지도 모른다. 깍쟁이에 대한
경상도 사투리로 '깍깨이(깍깽이)'로 신라 발음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19세기 부지깽이를
한자로 화장(火杖)이라고 표현하면서 '부짐강'이라 발음했다. '장'을 '강'으로 발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깍쟁이'는 '깍갱이-까깨이'였을 수도 있다.
'깍쟁이'라는 말은 '서울 깍쟁이' 정도로 알려진 말이지만, 그 어원에는 놀랍게도 뱀이나 땅꾼과
관련된 '꺼깨이'와 관련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한양 중심의 '깍쟁이'는 신라말 '깍깽이 -
꺼깨이'에서 와전된 말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깍쟁이는 본래 "서울의 땅꾼과 뱀장수"를 일컫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깍쟁이'는
사람을 말하지만 '꺼깨이'처럼 땅굴이나 다리밑 움막에서 사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다.
사전에서도 설명하듯이 '서울 깍쟁이'라는 말은 그들이 청계천 다리 밑이나 개울가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저잣거리에서 어리숙한 사람을 속이기도 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깍쟁이'는 '꺼깨이(깍깽이)'처럼 '땅 밑에 숨어서 공격하는 무서운 존재'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래서 사전적인 의미의 '깍쟁이'는 '서울 땅꾼, 서울 뱀'이라는 뜻이다. 요즈음 말로하자면
도시에서 숨어 활약하는 '꽃뱀'의 옛말이 '깍쟁이'이며 그 오리지날 음가는 '깍깽이(꺼깨이)'였다고
필자가 처음으로 이와같이 해석해 둔다.
고비사막의 '커코이(khorkhoi)'와 모래밭의 '꺼깨이(껄깨이)' 견훤(甄萱)
커코이(khokhoi)와 꺼깨이(지렁이)가 무시무시하고도 위대한 존재로 묘사된 것은 지렁이 어원 자체
에서도 드러난다. 후백제 견훤이 지렁이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것은 경상도 사투리 '꺼깨이'가 몽골
고비사막의 '커코이'와 일치하는 것으로 모래땅의 거대한 지렁이 형상의 신화적인 위용을 의미한다.
요즈음은 단순히 낚싯밥 earthworm인 '지렁이' 칭호 자체가 앞서 말한대로 하늘의 용(龍)에 상대되는
지룡(地龍)에서 '지룡이-지렁이'가 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지렁이 - 위대함이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꺼깨이는 용과 같이 땅 속에서 솟아나오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에서도 '꺼깨이'
즉 '커코이'가 고비사막에서 무서운 지룡의 존재로 묘사된 것이다.
하늘의 용이 아닌 지룡 즉 지렁이의 두려운 존재로의 묘사는 <삼국유사> 후백제 견훤편에서도
기록되어 있다. 후백제의 왕이었던 견훤(甄萱, 867 ~ 936)이 지렁이의 화신(化身)이라는 것은 하늘의
용을 강조하기보다 땅 속의 용 즉 지렁이가 강조된 것이다. 견훤으로 화신했다는 지렁이는 고비
사막의 '커코이'의 묘사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확신한다.
지렁이의 화신으로 기록되어 있는 견훤의 고향에는 지금도 '금화굴'이라는 지렁이 굴이 있다.
견훤의 출신지는 지금의 문경 가은면이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꺼깨이(지렁이)'가 나오는 견훤신화는 견훤이 지렁이(꺼깨이) 후손이었다는
것이다. 신라인들의 동물조상토템은 그 외에도 최치원이 돼지의 후손이라는 것과 문무대왕이
죽어서 바다의 신룡이 되겠다는 표현 등에서 고래조상 토템이 남아 있다.
꺼깨이(지렁이)의 화신으로 나오는 견훤에 대한 <삼국유사>의 후백제 견훤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又古記云. 昔一富人居光州北村. 有一女子. 姿容端正. 謂父曰. 每有一紫衣男到寢交婚. 父謂曰. 汝以
長絲貫針剌其衣. 從之至明尋絲於北墻下. 針剌於大 蚓之腰. 後因姙生一男. 年十五. 自稱甄萱.
또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부자 한 사람이 있어 풍채가 몹시 단정했다. 그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고 갑니다"하자 아버
지는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하여 그 말대로 시행했다. 날이
밝아 그 실이 간 곳을 찾아보니 북쪽 담 밑에 있는 큰 지렁이 허리에 꽂혀 있었다. 이로부터 그
딸은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삼국유사> 후백제 견훤조
견훤의 출생지로 알려진 장소를 ‘금하굴’이라는 곳은 문경 가은읍의 아차 마을 끝에 있다. 금하굴은
오랫동안 메꿔져 있었다가 1946년 복원되었는데 지렁이가 기어나온듯 좁고 꼬부라져 들어간다.
견훤이 꺼깨이의 화신이었다는 전설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지렁이와 견훤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까지만 보면 견훤의 지렁이나 경상도 사투리의 꺼깨이가 고비
사막의 '커코이'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묘사한 무서운 고비사막의
'커코이'에 대한 '괴수' 분위기에 대한 묘사는 안동 지방의 견훤에 대한 '껄깨이' 전설을 기록하고
있는 『경상북도 지명유래총람』에서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앤드류스의 고비사막 '커코이'에 대한 기록과 경상도의 '꺼깨이(지렁이)' 기록을 자세히
비교해보니 고비사막의 커코이는 모래 속에서 웅거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듯이 견훤 또한 모래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유사성이 일치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비사막의 '커코이(khorkhoi)'와 후백제의 견훤 '꺼깨이'에 대한 필자의 연구 추적은 최초로 밝히는
비교문화사적인 새로운 발표라고 자부한다.
후고구려 왕건과의 전투에서 비롯했다고 전해져 오는 안동의 고싸움 놀이에 나오는 고의 모양
에서 두 마리의 '꺼깨이'가 맞붙는 모양을 보면 '꺼깨이' 화신은 견훤만이 아니라 당시 후고구려의
왕건에게도 '꺼깨이' 화신의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안동의 고싸움 놀이는 그
일대에서 벌어진 견훤과 왕건의 전투를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견훤과 왕건의 격전이 두 마리의 꺼깨이로 표현된 고싸움 놀이를 보면, 최소한 통일신라시대 이전
삼국시대 때 우리민족은 거대한 '꺼깨이 토템' 숭배와 그 신화적인 전설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古記>의 견훤 신화 기록에서 보이는 꺼깨이 후손이라는 표현과
꺼깨이처럼 생긴 고싸움 놀이가 견훤과 왕건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고놀이에 남아 있는 것에서
재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왕건과 견훤이 싸운 곳에서 '고놀이' 전통이 남아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
'고싸움 놀이'의 '고'가 마치 두 마리의 '꺼깨이'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 고싸움 놀이가
'꺼깨이'를 닮아 있다는 새로운 주장과 함께 견훤이 침략하여 신라의 경애왕을 살해한 경주
포석정의 모양이 '꺼깨이'를 닮아 있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처음으로 밝히게 될 것이다.
(출처:코리안신대륙발견:11/15/1 오두 김성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