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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야기. 한 아이가 있다. 아니 학생이다. 학생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나이는 16세이고 몸집은 성인만하고 폭력적인데다가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게임 중독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밖에 나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크다. 이 아이를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이 사례를 처음 접한 것은 한 상담 요청에 의해서였다. 50대의 아주머니가 동 주민센터에 상담을 요청하였는데, 집에만 있는 아들이 자신과 누나에게 폭력을 가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전달받은 나는 행복e음을 통해 대상자에 관련된 사항을 찾아보았다.
대상자는 한 부모 기초생활 수급가구로 엄마와 남매가 살고 있었다. 큰딸은 독립하였고, 둘째딸은 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막내아들은 고등학생 나이였다. 상담 내역을 살펴보니 작년에 사례관리가 시작되었지만 아이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사례관리가 진행되지 않았고, 그래서 자체종결 된 사례였다. 대상자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상담 약속을 잡았고 집을 방문했지만 아이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다시 대상자에게 상담 약속을 잡아 집을 방문하였다. 하지만 상담 내내 아이는 옆에서 자고 있었다. 밤새 게임을 해서 잠이든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가 깰까봐 노심초사하는 대상자와 아이에게 들으라고 더 목소리 톤을 높이는 사례관리자의 첫 상담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3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었고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아버지가 교통사고 가해자로 현장에서 사망하자, 대상자와 자녀들은 그 어떤 삶의 대책도 마련되지 않은 채 내팽개쳐진 상태가 되었다. 아이들은 한순간에 아빠를 잃었고 웃음도 잃었다. 대상자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갔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 아이는 누나들의 폭력과 장난 따돌림에 시달렸고,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의 체벌과 같은 반 친구들의 따돌림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아이는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학교에만 가면 배가 아팠고, 학교 건물만 보면 불안해졌다. 결국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아이는 중학교를 1학년 5월에 자퇴하게 된다.
그 후로 아이는 집에서만 지냈다. 전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자기만의 공간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유일한 낙은 컴퓨터 게임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게임을 하는 시간은 행복하고 즐거웠다. 게임에 중독되어가도 몸집은 점점 불어났고, 가족의 관심을 간섭으로 여기며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아이는 이제 어머니와 누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아이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아이를 밖으로 나오게 할 수도 없었다. 아이는 그렇게 마음의 문까지 닫아걸었다.
나는 이 가정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대상자와 함께 목표를 수립했다. 대상자의 소망은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에 가고 보통의 아이처럼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아이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아이를 만나봐야 했다.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대상자에게 전화를 해서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전해들은 비밀번호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이는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아이 옆에 조용히 앉아 아이가 깨기를 기다렸다. 전혀 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10여분을 기다린 사례관리자는 아이의 다리에 손을 얹고, 살짝 흔들었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누구인지 확인한 아이는 사례관리자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에게 물었다. 이렇게 살 거냐고?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다시 물었다.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다시 예전처럼 학교생활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밤에는 컴퓨터를 하고 낮에는 잠을 잔다.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고, 손톱은 어떻게 젓가락질을 할 수 있을지, 컴퓨터 자판은 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3cm이상이나 길어 있었다. 머리는 오랫동안 감지 않아서 윤기가 흐를 지경이었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지 막막했다.
우선 학교에 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학교에 가기 위해 지금의 생활태도를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설득하자, 즉각 그러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당장 하겠단다. 이렇게 쉽게 하겠다는 소리를 들으니 힘이 솟았다. 게다가 대상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이가 손톱 깎기를 찾았다는 말을 전해 듣자, 무언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초인종을 두세 번 눌러도 기척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아이는 자고 있었고 어제의 모습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문 여는 소리에 아이는 잠에서 깼다. 옆에 앉아 몇 시에 잤는지 확인하니 밤을 새고 아침에 잤다고 한다. 씻지도 않았고, 손톱도 그대로였다. 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지 물었다. 귀찮았다고 했다.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약속을 했다. 이번엔 사례관리자로서 실질적 도움을 제안했다. 미용봉사자를 구해 다음 주에 머리를 깎아 주겠다고. 그러자 밖에 나간다면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그렇게 되면 또 배가 많이 아플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사람들이 쳐다 볼 것 같으냐고 물으니 몸도 뚱뚱하고, 머리도 길고해서 쳐다본다고 한다. 질문을 바꿔 운동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축구를 좋아한다고 한다. 다음에 축구를 함께 하자고 하니 무척 좋아했다.
이 · 미용 봉사자에게 전화를 걸어 방문 미용 봉사를 부탁드리니 그러겠노라 응해 주었다. 다음 주 화요일 오전에 약속 날짜를 잡았다. 이젠 봉사자를 실망시키지 않게 대상자를 교육할 차례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아이의 집에 방문하니 아이는 자다가 일어났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주었다. 변화에 기쁨이 몰려왔다. 몇 시에 잤는지 물으니 새벽녘에 잤다고 한다. 생활 패턴을 바꿔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자는 패턴을 바꿀 수 있도록 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다시 한 번 기대에 찼다. 그리고 나서 살펴보니 손톱도 깎았고 머리도 감고했던 거다. 어제 감고 깎았다고 했다. 매우 멋지다고, 잘했다고 지지해주니 좋아한다. 무언가 희망이 다시금 샘솟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일 찾아와 만나면서 관계를 쌓아갔고, 방문 미용을 통해 머리도 깎았다. 머리 깎은 모습에 만족해했고, 2 ~ 3달에 한 번씩 벌써 4번을 깎았다. 이제는 봉사자에게 미리 시간을 말해주면 가서 깎아주기도 한다. 그 후 1주일 정도의 노력으로 첫 외출을 하였다. 외출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던 거다. 함께 동 주민센터에 방문하여 안경을 직접 신청하고, 동네를 함께 산책한 후 집에 들어왔다. 일주일 뒤엔 공원에서 축구를 함께 했다. 아이는 매우 열심이었다. 30분 정도 운동을 했을까, 갑자기 아이 다리에 근육경련이 왔다. 너무 오래 집안에만 있어서 생긴 증상이었다. 마음이 아려왔다. 다리가 아파서 3일정도 고생하였지만, 다시 운동을 해서 근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그래서 엄마나 누나와 함께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사례관리자와 함께 축구를 하게 했다.
이후 밖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심리 치료와 운동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바우처를 신청하게 하였다. 우리 아이 심리지원 바우처와 체육 바우처를 직접 신청하도록 하였고, 시 담당주무관에게 협조요청을 해서 바우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함께 심리치료센터에 방문하여 상담치료를 받게 연계하였고, 6번의 상담을 받았지만 그 후 상담을 통해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판단으로 상담받기를 거부하였다. 좀 더 심리치료를 통해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너무 큰 기대였을지도 모른다. 검정고시 공부를 위한 노력도 아직은 준비가 안 되어 잘 되지 않고 있으며, 외식프로그램을 약속하고 약속당일 데리러 갔지만 아이의 완강한 거부로 계획에 차질이 생긴 적도 있었다.
이렇듯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상태지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사례관리자와 거의 매일 산책을 하고 있으며, 다른 대상가족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엄마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혼자 산책을 할 때도 있고, 병원도 혼자 다니고 있다. 자신의 화를 달래는 방법으로 정신과치료를 소개하였고, 정신과란 소리에 펄펄 뛰었던 예전의 모습과 달리 치료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사례관리자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있으며 대상자나 가족들도 사례관리자의 개입 후 변화에 고마워하고 지지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상 가정은 아이의 변하는 모습 외에 탈 수급 및 자립생활이 필요했다. 희망리본프로젝트에 가입하여 선정되었으며, 희망통장에도 선정되어 꿈을 키워가고 있다.
아이의 변화에 대상자도 매우 행복해 한다. 함께 한 지 1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지만, 이제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에 사례관리자는 보람을 느낀다. 아직 수많은 난관이 있음을 안다. 상황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다만 잘되길 바라며 기도하며, 성실하게 아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제시와 설명을 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아이와 만날 약속을 잡으며 미소를 짓는다.
올해 초 나는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례관리대상자가 사례관리자가 원하는 대로 따라온다면 그것이 무슨 사례관리대상자고 사례관리이겠냐?”라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우리는 마치 우리가 대단한 사람인양 사례관리를 해오지 않았나 자문해 봤다. 대상자의 거부와 민원, 거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대상자와의 관계형성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령 관계형성이 되었다 할지라도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다. 다만 대상자의 만남과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씩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진심은 통할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뜻대로 되어가기만을 바라는 오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례관리에 임할 때, 그 진심은 아마 꼭 대상자에게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감동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