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를 위해 미국 남장로회에서 1892년(고종 29) 7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이들을 일컬어 7인의 선발대[band of seven pioneers]라 칭하며, 리니 데이비스(Linnie Davis)·윌리엄 맥클리리 전킨(William McCleery Junkin)·메리 레이번(Mary Leyburn)·윌리엄 데이비스 레이놀즈(William Davis Leynolds)·펫시 볼링(Patsy Bolling)·루이스 보이드 테이트(Lewis Boyd Tate)·마티 새뮤얼 테이트(Mattie Samuel Tate)이다.
7인이 한국에 도착한 이듬해 서울에서 장로회 공의회가 조직되었다. 장로회 공의회에서 미국 남장로교 선교 팀이 충청남도 일부와 호남 지역을 선교 활동 지역으로 결정함에 따라 1893년(고종 30)부터 테이트·전킨·레이놀즈 등 선교사들이 차례로 호남 지역을 답사차 다녀갔다. 1894년(고종 31)에 테이트 선교사 남매가 전주에 거처를 정하고 6개월간 체류하였고 1896년(고종 33) 본격적인 선교 활동에 들어갔다. 그 무렵 호남 지역 거점 센터인 전주 선교부가 정식 출범되었다.
이후 선교사들은 전주를 중심으로 서북부 지역인 김제·군산, 동북부 지역인 완주군·진안군 등지로 확대하여 선교 활동을 펴게 되었다. 무주 지역의 복음 전파는 루터 올리버 맥커친(Luther Oliver McCutchen)[한국명 마로덕] 선교사에 의해 1904년(고종 41)부터 본격화되었다. 당시는 전주에서 진안군으로만 가더라도 험한 고갯길을 넘어가야 하는 등 가기 어려운 곳이었음을 짐작할 때 무주는 더 말할 나위 없는 오지였다. 그러나 마로덕 선교사는 말을 타거나 걸어서 마을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파하였다.
마로덕 선교사는 무주 지역 초대 교인들과 원활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였다. 특히 증산 교회 이경문을 전도인으로 임명하여 이경문과 함께 무주군 설천면 두길 교회, 적상면 여올 교회, 안성면 이목 교회, 무주읍 무주 장로교회 등을 설립하였다. 선교사로는 마로덕 외에 엘머 티머시 보이어(Elmer Timothy Boyer)[한국명 보이열], 윌럼 먼로 클락(Willam Monroe Clark)[한국명 강운림]이 무주 지역 기독교 전래에 힘썼다. 마로덕과 함께 무주 지역에서 전도 활동을 한 한국인으로는 최중진·최광진·최대진 삼형제가 있었다.
특히 김필수는 뛰어난 한학 지식이 있었고 당시 신흥 학교 교사로 있었기 때문에 선교사의 조사(助師)로 무주에서 활동할 때 순회 전도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교육하고 모임을 이끌어 가는 능력을 발휘하여 무주 지역 복음 전파에 큰 힘이 되었다. 또한 마로덕 선교사가 시행한 성경 학교에 무주 지역 사람들도 대거 참여하여 교육 받은 후 각자 거주지로 돌아가 교회 성장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무주 지역 교회 역사에 기록될 만한 공헌이 되고 있다.
[무주 지역 교회 현황]
무주 지역의 교회 현황을 보면 장로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장로교단으로는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장로회가 있다. 예수교 장로회에는 통합과 합동 두 개의 교단[종파]이 있는데, 통합 측 교회로는 무주장로교회를 포함하여 29개가 있고, 합동 측 장로교로는 대유제일교회를 포함하여 8개 교회가 있다. 그밖에 기독교 침례회 소속 세 개 교회, 기독교 대한 감리회 소속 두 개 교회, 기독교 장로교회와 기독교 성결 교회와 백석 장로회 교회 각각 한 개 등 무주 지역에 총 50여 개 교회가 있다.
[참고문헌]
『신약 성경』
한영제, 『기독교 사전』(기독 교문사, 1991)
김수진, 『호남 기독교 100년사』-전북 편(쿰란 출판사, 1998)
한인수, 『호남 교회 형성 인물』(도서 출판 경건, 2000)
타키투스, 『타키투스의 연대기』(종합 출판 범우, 2005)
김상근, 『기독교 역사』(평단, 2007)
알랭 코르뱅, 『역사 속의 기독교』(도서 출판 길, 2008)
김천식, 「마티 잉골드의 선교 활동에 관한 연구」(전주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2)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부등마을
부등마을 (지성교회 소재)
부등은 마을의 지형이 서로 무리를 이루고 의지해 있는 형국이라 붙인 이름이며 불내라고도 한다. 물이 굽이치며 흐르는 곳이라 하여 한 때는 분내(분천)로 불리웠다. 불내는 곧 분내(분천)을 발음 그대로 적은 것이다.
분양서원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1호 (전북 무주군 무풍면 지성길 119번지)
분양서원은 1929년 신축하여 200년 6월 23일 전라북도 지정문화제 161호로 확정되어 있다. 지성리 부등마을에 소재하고 있는 분양서원은 조선초기 때의 인물인 섭섭, 서효재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달성서씨 문중에서 서원으로 쓰던 풍성당을 1943년 무풍면 지성리로 옮겨 수리한 뒤, 동쪽에 사당 숭모사를 추가로 지었다. 서섭은 세종때 이조판서를 지냈고, 후일 사육신의 순절을 애통해하며 시골로 내려와 은둔생활을 하고 후학을 기르며 여생을 보냈다. 경내에는 정문인 상덕문을 비롯해 숭모사, 분양정사묘정비 등이 남아 있다.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서동마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오동마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율오, 율평마을
율평마을
대덕산 시슭에 위치한 율평(栗坪)마을은 응구점이라 하여 옹기 굽는 마을로 시작되었고 마을 뒤에 넓은 평원이 있는데 밤나무숲이 울창하여 붙인 이름으로 밤불이라고도 불렀다. 율평마을은 동쪽으로는 금평리와 경계를 이루고 남서쪽은 지일과, 북서쪽으로는 현내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명품 사과의 주생산지이기도 하다.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 지성, 모산마을
지성(池城)마을
조선시대에는 현(내리 금평리와 함께 풍동면에 속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모산(池山) 불내(汾川) 서수골(鋤洞) 밤들(栗坪) 까마귀디미(鳥池)등 다섯마을을 같은 행정구역으로 하여 무풍면 지성리로 법정리가 되었다. 이곳의 안골짜기에는 연못이 있던 곳이라 하여 못산(池山)으로 부르는 마을이 있고 마을의 북쪽에는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성재가 있다. 이런 연유로 지산의 지(池)자와 성(城)자를 따서 지성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