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한당(不汗黨)’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은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 남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파렴치한 사람들의 무리’라 뜻풀이 한다. 도적떼, 불량배다. 한자(漢字)대로면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라는 뜻이니 그럴듯하다. 그런데 자전(字典)이나 고문헌에서 용례를 찾기는 어렵다.
《조선왕조실록》 국역판에서 불한당을 검색해보면 좀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한자어 불한당(不汗黨)은 나오지 않는다. 세종 때의 화적(火賊), 철종 때의 명화적(明火賊) 등 도적떼를 모두 불한당이라 옮겨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대한매일신보》 1909년 10월1일자 논설에 ‘불한당’이 나온다.
“경향 민간으로 횡행하면서 기인취물하매 사람마다 질욕하여 가로되 불한당이라 하여도 부끄러움이 없으며 (…) 유명무실한 벼슬깨나 얻어 가며 허수아비 놀음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으며….”
한자 뜻대로의 ‘땀 흘리지 않고 가로채는 무리’라는 데 어울린다. 한편 김구(金九) 선생의 《백범일지》에는 도적떼를 일컫는 말로 나오는데, 문제의식은 《대한매일신보》의 예와는 좀 다르다. 백범이 1911년 경성감옥에 있을 때의 일화 대목에서다.
〈“남도(南道)의 도적 치고, 그 사람 모르는 도적은 없습니다. 그가 유명한 삼남(三南) 불한당(不汗黨) 괴수 김(金) 진사(進士)요.”
세상에 활빈당(活貧黨)이니 불한당이니 하는 큰 도적떼가 있어서 능히 장거리와 큰 고을을 쳐서 관원을 죽이고 전재(錢財)를 빼앗되, 단결이 굳고 용기가 있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작이 민활하여 나라 군사의 힘으로도 그들을 잡지 못한단 말을 들었는데,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자면 견고한 조직과 기민한 훈련이 필요한즉 이 도적떼의 결사와 훈련의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여 두루 탐문해보았으나 마침내 아무 단서도 얻지 못하고 만 일이었다.〉
하여 백범은 김 진사에게 도적떼의 조직에 관한 것을 물었다. 김 진사는 이에 답하여 조선 전래의 군도(群盜), 즉 도적떼의 내력과 조직을 말했다. 나름 뿌리가 깊고 명분이 있으며 조직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백범은 이에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나라의 독립을 찾는다는 우리 무리의 단결이 저 도적만도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부랑당
▲ 〈태평천하〉의 작가 채만식.
한편 ‘부랑당’이라는 말도 있었다. 일제시대 채만식(蔡萬植·1902~1950)의 장편소설 〈태평천하(太平天下)〉(1938년)에 나온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하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고 하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하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같은 해의 단편소설 〈치숙(痴叔)〉(1938)에도 ‘부랑당’이 나온다.
〈“그러면 아저씨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돈 모아 부자 되는 경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모아 둔 부자 사람네 돈 뺏어 쓰는 사회주의 공부를 했으니 말이지요….”
“너는 사회주의가 무얼루 알구서 그러냐?”
“내가 그까짓 걸 몰라요?”
한바탕 주욱 설명을 했지요.
내 얼굴만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누웠더니 피쓱 한번 웃어요. 그리고는 그 양반이 하는 소리겠다요.
“그게 사회주의냐? 부랑당이지.”
“아—니, 그럼 아저씨두 사회주의가 부랑당인 줄은 아시는구려?”
“내가 언제 사회주의가 부랑당이랬니?”
“방금 그리잖었어요?”
“글쎄, 그건 사회주의가 아니라 부랑당이란 그 말이다.”
“거 보시우! 사회주의란 것은 그렇게 날부랑당이어요. 아저씨두 그렇다구 하면서 아니래시오?”〉
당시 원문대로 옮긴 것인데, 여기의 부랑당이 불한당이다. 〈태평천하〉에서 화자(話者)인 윤직원 영감은 일본 유학까지 하여 출세를 기대했던 손자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구속됐다는 것에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라며 울부짖는다.
‘치숙’은 어리석은 아저씨라는 뜻인데 작중(作中) 고모부를 가리킨다. 고모부는 일본에 유학을 하여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구속돼 감방생활 하다 병을 얻어 출소한 뒤 방구석에서 지내는 신세다. 이에 대해 조카는 고모부가 빠졌던 사회주의를 비판한다.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주의는 ‘모아 둔 부자 사람네 돈 뺏어 쓰는’ 불한당(不汗黨) 발상이라는 것이다.
채만식의 反問
▲ 레닌의 러시아혁명은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채만식 소설의 이런 서술은 ‘역설적 풍자’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표면적으로는 지목된 대상인 ‘사회주의자’를 비판하는 듯하지만 그 비판하는 화자를 공감하기 힘든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비판받는 대상에 동정심과 공감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다. 채만식에 대해 1940년대 이후의 친일(親日) 행적에 대한 시비가 있었으며, 해방 직후 스스로 사과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탁류〉(1937~1938년 연재)를 비롯한 1930년대 예의 일련의 작품들은 결코 일제(日帝)시대를 미화하는 작품이 아니다. 〈탁류〉라는 제목이 대표적으로 암시하듯 고달픈 시대상과 그에 맞선 삶의 고달픔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태평천하〉에는 ‘과연 그렇기는 하냐’는, 〈치숙〉에는 ‘과연 그렇게 어리석기만 하냐’는 반문(反問)이 있음이 엿보인다.
그런데 리얼한 건 그것만이 아니다. 그들이 빠졌던 ‘주의(主義)’에 대한 신랄한 묘사도 그만큼 리얼하다. 사회주의도 결국 “땀 흘리지 않고 뺏으려는” 불한당(不汗黨)의 발상 아니냐는 질문에는 시대와 상황을 넘어서는 통렬함이 있다.
일제시대, 사회주의로 기운 지식인은 매우 많았다. 일제 본토에서도 그랬지만 식민지 조선도 그랬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래 사회주의는 바야흐로 유행인 터였다. 혁명 러시아의 지도자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식민치하의 저항적 지식인에게는 은밀한 동경을 더하게도 했다. 그래서 일제에 맞서기 위해 혹은 맞서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를 택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저항의 정당성과 대안(代案)의 올바름은 언제나 별개의 문제다. 사회주의라는 것도 그랬다. 그것이 올바른 선택일 수 없음은 이후의 역사가 증명했다. 물론 그 과정은 한순간에 간단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치열하고 격렬한 진통을 겪어야 했으며,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경과해야 했다. 그런 만큼 그때 그 시절 미처 그런 문제를 헤아리지 못한 건 시대적 한계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절박함의 감성이 헤아림을 막았다.
괴물과 싸우다 물드는…
저항은 그저 이성적 행위가 아니다. 감성적 절박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절박함은 종종 통찰을 가로막는다. 단지 가로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압도하기 일쑤다. 그렇게 감성적 절박함에 사로잡히면 선의로 시작된 싸움도 본래의 선의를 잊고 ‘선악의 저편’으로 넘어가버리곤 한다.
일제에 맞서기 위해 사회주의를 택한 이들의 궤적이 실제 그랬다. 적지 않은 이들이 해방 공간과 남북 분단이 이뤄지던 시기에 북한 공산정권을 택했다. 그런데 그들이 택한 북한 공산정권은 6·25 남침으로 500만명의 사상자라는 참혹한 피해를 야기했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이 이전에도 당시에도 시종 옳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확신은 결국 악마적 결과로 귀결됐다. 그런데 그런 경과를 마치 지목해놓은 듯한 경구(警句)가 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深淵)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Nietzsche ·1844~1900)의 《선악의 저편》(1886)의 한 구절이다. 니체는 정치철학자도 아니며 그의 사상은 좌우 범주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이 경구는 보편적 울림이 있다.
백범은 “우리 무리의 단결이 저 도적만도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고 했다. ‘치숙’ 아저씨는 “너는 사회주의가 무얼루 알구서 그러냐?”고 조카에게 항변했다. ‘괴물과 싸우는’ 이의 절박함, 열망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절실함이 있다. 그런데 그런 만큼 그 또한 그들을 사로잡았다. 어리석은 사회주의 아저씨들은 북한정권의 편이 되었고, 백범은 민족단일정부의 명분으로 김일성과 협상에 나섰다. 모두 심연에 사로잡힌 과오였다.
반복되는 유혹
▲ 2016년 11월 15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더불어민주당 천막 농성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와 박범계 의원. / 조선DB
그런데 이 같은 문제는 그때 그 시절의 한반도에서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맞닥뜨리는 문제였다. 정치 영역에는 늘 그런 ‘수렁’이 도사린다. 표면은 그럴듯한 명분과 수식어로 아름답게 찰랑대지만 그 아래는 ‘선악의 저편’으로 끌고 가는 소용돌이를 품은 수렁이다.
‘사회주의’라는 게 그런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은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의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사회주의는 이름으로는 잘 앞세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칭을 뭐라 하든 ‘땀 흘리지 않고 남이 모아 둔 돈 뺏는’ 불한(不汗)을 합리화시키는 논리는 여전히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런 논리가 결국에는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수렁임을 거듭 겪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인 한 유혹은 늘 곁에 있기 마련이며 이념적·정치적 유혹도 반복되기 마련이다.
현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진 뒤 한때는 사회주의는 끝났다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좌익적 주의·주장이 다시 횡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물론 한국도 지금 그렇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단순히 그 유혹의 반복만이 아니다. 행태가 매우 저열(低劣)하다.
현 정권의 정치적 편향은 새삼 따질 필요도 없이 다 드러나 있다. 좌익이며 종북(從北)인데다 중공(中共·중국공산정권)에 대해서도 명백히 종중(從中)이다. ‘민주팔이’만 있을 뿐 민주주의는 이미 포퓰리즘의 먹이가 됐다. 자유를 유린하는 갖은 난폭한 정책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광적(狂的)인 ‘대깨문’은 여전하니, 전체주의적 폭정(暴政)이 현실화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정권의 문제가 좌익, 포퓰리즘, 전체주의 등의 정치적 차원이기만 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어떤 점에선 그런 진단조차 이 정권의 행태로 보자면 차라리 고급스럽기까지 해보이기 때문이다. 이 정권은 애초부터 잘못된 이념적 지향에 더해 피할 수 없는 타락까지 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정권은 그것만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선 질적 저열함이라는 문제를 보이고 있다.
어디든 좌익혁명운동의 초창기 인물들은 그 나름의 비장감이 있다.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결국에는 악적(惡的) 종말을 예약하게 했지만 인간 자체가 불량배는 아니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일제하 ‘치숙(痴叔)’은 어리석긴 했으되 불량배는 아니었다. 이후의 좌익운동도 대체로는 그랬다. 당연한 과오에 타락도 있지만 아집(我執)의 무리일망정 불량배는 아니었다.
건달답지도 않은 집권세력
그런데 지금 한국의 집권세력은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독선(獨善)과 아집 차원을 넘어선다. 저열하고 불량하다. 물론 이데올로기적 독선이 합리화를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갖가지 범죄적 행각과 파렴치한 행태는 그 탓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적 사익(私益) 추구를 위장하는 데 이데올로기적 기치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좌익 인사들마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런 지적을 한다. 최근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도 그랬다. 그는 현 정권의 586세대를 일컬어 “제대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모르는 민주건달”이라고 공격했다. 홍세화는 1979년 남민전(南民戰)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2002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해서도 줄곧 좌익 진영에 몸을 담아 2011년에는 진보신당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확신 좌익이다. 이런 사람이 현 정권 패거리를 ‘건달’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 따지자면 건달이라는 표현도 과분하다. 건달은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지만 어원으로 보자면 나름 격이 있다. 한자어로는 ‘乾達’인데 본래 힌두교와 불교에서 ‘음악의 신(神)’인 간다르바를 한자로 표기한 ‘건달바(乾達婆)’에서 유래했다. 건달바는 향(香)을 먹고 사는 신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만 즐기기 때문에 후에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짓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컬어 건달이라 부르게 되었다.
건달은 주먹 세계에서 그 무리가 스스로를 일컫는 용어로 쓰이곤 했다. 나름 자존심의 표현이다. 건달은 깡패보다는 윗길이다. 깡패는 영어 ‘gang’과 ‘패(牌)’의 합성어에서 유래했는데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며 행패를 일삼는 무리’를 일컫는 것이다. 그에 비해 건달은 나름 법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 정권 패거리의 행태를 보면 도무지 건달답지도 않다. 문 정권의 법무부 장관을 한 조국(曺國)·추미애(秋美愛)의 언행(言行)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 후임으로 지명된 박범계(朴範界)의 행적은 더욱이 혀를 차게 한다. 고시생 폭행 시비가 일더니, 국회에서의 폭행 문제로 법무부 장관 최초로 법정에 서게 될 수 있다 한다. 다른 직책도 아니고 법무부 장관이 줄줄이 이런 식인 건 놀랍기까지 하다.
양아치·깡패·건달·협객·지사
▲ 4·19 후 정치깡패 사건으로 법정에 선 유지광. ‘정치깡패’들은 스스로를 건달, 협객으로 생각했다. / 조선DB
폭력배 세계를 묘사한 영화에선 종종 “깡패가 아니라 건달로 불러 달라”는 대목이 눈에 띄곤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깡패보다 더 등급이 떨어지는 멸칭(蔑稱)이 있다. ‘양아치’다. 거지를 더욱 비하해 이르는 말인데 집집이 걸식하는 ‘동냥아치’에서 유래했다. 가장 밑바닥이다.
그런데 아래에 양아치가 있다면 위로는 협객(俠客)이 있었다. 자유당 시절 ‘정치깡패’로 유지광이라는 이가 있다. 그는 자서전 《대명(大命)》에서 깡패, 건달, 협객의 어원을 풀고 논했다. 남들은 정치깡패라 했지만 유지광 자신은 물론, 김두한을 비롯한 당대의 주먹 어느 누구도 자신을 깡패라 여기지 않았다. 최소한 건달로 나아가선 협객임을 자부(自負)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정상적 일반 세계의 바깥이 있다. 중국에선 전통적으로 그런 영역을 일컬어 ‘강호(江湖)’라 했다. 협객은 강호를 무대로 한 무협물(武俠物) 세계의 주연 격이다. 그런데 만들어진 이야기도 현실을 반영한다. 강효백의 《협객의 칼끝에 천하가 춤춘다》(한길사·1995)는 중국 치란(治亂) 교체의 역사가 모두 그러했다고 논한다. 따지자면 멀게는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 명(明)을 창건한 주원장(朱元璋), 가깝게는 정강산에서 시작해 연안에 진을 차린 마오쩌둥(毛澤東) 등도 모두 협객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정사적(正史的) 서술은 아니지만 헤아릴 바가 있다. 정치깡패 혹은 건달 유지광 등이 협객을 자부했듯 그 세계에서의 위를 향한 갈망도 일종의 보편적 심리일 것이다. 깡패는 건달로 대우받기 원하고 건달은 협객을 꿈꾼다. 더 아래의 양아치부터가 그저 걸식이 아니라 힘을 행사해보는 깡패를 꿈꿀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비유적으로든 실제로든 각각에 따라 요구되는 그만한 격이 있다.
양아치는 속된 말로 ‘존심’과 ‘깡’을 갖추어야 깡패 흉내라도 내볼 수 있는 것이요, 깡패는 주먹질을 자제할 줄 알아야 건달의 행세를 시작할 수 있을 터이다. 그리고 건달은 뜻과 명분에 최소한의 편승이라도 할 줄 알아야 비로소 협객의 시늉이나마 시작할 수 있다 하겠다.
나아가 비록 어설피 시작한 협객 시늉이라 해도 뜻과 명분에 온전히 몸과 마음을 바치게 되면 드디어는 지사(志士)의 반열이 열린다. 그 뜻과 명분이 올바른 것인지의 시시비비(是是非非)는 별개로 한다 해도 적어도 자세와 격으로는 그러하다.
건달은커녕…
이렇게 따져서 살피자니 작금 현 정권 패거리의 행태에는 건달은커녕 도무지 부여할 급(級)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의 자제력도 없이 힘을 휘둘러대는 행태는 깡패스럽다. 도처에서 마치 걸신 들린 듯 욕심을 채우는 행태는 가히 양아치다.
이데올로기적 독선은 그게 비록 잘못된 것이라 해도 협객·지사다운 비장감은 있다. 하지만 이 정권의 행태에는 그런 면모가 없다. 그저 그간 흔들어대온 각양의 명분을 팔아대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민주·정의·진보 등을 전매특허마냥 흔들어댔지만 이제는 ‘민주팔이’ ‘정의팔이’ ‘진보팔이’ 이상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걸핏하면 ‘민족팔이’에 ‘반일(反日)팔이’도 한다. 그런데 위안부를 팔아 돈을 챙기고 또 빼먹는 걸 보면 아연할 노릇이다. 범죄이기도 하지만 행태가 완전 양아치다. 게다가 걸핏하면 도처에서 성추문이 나온다.
이런 저열한 행태는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좌익이라는 건 본래 그렇다고 해버리고 싶겠지만, 그건 너무 상투적인 선언이다. 이념을 앞세운 사기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모든 좌익이 그저 양아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좌익은 때로는 이념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으로 사고를 치는 경우가 더욱 다반사다. 그런 걸 일컫는 그들의 용어도 있다. ‘좌익 소아병(小兒病)’이다. 하지만 이 정권의 행태는 소아병이기보다는 교활하고 뻔뻔하다.
前近代的 ‘관시’ 집단
이 정권의 이념적 편향의 독선이 뻔뻔함을 더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행태의 저열함은 이념에서만 비롯되고 있는 게 아니다. 유사한 경우를 찾자면 중공과 닮았다. 중공의 문제는 전체주의적 이념만이 아니다. 건강한 근대를 갖지 못하고 공산전체주의 독재로 내달린 탓에 전근대적(前近代的) 사회관계의 습성이 그대로 남았다. ‘관시(關係)’라는 것이다. 중공은 이념의 문제와는 별도로 여전히 관시라는 인맥(人脈) 문화가 압도적이다.
한국의 문재인 정권 패거리도 그러하다. 문 정권 집단은 한편으로는 이념적 패거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의 완연히 지연(地緣)에 기반한 관시 집단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게 문제라는 걸 모르고 있다.
근대적 사회관계의 힘은 혈연·지연 등의 1차적 인간관계에 묶이지 않는 데 있다. 직접적인 교유를 하지 않으면서도 법과 사회적 규칙의 공유를 통해 하나의 시민사회를 이루고 정치체를 이룬다. 그리하여 익명적(匿名的) 관계이면서도 직접적 소통의 전근대적 관계 구조보다 훨씬 대규모일 뿐 아니라 더욱 견고한 2차적 관계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같은 관계 구조는 전근대적 인간관계보다 훨씬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낸다.
전근대적 관시는 ‘끼리끼리’의 온정주의(溫情主義)를 피하지 못한다. 아니 그게 오히려 기반이다. 그 때문에 그런 관계가 위력을 발하면 시민사회적 규칙은 물론이요 법치도 흔들려버린다. 내로남불을 거리낌 없게 하는 건 바로 그런 끼리끼리의 온정주의다. 이 정권의 사람들이 걸핏하면 소통을 운운하는 것에도 그런 온정주의를 당연시하는 배경이 있다.
근대적 관계에 대한 무지가 저열함을 낳는다
물론 그런 정서는 그들만의 것도 아니다. 따지자면 ‘쓸모 있는 바보’ 노릇을 하는 어설픈 지식분자들의 문제도 있다. 마르크스 이래 그런 유에 경도(傾倒)된 많은 지식분자가 근대의 도시적 익명성을 병리적 소외로 여기곤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퇴장(退場)한 전근대적 농촌공동체적 인간관계에 향수(鄕愁)를 품는다. 심하게는 아예 아득한 과거의 원시(原始)를 이상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낭만이라는 말도 아까운 중2병적 감상주의(感傷主義)다.
전근대는 혈연적으로는 대가족 관계이면서도 더 큰 사회적 관계는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근대는 핵가족 관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훨씬 큰 규모의 사회관계를 만들어내고 정치적 통합을 만들어냈다. 직접적 교유가 없는 익명적 관계이면서도 규칙과 법을 공유하며 사회와 국가를 이루어낸 것은 불행이 아니라 사실은 매우 위대한 성숙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에 매달리는 끼리끼리의 온정주의로 퇴행한다. 그리고 그 같은 온정주의는 결국에는 패거리적 저열함을 만연시킨다. 지금 문재인 정권 집단은 좌익적 편향만이 아니라 전근대적 패거리 문화의 문제를 함께 안고 있다.⊙
이강호 /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월간조선 2021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