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인들이 '번개모임' 가진 이유는?
설 연휴를 마치고 처음 맞는 15일 점심. 과학자, 정책연구자 등 대덕의 구성원들이 연구단지 4거리 대덕테크비즈센터(TBC) 건물 내 한 회의실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분위기인 만큼 덕담이나 나누자고 모인 자리. 하지만 연휴 중 각자가 특구 장래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한 탓인지 자리가 결코 가볍지 않게 됐다. 현황을 비롯해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더니 급기야 밥 먹는 것은 뒤로 밀어지고 격렬한 토론의 양상을 보였다.
조남훈 한국과학기술지주 대표의 제안으로 진행된 '급 번개모임'은 대덕 커뮤니티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고 있는 한 카톡방으로부터 시작됐다. 평소 같았으면 인사를 나누거나 간단한 정보교류 정도에 그쳤으나 중소기업 인력 수급, 출연연 기술사업화 등 사회 전반의 이슈에 대한 회원들의 논의가 조금씩 활발해 지면서 추진됐다.
이날 모임에 출연연 과학자, 퇴직과학기술인협회, 기술지주회사 관계자 등이 모여 그동안의 평론에서 벗어나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안오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사는 "중소기업에서 함께 일하던 인력이 역량을 쌓으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와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젊은층을 보면서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면서 "출연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TO 제한으로 비정규직 인원의 역량을 키워 활용하려 해도 이를 발판으로 다른 곳으로 취업하기 때문에 인력양성이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안오성 박사는 출연연 주요 미션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고급인력이 부족하고, 출연연 연구자들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일종의 '갭(Gap)'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안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엔지니어링센터' 구축을 제시했다. 수원 등 일부 민간기업에서 수행하고 있는 엔지니어링센터를 확대해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거나 기술멘토링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참석자가 이에 공감하면서도 센터 펀딩과 인력수급 등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민간보다는 지자체, 정부 등의 역할이 필요하며, 센터에서 기술멘토링 등을 수행할 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탁기수 대덕과학기술사회적협동조합 이사는 조합 회원 등 고경력 은퇴과학자의 활용을 제안했으며, 함진호 ETRI 박사도 각 출연연과 특구 등에서 보유한 은퇴과학자 DB를 활용해 기술 큐레이터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의 협진처럼 큐레이터가 종합적 이해를 갖고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연연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연계되는 '메이커 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함진호 ETRI 박사는 "미국의 'Techshop' 처럼 메이커운동 등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면서 "메이커 공간만 해도 시제품 제작소, 창업공작소 등 기관 별로 상이하며, 분리되어 있는데 체계적인 연계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별로 구분되어 있는 거버넌스에 아쉬움을 표출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도 제시됐다.
황혜란 대전발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대전에서는 대전 TP, 중소기업청, 창조경제혁신센터 등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를 엮어서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면서 "대전시 차원의 예산과 용지가 부족한 가운데 엔지니어링 센터 구축은 좋은 대안 중 하나다. 시는 이를 엮어주는 중간 구심체 역할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조남훈 대표는 "시나 특구 등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작은 것부터 바꿔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정말로 중소기업 등이 원하는 것부터 실천하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토론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늦은 점심을 함께 했다. 물론 당장의 해결책은 없었다. 그런데, 국가·사회적 발전을 위해 각자가 고민하고, 서로의 의견을 수렴한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회의를 마친 참석자들은 "식사를 겸하는 가벼운 번개모임으로 생각하고 갔다가 진지한 토론이라 놀랐다","출연연과 기업 연결시도과정에서 현실과 대안을 생각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등의 반응을 보이면서 다음 모임을 기약했다.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대덕 전문가들의 모습.
